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7월 디페 발매 예정. 샘플 분량은 전체의 1/3 정도이며 발매 전 다소 수정될 수 있습니다.

*현대물 AU

*카니발리즘에 대한 묘사 및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에 대한 암시가 있습니다.

*커플링은 분명한 스쿠후시입니다만, 후시구로 측에서 스쿠나에게 애정을 느끼는 묘사는 전무에 가깝습니다.

*전반적으로 유혈 묘사가 넘쳐나므로 민감하신 분은 부디 주의 바랍니다.




날것의 냄새가 났다.

철Fe을 함유하고 있는 체액의 미지근하고 비릿한 냄새에 익숙해질 것이라고, 반년 전만 해도 그는 예측은커녕 어림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후시구로 메구미는 무감각한 눈으로 ‘식재료’가 질질 끌려가며 남긴 길고 무참한 흔적을 바라보았다.

식재료의 기본적인 관리나 직접적인 처치는 그의 몫이 아니었고 아마 앞으로도 맡겨질 일이 없겠지만, 이 집에 있다 보면 자잘한 뒤처리는 결국 그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메구미는 내키지 않음에도 익숙한 손길로 젖은 걸레를 바닥에 힘껏 문질렀다. 수분을 머금은 천이 말라붙은 피를 빨아들여도 걸레가 지나간 자리에는 반구형의 적갈색 자취가 흐릿하게 남았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세피아빛으로만 이루어진 무지개 같은 형상이었다.

불현듯, 언젠가 억지로 읽었던 고전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저 넵튠의 모든 바닷물을 쓴대도 내 손에 묻은 피가 깨끗이 씻길까.’

이 피를 온전히 닦기 위해, 자신에겐 몇 곱절의 바닷물이 필요할까. 아니, 설령 그 많은 물을 끌어올 수 있다 해도 의미는 없을 것이다. 어느 바닷물도 이미 붉게 물든 뒤일 테니까. 세상의 바닷물을 전부 기울여도 그 바닷물을 피로 새빨갛게 물들여 버리고 말 남자를 알고 있다. 피비린내를 체취로 두르고 다니는 그 남자가, 저를 이 나락으로 끌고 왔다.


그는 아무런 전조 없이 울리는 재해 경보처럼 나타났다.

후시구로 메구미는 오랫동안 그날의 섣부른 언행을 후회했다. 왜 자기를 마중하러 나오겠다는 츠미키를 말리지 못했는지.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처음처럼 쓰라린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가슴에 품은 회한이 옅어졌다기보다는, 그날이 아니어도 결국 언젠가 이 남자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묘한 확신이 조금씩 자라났기 때문이다. 몇 년의 오차가 난다 해도 기어이는 돌아오고 마는 주기성週期性 대지진처럼, 이 남자는 언제가 되었든 끝내 저와 츠미키를 찾아냈을 것만 같았다.

 

그날 밤의 기억은 일 년이 훌쩍 넘어간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다.

인턴으로서 임상 수의사의 길에 나서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학과에서 익힌 지식만으로는 커버하기 힘든 일이 매일매일 수용량을 넘겨 쏟아지는 나날. 그래도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놓친 부분을 지적받을 때마다 그 부분을 제대로 공부하기 전까진 자리에 눕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고, 덕분에 수면을 반납한 만큼 빠르게 나아져 간다는 평가를 듣고 있었으므로.

시험 기간이 차라리 여유로웠다 싶을 만큼 실습과 공부에 매진한 기반은, 당시 선임들이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었던 생명의 무게가 언젠가는 내 손에 고스란히 얹힐 것이라는 두려움 섞인 인식의 결과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통을 호소하는 그 말간 눈들을 내 불충분으로 떠나보내는 것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즈음 내 귀가 시간은 대체로 막차가 끊기는 시간대였다. 항상 먼저 자라고 얘기해 두었지만, 내가 집에 돌아와 열쇠를 꺼내느라고 부스럭거리고 있으면 늘 조용히 문이 열렸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츠미키가 얼른 일어나 나온 것이었다. 그냥 자라니까, 라는 타박도 소용이 없었다. 네 말대로 자다가 잠깐 나온 것뿐이라면서, 츠미키는 혀를 쏙 내밀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달아 이어질 게 뻔한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 고집에 내가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내가 탄 열차는 여전히 내가 내린 역을 지나는 마지막 열차였지만, 그날은 츠미키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 「역까지 마중 갈게」 (23:31)

