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비밀회담




*





“들어오세요.”

최인아를 따라 들어선 건물은, 겉으로 봤을 땐 8층짜리 목탑 같았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고층 아파트 못지않은 실내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긴, 뭔들 놀라지 않았겠냐만. 별세상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이 꿈은 아닐까 의심했다. 그들의 세상은 마치 고전 영화 세트장이라도 온 듯 모든 것이 낯설면서 익숙하고, 또한 아름다웠다. 

“앉으시지요.”

성호는 현대식 탁자와 의자를 정중히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푹신한 방석 위에 앉았다. 겉모습은 고전적이었지만 실내는 현대적인 물건들이 꽤 있었다. 당연히 최인아라는 남성도 헐렁한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고. 

그 사이 어깨에 둘러메 있던 검은 뱀은 스르륵 바닥을 기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과를 내오시겠답니다.”

“아, 그렇군요.”

최인아는 적재적소에 성호가 궁금해할 만한 대답을 해주었다. 눈치가 빠른 것인지 아니면 사람 속을 읽을 수 있는 건지 모호했다. 잠깐의 침묵이 오가는 동안 성호는 유심한 시선을 그에게 건넸다. 전체적으로 보면 키도 크고 호리호리한 잘생긴 청년이었다. 투명하리만치 희고 맑은 피부를 가진, 길을 지나가다가 한 번쯤 뒤돌아볼 만한 미인이다. 인간의 모습이었으니 눈동자는 사람의 것과 같았으나 깊고 흔들림 없는 것이 묘했다. 만년설에 깊은 곳에 쌓인 단단한 얼음 같은…….

“흐으응. 이거, 드시지요~”

“억, 아, 예. 고, 고맙습니다.”

성호는 슬쩍 다가온 차가운 감촉에 흠칫거렸다. 언제 왔는지 뱀 여인이 쟁반에 먹음직스러운 약과와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아까 그분의 언니 되십니다.”

“예?”

인아의 대꾸에 성호가 의아하게 뱀 여인을 쳐다보았다. 아까 그 검은 뱀을 말하는 모양인데, 언니라니. 똑같은데?

“천년을 살았으니까효~”

바람 새는 말투로 고아하게 대답한 뱀 여인이 호호호- 간드러지게 웃으며 스르륵 뒷걸음질, 아니 무슨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 타듯 멀어진다. 보아하니 이 여인도 다리 없이 꼬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 잠깐, 천년?”

그러다 문득, 성호는 아까부터 느꼈던 이질감을 그제야 깨달았다. 수인의 평균 수명은 이백 살이지만 간혹 더 사는 경우가 있다 해도 삼백 살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백 살 만 넘으면 영물 수행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성호의 의문을 알아챈 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뱀들이 수인뿐만아니라 인간 세상에도 등을 지고 살다 보니 알려진 게 없긴 하지만. 뭐, 저도 뱀이 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고요.”

그의 말처럼 뱀 세계는 알려진 게 없긴 하지만, 천년을 그냥 살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지금 시급한 건 그 문제가 아니므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렇군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인아가 시원하게 먼저 말했다.

“강홍복 어르신께 직접 들은 건 아니고 누님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아, 방금 뱀 여인들을 저는 누님이라 부릅니다. 아무튼, 아드님과 인간이 사랑에 빠졌다고, 맞나요?”

사, 사랑. 흐음. 성호는 어린 애들이라 그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 고민하긴 했으나 아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네, 뭐. 그렇게 됐지요.”

“사랑에 빠진 인간이 남성이고요.”

“네, 맞아요. 둘 다 고1이고요.”

인아는 성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매우 간결한 해답을 내놓았다.

“아무 문제 없는데요?”

성호는 순간 당황해서 입술을 어버버 거리다 진정하고 대답했다.

“그게, 네. 뭐, 단순하게 남학생들끼리 좋아하는 거고, 그런데 그게 제 아들이….”

