너는 씨발 양심도 없냐?

너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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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한 것들을 전부 들키고 난 뒤 황민현이 이상해졌다. 이상하기보다는 자꾸 붙었다. 명색이 울 집 손님인데 집안일 시키는 건 좀 그래서, 설거지 하겠다고 고무장갑 빼앗아 드니 그거 갖고 “종현이 너, 지금 나 생각해 주는 거야?” 하고 의미부여 오지게 하는 것부터, 설거지 내내 뒤에서 허릴 끌어안고 있는 거나, 자꾸 옆에서 목 깨무는 것까지……. (내가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한다면서 막 웃었다. 죽이고 싶었다.)


사실 평소와 아주 달라진 건 아닌데. 그냥, 옛날 집 마당에서 키우던 초롱이가 발정나기 직전에 이랬던 것 같은데, 하는 그런 남사스럽고 어디 가서 말 못할 괘씸한 생각을 좀…….




“오늘 호텔 가자.”

“집 놔두고 호텔을 왜 가?”

“편하잖아. 괜히 집 더럽힐 필요도 없고. 너 괜히 바쁠 필요도 없고.”

“이유가 진짜 어이없는 거 알고 있냐?”

“아니야.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나 조금만 더러워도 치우잖아. 이거 못 고쳐. 너랑 여행하는 내내 치우다가 끝날 거야. 너 혈압 오르면 안 돼.”

“우리 내일이면 가……. 집에만 있을 것도 아니고 놀다가 잘 때만 잠시 들어오는 건데 뭐가 문제야?”

“그게 문제라는 거야.”

“……지금 혹시 정 뚝 떨어져도 되는 타이밍인가?”

“사귀는 사이에 이정도 욕심도 못 내냐.”

“너 나 자려고 만나냐?”

“어떻게 그런 말을.”




마을버스에서 하기에 적절한 말은 아니었지. 시장 바구니를 들고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우리 쪽을 흘끔 쳐다봤다. 할머니의 떨리는 눈을 보니 머쓱해졌다. 내가 경기도에 사는 한 할머니의 고정관념을 깨부쉈군.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기가 좀 그래서 고개를 옆으로 틀어 밖을 내다보는데 내 옆에 앉은 잘생긴 남자의 충격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나를 귀찮게 했다.




“내가 진짜 종현이 너를 그렇게 생각해서 만난다고 생각해? 야, 너, 쭈야, 너는 진짜.”

“목소리 크다.”

“아니, 피하지 말고. 내 마음 몰라? 진짜로?”




예의를 상시 갖고 있지만 요즘 들어 맹해져서 앞뒤 분간 못 하는 내 남자 친구. 사랑을 하면 미치는 타입이기는 했다. 황민현이 인생 꼴아 박고 술 처먹을 때는 항상 누군갈 만나던 때였으니까. 황민현은 사랑에 있어서는 굉장히 관대했다. 그다지 끌리지 않는 상대더라도 자기가 외롭다면, 사랑이 필요한 때라면 주저 없이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는 그게 정말 사랑인 것처럼 굴었는데, 옆에서 쭉 지켜본 나로서는 지금 황민현이 그 사람에 매료된 것인지 자신의 헌신에 매료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황민현은 그런 것들을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늘 무시하고는 했다. 어찌 되었든 황민현은 사랑 없인 살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난 그런대로 이해했다. 인스타그램 인간들의 특징이기도 했고, 또 내 관점에서야 숙맥이지 남들에게는 연애를 마스터하고 경지에 오른 남자 정도로 보였을 테니. 또, 지 능력치가 좋아서 꼬이는 사람도 괜찮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골치 안 썩일 케이스만 골라 사귀기도 했다. (존나 약음.) 마지막 누나 빼고는.