내릴 역까지 두 정거장 정도가 남았을 때 도착한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답장을 보내자 「말 안 했나? 나 내일 휴가거든」이라며 고양이가 엄지를 치켜드는 이모티콘이 붙은 메시지가 돌아왔다. 「내일 쉬는 건 쉬는 거고 시간이 너무 늦어」라고 반박했으나 츠미키는 개의치 않았다. 다시, 걱정하지 말라는 듯 ‘OK’ 손동작을 취하는 고양이 이모티콘.

그때 전화를 걸어 화를 내며 말리지 못한 걸, 나는 오래도록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하필이면 왜 그때 츠미키가 천체를 보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도쿄의 공기는 혼탁해서 별이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츠미키는 여전히 밤하늘 보기를 좋아했다. 매일 떠오르는 달은 물론, 금성이나 목성처럼 가까워서 빛 공해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밝은 별들, 고개를 힘껏 치켜들기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여름의 대삼각형…….

그래, 때마침 그때는 초여름이었다. 한낮에는 반팔 차림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 만큼 더워도 저녁에는 더위를 보상하는 듯 물 먹은 서늘함이 골목골목을 감싸는, 아직까진 그리 불쾌하지 않은 계절. 여름 초입의 밤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습기를 머금은 초목의 냄새가 풍겼고, 츠미키는 그런 밤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그즈음 머리 위에 떠 있는 직각삼각형 형태의 ‘여름의 대삼각형’은 별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나도 쉽게 찾는 별들 중 하나였다. 별이 밝고 위치가 단순하고, 여름이면 정수리 바로 위에 와서 도심의 건물에 가려 못 보는 일도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직각삼각형 중에 뭐가 베가고 뭐가 알타이르였더라. 나는 여름의 대삼각형을 찾을 수는 있었지만 그 삼각형을 이루는 각각의 별의 이름은 매번 잊어버리곤 했다. 아마 츠미키에게 십수 번은 더 물어봤을 것이다. 츠미키는 또 잊어버렸니, 라고 가볍게 핀잔하면서도 언제나 선뜻 대답해 주었다. 분명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또 그 대화를 반복하게 될 것이었다.

츠미키의 모습은 금방 찾았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 개찰구에서 서성거리는 젊은 여자를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앞서가던 중년의 남자가 츠미키를 힐끔거리는 것을 보고 내 입에선 그만 인사보다 거친 말이 먼저 나왔다. 왜 나왔어, 성질을 내며 말하자 츠미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겸연쩍게 웃었다.

“그치만 메구미 너야말로 맨날 이 야심한 시간에야 퇴근하잖아. 내가 걱정되면 너부터 집에 오는 시간을 당기지 그래?”

뼈가 있는 말에 나는 성질을 낸 게 무색하게 찔끔했다. 그런 나를 보고 츠미키가 흐흥, 하며 웃었다.

우리 둘 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츠미키는 곧잘 어릴 때처럼 손을 잡곤 했다. 그때도 그랬다. 가자, 하고 츠미키가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돌아가는 길은 같이 가니까 괜찮을 거야, 라면서.

 

하지만 그날, 우리가 돌아간 길은 츠미키가 혼자 역까지 왔던 길보다 안전하지 않았다.

집에서 나와 역에 도착하기까지 분침이 돌아가는 횟수는 여덟 번. 그래, 단 팔 분. 고작 팔 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길이었는데.

 

그날 밤에 있어 기억이 희미한 때가 있다면 바로 그때뿐이다. 달이 어느 쪽에 있나, 하고 츠미키가 잠깐 걸음을 늦추었을 때. 그 순간 별안간 고막을 울린 짧고 강력한 소리. 밀도 높은 모래주머니를 쇠파이프 따위로 있는 힘껏 내려칠 때에나 날 법한 소리가 바로 뒤쪽에서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마 내가 잠깐이나마 의식을 되찾았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린 바람에, 뒤이어 내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했어야 할 둔기가 살짝 비껴가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치명적인 타격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눈을 뜬 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묵지근한 통증이 뒤통수를 덮쳤고,

나의 시야는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로 절반쯤 암흑이 되어 있었다.

