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햇빛이 쨍쨍한 것이, 오늘도 무지하게 더울 것 같다. 귓가에 시끄럽게 맴도는 매미소리가 여름의 한 가운데를 알려온다. 어디에선가 비류가 하늘에서 풀썩 내려와 려강 앞에 선다.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거리게 한다. 품 안에 꽃을 한 다발 꺾어들고 있는 것이,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모았나보다. 종주를 생각하는 아이의 선한 마음이 느껴져 려강이 비류의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꽃이 무척 예쁘구나. 종주께 드리려고?"

"응! 소 형아, 어디?"
"종주께서는 방금전까지 여기 계셨는데 탕약을 마셔야할 시간이 되어서 안채로 가셨단다."
"안채?"
"저 안쪽의 방 말이다. 녀석, 빨리 종주께 가져다 드리려고 그러는구나?"
"응! 빨리!"
"그래, 비류가 예쁜 꽃을 가져다드리면 종주께서 무척 기뻐하실거야. 어서 가보렴."
"응!"

비류가 고개를 한번 크게 끄덕인다. 제 마음을 읽어내는 려강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던 비류가 꽃잎이 떨어질까 조심조심 안채로 걸음을 옮긴다. 평소의 비류답지 않게 아기 고양이처럼 티나게 어색한 모습으로 걷는다. 몰래 바라보고 있던 려강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는다. 하지만 꽤나 사뿐사뿐 걷는다고 했는데도 꽃잎이 팔랑거리며 떨어져버린다. 야속하다.

"흥!"

비류의 애쓰는 마음도 모르고 떨어져버리는 꽃잎이 밉다는 듯, 될대로 되라는 마음의 비류가 안채로 향하는 발걸음에 속력을 더한다. 그러자 산산히 흩어져버리는 꽃잎들이 바람결에 어지러이 날린다. 화들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는 비류. 손 안을 바라보니 그 어여쁘던 꽃잎이 거의 다 떨어져버렸다. '칫!'하고 꽃가지를 그대로 팽개친다. 소 형아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던 꽃들이 다 사라져버려 소용이 없어지자 그만 화가 난 모양이다. 잠시 자리에 서서 입을 잔뜩 삐죽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소 형아를 빨리 보러가고 싶은데 손에 있던 꽃 없이 가기는 싫은 모양이다. 잠시 그대로 서서 있던 비류가 몸을 휙 돌리어 소택 밖으로 가볍게 날아간다.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소 형아만큼 곱디 고운 꽃을 다시금 모아 가지고 올 모양이다. 시간이 지체된 만큼 더 빨리 꽃들이 피어있는 곳을 정신없이 날아다닌 비류가 이제는 되었다는 표정으로 땅에 발을 내린다. 얼마나 마음이 급하였으면 아침에 소 형아가 단정하게 묶어 주었던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다. 어디에서 묻었는지 모르는 분홍빛과 노랑빛깔의 꽃가루들이 비류의 옷자락에 알록달록 정신없는 무늬가 되어있다.

"소 형아 어딨어?"

드디어 소 형아가 있다던 안채에 다다랐는데 그토록 보고싶던 소 형아는 보이지 않는다. 근처를 지나던 견평에게 비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묻는다. 비류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풉-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견평. 딱 보아도 비류가 예쁜 꽃을 보고 소 형아가 생각이 나서 꺾어왔는데 소 형아가 어디있는지 몰라서 '소 형아 찾기'를 하는 모양이다. 비류의 급한 마음을 알면서도 견평이 짐짓 모르는 체 하며 입을 연다. 역시 아이를 놀리는 것은 참 재미있다.

"비류야 머리가 이게 뭐니. 잔뜩 엉망이 되어서 나뭇잎이랑 꽃잎이 엉키어 있지 않니?"
"아이 참! 소 형아, 어디?"
"옷은 또 어떻고. 여기저기 꽃가루가 묻어서 더러워졌구나. 네가 이런 모습으로 소 형아에게 가면, 소 형아가 비류를 못 알아볼 지도 몰라. 우리 사랑스러운 비류는 어디에 가고 웬 거지가 하나 왔냐고 하실걸?"
"아냐! 비류 거지 아냐!"
"지금 네 모습은 충분히 그렇게 보인단다."
"흥!"
"그러지 말고 옷만이라도 갈아입고 가는건 어떻겠니? 얼른 깨끗한 옷으로 입고 오면, 내가 머리를 다시 예쁘게 묶어 주마. 너도 소 형아에게 멋진 모습으로 어여쁜 꽃을 가져다 드리고 싶지 않니?"
"으.....으......"