“아버님 생각보다 진지해서 걱정되시나 보군요.”

“네! 그렇지요. 아무래도. 아들이 워낙 순수하고 일편단심이라. 물론 상대 학생도 착하고 좋은 아이예요. 그건 제 가족도 장담할 수 있고. 남자애들이니 자식에 대한 의무를 질 필요도 없고. 하지만, 그… 마음이라는 게….”

조금 우물쭈물하는 성호를 보며 인아는 그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점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그건 자신도 한때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었으니까.

“수인과 인간은 수명이 다르지요. 아버님이 걱정하시는 건, 혹여 아드님이 먼저 죽은 인간을 너무 그리워하며 맘이 아프지는 않을까, 아니면 상대 남학생의 마음이 먼저 멀어질까- 하는 것이지요?”

그의 말처럼 아직 애들인데 지나치게 먼 미래를 걱정하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호는 호율이의 성정을 보며 사랑에 대해선 절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괜찮았고 호율이의 단단한 마음도 좋았다. 하지만, 한예오의 마음은? 지금은 좋아한다 해도 상대가 먼저 돌아설 수도 있고, 설사 다행으로 둘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산다 해도 먼저 죽어버리는 예오의 빈자리를 호율이 버틸 수 있을까.

수인끼리는 냄새로 반려를 정하고 한번 정해지면 평생 가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헤어질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체취에 민감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까다롭기는 해도 그만큼 딱 맞는 정인과 맺어지는 것이므로 인간과는 다른 삶이었다.

‘잠깐, 체취라….’

그러고 보니 두 아이가 서로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했지. 

“그런데 좀 희한한 점이 있어요. 수인과 인간은 서로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데 제 아들과 그 친구는 서로 체취를 맡을 수 있다더군요.”

그 말에 인아의 안면에 처음으로 감정이 실렸다. 눈가만 살짝 꿈틀거렸을 뿐이지만. 

“체취라. 특이하네요. 누님들, 혹시 이유를 알겠어요?”

인아가 뱀 여인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소리치자,

“흐으응.”

“호오. 신기하구나. 그런 일은 흔치 않은데.”

하고 메아리치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호가 주위를 휙휙 둘러봤지만, 뱀 여인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음. 그렇다는 건 아예 없는 일도 아니라는 소리죠?”

“흐으응~ 그렇지. 그런데 그런 경우는 너랑 비슷한 경우거나….”

이 사람과 비슷한 경우? 성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제야 성호는 최인아가 뱀 수인이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그 아이의 조상 중에 너와 같은 인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아아음.”

나른한 하품과 함께 스륵스륵 움직이는 소리가 멀어진다.

조상 중에? 성호는 여러 혼란한 단어들을 조합해봤지만 도통 정리가 되지 않았다. 

“먼저, 혹시 저에 대한 소문은 들으셨지요?”

복잡한 성호의 마음으로 끼어든 침착한 목소리에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인아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자세히는 몰라요. 워낙 떠도는 얘기처럼 흘러와서….”

“그렇다면 말씀드릴게요. 어쩌면 제 소문이 아드님과 친구가 슬퍼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저절로 마른침이 꿀꺽 삼켜졌다. 그의 소문에 정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니. 그것만 알아낸다면 모든 걱정이 싹 사라질 것만 같았다.

