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꿈을 꾼 것 같다고도 생각하며 제이슨은 뻐근한 느낌과 함께 눈을 떴다. 이마에 겨우겨우 비친 빛이 눈을 찌른 탓도 있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근육통과 허전함이 욕지거리를 내뱉게 했다. 이제 겨우 익숙한 기분이 들까 싶어도 결코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는 피냄새까지 남겼다. 간밤에 어떤 몰골로 돌아다녔을지 상상하기 싫었기에 대신에 제이슨은 제 몸 상태를 확인했다. 찢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겨지는 바지가 어쩐지 제 자리에 온건하게 걸쳐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웃통은 온데간데없었다. 제대로 입고 있었더라도 원래의 형태는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제이슨은 제 상체를 눈으로 훑었다. 어디를 넘어지고 굴렀기에 이렇게 지독한 피 냄새가 나는 거지? 여태 며칠의 보름밤을 이런 식으로 지내고 깨어났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친 곳은 없다. 몸 마디마디가 묵직하고 뻐근한 건 여전했지만 몇몇의 생체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상처가 없었다. 그럼 이 피 냄새는 뭘까. 내 피가 아니면 누구의 피 냄새란 거지? 비몽사몽한 정신이 점점이 퍼지는 생각들로 인해 뚜렷해져 갔다.


‘내 피가 아니면, 누구의?’


제이슨은 다시 한 번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찾아들어 온 건지 기억에도 없는 좁은 동굴 안에는 자신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있었다. 똑바로 누워 있었지만 잠 든 것인지 미동도 없다. 그저 그렇게 보이길 바란 것일 뿐 어쩌면 잠든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손이 떨렸다.

옆구리가 거의 반은 날아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창백하게 누워있었다. 본디 있어야 할 몸의 부위가 온데간데없이 뚝 떨어져 나갔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그 안은 어쩐지 비어있는 것 같다. 나오다 만 것인지, 여기까지 기어들어오는 동안 모두 쏟아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상상하기 싫었다. 핏기가 거의 가신 걸 보니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죽어 있겠지. 등 뒤가 싸했다. 식어버린 손 끝이 떨림을 주체 못하고 허공 위를 몇 번인가 방황했다. 결국 의지할 곳 없이 하얗게 질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빳빳하게 굳은 양 손 안에 피 냄새가 가득했다.


‘내가 저지른 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기억 날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죽였어?’


그제야 제이슨은 제 손을 바라보았다. 말라붙은 혈흔의 흔적으로 두 손이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죽이고, 여기에 온 건가? 결국은? 눈앞이 아찔했다. 머리를 싸매려다가도 제 시선이 박힌 양 손안에서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그저 떨리기만 했다.

결국 기억도 없는 상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언제고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보름달이 다가오는 밤엔 으레 그랬듯 사람이 없는 곳으로 홀로 숨곤 했다. 동이 터오는 새벽엔 기분 나쁜 잠자리에서 깨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번쩍 뜨는 날의 반복이었다. 언제나 처음에 있던 곳과 다른 곳에서 눈을 뜬다. 본능인지 무엇인진 몰라도 좀 더 외지고 깊은 곳에서 정신을 차리곤 했다. 처음과 같이 눈을 뜰 때도 홀로 존재함을 확인할 때 비로소 안도하곤 했다. 그나마도 마음에 드는 단 하루, 지랄 맞은 고통이 지난 뒤에나맛보는 아침을 맞이하면서 때에도 없던 안도를 하곤 했는데.

이미 대답이 없는 상대에게 소용은 없었지만 제이슨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젠장…….”


차마 누워있는 죽은 자를 향해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체라도 묻어줘야겠지. 신고라도 해야 할까? 내가 했다고 하면, 믿어 주려나? 그래, 그렇게 믿게 하고 차라리 어디든 감금당하는 게 낫겠어,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런 일이 또 생길 바에. 하지만 늑대인간인 걸 알게 되면 그들은—

비참함과 암담한 절망이 함께 머릿속을 뒤엉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랬기에 제이슨은 동굴 벽을 튕기며 희미하게 울리는 작은 신음을 단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햇, 빛…….”


처음엔 잘못 들었나 했다. 동굴 저 안쪽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있기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먼 소리는 아니었고, 가까웠지만 그 소리가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이 작았을 뿐이었다. 제이슨은 퍼뜩 고개를 들고 동굴 안쪽을 바라보다가 곧 이어 제 바로 옆에 두고 누워있던 시체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말도 안 돼.