발을 쿵쿵 구르면서도 고민에 빠지는 아이를 구경하는 재미가 엄청나다. 견평이 자꾸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결국 견평의 말에 넘어간 비류가 꽃을 탁자 위에 살짝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으려 방으로 휙 날아간다. 그럼 그렇지. 견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류가 내려놓고 간 꽃들을 바라본다. 아이의 소박한 마음이 담기어 있는 꽃. 색색이 여러가지 꽃들을 곱게도 꺾어다 놓았다. 벌써 조금 시들어가는 것이 비류가 옷을 다 갈아입고 머리까지 묶고 가져가면 더 망그러져버릴 것 같다. 견평이 그대로 꽃들을 종주에게 가져다 드리기로 마음먹는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비류가 새옷으로 갈아입고 가뿐한 마음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견평도 탁자 위의 꽃도 사라져 있다. 갑자기 화가 난 비류가 소리친다.

"견평 형아 거짓말쟁이! 미워!"

분한지 발을 동동 구르며 크게 소리치자,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수염이 허연 안 의원이 비류에게 다가온다.

"비류야, 무슨 일이니?"
"견평 형아, 옷, 꽃 없다."

앞뒤를 잘라먹고 이야기하는 비류의 말에 안 의원이 수수께끼라도 푸는 듯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옷은 새 옷이지만 머리카락에 엉키어 있는 나뭇잎과 꽃잎들을 보아하니, 비류가 종주에게 드릴 꽃을 꺾다 옷이 더러워져 견평이 갈아입고 오라고 한 듯하다. 매일 아침에 비류가 입을 옷의 색과 맞추어 매장소가 머리끈을 고르는데, 지금 비류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과 머리끈의 색이 따로 노는 것이 아이가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은 증거인 듯하다. 억울해하는 아이의 모습에, 비류에게는 미안하지만 안 의원은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 한다. 한편으로 종주를 마음 속 깊이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엿보여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꽃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견평이 기껏 비류가 열심히 날아다니며 모아온 꽃들이 시들까봐 종주께 가져다 드렸기에 사라진게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생각이 마무리된 안 의원이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연다.

"비류가 꽃이 없어져서 속이 상하는가 보구나?"
"흥!"
"견평 형아가 아마 비류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꽃이 시들까봐 종주께 꽃을 가져다 드린 것 같은데."
"견평 형아 나빠!"
"비류가 꺾어다 준 꽃이라고 견평 형아가 분명히 종주께 말했을거야. 그러니 걱정말고 종주께 가는게 어떻겠니, 비류?"
"그래?"
"당연하지. 견평 형아가 그랬을거야. 비류도 종주께 시든 꽃을 가져다 드리기는 싫지? 그래서 그리 서두르다가 머리가 엉망이 된 것일 테고."
"응."
"그러니 비류야, 머리를 다시 묶고 종주께 가는게 어떻겠니?"
"응."

안 의원의 나긋나긋한 말에 비류가 차분해져서 자리에 앉는다. 어서 빨리 머리를 다시 묶어달라는 듯 머리를 안 의원 쪽으로 들이민다. 아이의 급한 마음을 읽어낸 안 의원이 껄껄 웃으며 비류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고 머리끈을 풀어낸다. 빗질을 쓱쓱 하고는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낸다.

"자 다 되었다. 이제 종주께 가 멋진 모습 보여드려야지?"
"응!"

이제 드디어 매장소에게 갈 수 있게 되어 신이난 비류가 그대로 휙하고 몸을 날리려는 찰나, 매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 형아 어디있어?"
"종주께서는 이제 오수에 드실 시간이라, 아마 침소에  계실거야."
"응!"

그대로 몸을 날려 매장소가 있을 곳으로 간다. 부디 소 형아가 깊은 잠에 빠져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윽고 도착한 매장소의 방. 문앞에서부터 뭔가 흘러나오는 기운이 별.로.인게, 린 형아가 방 안에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문턱을 넘으니 린신이 비류를 알아보고 씨익 웃는다.

"윽!"
"비류, 쉿!"


