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갑작스러운 의문 하나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어느 일요일, 불쌍한 직장인 두 명이 오랜만에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된 터라 야외 데이트를 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달콤한 딸기 바나나 크레이프를 먹으며 요코하마 거리를 거닐고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후 마지막 코스로 그의 지인이 참가한다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감상했다. 나란히 앉아 눈과 귀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공연장을 나와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뻗어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걸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이 귀갓길이 나는 참 좋았다.

 바다를 따라 하얗게 이어진 단차가 있는 길, 변덕이 생긴 나는 손을 잡은 채 한 칸 위로 올라갔다. 우리 사이의 키 차이는 25cm. 언제나 올려다보는 것이 분해서 조금 위에 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얼핏 비슷해진 높이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의식하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정돈되지 않은 그 사람의 수염이었다. 할아버지처럼 길게 기르는 것은 아니니 나름 정기적으로 자르고는 있는 모양이지만 매일 면도하는 것 같진 않은 그 수염은 처음 만났을 땐 없었던 것이었다. 실연에 상심해서 폐인이 되었을 적 길렀던 것이 아마 면도의 귀찮음에 져서 그대로 습관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마도 정답에 가까운 추리를 하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수염이라, 만약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키스라도 하게 되면 역시 따가울까…?

 "음? 뭐야, 갑자기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아하, 내가 너무 잘생겨서 넋을 잃고 바라본 건가?"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항상 수염을 기르고 계시는구나 싶었을 뿐이에요."

 차마 키스…같은 발칙한 상상을 했다고는 말하기 창피해서 애써 시선을 돌리고 얼버무렸다. 이제 겨우 손을 잡아도 긴장해서 땀이 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 내 주제에 무슨 그런 낯부끄러운 망상을 했는지 혼자 양심에 찔려 얼굴이 홧홧했다.

 "호오~? 표정은 그게 아닌데?"

 정말이지, 왜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른 걸까. 옆에서 집요하게 느껴지는 장난기 어린 시선에 입술을 삐죽이며 종종걸음으로 앞서 걸었다. 뒤따라오는 그 사람의 웃음소리가 능글맞게 들린 것은 분명 기분 탓이 아니리라.

 "이 수염이야 뭐, 귀찮아서지. 모처럼 하는 데이트인데 깎고 나오는 게 좋을 뻔했나?"

 그렇게 말한 후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는 바람에 나도 자연스레 따라 멈추고 고개를 돌아보았다. 단 한 걸음으로 떨어져 있던 거리를 단번에 좁힌 그는 남아 있는 한 손을 내 뺨에 감싸듯 살짝 얹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댄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편이 키스하기 좋을 테고, 맞지?" 

 진지하게 바라보는 호박색 눈동자 안에 얼굴이 새빨개진 내가 보였다. 너무 가까웠다. 입술에 닿는 뜨거운 숨결이 간질거려서 몸을 흠칫 떨었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맞닿을 것만 같은 긴장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입술을 파르르 떨며 힘겹게 눈만 깜박이자 그 사람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입 맞춰도, 되나?"

 대답 대신 이어진 손을 꼭 잡으며 눈을 질끈 감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고 부끄러운…이상한 느낌.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를 달래듯 가만히 마주 대고만 있다가 차가웠던 서로의 손이 미지근해졌을 무렵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가볍게 쪽 소리를 내며 입 맞춘 후 다시 멀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 이상은 네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다."

 그 말 그대로 얼굴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 따뜻한 숨결도, 녹아내릴 것 같은 목소리도, 생생한 감촉도 모두 다 뜻밖의 일이어서 차마 그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히로토 상, 나빠요. 심장에 나빠요, 진짜."

 창피하면서도 좋아서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가 조심스레 등을 토닥이는 게 느껴졌다.

 "누가 아니라니. …네가 너무 긴장해서 나까지 애들처럼 긴장해 버렸잖냐. 하아."

 크게 한숨을 쉬고 등에 올린 손을 내리더니 먼저 걷기 시작한 그 사람의 귓가가 조금 붉게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일까. 혼자 긴장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 기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잡아 '히로토 상.'하고 부른 나는 쑥스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왜?'라고 대답하는 그 사람에게 자그맣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

 "그래서? 역시 수염은 깎는 게 좋겠냐?"
 "…그러네요. 조금 까끌까끌했어요. ……저도 안경, 렌즈로 바꾸는 게 좋을까요?"
 "엥? 흠흠. 그건 뭐…마음대로 해라."


드림러.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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