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어중간하면 좋을 게 없다고는 하지만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태어나서 단 한순간도 그런 적 없었을 것 같은 갤러거 형제에게도 그건 예외가 아니어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두 형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더랬다. 잠깐을 보든 일 년을 보든 한결같이 극단을 달리는 것 같은 갤러거에게 어중간이라는 말을 갖다댈 수나 있겠냐 싶겠지만 하여간에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세상엔 가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하니까. 

이건 두 형제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어중간한 모럴과 지독한 사랑이 냅다 대가리들을 들이박아 만들어진, 교통사고와도 같은 감정.

 ***


  리암이 가장 처음 자신의 마음을 눈치챘을 때, 그는 굳게 닫혀 있던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달리 그걸 입 밖에 꺼낼 생각이 없었음에도 그래야만 했다. 어떤 끔찍한 것들은 자아라도 가진 것처럼 세상 빛을 보려고 난리를 치는 법이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리암은 상식에 있어서 그리 안하무인한 작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어렴풋 눈치챈 이 감정이랄지 바람이 멀쩡한 것이 아님을 바로 알았고, 동시에 자신의 앞날이 암담하기 짝이 없는 꼴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걸 죄 안다손 쳐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사실 역시 직관했다. 그건 숫제 산지옥이었다.

친형제를 사랑했던 놈의 결말이 어땠던가, 녀석의 이름이 카인인지 아벨인지 그렇지 않았나? 성경말씀이니 하는 것들은 훨씬 더 어릴 적에 관심을 꺼버렸지만 어쨌거나 남은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저런 것들이 있었다. 그래 저기선 형이 동생을 죽여버렸다고 했는데, 이제 와선 저 개소리가 남 일이 아니게 됐다. 

리암은 침대에 누워서 괴롭게 끙끙 앓으며 생각했다. 노엘에게 널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걔가 날 죽이지 않을까? 아니면 다시는 이쪽을 안 보려고 들까. 아마 처음에는 웃을 거다. 이제와서 낯간지럽게 뭐 그런 소리를 하냐며 머쓱하게 웃는 게 가장 먼저 볼 반응, 하얗게 굳어서 이쪽을 설득해보려고 드는 건 저 '사랑'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한 다음 볼 모습이고, 아, 결국 어떤 말로도 이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노엘이 어떤 말과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끔찍하다고 생각할까?

하지만 리암이 상상 가능한 최악의 상황은 노엘이 이 모든 걸 못 들은 체 무시하는 거였다. 받아들여 줄 수 없다면 차라리 경멸하거나 화를 냈으면 했다. 하지만 리암은 그를 잘 알았다.

하나, 노엘은 어쨌든 형제로서는 리암을 아주 사랑한다.

둘, 노엘은 해결할 수 없는 골칫거리를 아예 없는 척 무시하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리고 셋, 노엘은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그가 듣고 봤던 것들을 모른척 해줄 것이다. 이건 리암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결말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높은 확률로 그가 맞닥뜨리게 될 미래이기도 했다. 

어떻게 사랑에 목이 졸려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그렇게 묻거든 리암은 뭐, 고개를 들어 나와 내 다정한 형을 보라고 말해줄 것이다. 그러면 그의 형제애라는 사랑이 연인을 갈구하는 동생의 목숨을 아주 건조하게 말려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물기는 찬바람보단 따뜻한 바람에 더 빨리 마르고 사랑하는 마음 역시 그와 비슷했다. 노엘이 동생을 향해 쏟아부을 가족으로서의 사랑이 아주 따뜻할 것임은 예언할 필요도 없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 따뜻하고 건조한 온풍 속에 리암은 이 말도 안되는 연정을 버석버석 말려 부숴버려야만 한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고통 속에 끙끙 앓던 리암이 선택한 진통제는 술도, 약도, 담배도 아닌 잠이었다.

***

노엘은 최근들어 기분이 아주 언짢았다. 리암이 이상하다. 그러니까 어떤 방향의 이상함이냐면… 이게 참 묘하다. 그의 하나뿐인 동생이 답잖게 방 안에서 두문불출한 것이 벌써 달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에 스케쥴은 다닌다. 문제는 그 외의 시간이었다. 녀석은 일정이 있을 적에는 평소처럼 나다니다, 일이 끝나기만 하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자기 방에 처박혀 잠을 잤다. 그 좋아하던 술도 약도 파티도 죄 내팽개치고 한다는 일이 낮잠이며 늦잠이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처음엔 낮잠이 잦다 싶은 정도였는데 어느새 일이 이렇게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 방송국이나 페스티벌 대기실에서도 짬이 되면 눈을 붙인다. 