“저는 원래 인간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실수…아니, 고의로 뱀 여인들의 자식을 죽여버렸지요. 그에 화가 난 뱀 여인이 저를 물었고 점점 뱀처럼 몸이 변해갔어요. 그게 18살 때의 일이었답니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사연은 실로 놀랍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복수라 해도, 수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째서 수인 사회와 척을 지고 사는지 또한 이해가 되었다. 놀란 성호를 보면서도 인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당연히 놀라셨겠지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불만이 없습니다. 당시 저희 집안은 남들 앞에 내보이기 부끄러울 정도의 조폭 가문이었고, 아버지는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죽어 마땅했죠. 다만 뱀이 되는 건 어린 나이에도 좀 힘들고 우울했어요. 그걸 보듬어 주려 했던 뱀 여인들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데려온 인간이 지금 같이 사는 도윤이에요. 제 연인이죠. 제 아버지는 누님들이 처리해주셨고 갈 곳 없는 저를 돌봐주었어요. 원래 인간이었기에 뱀으로 변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거든요. 그들은 이 세계를 만들어서 저를 보호하고 뱀 수인으로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도윤이는 그런 저를 기다리며 긴 시간을 견뎌왔고요. 지금은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했고, 인간 세상에도 잘 적응한 상태에요.”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했지만, 그 안에 숨은 복잡하고 힘들었을 속내를 성호는 어른으로서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런, 그렇군요. 이거 참…. 미안해요.”

그래서 당사자가 직접 얘기해줬음에도 마음을 전했다. 분명 인아는 아무렇지 않을 테지만, 성호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동정은 아니었다. 인아도 그걸 알기에 성호의 사과를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그런데 제 얘기에서 혹시 힌트는 찾으셨나요?”

“힌트요?”

본인의 사연에 답이 있을 거라 했으니. 성호는 곰곰이 인아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았다. 그러다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사색이 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설마?”

“네. 호랑이 수인이라 하셨으니, 상대가 호랑이에게 물린다면 저처럼 수인으로 변할 수 있을거에요. 대신, 제 누님들처럼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을 살아 영물에 가까운 수인이어야 해요. 도윤이는 저와의 평생을 위해 뱀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지만, 아드님의 경우 본인과 그 친구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그건.”

“수인 세계에서는 금지된 행위죠. 게다가 아버님은 호랑이에 산군 집안이시니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저희처럼 살아야할지 모르고요.”

성호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무리 아들을 위한다지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수인 세상도 시대에 맞춰 아무리 변했다 한들 자신의 역사가 깃든 존재 자체를 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다는 게 어린 나이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방법은….”

무거운 고민을 떠안은 성호를 보며 인아는 예의 잠잠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일단, 체취에 대해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누님들, 그렇지요?”

언제 돌아왔는지 뱀 여인 한 명이 사라락 꼬리를 끌며 다가왔다.

“하암. 알아 봐 드릴까요?”

하품을 하며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뱀의 혀가 날름거렸다. 어딘지 미답잖게 홀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성호는 머리를 주억댔다. 뭐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봐야 하지않겠는가. 

“그럼, 혹 예오, 아. 제 아들 친구 이름이 한예오입니다. 그 예오네 조상 중에 수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자식은 어떻게….”

“흐으응. 인아와 같이 인위적으로 수인이 된 경우, 인간으로서의 본능과 기능은 남아있답니다. 그러니 여인이라면 수인과 결합해도 아이를 가질 수는 있답니다. 확률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성호는 멍하니 눈을 끔벅이며 뱀 여인의 설명을 들었다. 제가 알고 있던 수인 세상의 법칙과는 판이한 이야기들 뿐이다. 어째서 뱀 수인은 저런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인간들만 뱀을 꺼림칙하게 대하는 게 아니랍니다. 수인 사회도 저희 뱀들을 멀리했죠. 하지만 그점이 되레 장점이 될 때도 있지요. 이렇게 남들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정관념에 꽉 막히지 않은 올바른 선택을 위한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고요. 수인의 규칙이란 건 사실 있으나 마나 한 거 아닌가요? 호호호호.”

간악하게 들리기도 하는 웃음소리에는 통쾌함도 묻어 있었다. 뱀 여인은 꽤 수인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도와준다고 하니 부탁하는 입장에선 그냥 어색한 미소만 띠울뿐이다. 성호는 행여 예오의 조상중에 수인이 있다면, 그게 뱀은 아니기만을 바랐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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