소리로 내지를 뻔 했던 소리였지만 상황 상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나 누워있던 이는 마치 제이슨의 소리 없는 비명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여전히 눈은 감고 있었지만 더듬더듬 입을 열어 말했다.


“아직, 아직 이니까……. 햇빛을, 제발…….”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도 간곡한 부탁이었다. 햇빛? 그제야 제이슨은 동이 터 오는 하늘을 알아차렸다. 푸르스름한 하늘이 거두어지고 해가 뜰 시간이었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 한줄기가 시체같이 창백한 얼굴 위를 살짝 비껴가고 있었다. 그다지 밝은 빛이 아니었음에도 눈꺼풀 위에 태양을 맞이한 것 마냥 시체, 아니, 시체처럼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말을 이어간 이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입만 뻐끔거릴 뿐 더 뭐라 할 기운도 없는 듯 했다. 죽은 줄 알았더니, 그냥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을까. 제이슨은 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죽어가는 사람의 부탁이라도 들어줘야 마음이 편할 것도 같다.

어둠이 거두어지는 동굴 안쪽에서 누워있는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끔찍함은 예상보다 더했다. 피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는 살기 힘들 것이다. 어떤 기적적인 정신 줄이 그를 떠나보내지 않고 잡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시 숨을 쉬기엔 힘들겠지……. 제이슨은 잠시 망설였다. 옆구리의 반이 날아간 사람을 어떻게 안쪽으로 옮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이 없는 중에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아로 날뛰었던 짐승은 아무렇게나 그를 잡아채 이곳에 던져두었는지는 몰라도, 사람인 제이슨은 그럴 수 없었다.


“끌어서, 옮겨도 돼.”


생각보다 사람의 생명 줄은 길고 긴가 보다.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에 제이슨은 몸을 숙였다. 내 손으로 파내 죽이게 생긴 사람을 끌고 가는 짓까진 못하겠다. 제이슨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바닥에 누워있는 남자의 몸 아래로 손을 넣었다. 우려와 달리 그는 아무것도 흘리지 않고 고통에 겨운 발버둥도 치지 않은 채로 얌전히 안겼다. 사실 뭐라도 할 힘이 없이 그저 제이슨의 양 팔 안에 들렸다는 표현이 맞았다. 욱, 하고 작은 신음소리가 났다. 꼭 그저 크게 다친 것 마냥 튀어나오는 신음소리였다. 남자의 몸은 예상보다 더 가벼웠다. 아마도 피를 많이 흘렸던가, 몸에 있어야 할 것이 날아갔던가, 내가, 그랬기 때문이겠지. 제이슨은 어지간히 해가 떠도 빛이 들지 않을만한 안쪽까지 자리를 옮긴 채 품에 안긴 남자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짧은 시간 자리를 옮긴 동안 어쩐지 품안의 남자가 웃은 것도 같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면 다행일까. 죽은 자에게 말을 고하는 것은 더 못할 일이니까. 제이슨은 바닥에 눕힌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인상을 살짝 찌푸린 그는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식은땀조차 없는 얼굴이었다. 옮기는 동안 닿았던 그의 체온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차갑기만 했다. 제이슨은 남자의 생존 가능성을 지우고 고개를 숙였다. 피로 물든 손을 제 무릎에 얹었다.

풍선바람 같은 숨소리가 쉭 하고 들렸다. 남자의 기침 소리였다.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남자가 어깨를 퉁길 듯한 기침 속에서도 겨우겨우 눈을 떴다. 눈꺼풀이 한참동안이나 떨렸다. 파란 눈이 한동안 허공을 살피고 있었다. 흐윽, 하고 고통 섞인 신음이 또 한 번 울렸지만 제이슨은 어쩌지도 못하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무심코 손을 뻗을 뻔 했지만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는 제 손이 눈앞에 뻗어진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폐도, 다, 흑, 나갔나 보네.”

“뭐?”


목소리가 이상해……. 저도 모르게 반문한 제이슨의 목소리에 대한 답인지, 남자는 또 다시 꺼져갈 것 같은 목소리로 기침을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죄다 기운 없는 넋두리로 들리기까지 한다. 나무토막처럼 누운 채 제 목을 가다듬어보는 남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 같지 않게 여유마저 느껴졌다. 죽기 직전의 공포로 머리가 돌아버려서 단단히 미쳤거나, 아니면.