암튼, 인기남 설정으로 태어난 몸뚱이 덕택에 대인관계에 지쳤지만, 나름대로의 연애 로망은 철저해서 연애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래서 더 빡치는 황민현이 지금 내 앞에서 지 마음을 모르냐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게. 남 얘기일 때는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되고 그랬는데, 왜 내 일 되니까 하나도 모르겠지……. 그냥 나도 예전 여자들처럼 별 의미도 없이 소주 한 잔에 사라질 것만 같다. 미련에 강한 황민현이라서 안도감이 들다가도, 미련에 강한 게 원망스럽다. 개씨발이네. 나 왜 이렇게 매달리지? 지금은 황민현이 매달리는 입장이라고. 누리라고. 너한테 네 이상형에다가 로망의 절정을 달리는 ‘절친과의 로맨스’까지 충족시켜주는 놈이 언제 다시 굴러 들어올 것 같니?


한숨을 쉬었다.




“피하는 게 아니라, 네 목소리 너무 크다니까. 지금.”

“……진짜 내 마음 몰라?”




황민현이 어느 정도 눈칠 챘는지 아, 하고 하관을 한 손으로 가리더니 내 귓가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데시벨을 줄인다고 덩달아 낮아진 목소리에 닭살이 돋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민현이를 째렸다. 처연해 보이는 얼굴만이 날 응시했다. 날 때부터 끼쟁이구나.

날 때부터 목각 인형이었던 나에겐 정말 부담스러운 남자야.




“아니……. 그게 아니라.”

“뭐가 그게 아니야.”

“민현이 너 일단 좀 떨어져. 공공장소에서는 붙어먹는 거 아니야.”

“…….”

“……미안. 단어 선택이 좀 그랬네.”




내가 맨날 이기기는 하지만……. 황민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연애도 많이 해 봤으면서 직설적이기만 하면 맥을 못 추리고 입을 꾹 다무는 모습이 꼭.




“황민현 좀 귀여운 것 같아.”

“되게 제삼자한테 말하듯이 한다.”

“너 좀 귀여워.”

“남들이 보기에는 네가 더 그래.”




황민현이 내 볼을 꾹꾹 눌렀다. 개지랄. 지 인기 누가 모르나. 나도 어디 가서 꿀리는 건 아니었지만 황민현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일단 쟤는 인간이 천생 외향인으로 태어났고, 나는 그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감겨 사는 것에 재주가 없었다. 장난기는 있어도 그렇게 까부는 성격도 아니고 남 웃기는 재주도 없는데, 그 정도로 주변에 사람이 많다니. 욕 처먹는 것도 전혀 본 적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비법이라도 있나. 심지어 여자도 자주 바뀌고 그랬는데 왜 욕 안 먹지. 다들 내 앞에서 황민현 욕을 안 하니까 모르는 건가? 아무튼 개신기한 놈. 전생에 나라를 구하진 않았어도 임금 옆에서 충언 몇 번은 했을 거다.


내 맘도 모르면서 “김종현 귀여워. 완전 귀여움. 아 볼살 말랑말랑…. 진짜 귀여워, 쭈야. 너 이중 국적이지? 한국이랑 천국.” (요즘 유튜브 보고 이상한 드립 자꾸 배워서 써먹음)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 황민현의 산만한 입을 안 아프게 때렸다. 아. 황민현이 아픈 척을 하면서 까불대더니 나 때문에 아파서 현기증이 난다면서 내 어깨에 기댔다.




“진짜 적당히 해라. 너만 귀여워하는 거야. 누가 건장한 이십 대 남성을 귀여워하냐?”

“할 때마다 다리에 힘 풀려서 주저앉으면서 누가 건장하대.”




속삭이는 황민현의 숨결이 목에 닿자 몸을 움츠렸다. 아까 야한 얘기 못하는 거 귀엽다고 했었는데. 말 도로 주워 담아야 할 듯. 얼굴을 구기며 민현이를 쳐다봤다.




“아, 뭔 소리야, 진짜. 숨은 왜 그렇게 내쉬어.”

“종현이 네가 조용히 말하라고 해서 이러고 있는데 변덕 부릴래.”

“변태처럼 내 옆에 붙어서 간지럽히라고 한 적은 없다.”

“왜? 기분 이상해?”

“쫌 닥쳐…….”




민현이가 계속 웃었다. 내 얼굴, 백 퍼센트 빨개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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