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띠, 띠리릭― 철컥.

 

이 문을 열면, 오늘도 어김없이 당신은 와 있을까.

현관문을 채 활짝 열지 못한 상태로, 황시목은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마치 귀 옆에 달린 것만 같이, 쿵쿵쿵쿵- 어지럽게 울려댔다. 이 문을 열면, 그래서 내 눈 앞에 당신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 나는 또다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데... 차마 이 문 너머를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는 손에 들린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이 웅덩이를 만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 목석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벅-

 

하지만, 그럼에도

 

저벅-

 

이 문을 열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저벅-

 

그 두려움보다, 당신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저벅-

 

더 크기 때문이겠지.

 

저벅, 띠리릭―

 

하지만 그렇게 긴장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여느 때와 같이 고요로 가득찬 집 안을 둘러보며, 황시목은 마치 제 집이 아닌 것 마냥, 긴장하며 침음에 잠겼다. 한참을 기다려도 여전히 조용하자 초조해진 그는, 이내 급히 신발을 벗어던지고 들어와 거실 한 편에 놓여있는 달력을 집어 들었다.

 

오늘이 아니었나? 아닌데, 내가 칠석날은 빠짐없이 다 기록해 두었는데... 틀릴 일이 없는데... 현관에서 심장이 뛰었던 것과는 다른 두려움으로, 박동 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건가? 그럴 리가... 내가 분명히......!

 

“어, 왔어?”

 

시끄럽게 뇌리를 오고가던 생각을 뚫고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에, 황시목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좀 늦었네? ......야근했어?”

 

너무도 태연자약한 목소리의 서동재를 확인한 황시목은 그대로 긴장이 풀려,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욕실 앞에서 가운을 걸친 채로, 태평하게 머리를 말리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헛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당신이 사람 마음을 얼마나 들었다 놨다 했는지 아십니까. 황시목은 손에 들린 달력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그대로 서동재에게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야, 황시목 너 왜 그...! 야! 너 또 비 맞고 왔어? 쯧, 아니 왜 매번 우산을 줘도 못 쓰고 매번 다 젖어가지고 오고 그러냐! 걱정되게...”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내가! 방금 샤워했단 말이야!”

 

서동재는 답지 않게 자신을 품에 꼭 안고, 목덜미에 코를 연신 부비는 그를 향해 짐짓 볼멘소리를 건넸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급해도 코트는 걸어두고 올 사람이, 무언가에 쫓기듯이 이렇게 자신에게 오는 모습이 영 낯설었다. 이런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황시목은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서동재를 끌어안던 품을 풀곤, 그와 눈을 맞췄다.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뭐야, 이 자식 어이없네. 내가 안 오기는 뭘 안 와. 여기가 이제...! ...내 집인데. 너야말로 안 오는 줄 알았다. ...오늘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업무가 밀렸습니다. 형사 2팀에 배당된 사건이....”

“아, 알지 알아. 그, 뉴스에 나오는 서초동 사건 말하는 거지?”

“네”

“너가 그 사건 맡으면 잘 하겠다, 싶었는데. 결국 너한테 다시 떨어졌구나. 역시, 황시목이네. ...그럼 그럼, 누구 애인인데. 아, 저녁은? 설마... 야 황시목. 너, 또 굶었지? 쯧, 내가 너 나이 들수록 끼니 챙겨먹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황시목은 익숙하고 그리웠던 그 음성이 자신의 집에 퍼지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꿈만 같았다. 그는 마치 새끼 오리처럼,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는 서동재를 그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 분 일 초라도, 자신이 그의 말할 시간을 빼앗는 것이 싫었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목소리로 이곳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아아― 그래, 6년 전 그 날부터일 것이다. 며칠 동안 떠들썩하게 기상예보관이 100년만의 강력한 태풍이 올 것이라고 그렇게 앵무새처럼 기상특보를 방송하던, 바로 그 날. 핸드폰에선 끊임없이 재난 경보 문자가 울리던 날. 유독 당신은 그 날 아침부터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새로 맡은 사건 때문에, 지방 출장을 간다고 한 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평소에도 그닥 연락으로 속을 썩이던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화근이었다. 두고두고 후회했어. 왜 평소와 다른 당신의 변화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을까. 왜, 전화라도 해보지 않았을까. 왜.. 같이 간 시보에게라도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았을까. 왜.. 왜... 왜.....!!

....왜, 출장 가는 날 아침, 같이 식사 하자며 날 깨우던 손길을... 그저 무시해버렸을까.... 그 모든 순간을 너무도 후회했어. 아니, 지금도 후회해. 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리고 싶어.

 

이번에 출장을 가면 얼마나 있다 돌아올지 모른다고 했던 말이, 이렇게나 길게 될 줄 몰랐지. 아니, 이렇게 영영 함께하지 못하게 될 줄 몰랐지. 연락이 잘 안 되던 것이, 지방 쪽으로 출장을 간 것이라 그런 줄 알았지.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음성 메시지가,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는 메신저의 숫자 1이... 모두 당신이 나에게 보내고 있는 신호인 줄... 정말 몰랐어......