린신이 큰 소리가 날까 입술에 손가락을 세우고 비류를 조용히 시킨다. 미간을 찡그리던 비류가 그제야 방 안을 살피어보면, 소 형아가 린 형아의 무릎을 베고 단잠에 빠져있다. 살랑살랑 커다란 부채로 덥지 않게 부채질을 하고 있던 린신이 비류를 보며 뽐내는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인다. 비류는 갑자기 분해진 기분을 참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방방 뛰려는데, 비류의 마음을 읽어낸 린신이 먼저 선수를 친다. 자신의 나머지 무릎에 손을 몇 번 쳐대면서, 비류에게 이리와 무릎을 베고 누우라는 몸동작을 취한다.


"이리 오든지 말든지 네 선택이다만, 네가 거기에서 시끄럽게 굴면 이제 막 잠이 든 네 소 형아가 잠에서 깨어버릴지도 모른단다, 비류야."

"린 형아 미워..."


차마 소 형아가 잠에서 깨는 것은 싫었던 비류가 조그마하게 이야기하며 린신을 쏘아본다. 작게 웃으며 린신이 여전히 자신의 무릎을 톡톡 손으로 쳐내면 저 언저리에서 꾸물거리면서 비류가 다가온다. 볼에는 빵빵하게 공기를 채우고 입은 삐죽하게 내민 채이다. 린신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가라앉힌다. 지금 웃어버리면 비류가 화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잠든 매장소에게까지 여파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래. 우리 착한 비류. 말도 잘 듣지."

"흥..."


화가 나기는 났지만 소 형아가 깨는 것은 싫은 비류가 또 자그마하게 흥-하자, 린신이 그런 비류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차마 린신의 손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지못해 가만히 있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몇 번이나 쓰다듬었을까. 그 때 마침 꽃 생각이 난 비류가 린신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린 형아, 꽃!"

"아, 비류가 소 형아 준다고 모아온 꽃 말이냐?"

"응."

"꽃이라면 저기에 있지. 네 '소 형아'가 비류처럼 이쁘다면서 무척이나 좋아했단다."

"진짜?"

"응. 꽃을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기뻐했지."


고개를 돌리어보니 저 언저리의 꽃병에 우아하게 꽃들이 모여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의 비류가 씨익 웃으면서 린신의 무릎을 베고 눕는다. 눈 앞에는 소 형아가 깊은 잠에 빠졌는지 쌔근쌔근 잠들어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꽃을 모으러 다니느라 피곤하였는지 비류가 금세 잠이 든다. 살랑살랑 부채질을 해 주는 린신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양쪽 무릎에 소중한 이들을 잠재우고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더운 날씨이지만 그들에게 시원한 여름을 선물해줄 수 있는 이 순간이 길었으면 한다. 

조용히 흐르는 바람에 처마 밑의 풍경소리가 은은하다. 푸른 그늘 사이에서 우는 매미소리가 점점 아련하게 다가온다. 잠결에 비류가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슬며시 웃는다. 린신이 비류의 뺨을 쓸어내려주며 나즈막하게 중얼거린다. 좋은 꿈 꾸거라, 우리 비류. 그 말을 들었는지 잠시 비류가 뒤척인다. 비류 곁에 누운 매장소가 비류의 뒤척임 때문에 살짝 눈을 뜬다.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는지 꿈인줄 알고 있나보다. 눈 앞에는 비류가 잠들어 있고, 린신이 무릎을 내어주고는 천천히 부채질을 하고 있다. 스르륵 다시금 눈을 감는 매장소의 얼굴에 행복이 깃든다.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린신도 살짝 웃는다. 슬슬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하지만 아무래도 좀 더 참으며 부채질을 하여야 할 것 같다. 여름은 덥고, 즐거운 꿈에 빠져든 두 사람의 잠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원한 바람이 건듯 불어와 린신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무더운 여름이 좋은 이유는 이렇게 시원한 바람 한점 속에서 단꿈에 빠져든 이들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은은한 꽃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변방 쭈구리는 조만간 탈덕하기 전에 쓰고싶은거 멋대로 다 쓰고 탈덕할 것입니다;;

퀄리티가 떨어져도 눈감아주십시오;


기다리시는 그 무엇(!)도 조만간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온/오프에서 독촉해주신 다섯분 (안)감사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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