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더 이상의 악몽은 없어(No More Nightmare)

Subject : 악몽(惡夢)

Date : 8th, May, 2016

Written by.Kashire카시레



* 구하이가 수면제를 물에 타기 이전 아침부터 감기 증세를 보이던 인즈의 모습을 기점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런 장면도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길-

눈을 뜨자마자 재채기가 퍼뜩 튀어나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닌 것인지 이후 몇 번의 기침이 반복되었다. 겨우 손으로 기침을 막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목이 간지러운 것이 감기 기운이라도 올 모양새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어째 이마도 열로 인해 뜨뜻미지근한 느낌이 들어 손등으로 이마를 살포시 대자 평소보다 확실히 미열이 있었다.


“인즈야. 일어나야지.”


아버지의 기상 알림에 대충 대답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흔들지 말 걸 그랬나. 시야가 빙빙거려 머리를 붙잡았다. 눈을 감아 빙빙거림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오래 되지 않아 빙빙대지 않은 상태로 눈을 뜰 수 있었다.


“가지 말까…”


등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최근 들어 학교에서 되는 일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일 싫은 상대와 마주해야 된다는 점이 제일 컸다.


“구하이…”


머릿속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의 이름을 나도 모르게 입에 담았다. 내게 원한이라도 진 것인지, 끊임없이 괴롭히는 탓에 이젠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녀석 하나 때문에 학교 출석을 하지 않은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여기 있을 텐데…”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대충 책상 서랍을 뒤지자 각종 증상 관련으로 약이 나왔다. 약 더미를 뒤지자 감기약이 나왔다.


“이거라도 먹어야겠네.”

오래된 약이라 먹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감기약 각의 「복용 방법」에 쓰인 것처럼 두 알 정도를 입 안에 털고 가방에 대충 넣었다.


그저 오늘만큼은 그 미친놈이 내 상태를 보고 건드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 제자리도 돌아왔다. 녀석은 내 뒤에서 버젓이 엎드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저 뒤통수를 보는 것마저도 진저리가 났다. 그나마 오늘은 덜 건드리는 것처럼 느껴져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늘같은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신경을 긁는다면 벌써 감기 기운이 도졌을 게 분명했다.


자리에 앉아 먼저 찾은 것은 아침에 아버지가 건네준 물통이었다. 쑥을 넣고 달인 물이라 조금 쓴맛이 강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통을 열고 맛을 보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썼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얀 가루가 조금씩 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쑥을 말려서 아예 가루를 내신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별 생각없이 한 모금을 더 마시고 넘어갔다.


“뭐 마시냐.”


물통을 다시 가방에 넣자마자 뒤에서 녀석이 말을 걸었다. 잘 참고 있다 했더니 또다시 시비를 걸 요량으로 말을 거는 듯했다. 뒤를 돌아보자 턱을 괸 채 그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뭘.”

“방금 마신 거 말이야.”

“알아서 뭐하게.”

“까칠하기는.”


녀석의 말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기에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녀석이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어째 하품이 계속 나왔다. 보통 수업시간에 수면을 취하는 게 일상이라고는 하나, 지금 이 시간에 유독 졸음기가 심하게 몰려왔다. 아마 감기 기운 때문에 이런 것이라 생각하며 팔을 모으고 책상에 엎드렸다.


자고 일어나면 지금보단 상태가 낫겠지.



*


꿈 내용은 내가 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하나 엄마가 개입된 꿈은 달갑지 않았다. 특히나 엄마의 빈자리를 많이 느꼈던 때라면 더더욱 기억하기 싫었다.


[ 인즈, 많이 아프니. ]


10살 정도 되었을 때의 기억으로 보였다. 뜨거운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아픈 나를 보며 아버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계속 살피었다.


[ 엄마는요? ]


어린 나이에도 엄마가 나를 떠난 사실 정돈 알고 있었다. 엄마의 삶을 찾아, 여자로서의 삶을 찾아 간 엄마는 대신 엄마로서의 삶은 버렸다. 그 삶을 버리면서 나도 같이 버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눈물을 보인 적도 많았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해야 아버지가 덜 아파 보였다.


그렇게 잘만 버텼는데,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아버지에게 엄마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계속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해도 아버지는 입을 다시 닫고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런 모습에도 감기에 정신을 못 차리던 철없던 나는 아버지의 입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엄마는… 인즈 다 나으면 올 거래. ]

[ …정말요? ]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빨리 나으면 엄마가 와줄 거란 생각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이마에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다. 아버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어째 목이 매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땐 몰랐다. 그것이 아버지가 울음을 삼키는 소리라는 것을.

무심코 아버지에게 저지른 상처에 열이 더 펄펄 끓어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 아버지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


내가 비는 통에 울음을 참던 아버지는 왜 그러느냐며 나를 다독였지만, 울음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끅끅거리는 내게 물이라도 먹이면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인지 아버지가 내 머리를 조심스레 들면서 물이 든 컵을 가져다 입에 댔다.


[ 아버지, 저 목 안 말라요… ]

“내가 아버진 줄 아나 보네.”