내내 잠만 자는 녀석의 모습에 덩달아 위화감을 느낀 겜과 앤디가 대체 무슨 일이냐며 은근히 물어왔지만, 노엘이라고 그걸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은 리암이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병원을 한 번 데려가는 게 좋겠다 따위의 미적지근한 결론만 남기고 대화는 끝이 났다. 미적지근하되 상식 선에서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리암은 병원엘 가보자는 노엘의 조심스런 제안에 칼같은 거절을 돌려줬지만, 노엘은 여차하면 쟬 때려눕혀서라도 의사에게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가 동생을 사랑하는 방식은 때때로 난폭한 성격을 띄곤 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동생이 저런 모양인데 그걸 모른체하고 혼자 파티에 나다닐 수도 없고. 사실 쟤가 없으니 술도 약도 파티도 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최근 이 주일 가량은 노엘도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줄었다.

한숨을 푹 쉬던 노엘의 등 뒤로 인기척이 난 건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나절 즈음이었다. 이 넓은 집안에 들인 게 리암 뿐이니 돌아보지 않아도 발소리의 주인은 뻔하다. 노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새 맥주 캔을 까며 퉁명스런 목소리를 냈다.

"버얼써 일어났냐?"

"어어…. 나도 맥주."

"너 자기 전에도 빈 속이었잖아. 밥부터 먹어, 등신아."

"잔소리꾼. 우우."

까칠한 것은 딱 목소리까지고 움직이는 손은 퍽 다정하다. 노엘이 안주로 먹으려다 관둔 팬케이크를 옆에 앉은 리암에게 슥 밀어주며 몸을 일으켰다. 맥주는 못 줘도 밀크티는 타 줄 수 있으니까. 나도 낯설고 쟤도 낯설겠지만 기왕 친절한 거 조금 더 친절해 볼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샐러드도 챙겨와서 먹이고. 리암은 요즘 안 먹고 잠만 자느라 살이 많이 내렸다. 그래도 덩치는 봐줄 만하던 애새끼가 아주 반쪽이었다.

"어디 가?"

"알아서 뭐하게. 그거 얼른 먹기나 해라. 데워주랴?"

"어제는 나 먹는 거 옆에서 봐줬잖아."

"뭔 소리야. 꿈꿨냐?"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 다 커서 그딴 낯간지런 짓을? 저게 내리 잠만 자더니 별 괴상한 꿈을 다 꾸는군, 티백을 우리고 고기를 왕창 때려넣은 샐러드 한 사발을 재빨리 챙긴 노엘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았다. 부엌 뒤켠으로 거실 카우치에 앉은 리암이 보인다. 팬케이크 조각을 입에 문 동생은 못 먹을 것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팬케이크가 그새 상했나?

"상했으면 뱉어, 인마. 억지로 쑤셔넣지 말고."

"아냐, 괜찮아. 그……, 맛 괜찮아."

"근데 얼굴은 왜 맨유 티셔츠 씹은 표정이냐?"

아무래도 쟤가 잠이 덜 깬 게 분명하다. 노엘은 낄낄 웃으며 리암 앞에 샐러드와 밀크티를 내려놓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푹신한 카우치는 한 사람 몫의 무게가 더 더해져 아래로 좀 더 가라앉아 있었고, 노엘은 어째선지 앉은 자리가 좀 전보다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TV에서 10년 전 찍은 오아시스 스페셜 다큐멘터리가 나오기 전까지 아주 잠깐동안만.

세상에 금요일 저녁 TV에 왜 저런 걸 내보낸단 말인가? 십 년 묵은 흑역사의 적나라한 기록을 맨 눈으로 목도할 자신이 없었던 노엘은 진저리를 치며 채널을 돌리려 했지만 대뜸 뻗어진 동생놈의 손이 그걸 막았다. 놈은 자기애의 화신이니 뭐 저게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치만…. 그치만, 그래도 그렇지?

"야, 야 씨발, 채널 돌리지? 혜안이 있는 엉아가 장담하는데 저건 진짜 밥먹으면서 볼 게 아니다."