힘겹게 눈을 깜박일 때마다 꿈틀거리며 얼룩지는 시야 속에서 쓰러진 츠미키의 모습이 보였고.

어떤 남자의 단단한 장화가 그런 츠미키의 몸을 함부로 건드리고 있었다.

 

문명으로 이룬 인간 사회의 요람이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결국 인간 역시 포식과 피식의 수많은 먹이사슬 속에 존재하는 일개 생명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발굽 달린 동물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를 드러낸 맹수 앞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들이킨 호흡에서 소름끼칠 만큼 쇠비린내가 났다. 남자는 도가 튼 살육자였고, 피를 원했고, 츠미키와 나를 먹잇감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조금 더 마음에 들어 하는 먹잇감은 츠미키 쪽이었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손을 뻗어 바닥을 기었다. 언제 사지가 달려 있었냐는 양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볼썽사납게 뒤틀고 뻗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간신히 오른팔을 내밀어 그의 발뒤꿈치를 붙잡으려는 찰나, 밑창에 고무를 댄 장화가 내 손을 거리낌 없이 짓밟았다. 고무 밑창을 거쳐 위화감을 감지한 듯 그는 발을 떼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 라고 내게는 느껴졌다 – . 절로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통증이었으나, 그때 내 입에서 나온 건 비명도 신음도 아닌 다른 말이었다.

“나, 를…… 데려, 가……!”

츠미키는 놔둬. 나를 데려가. 죽일 거면 날 죽여. 츠미키는 안 돼. 그런 말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혀 위에서 마구 뭉개지며 흘렀다.

남자는 밟힌 게 내 손임을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발을 들지 않았다. 나 역시 손을 빼려고 몸부림치는 대신 아직 짓밟히지 않은 왼손을 마저 뻗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눈앞이 빙빙 돌았다. 구역질까지 올라오는 걸 보면 뇌진탕 증상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전해야 했다. 츠미키는 내버려 두라고. 그자에게 더 탐이 나는 먹잇감은 나라고. 그때 나는 왜인지 몰라도 이자가 성적인 탐닉을 위해 우리를 노린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행동이 몹시도 건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돼지를 잡는 걸 업으로 삼는 자가 도살의 과정에서 쓸데없는 감흥을 받지 않듯이. 우리를 이리저리 들춰 보는 그의 눈빛은, 피비린내를 품었을지언정 지극히 사무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동안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의 의식은 이미 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쩌면 잠시가 아닐 수도 있었다. 고개를 돌리며 츠미키와 나를 번갈아 보던 남자는 마침내 마음을 정한 듯 한 발을 들었다. 내내 그의 육중한 체중에 짓눌려 있던 오른손이 마침내 해방되었고, 나는 짓이겨진 살점에 급격히 피가 도는 것을 느끼며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의식을 잃은 동안에도, 엷은 꿈을 꾸는 것처럼 간간이 감각의 일부가 돌아올 때가 있었다.

내 입술이 무의식 중에 츠미키를 부르는 소리.

감긴 눈꺼풀 안쪽을 반복적으로 밝히던 강한 오렌지빛의 등불.

누군가 내 몸을 어린애처럼 가볍게 안아드는 감각.

머리 아래를 받친 손이 둔중한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몇 번이고 매만지며 확인하던 것.

그리하여 마침내 의식이 돌아왔을 때에는― 머리에 붕대가 매어진 탓에 반쯤만 보이는 시야 사이로 살풍경하게 비치는 이 집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연중 내내 옅은 락스 냄새가 허공을 떠도는 교외의 2층 단독주택. 여기가 어느 현인지도 모르고, 가장 가까운 다른 건물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집. 창에는 늘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고, 종종 틈새로 보이는 밖에도 인적은 없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도 믿기진 않지만, 아직 죽지 않은 채 이 집에 머무르고 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츠미키 대신 나를 택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나를 해하지 않고 이 집에 데려왔는지 나는 모른다. 허나 감히 짐작하건대 그에게도 간단한 선택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그에게 동조하지 않는 동거인. 어쩌면 가까운 미래는 아닐지라도 다가올 어느 날에 그를 기어이 끝장내 버릴지도 모른다. 그가 츠미키를 해할 가능성이 있는 이상, 나는 결코 그의 완전한 아군이 되진 못할 테니까. 그런 사람을 구태여 자신의 본거지에 데려온다는 게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이해할 자신이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가 적잖은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내가 그에게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내겐 들지 않으니까.