죽어가는 사람 맞아?

엉뚱한 생각이었다.


“저기, 많이 놀랐, 헉, 놀랐겠지만.”


말 마디마디마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마당에 남자는 몇 마디라도 더 하려고 입을 뻐끔 거리고 있었다. 혀를 움직이는 것을 호흡이 따라가지 못한 듯 중간 중간 공기를 집어 삼키면서도 또박또박 단어를 뱉고 있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이야? 제이슨은 상대가 죽어가던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사람이 아닌가?


“미안, 한데.”


한참 만에 다시 이어진 남자의 말이었다. 다친 꼴을 보니 간밤에 그렇게 엉망으로 찢겨진 몸이 된 건의 원인이 누구인지도, 왜인지 이 남자는 잘 알고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누구한테 다친 것인지 알고 있는 와중에 미안하단 말을 먼저 꺼내자 제이슨은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난 죽지 않을 테니까……, 아마도? 그러니 그냥 떠나도 괜찮을 것 같, 은데. 크흠! 아니, 아니지…….”


남자는 고통에 힘겨워 하면서도 이제는 또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제이슨의 당황은 황당함으로 번져갔다. “먹지를 못해서 오래 걸릴 텐데…….”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심각하게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다. 도대체 뭐야? 제이슨은 남자의 말처럼 당장에 동굴 밖으로 떠나지도 못했다. 멀쩡히 입만 살아 움직이는, 그러니까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살아있는 ‘다친’ 사람을 두고 제 갈 길을 가는 매정함까지는 없다. 그것도 자기가 다치게 했다. 그런다고 이 상황이 설명이 되지는 않았다. 아니,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야 몇 가지 있다. 일반적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그 일반적인 경우를 제 자신이 홀로 겪은 일로밖에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눈앞의 남자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뭔데?


“너, 늑대인간이지?”


남자는 어느새 기침을 멈춘 채 똑바로 눈을 뜨고 제이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침은 멎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몸과 고통스럽게 파리해진 인상은 그대로였다. 핏기는 찾을 수도 없다. 마치 말하는 시체와도 같은 모습이 입을 열어 정곡을 찌르는 바람에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결에 입까지 열었다.


“뭐?”

“미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데…….”


그는 몸을 일으켜보려고 시도한 듯 했다. 되도 않는 행동이었다. 복부의 절반 정도 날아간 몸이 어디 지탱할 뼈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거늘, 남자가 낑낑거릴 때 마다 헤집어진 복부의 상처가 흐느적거렸다. 그의 말대로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몇 번의 움직임 탓에 겨우 남아있던 기력마저 홀랑 날려버린 남자의 뒤통수가 쿵, 소리를 내며 동굴 바닥에 도로 처박혔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죽은 것과 다름 없을 모양새인데 부딪힌 뒤통수가 아프지도 않았는지, 남자는 자꾸만 가물거리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도 기어코 제 할 말을 관두지 않았다.


“이건 내가 자처한 거라서, 어디가서, 늑대인간 봤단 소리도 안 할거고, 책임지라느니, 그런 소리 하진 않을 테니까, 저기, 혹시, 가는 길에 쥐라도 보이면 좀…….”

“뭐……?”


쥐? 되물으려고 했을 때, 어쩌구저쩌구 중얼거리며 다 허물어지는 웃음을 올린 남자는 그대로 숨을 멈추고 기절해 버렸다.

 

 

 

뭔 개소리야. 기절한 남자를 두고 제이슨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가 제 입으로 말한 ‘죽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이제 더 흘릴 피도 없이 모든 것을 바닥에 흩뿌리고 온 시체가 말을 할 수 있을 리는 더더욱 없고, 그것도 오랜 시간동안 기침까지 해대며 대화를 시도하는 시체는 없다. 그런 사람도 없다.

사람이 아니구나.

제이슨은 그가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황당한 현실만큼은 제법 빠르게 수용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아직 씻어내지 못한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사람이 아니게 되는 사람도 있는데, 내장을 다 쏟아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존재야 얼마든지 있겠지.


“무슨 망할 놈의 쥐 타령이야.”


그러면 안 되었지만, 그래도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기에 절로 튀어나온 소리였다.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사람이 아닌 것을 해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적어도 눈앞의 남자는 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안도해야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절망감만큼은 거두어졌다.

 

“…….”


