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바로 옆에서 진동이 전해져서 후루야는 번쩍 눈을 떴다. 습관처럼 알람을 끄고 상체를 일으켜 멍한 정신을 추스른다. 좀처럼 깨지 않는 정신에 후루야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다. 역시 20대와 30대는 차이가 크구나…. 속으로 넋두리를 뇌까리다 후루야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컴컴했다. 새벽 5시라기에는 깊고 어두운, 막막한 심해와도 같은 하늘이었다.

후루야가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새벽 3시. 잠든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후루야는 왜 아직껏 정신이 흐리멍덩한지 단박에 이해했다. 그렇다면 조금 전 알람은, 알람이 아니라.

[미야노 시호]

통화 기록을 확인한 후루야가 눈가를 비볐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늦은 시각에 걸려 온 전화라면 분명 무거운 의미가 담겨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여보세요.]

“미야노 씨. 전화하셨네요.”

[응… 미안. 깨웠어?]

“네, 뭐……. 무슨 일 있어요?”

시호의 목소리는 비교적 또렷했다. 이 시각까지 깨어 있었을까.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그녀는 상대 역시 깨어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시호 못지않게 후루야도 잠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저기. 그…….]

“…….”

[악몽을 꿔서… 근데 다시 잠들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전화했어. 미안.]

인연은커녕 악연투성이.

후루야는 한쪽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멍했고 당장 침대에 누워 부족한 잠을 채우고 싶었다. 그가 베개에 뒤통수를 맞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말했다.

“기다려요. 지금 갈게요.”

[…그래도 돼?]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네. 기다리세요.”

그가 통화를 종료한 뒤 스마트폰만 든 채 현관까지 비척비척 걸었다. 문을 열고, 문을 닫고, 세 걸음 옆으로 가 초인종을 누른다. 후루야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 시호가 멋쩍은 표정으로 후루야를 올려다보았다.

“자는데 부른 것 같아서 미안하네.”

“괜찮아요. 어차피 옆집이고.”

후루야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집이 멀었다면야 이렇듯 한걸음에 달려오지 않는다. 단지 옆집이니까 전화 통화보다는 찾아가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정신이 몽롱했다. 이런 정신으로는 그녀가 잠들 때까지 통화는커녕 도중에 먼저 잠드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뭐라도 마실래?”

“아뇨. 미야노 씨 자야죠.”

“응? 하지만 잠 다 깨버렸고.”

“안 돼요. 그러다 밤낮 바뀌어요. 안 그래도 미야노 씨 수면 습관 안 좋은데.”

후루야가 거의 닫힌 방문을 활짝 열었다. 막 빠져나온 티가 역력한 이불의 모양새가 보였다.

“얼른 누우세요. 잠들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까.”

그가 식탁 의자를 침실까지 죽 끌고 왔다. 그는 침대맡에 의자를 놓고 우두커니 선 시호에게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시호가 발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방금까지 악몽에 시달렸던 곳이다. 꿈에서 깬 뒤에도 가위에 눌렸는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뚱이와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거실로 빠져나왔을 때는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의 악몽이었다. 다시 잠들면 행여나 꿈속의 내용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감히 눈을 감을 수도 없는.

그래서 시호는 1시간이나 두려움에 벌벌 떤 끝에 후루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각에 민폐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후루야라면 혹시 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고, 또. 지금처럼 그가 이곳으로 와 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잠을 재워 주기를 기대한 건 결코 아니라서 시호는 여러 이유로 발을 뗄 수 없었다.

“어서 와요. 내가 먼저 잠들겠다.”

후루야가 자꾸만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이 상태라면 의자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 수도 있었다. 시호가 후루야를 보고 아차 싶은 마음에 서둘러 걸음을 뗐다. 자신과 다르게 그는 조금 전까지도 잠에 빠져 있었다. 안 그래도 잠이 부족한 사람인데 그의 소중한 수면 시간을 단 1초라도 허투루 빼앗기는 싫었다.

“후루야 씨는 어쩌려고?”

“난 이렇게 하면 되니까요.”

그가 침대 헤드와 나란히 놓은 의자 등받이에 전신을 맡기고 팔짱을 꼈다. 앉은 채로 잠들 모양이었다.

“불편할 텐데.”

“익숙해요. 차 안에서도 이러고 자는데요 뭘.”

“…….”

차 시트는 푹신한 데다 기울기 조절이 가능하지만 식탁 의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 밖에 더 좋은 수가 있지도 않았다. 시호는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거실 불을 끌까도 생각했으나 너무 어두워질 것 같아 방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두었다. 비좁은 틈새로 불빛이 비스듬히 새어 들었다.

바스락. 면 재질의 이불 커버를 건드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컸다. 시호가 나온 모양 그대로 이불 안에 기어들어 갔다. 온기는 이미 식어버려 싸늘했다.

“무슨 악몽… 꿨어요?”

후루야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정신은 반쯤 꿈나라에 가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나른함에 젖어 들었다.

“다시 조직으로 끌려갈 뻔한 꿈.”

“응…….”

“도망치고 싶은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데, 이상하게 몸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어.”

“……응.”

“몸이 너무 무거워서 움직이는 게 죽을 만큼 힘들었어. 뭔지 알아? 꿈속에서도 엄청 힘들다는 느낌.”

“…….”