 

...아니, 정말 몰랐던 걸까. 그 수많은 신호들을 정말 난,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아니, 불안감을 본능적으로 알아챘을 거야, 나는. 하지만 그걸 가볍게 무시했지. 바쁘다는 핑계로,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함으로, 내 앞가림도 하기 바쁘다는 그런 어리석은 우둔함으로...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우리 사이를 이렇게 만든 것은... 전부 내 잘못이야..!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다 내 책임이야!! 다 내 잘못......!!

 

“야, 황시목!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또 다시 시끄럽게 울리던 생각들 사이로, 서동재의 목소리가 훅- 끼어들었다.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서동재의 모습에, 황시목은 이내 다시금 눈에 초점을 맞추며 애써 웃어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무슨...”

“이거 봐 이거 이거, 빠져가지고... 야, 넌 진짜, 내 밑에서 일하던 그 때 이랬으면, 진짜...”

 

황시목은 아무리 서동재가 심통난 얼굴로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말해도,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일 년에 단 하루뿐인 날이라 할지라도.

 

쪽-

 

이렇게 당신의 온기를 느낄 수 있고, 당신의 눈썹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당신의 입에 다시 입 맞출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쪽-

 

오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당신이 없을까봐 얼마나 초조했는지 아십니까. 6년 전 그 날, 당신이 차가운 도자기에 갇힌 잿가루가 되어 내 앞에 돌아온 그 날. 내 세상은 다시 한 번 칠흑으로 바뀌었습니다. 14살 그 때 보다 더.. 고통스러운 암흑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야 했어요. 아예 몰랐다면 달라졌을까요.. 이미 달콤한 열매를 맛보아 알아버렸기에,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그 따스함을, 저 역시 당신을 기다리는 그 설렘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서동재 당신이 있는 그 온도를요.

 

당신은 그게 사람이 사랑을 사랑하는 감정이라고 알려주었죠. 처음으로 생각이 아닌, 사고가 아닌, 감정이 이런 거라고 알려준 당신. 내가, 당신을, 서동재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간지러워서, 입꼬리로 웃음이 저절로 비집고 나오던 그것들이 한 순간에 삭제되어버리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숨 쉬는 것도, 먹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잠자는 것도. 모든 것에 흥미가 사라져 버렸죠. 그야말로 온통 암전된 세상이었습니다.

 

그렇게 폐인처럼 살아간 지 49일 째 되던 날, 기적처럼 당신이 다시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이다 싶었어요. 미쳤어도, 당신을 볼 수 있으니까. 당신을 만질 수 있으니까. 어차피 그 이전의 삶도 제정신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 차라리 제대로 미치는 것을 택하고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았습니다.

 

거짓말처럼 이렇게 영혼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구나, 다행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는 전부 꿈일지도 몰라. 아주 지독한 악몽인거지. 이제 꿈에서 깨어나면, 당신이 평소처럼 내 옆에 누워있을 거라고. 눈시울이 붉어진 내 눈가를 어루만지며, 무서운 꿈을 꾸었냐며, 짐짓 놀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또 다정하게 날 토닥여줄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흣, 야, 너 밥 먹었......”

 

쪽-

 

“지금 먹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시죠.”

“아니, 하읏... ㅇ차가워 읏...!”

 

물론, 다음 날 당신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말입니다.

 

황시목은 이내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눈앞에 있는 서동재를 바라봤다. 손으로는 서동재의 샤워 가운 끈을 푸르며, 계속해서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마치 사진이라도 찍어두듯이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일찍 들어올 것을. 무엇이 두렵다고 그렇게 맴돌기만 했을까. 난 당신이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늦는 사람이구나.

 

“서 검사님”

“왜? ...새삼 보니 잘생겼어? 막 놀랍고 그래?”

“...서 검사님”

“아니, 근데 왜 아까부터 계속 존댓말이야..... 평소처럼 불러, 평소처럼.”

“......”

“...이름으로 불러줘.”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당신은 알까. 살아생전, 그렇게나 해주기를 바라고, 또 해주고 싶었던 것을 지금에서야 말하는 당신은, 기억할까.

 

“약속했잖아, 나랑. 내 생일 선물로, 이름 불러주는 거. ...벌써 잊어버린 거야?”

 

그래, 당신도 아는 거겠지.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겠지. 어쩌면 당신도,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한 날의 신기루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우리는 서로를 속이며, 또 그렇게 서로를 위하고 있는 것일까.

 

“서동재 씨”

“응”

“...동재야”

“응”

 

황시목은 서동재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얼굴에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혀끝에서 짠맛이 느껴졌다. 누구의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시각이 거의 12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니, 이제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7시간 남짓이었다.



보고 싶은 걸 씁니다

선인갱🌵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