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당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 범 형님. 오늘은 왜 또 기분이 안 좋으실까."

그것도 청명의 예상 범주를 한참 뛰어넘는 수준으로 그랬다.

"빼지 마시고. 내가 이걸 구해 형님과 마시겠다고 얼마나 기를 썼는지 아시오? 진짜 좋은 술이라니까 그러네."

작신작신 때려눕혀 다시는 오지 않겠거니 생각했었던 것이 무색하게 당보는 꼭 사흘 만에 도로 발을 들였다. 제멋대로 형님이라 부르며 나오라고 행패를 부려 대기에 겨우 잠이 들었던 청명 역시 짜증이 가득한 채로 다시 눈을 떴다. 한 대 맞은 걸로는 안 되나 보다. 청명은 생각했고, 이번엔 두 대를 팼다. 당보는 너덜너덜해진 채 꼬박 한나절을 기절해 있다가 절뚝거리며 돌아갔다. 당보는 나흘 뒤에 또 돌아왔다. 그러면 청명은 당보를 팼고, 당보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 짓을 몇 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놈도 내려가기 귀찮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던 것도 잠시. 청명은 당보의 옷자락만 슬쩍 집어 들어 산 아래쪽으로 내려다 주었다.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온 당보가 특유의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데려다준 것이 형님이냐 물었을 땐 입을 꾹 다물었지만, 아무튼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청명은 당보가 오면 좀 놀아 주다가 기절한 상대를 산 아래쪽으로 내려주는 것까지를 자신의 일과로 삼았다.

이놈은 아무리 괴롭혀 놔도 며칠 뒤면 깨끗하게 회복해 돌아오곤 했으므로 청명은 긴 잠을 청하지 않게 되었다. 눈을 붙여 봐야 잠이 들까 싶으면 어김없이 와서 소리를 쳐 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쯤 바뀌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청명은 조그만 바위를 사이에 두고 당보와 마주 앉아 대작을 하고 있었다.

"...이 새낀 뭐가 문제지?"

"왜 또 시비요? 마시기 싫으면 말든가."

그러더니 청명의 잔을 향해 손을 뻗는다. 청명은 저도 모르게 당보의 손목을 콱 움켜잡았다. 상대가 호흡을 참는 듯하더니 결국 와하학 웃어 버린다.

"선 넘네."

"그게 이 당보의 주특기 아니겠습니까."

청명은 속으로 그 말에 동의하며 술잔을 들고 단번에 내용물을 털어 넣는다. 꽤 독한 술인 듯한데 특유의 쓴 맛이 나질 않았다. 달착지근하게 맴도는 맛에 챱챱 입맛을 다시던 청명이 고개를 갸웃 한다. 당보가 자신만만한 낯으로 청명을 마주 본다. 좋아할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거 맛있네."

"그쵸? 그럴 줄 알고 이 당보가, 아 형님!"

청명이 그것을 병째로 낚아채기 전까지는 그랬다. 당보가 말릴 새도 없이 청명의 주둥이에 콱 꽂혀 들어간 술은 아깝게도 목구멍에 직통으로 부어져 꼴꼴 넘어갔다. 당보는 최선을 다 해 술병 뒤편을 잡아당겼으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뾱. 마침내 술병이 뽑혀 나왔을 땐 이미 한 방울도 안 남은 빈 병이 된 후였다. 당보는 뭐라고 구시렁대며 은근슬쩍 안주로 곶감을 내놓았다. 청명은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그것을 홀랑 집어먹었다. 달달하니 좋기만 했다. 당보가 입속말로 욕을 하는 걸 알았지만 그저 우스울 뿐이라 청명은 그를 내버려 두었다.

"어떻게 그걸 혼자 다 처마실 생각을..."

"뭐라고?"

"술값은 받아야겠다는 뜻이오. 오늘부터 여기서 살아야겠으니 그렇게 아쇼."

"이게 미쳤나. 누구 마음대로?"

"글쎄요. 신?"

신 같은 소리 하네... 청명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내가 산신인데 어디서 야바위를 쳐?"

"뭐만 하면 야바위래. 진짜라니까요? 범 형님. 요 밑에 하나 있는 마을이 점점 황폐해지는 것, 알고 있소?"