츠미키의 행방에 대해서는 그 후로 아는 바가 없다. 여러 번 물었지만 그는 ‘뭐,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진 않았어’라고 대답했을 뿐 그 이상의 정보는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츠미키의 생존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확신을 얻게 된 계기는 오히려 내가 묻지 않은 말에 있었다. 내가 이 집을 벗어난다면, 그땐 네 빈자리를 그 여자가 채울 것이라고 남자가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말하지 않는 건 있어도 굳이 거짓말을 꾸며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확신했다. 지금 츠미키가 어디에 있건, 그는 작정만 하면 충분히 츠미키를 다시 해치러 갈 수 있다고. 내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그는 구태여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증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따라서 그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죽음을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는 이 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습격한 그의 이름은, 스쿠나宿儺. 성은 모르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는 그냥 그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면 된다고 했고 나는 별달리 토를 달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곳에 있는 조건으로 츠미키가 이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교환 조건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가 내게 바란 건 의외로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그가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많지 않다뿐이지 이 집에 지켜야 할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개중 최소한의 것만 내게 말해주었다. 나머지는 이 집에서 내가 스스로 배워나간 것들이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리 넓은들 세상과는 비견도 되지 않는 크기의 공간뿐이었기 때문에, 규칙을 알아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정말로 어려운 건 언제나 규칙 그 자체가 아니었다. 나를 진실로 당혹케 만드는 건 그 규칙을 만든 당사자의 예측할 수 없는 변덕에 있었다.

 

그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한마디로 정의해야 한다면, 사냥꾼에 가까웠다. 숲 대신 도심을 헤매고, 풀을 뜯는 초식동물이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노린다는 점이 다를 뿐.

짐승에 비유하자면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최상위권의 맹수였고, 실제로 그는 거의 언제나 육식을 고집했다. 음식의 풍미를 돋우고 가니시로도 활용할 채소 정도는 늘 상비하고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스쿠나가 곡물을 주식으로 식사를 하는 광경을 나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입맛이 당기지 않는 아침에도 맑은 콩소메나 커피를 마시는 정도였고, 본격적인 식사를 할 때는 언제나 큼직한 고깃덩어리가 그의 접시 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기의 대부분은, 인간이었다.

 

왜일까, 나는 그가 인간을 먹는다는 사실에 기겁한 적이 없다.

아마도 그가 우리를 습격했을 때 그에게 성적인 욕구가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과 비슷한 이치였을 것이다.

나는 결코 무감정한 인간은 아니다. 식인과 연이 없어 보이는 누군가가 실은 사람을 먹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당연히 경악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그러나 스쿠나만은 예외였다. 스쿠나에 한해서는 그것이 놀랍지 않은 사실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호랑이가 방금까지 숨이 붙어 있던 짐승을 뜯어먹고 있다고 해서 굳이 놀라지 않는 것과 같은.

