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절필이라는 선택은 극단적이었음을 인지하고,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제 글을 좋아해주신 독자님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굉장히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정확히는 무척이나 책임감 없는 짓을 했다는) 점 또한 인식한 채로 이런 선택을 내렸던 것 같은데...

나이가 있고 질환이 있고 안 좋은 기억이 있고 등등을 떠나 용기를 내지 않으면 정말로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글을 전혀 못 쓰더라도 적응하기 전의 3개월일 뿐이니 어떻게든 견디자는 생각을 했는데......

직장이 글쓰기를 막네요.

핑계임을 알지만, 처음 계획처럼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기도 버거워요. 집에 오면 빨라도 8시이고, 다음날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10시나 11시에는 자야 하고요. 주말에는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주에 출근하지 못합니다. 아니, 실은 인간관계 몇을 내팽개치면 되기는 하는데 저는 그 친구들을 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친구들의 사생활과 비밀을 제가 이런 자리에서 가볍게 떠들 수는 없으니 이유를 자세하게 말은 못 하지만....... 그러고 나면 제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프고 힘들 때 누군가는 저를 버리지 않았기에 제가 살아갈 수 있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분명히 첫 한 달은 새벽 시간에 글을 쓰기 위해 오전 4시에 일어나 실제로 글을 쓰다가 오전 6시에 운동하고 바로 샤워하고 출근하는 패턴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체력 문제 때문에 고작 6시나 6시 반에 일어날 뿐이에요. 

결심이 흐트러졌네요.

나날이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리는 것 같아 죄송해요.

제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비밀유지를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인터넷 공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제 일에 관해서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말씀을 못 드리지만, (그렇다고 뭐 대단한... 국가의 비밀을 취급하고 생명이 오고가는... 고런 일은 아닙니다.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ㅎ) 피로한 일은 맞습니다. 육체적으로 피로할 일은 아닌데 정신적으로 피로해요. 출근할 때는 그래도 책을 읽는데 퇴근할 때는 긴 글은 읽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요. 설정이나 일기, 간단한 플롯 정도야 쓸 수 있지만 구조를 제대로 갖춘 글은 너무 피로해서 쓰고 싶지 않고, 쓸 수 없습니다.

오늘 농담처럼 국장님한테 "아앗~ 국장님 저 1년 뒤에 그만둘 겁니다!"라고 말씀드리니 국장님께서 "OO씨, 1년 가면 3년을 가고, 3년 가면 7년을 가고, 7년 가면 9년을 갈 거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직장을 참 우습게 봤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기장에는 다소 비관적인 말을 썼지만, 늦더라도 반드시 돌아올게요.

그런데 그게 정말로 1년은 지나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서요. 그래서 혹시 몰라 미리 말씀드립니다.

실은 지금 이 글을 쓸 때까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데 태만한 것은 아닌지, 또 실망을 안겨드리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최근 약 한 달 정도 저만 볼 수 있는 곳에 여러 가지를 기록했습니다. 자는 시간에 따른 기상 시각이나, 출퇴근 시간에 할 수 있고 하는 일이라거나, 휴게 시간에 할 수 있고 하는 일이라거나. 결론적으로는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대비를 해도 세 가지 일(직장, 집안일, 글쓰기)을 동시에 할 수는 없더라고요. 할 수는 있는데 정말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아실 분들은 제게 양극성 장애, 즉 조울증이라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제가 하도 자주 언급해서요. 이 정신질환을 쉽게 설명하자면 기분이 뜨고 굉장히 충동적이 되는 조증과 기분이 가라앉는 울증(우울증이라고 생각하시면 더 쉽습니다)이 번갈아 나타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하는 사항은, 조증이 단순히 '기분이 좋다'라고 말할 수 없는 기간이라는 점입니다. 조증이 오면 사람은 충동적이 되고, 과민해지고, 아주 극심할 때는 정신증(환청, 망상, 사고장애 등 자아나 사회적 기능의 손상을 일으키는 증상을 뜻합니다)을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정신질환의 증상은 개인의 성향과 성격 등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확연히 공통되는 부분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지만요.

저는 지금 보통 조증이나 울증이 나타나기 마련인 기간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약물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고, 의사에게도 현재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정말 드물게 늦게 잘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순간을 7~8시간 동안 자는 습관을 꾸준히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보충하자면, 제 질환은 수면 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수면 패턴을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신체화 증상이라는 게 있어요. 쉽게 설명하자면 마음의 질환이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정신질환이 아니라 육체의 통증이나 장애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심장의 이상이 없는데 심장에 통증을 느낀다거나, 소화장애가 일어난다거나 몸살 감기가 아닌데도 근육 전체의 통증을 느낀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다행히 지금의 직장은 제 질환을 이해해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하면, 일주일에서 이주 정도 지나 어김없이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서 월차나 병가를 쓰게 되는 일이 일어나요. 집에서 푹 쉬면 하루 정도로 그쳐서 다음날 다시 출근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가까운 시일 내에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마침 주위에서 안 좋은 일도 생겼고요.

지금 저의 희망은 1년 동안 제 일에 익숙해지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실 1년 주기로 반복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물론 최악의 경우 제가 부서 이동을 해서 맨땅에 헤딩하는 과정을 또 거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1년 전과는 또 다르지 않을까요.


4월은 제 생일이 있는 달이라서 희망차고 기쁜 말씀만 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여러분께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어요. 그 점에 있어서 굉장히 죄송합니다.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고, 제 병을 핑계삼고 싶지도 않은데 결국 그렇게 되네요.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제 글을 사랑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이 제 글을 좋아해주셔서 기뻐요. 돌아올 수 있도록 이 자리에서 계속 노력할게요. 한 3년인가 5년인가 걸려서 <지배하는 자>를 완결냈던 것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책임을 지겠습니다.



어디에다 작성할까 고민하다가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는 포스타입에 작성합니다.

제 개인정보는 다행히 멀쩡했지만 리디북스도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서 좀 허탈하긴 한데... (나는 왜 포타를 버렸나 왜 그리 책임감 없고 충동적인 행동을 했던가) 뭐... ㅠㅠㅠ 어쩔 수 없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르소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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