당보의 목소리가 일순 진지해졌다. 그 낌새를 알아챈 청명도 드잡이질 하는 것을 멈췄다.

"농사가 안 되기 시작한 건 벌써 오래전 일이고. 요즘은 멀쩡히 자라던 나무까지도 비쩍 말라가고 있답니다. 땅 역시 쩍쩍 갈라져 흙이 날리고... 그럼 결국 남는 건."

"돌뿐이겠군."

청명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황폐해졌다는 마을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처럼..."

청명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꼭 그랬으니까. 이유 역시 알 만했다. 오랫동안 산을 돌보지 않았으니 그 죽음의 기운이 산 밖으로, 마을까지도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청명이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그러던 차에 용한 무당 하나가 마을에 하루를 묵어갔소. 난 마침 형님을 보러 가던 참이었는데 그 무당이 산을 보고 덜덜 떨더니 갑자기 저한테 삿대질을 하는 겁니다. 저를 제물로 바치라나? 그래서 당가로 돌아가 눈독 들이던 술을 훔쳐 온 참이오."

"대체 앞뒤가 무슨 상관인지를 모르겠군."

"하지만 맛있었죠? 아무튼 일이 그리 됐으니 날 좀 끼고 사시오."

"지금 그 무당 말 하날 믿고 여기 엉덩이를 붙이겠단 거냐?"

"하긴. 선무당일지도 모르죠. 그럼 시험해볼까요?"

"뭘."

여기서 살겠다며 벌러덩 드러누웠던 당보가 몸을 휙 일으켜 앉았다.

"처음 만났을 때 했던 거 있잖소. 이번엔 꺼지라고 명하는 거지. 진짜 저 위에 있는 신의 뜻이면 내가 안 쫓겨나지 않겠소?"

또 무슨 호기심이 돋았는지 눈이 반짝거린다. 청명은 괜히 껄끄러워져 입술을 비죽였다.

"인간이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신과 신 사이의 간섭은,"

"왜. 쫄리시오?"

이번엔 미간이 팍 구겨졌다. 이를 으득 간 청명이 낮게 읊조렸다.

"나가라."

벌써 반년쯤 전의 일이 되었음에도 기억은 생생히 남아 있어, 당보는 숨을 꼴깍 넘기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호기롭게 말을 꺼내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산꼭대기에서 튕겨 나가면 몇 군데는 부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순간, 지난번과 같은 이질적인 기운이 땅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윽!"

동시에 손끝 하나 꼼짝 할 수 없이 꽁꽁 묶여버리고 말았다. 똬리 튼 뱀처럼 온 몸을 칭칭 감아 압박하는 감각에 당보가 짧은 숨을 토했다.

"이거, 아무래도 선무당은, 아닌 것, 흐으... 형님."

점점 피가 몰려 새빨개진 얼굴로 끙끙대는 소리에 청명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눈을 깜빡였다. 가볍게 손을 휘젓자 순식간에 압박감이 풀어진다. 당보가 콜록콜록 잔기침을 몇 번 하다 고개를 들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당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에 청명이 비쳤다. 입으로는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도 매번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던 눈동자가 혼란으로 떨리고 있었다.

"...범 형님?"

그리 불러 봐도 여전히 조용했다. 당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 본다. 산신도 고뿔이 걸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처럼 보였다. 무릎걸음으로 다시 한번 거리를 좁히자 청명이 움찔 상체를 물리더니 펑, 하는 소리만 남긴 채 사라졌다. 빈 술병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진 당보는 신묘한 연기가 흩어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벌떡 자리를 박찼다.

"아니, 이 양반아! 나도 데리고 가야지!"



은신처로 돌아간 청명은 동굴 안을 서성거리다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조금 전 당보를 옭아맸던 힘은 하늘 위 높으신 것들이 행사한 것이 아니었다. 당보는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저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온전한 제 권능이었으므로.

"아이 씨..."

북북 마른세수를 하다가 앞머리를 헝클인 청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좆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청명이 이 땅에 행사하는 힘은 말로써 발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땅이 청명이며 청명이 곧 땅이다. 말은 그저 거들 뿐. 권능이 진심으로 읽어내는 것은 청명의 내면일 것이었다. 그러니 문제였다. 좀 전의 그 사건은 청명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채 어느 순간부터 당보를 곁에 두고 싶어 했다는 뜻이 될 테니까.