물론 그의 식성을 인지하는 것과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고깃덩어리로 매달려 있는지를 목격하는 건 다소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잘 손질되어 먹음직스럽게 요리된 고기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는 감각을 종종 앗아가곤 하듯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마당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소형 컨테이너만한 크기의 저온 창고. 스쿠나가 직접 그곳을 열어 내장과 머리가 깔끔하게 손질된 인간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광경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냉장고 하나를 가득 채운 고기의 근원이 정말로 인간이라는 걸 쉽게 실감하진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광경은 나 역시 그에게 분명 고기의 일환이었으리라는 서늘한 깨달음을 주었다. 나와 츠미키가, 지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고깃덩어리로서 쇠갈고리에 걸려 이곳에 냉동되어 있었으리라는 감각. 오로지 먹히기 위한 존재로서 존재했을 것이라는 충격. 그 충격은 그가 자신은 주로 인간을 먹는다고 말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구역질을 불러왔다. 그 즉시 나는 급히 뒤돌아서 마당에 토해야 했다. 스쿠나가 혀를 찼지만 들리지도 않았다. 위를 뒤집을 듯한 구역질 끝에 마침내는 위액인지 담즙인지 모를 소화액마저 토해내도, 혀뿌리를 잡아당기는 듯했던 구토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의 집은 번잡스러움과 거리가 멀었고, 대체로 최소한의 가구만 갖춰져 있는 편에 가까웠다. 그러나 주방만은 인테리어에 그다지 조예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훌륭했다. 아일랜드형의 널따랗고 수납공간이 풍부한 주방에는 냉장고만 두 대가 있었는데, 개중 한 대는 오로지 육류만을 전담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위치한 다른 냉장고는 육류, 그러니까 정확히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식재료를 보관하는 용도였다.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아마도 잡다한 식재료가 든 오른쪽 냉장고를 찾는 손길이 더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반대였다. 그는 식욕이 아주 왕성했고, 자신의 왕성한 식욕에 부응할 수 있도록 냉장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늘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내용물의 출입이 더 분주한 쪽 역시 왼쪽의 인간 전용 냉장고였다. 나는 실수로라도 그쪽 냉장고에는 손을 대거나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왼쪽 냉장고에 든 것을 아주 먹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었다.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 그 ‘떠나지 않는다’에는 멋대로 죽지 않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는 대원칙을 제외하고, 내가 그에게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식사 권유. 두 번째는 섹스.

 

그가 요리에 능한 미식가가 아니었더라면, 그와 마주 보고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덜 역겨웠을까.

스쿠나는 객관적으로 요리를 잘했다. 입맛도 까다로웠고, 몇 시간 동안 공을 들인 음식이라도 결과적으로 썩 훌륭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미련 없이 버렸다. 그랬기에 그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는 언제나 성대했다.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균형이 잡혀 있었다. 잡식성 동물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향신료를 아낌없이 쓰면서도, 어느 하나가 미각과 후각에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각 향신료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에는 요리에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재료의 근원을 완벽하게 감추는 그 요리 실력 때문에, 나는 역설적으로 이 고기의 정체를 언제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인간의 어느 부위인지, 그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집에 왔을지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내 접시 위에 오른 고기가 피 한 방울 비치지 않을 만큼 바싹 익어 있다고 한들, 이 남자와 처음 대면한 날 호흡기를 온통 뒤덮었던 쇠비린내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접시에 오른 고기와는 대조적으로 겉면만 겨우 익힌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썰고 있는 스쿠나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랬다. 포크와 나이프의 날 끝을 타고 접시 위로 떨어지는 선홍빛의 육즙에, 정신을 잃은 츠미키의 머리 아래 고였던 피웅덩이의 형태가 겹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와의 식사를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기를 썰었다. 고기가 이전에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었든 간에 그것이 더 이상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고무처럼 느껴질 때까지 씹었다. 그런 뒤 물과 함께 고기의 잔해를 삼키고 다시 고기를 썰었다. 스쿠나가 태연한 얼굴로 적포도주를 권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가 고기를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그 외의 편식은 그럭저럭 봐주는 편이었기에 어깨를 으쓱하고만 말았다.

식사는 대개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이어졌다. 마침내 내 접시 위에 올려진 약 200g의 덩어리를 모두 위장으로 옮겼을 무렵에는 그는 이미 성대한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 접시까지 치우는 참이었다. 컵에 담겨 있던 마지막 물을 삼키고 나면, 나는 매번 아무 말도 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내가 방금 삼킨 것들을 모조리 토해내는 동안 스쿠나는 혀를 쯧 차며 대체 언제쯤 되어야 익숙해지겠냐고 한마디 했다.

당신은 내가 익숙해지기를 바라냐고, 나는 씁쓸한 목 안을 가시며 묻고 싶었다. 정말로 내가 아무렇지 않게 당신과 마주 식사하길 바라냐고. 그런 날이 온다면 당신은 오히려 내게 식사를 권하는 데에 흥미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물론 나로선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고문 같은 식사에 익숙해질 날은 좀처럼 올 것 같지 않았다.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사람

미르덱스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