그래도 누군가가 다쳤다.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히려 사람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을지도몰랐으나 아픔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상대가 다친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면 더더욱. 악의는 보이지 않는다. 쓸데없이 말은 많은 것 같지만 어쨌든 해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다만, 제이슨은 사람같지도 않은 것이 다 아는 양 떠들다가 기절해버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이슨은 남자가 누운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동굴 벽에 등을 기댔다. 기절 직전 마지막 말이 꼭 사냥이라도 부탁한 느낌이었기에 신경이 쓰였다. 보름달에 괴물이 되긴 해도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들짐승이나 잡는 늑대는 아니거든. 속으로만 생각한 말이었다. 그는 힐끗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어이없으리만치 잘생긴 얼굴이었다.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도 모르겠고, 몸은 시종일관 차가웠기에 말하고 기절한 지금도 그가 살아있는 것인지 감히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남자는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내버려 둬야 하나? 하지만 뭔가를 먹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제이슨은 그저 상태를 좀 더 확인할 요량으로 남자의 얼굴 가까이로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송곳니다. 보통 사람의 것이라 치기엔 좀 더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가까이서만 확인 할 수 있는 뾰족한 송곳니였다.


“흡혈귀…….”


이쪽 세계의 상식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좀 더 동화 같은 영역으로만 알고 있던 명칭이다. 뱀파이어라고 했던가. 말도 안 되네 – 까지 생각했다가, 제 자신도 그 말이 안 되는 영역에 포함된 사람이란 걸 다시금 떠올리고는 몇 가지의 욕과 짜증을 내뱉었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라니, 함께 동굴에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부조리 덩어리였다. 늑대인간을 만나고도 죽이거나 도망치지 않은 뱀파이어와, 그 뱀파이어를 들쳐 매고 온 늑대인간. 조합이 썩 좋지 않았다. 사람의 오지랖이란 귀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늘, 세상엔 오지랖으로 친절도 모자라 옆구리까지 날려먹는 뱀파이어도 있는가 싶었다.

이 수상한 뱀파이어가 눈을 뜰 때 까지 함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자신 때문에 다쳤고, 그 때문에 두고 가기도 뭣했다. 어쩌면,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지난 밤 사람을 해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밤처럼 언제가 되어도 알 수 없을 만약이란 현실이 있었다. 이 뱀파이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뱀파이어의 옆구리가 아니라 사람의 머리를 뜯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죽였겠지.

죽였을 것이다. 이 한마디가 제이슨의 머리에 찬물이라도 붓는 듯 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지금 여기 누워있는 익명의 뱀파이어가, 뭘 어떻게 조우한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구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옆구리가 날아가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였다. 강한 생명력만큼 물론 살아가기 위한 능력 또한 월등할 것이다. 짐승이나 다를 바 없을 늑대인간을 만나고도 자신을 처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제 자신이 다친 꼴로 남아 있다. 되려 이쪽을 죽였으면 편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다.

제이슨은 아까까지 동굴을 울리던 신음 소리와 기침 소리를 떠올렸다. 아무리 뱀파이어였어도 고통은 느낀다는 증거였다. 첫 눈엔 끔찍했고 지금은, 괜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처를 눈으로 살폈다. 짓이겨지고 발톱에 걸려 찢어지다 못해 아예 파여 버린 상처였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말을 이을 때마다 발음이 되지 못하고 헛바람처럼 빠져나갔던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제이슨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제야 그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깨달았다. 물이라도 축여줘야 할 것 같이 바싹 마른 입술과, 그 사이로 보이는 송곳니, 해쓱한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생쥐 좋아하네. 저도 모르게 기가막혀 혼잣말을 뱉었다. 한 달 굶고 칠리핫도그 하나 먹는 소리 아니야 이거.

퉁 치는 셈이라 치자. 많은 생각들 중에서도, 어쨌든 누군가에게 빚을 진다는 건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씨발, 더럽게 아프네.”


이빨로 물면 쉽사리 피날 것이라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짐승의 거죽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의 살은 참 질겼다. 팔뚝에서 핏줄기가 흘렀다. 팔꿈치에 고여 미처 바닥에 뚝뚝 떨어지기 직전 제이슨은 급하게 남자의 입가로 제 팔뚝을 가져다 대었다.


“혹시라도 또 만날 때 빚진 상태면 찝찝하니까.”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제이슨은 괜히 그런 핑계를 대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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