눈을 감으면 그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천당가의 태상 장로, 당보. 겉보기와는 달리 나이는 칠십 몇 즘이고, 깨끗한 냄새가 나고, 칠 주야에 두 번은 저를 찾아오고, 그때마다 얻어맞으면서도 웃는 미친 놈. 어린 시절 당가를 뛰쳐나와 천하제일의 자리를 꿰찼으며, 제 독문무공인 듯한 비도술을 사랑하는 놈.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이 정도 뿐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믿을 만한 자가 아니다. 청명은 인간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살아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와 씩 올라가는 입꼬리, 부드럽게 접히는 눈매 따위가 쓸모없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내쳤어야 했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꼬리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탁탁 내리쳤다. 그리 진심으로 달려들지만 않았더라도, 즐거운 듯 웃지만 않았더라도...

'친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않았더라도.'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당보가 이 땅 위로 툭 떨어진 이후로 모든 것이 꼬여 버린 기분이었다. 꼭 사흘, 늦어도 나흘 안에는 돌아오는 놈 때문에 사라졌던 시간 감각이 돌아왔다. 청명은 제 마땅한 과업을 잊고 자꾸만 잠에서 깨어났다. 당보와 있으면 실없는 소리에 피식피식 웃음이 흘렀다. 근방의 땅의 모든 정기를 끌어안고 소멸해야 함에도.

"범 형니이이임!"

저 목소리만 들리면 자꾸만,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면 여전히 따뜻한 햇살과 새파란 하늘 따위가 보여서. 자신도 이 진창에서 빠져나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질 것만 같아서. 그 사실이 끔찍해서. 청명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더 늦춰서는 안 된다. 당보 역시 인간이다. 인간은... 믿을 수 없었다. 이제 끊어내야만 한다. 짧은 일탈은 이만하면 되었다.

당보의 기척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동굴 안으로 불쑥 들어선다.

"...형님?"

당보가 목격한 것은 익히 보던 인간의 모습이 아닌, 굴 안을 가득 채우는 집채만 한 범의 모습이었다. 순간 내가 알던 형님이 맞나 싶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당보는 이 산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겁도 없이.

"호오. 과연 산군이라 할 만하오. 내 영물도 많이 보았지만 형님 같은 범은 처음 보는군. 그나저나 그리 혼자 가는 법이 어디 있소? 찾아오느라 죽는 줄 알았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며, 꿍얼꿍얼 싫은 소리를 늘어놓던 당보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눈치챈 듯이 우뚝 멈춰 섰다. 청명이 낮게 으르렁댄다. 명백한 적대였다.

"..."

"나가라."

조금 전과는 달리 명령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보는 그저 그 자리에 붙박인 듯이 서 청명을 바라볼 뿐이었다. 꼭 제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청명이 콧잔등을 찌푸렸다.

"나가라고 했어."

"범 형님. 뭐가 그리 무서우십니까?"

"...꺼져라. 마지막 기회야. 난 같은 말을 네 번 하지 않는다."

빤한 시선으로 청명을 바라보던 당보는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제 옷깃을 쥐었다. 사락. 가볍게 천 스치는 소리가 나더니, 녹빛의 장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언젠가 술잔을 마주하며 당가 놈들에게 장포가 어떤 것인지를 들은 바가 있던 청명은 움찔 위협을 멈췄다. 당보는 뒤이어 무복 안에 숨겨두었던 자잘한 암기 따위를 풀어내 그 역시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더 할까요?"

무심한 목소리로 말한 당보가 이번에는 제 무복 상의를 풀어내 대충 집어 던졌다. 순식간에 가벼운 내의 차림이 된 당보가 다시금 청명 쪽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반사적으로 반 발자국 물러섰던 청명이 낮게 목을 울리며 달려들었다. 당보는 저항하지 않았다. 곧장 시야가 뒤집히는 듯하더니, 다시 초점이 잡혔을 땐 청명의 앞발에 가슴팍이 꾹 눌린 채였다. 과연 산군이라, 꼭 산 아래 깔린 듯한 착각마저 든다. 제대로 호흡이 되질 않아 당보는 자꾸만 얕은 숨을 뱉으며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죽이든, 패든, 알아서... 하시오. 난 어차피, 큭, 제물로, 형님 것으로 온 것이니..."