“그렇게 눈을 떴는데, 아. 꿈이구나. 이제 겨우 해방이구나 싶었는데, 여전히 몸이 움직이질 않았어.”

“……응.”

“내가 못 움직이는 동안 누가 여기로 들어올까 봐 너무 무서웠어. 저항 한 번 못 하고 끌려갈까 봐 너무 무서웠어.”

“…….”

“몇 분 정도 지났나, 아니면 몇십 분일지도 몰라. 안간힘을 쓰니까 몸이 조금씩 움직이더라고. 이대로 방에는 못 있을 것 같아서 당신한테 전화부터 건 거야.”

“…….”

“옛날에는 이런 꿈꿔도 깨고 나면 옆에 박사님이 계시니까 괜찮았는데. 박사님이랑 못 지내니까 이런 게 좀 불편하네.”

시호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사방이 고요했다. 이야기하니 다시 악몽이 떠올라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아까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시호는 후루야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간헐적으로 대답하던 소리도 어느새 들리지 않게 된 걸 보면 그는 아마도.

그때, 앞으로 서서히 휘어지는가 싶던 그의 고개가 일순 강하게 떨어졌다. 충격으로 앞머리가 춤추듯이 찰랑거렸고 후루야가 번쩍 눈을 떴다.

“…아. 잠깐 잠들었다.”

모든 장면을 지켜본 시호는 그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워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심정이 됐다.

“그냥 집에서 자는 게 어때? 난 괜찮으니까.”

“아뇨. 시호 씨 잘 때까지만.”

후루야가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았다. 팔짱을 단단히 낀 상태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대로 부동자세. 남겨진 시호가 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시호라고…….’

후루야는 시호를 시호로 부르지 않는다. 언제나 미야노 씨라는 경칭과 깍듯한 경어를 쓴다. 그러니까 시호 씨라는 호칭은 잠결에 내뱉은 말실수라는 말이 된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

‘본심?’

이상하게 흘러버린 결론에 시호가 물음표를 잔뜩 띄우는 동안 후루야의 머리가 한 번 더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다. 아까보다 커진 각도와 그만큼 커진 반동.

“…아. 잠깐 잠들었다.”

푸. 시호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음소리에 살짝 잠이 깬 듯 후루야가 시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이 잘 안 와요?”

“응… 저기. 정말 집에 가서 자는 게 어때?”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면 침대로 올라올래?”

후루야가 반쯤 감긴 눈으로 시호의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시호가 말을 꺼내며 벽 쪽으로 바싹 붙었기 때문에 대충 공간은 만들어져 있었다.

“좁긴 하지만 누울 수는 있을 거야.”

“아니, 그래도.”

후루야가 빈자리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성의 끈이 시호의 제안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나섰지만 후루야는 몹시 졸린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침대로 다이빙을 하고 싶었다. 정말로.

“안 그럼 내가 미안해서 못 잘 것 같아.”

“…….”

후루야가 이불 끝자락을 집어 올렸다. 순간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보금자리라도 되는 양 그는 기꺼이 이불 속에 기어들어 갔다. 줄곧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던 탓에 눕자마자 허리가 찌르르 아팠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그는 베개도 없이 정자세로 누워 뒤통수가 침대에 닿은 지 채 3초도 되지 않아, 아주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시호는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몸을 바라보았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1시간 전에 악몽에 시달린 공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평온한 공기가 방 안을 감쌌다. 시호가 덩달아 나른함에 젖어 눈을 감았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또 깊이 내뱉는 후루야의 숨소리가 정확히 들려 왔다.

자는 사람의 호흡에 맞춰 숨을 쉬면 잠이 잘 온다고, 언젠가 누구에게 들은 말이 기억났다.

시호가 후루야를 따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또 깊게 내뱉었다. 단조로운 리듬 속에서, 살짝 맞닿은 피부로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시호는 까무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알람이었다. 진동이 울리자마자 후루야가 기계처럼 눈을 떴다. 정해진 순서라면 다음으로 알람을 꺼야 하는데 후루야는 곧 손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알아차렸다.

‘……어라?’

왜냐하면 두 팔은 어떤 물체를 소중히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베개까지 하고 있어 이대로 팔을 빼버리면 상대가 잠에서 깰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끝까지 울어댈 알람을 그저 방치할 수도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품 안에 고이 잠든 상대, 시호가 잠에서 깰 것은 자명한 사실.

“으응…….”

“아, 저기, 미안, 알람,”

아니나 다를까 시호가 막 잠에서 깨고 있었다. 후루야는 왼손을 뒤로 180도 꺾어 필사적으로 스마트폰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히지 않았다. 여기도, 저기도, 그 옆에도. 대체 어딨는 거냐. 마음속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으면 시호가 어느새 잠에서 완전히 깬 눈빛으로 후루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좀 더 자요, 이거 알람이라서,”

“좋은 아침.”

우우웅, 우우웅.

새벽의 적막을 깨는 요란한 진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후루야가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시호를 바라보았다. 알람은 더 이상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녀의 아침 인사에는 잠기가 잔뜩 묻어났다. 후루야가 무심결에 시호의 볼을 쓰다듬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었다. 악몽 따윈 없었다. 아니, 꿈조차 꾸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주 오랜만에 깊고 편안하게 잔 듯 정신이 맑고 개운했다.

오늘 하루는 분명 순조로울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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