순간적으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꿈인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막상 눈을 떠 현실을 바라본 순간, 지금 가장 보기 싫은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방금 눈을 떠 흐릿하긴 하나 쭉 뻗은 직모를 가진 남자라면 녀석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악몽이라도 꾼 거야. 울면서 빌던데.”


치부를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였던 녀석에게 들키자 얼굴이 순간 화끈 올라 몸을 크게 움직이자 녀석이 바로 나를 제압했다. 팔을 교차해서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끔 포박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더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고는 몸에 힘을 뺐다. 무술이라도 익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몸상태로 녀석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녀석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여기 양호실이야. 가만히 있으라고. 거기다 이거 안 보여? 너 링거까지 맞고 있단 말이야. 함부로 팔 움직이지 마.”


녀석이 교차시켜놓은 팔 중 오른팔에 의료용 테이프와 함께 링거가 손등에 꽂혀 있었다. 이어지는 투명선을 따라 올라가니 포도당이 들어있는 비닐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가 언제 여기 왔지.”

“완전 축 늘어진 채로 쓰러져서 내가 여기로 데려온 거야. 양멍이랑 요치는 내가 교실로 돌려보냈어.”

“하지만 난 엎드려서 자고 있었는데…”

“…그건 내가…”


녀석이 어쩐지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눈치였다. 볼을 긁적거리는 모습을 눈이 풀린 채로 겨우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녀석이 겨우 입을 열었다.


“네 물통에다가 수면제를 타서 그래.”

“뭐?”


웃기지도 않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리고 그 말을 천천히 곱씹자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가장 처음 든 감정은 분노였다.


“야, 너-!”


미친놈이 이제 하다못해 물통에 약까지 탔다는 자백은 힘을 빼고 있던 몸에 다시 힘을 주는 이유로 충분했다. 미친놈. 잘못했으면 그 약의 부작용으로 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녀석에 대한 분노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처럼 녀석이 단단히 팔을 붙잡고 있는 통에 엉덩이만 들썩거릴 뿐. 실제로 크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정해. 네 마음 알겠는데, 때리고 싶어도 일단 낫고 때려.”

“…하,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원. 말해봐. 대체 내가 네게 뭔 잘못을 한 거야? 뭔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건데? 제발 나한테서 신경 좀 꺼줘. 제발.”

“그건 안 돼.”


지금까지 여유롭게 웃고 있던 녀석이 내 말 한마디에 웃음기를 싹 가신 표정을 얼굴에 담아냈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고민을 할 정도였다.


“다른 건 다 들어줄 수 있는데, 네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둥, 신경 끄라는 둥, 아는 척 하지 말라는 둥 그런 요구는 못 들어주겠다.”

“…”


마지막에 묘하게 씁쓸한 표정이 녀석의 얼굴에 나타났지만 차마 그 표정에 대한 원인을 묻진 못하고 나도 입을 닫았다. 녀석이 내뱉은 말에 무어라 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더 몸을 들썩거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인지 녀석이 손을 뻗어 내 얼굴에 가져다 댔다. 눈만 가리는 손길에 짙은 어둠이 시야를 덮었다.


“더 자는 게 어때? 자고 나면 상태가 훨씬 더 좋아질 거야.”

“…싫어. 또 악몽을 꾸고 말 거야.”

“아까 그 악몽 말이야? 엄마 보고 싶다고 한 거?”

“…다 알면서 왜 물어.”


역시나 처음부터 내용을 잠꼬대로 다 들은 모양인 듯했다. 창피함이 몰려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방도는 없었다.


사실 지금 잠들기 싫은 것도 사실이었다. 다시 잠든다면, 예전에 아버지에게 무심코 상처를 주었던 그 어린 시절의 나로 되돌아갈까봐서였다. 그리고 그 때 당시 엄마를 그리워했던 어린 내 자신을 보기 싫은 것도 한몫 했었다. 그런 꿈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걱정 마. 지금은 내가 옆에 있어. 그러니 푹 자.”

“사탕발림하고는.”

“속고만 살았나. 얼른 자기나 해. 그런 꿈 다시 꾼다 하더라도 내가 바로 깨워줄 거니까. 그러니까 넌 걱정 말고 자기나 해.”

“…”


시야를 차단한 손은 크고, 따뜻했다. 그리고 녀석의 무심하게 보이는 위로를 덧대자 정말 이대로 잔다 해도 더 이상 그런 악몽은 꾸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했다. 그저 미친놈이 허세에 찌들어서 내뱉는 소리인데, 그걸 덥석 믿고 싶은 ‘나’도 이상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녀석이 나만을 위해 맞춘 행동에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이었다. 덕분에 졸음이 몰려오는 눈꺼풀을 그대로 닫아버렸다.


완전히 다시 잠에 빠지기 전 다정히 “잘 자, 바이루인.”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 미친놈은 절대 아닐 것이라 치부하며 이윽고 잠에 완전히 빠졌다.


                                                                                                                Fin.

1/7,8 디페와 로망스 나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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