목덜미에 습한 숨이 닿는다. 반사적으로 바르작대려는 몸에 의식적으로 힘을 풀어내려 당보는 애를 썼다. 내력 역시 끌어올리지 않은 채였다. 청명이 입을 벌려 당보의 목을 문다. 당보가 질끈 눈을 감았다.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 곧장 숨이 끊어질 것이었다. 당가도 살아났고, 제 삶도 살 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다. 다만... 지독히도 고독한 이 자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었나. 백 년도 살지 못한 한낱 인간의 시야로 신의 슬픔을 헤아리는 것은.

"윽."

허나 생각이 줄줄이 이어지도록 제 숨은 계속해서 붙어 있었다. 의아함에 눈을 뜨면 저보다도 더 어리둥절한 표정의 청명이 눈앞에 보였다. 또 혼란스러운 시선이었다. 당보가 홀린 듯 팔을 뻗었다. 청명이 어떤 반응을 하기도 전 양 팔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워낙 큰 덩치인지라 품을 한껏 벌려도 목을 다 둘러 안아줄 수는 없었다.

"미련한 양반 같으니."

제 목소리가 떨려서. 당보는 그제야 청명이 당황한 낯을 한 연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툭, 떨어진 눈물이 청명의 털을 적셨다. 당보는 청명을 잘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당보는 아주 작은 파편 같은 것들을 보았다. 새카맣게 썩어버린 물속에서도 반짝임을 잃지 않은 조각 같은 것들을. 저보다 한참은 더 살았을 존재인 그가 문득문득 어린 막냇동생같이 군다는 것을 당보는 알았다. 아무 말이나 해도 편히 들어줄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안다. 그러다 이따금 픽 흘리는 웃음도, 그때 미묘하게 풀어지는 인상도, 술을 좋아한다는 것도.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온전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그 역시 상처받고 아파하며 웅크린 것이라면... 당보는 그저 모른 척 스치듯 흘러갈 수가 없었다. 청명을 홀로 둘 수는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일순 드러난 파편을 보고 나니 욕심이 날 뿐이었다. 한없이 우울한 장막을 걷어내어 온전히 반짝이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알 수 없는 호승심까지도 솟았다.

청명을 끌어안은 팔에 꾹 힘을 주자 상대가 바르작댔다. 하지만 영 진심 어린 발버둥은 아니었다. 이내 청명 역시 얌전히 늘어졌다. 겹친 몸으로 서로 온기가 옮겨와 체온이 닮아 갔다. 당보는 청명의 느린 심장박동을 들었다. 그 역시 제 것을 듣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젠 그냥 같이 있자 하면... 또 도망칠 거요?"

"내가 언제 도망쳤다 그래."

시큰둥한 목소리였지만 조금 전처럼 날을 세우던 기색은 없었다. 잠시간 고요 속에 늘어져 있던 당보가 슬슬 몸을 뺐다.

"그렇다 치고... 아! 왜 더 무거워지는 겁니까? 좀 일어나요. 이러다 진짜 압사하겠소."

등을 톡톡 치니 청명이 게으르게 몸을 일으켜 당보의 옆으로 몸을 길게 뉘었다. 이미 한서불침의 경지에 올라 딱히 추위를 느끼지는 못하였으나 청명은 슬쩍 한쪽 품을 내어 당보의 옆에 붙어 주었다. 털 덕분인지 닿은 온도가 영 따끈했다.

"...주무세요, 형님."

웅얼거린 당보는 오래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축축한 것이 눈가를 스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끝내 깨어나지는 않았다.

퐁.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 청명이 귀 끝을 파르르 떨었다.

고이고 고여 새카맣게 썩어버린 물에 깨끗한 물 몇 방울이 떨어진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란 걸 안다.

하지만 그 느낌만은 나쁘지 않아서.

청명은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에 지끈 올라오는 향수를 느끼며 긴 숨을 뱉었다.

고요한 사이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그 역시 낯설었으나 싫지 않다고, 청명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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