"왜? 우리 저때 그런대로 귀여웠는데."

"우웩."

결국엔 리모컨과 채널을 사수해낸 리암이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TV화면을 바라본다. 데뷔 초, 진짜 어릴 때 얼굴들이 화면에 줄줄이 등장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이건 역사의 한 순간이야! 신난 애새끼버전-노엘-갤러거가 무대 위에서 저딴 소리를 막 질러댄다. 그걸 지켜보던 열 살 더 먹은 어른 노엘은 진절머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거든. 그거 아니거든. 근데 여기서 제일 소름끼치는 건 저 화면을 뭐 고양이 새끼 보듯 헤벌쭉 웃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리암 갤러거였다.

"삼 초 안에 채널 안 돌리면 크리켓 채 가져온다, 새끼야."

"아 진짜 왜! 옛날 생각도 나고 좋잖아."

"삼, 이…,"

"이새끼 순 독재자야!"

결국 크리켓 채에 굴복한 리암 갤러거가 채널을 돌리는 걸로 평화를 되찾긴 했지만, 녀석은 영 불만이 가시진 않는지 아랫입술이 불퉁 튀어나와 있었다. 리암의 저런 표정을 볼 적이면 대개는 노엘이 져주곤 했지만 그래도 이번엔 영 아니다. 십 년 전의 내 흑역사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동생이라니. 존나 말도 안 될 일이지.

어쨌거나 채널은 휙휙 돌아 맨시티 경기를 재방송해주는 곳에 안착했고, 내내 투덜거리던 리암도 저기에는 별 불만이 없었는지 금방 입을 다물고 TV에 시선을 처박았다. 경기가 한창인 동안 두 형제 사이에는 이렇다 할 대화가 없었고 집 안은 평화로웠다. 비슷한 자세로 카우치에 늘어진 두 형제의 머릿속에 각각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만….

***

"씨발, 내가 볼 때 저 심판 분명 뇌물 받아먹었……, 야, 너 또 자냐?"

경기가 끝나고 짤막한 소감을 떠들며 옆을 돌아본 노엘은, 웬 걸 또 눈을 감고 꾸벅꾸벅 넘어가는 중인 그의 동생을 보고 웃었다. 기가 막혀서 웃는 웃음이었다. 아니 암만 배부르고 술 들어가면 졸린다지만 이새끼 이 전에 열 몇 시간을 내리 자다 오지 않았냐고. 뭐 그 덕분인지 어쨌는지 리암도 노엘이 말을 걸자 다시 눈을 뜨긴 했다. 잠기운이 가시기 시작하는 얼굴에 불만이 슬그머니 차오르는 걸 보니 저대로 푹 잠들 생각이었던 것 같긴 했지만.

"…어차피 슬슬 잘 시간인데 뭐."

"네가 씨발 언제부터 열 시에 잤다고?"

"바르게 살아도 지랄이야, 너는."

"바른 생활이고 자시고 새끼야. 이참에 확실히 얘기나 하자. 너 해도해도 너무 잔다니까?"

하여간에 이번엔 노엘도 할 말이 많았다. 하나뿐인 동생이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잠만 자는 최근 꼬라지에 내내 얹힌 것처럼 속이 답답했으니, 이만하면 참기도 오래 참은 셈이다. 난 씨발 쟤 저러는 통에 밤잠도 설쳤는데! 노엘은 오늘 제대로 얘기를 해서 이 새낄 병원이든 어디든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말은 걸게 했어도 결국은 쟤가 걱정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노엘의 바로 지척에 앉은 리암이 그걸 느끼지 못 할 리가 없었다. 제법 거친 잔소리에도 목소리 올리지 않고 얌전히 대꾸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아니 뭐…, 그래도 일에 지, 지중…(지장 이새끼야) 지장은 안 주잖아. 그냥 춘곤증인가 뭔가 그건가 보지."

"지장은 모르는데 어떻게 춘곤증을 아냐? 아니 하여간에 새꺄, 너 조만간 나랑 병원을 가자. 가서 검사 한바퀴 싹 돌려야겠다."

"나 아픈데 없어!"

"건강한 새끼가 잠을 씨발 그렇게 자? 헐 씨발, 너 이새끼 약 존나 하다 몸 어디 삑난 거 아니고?"

"아 씨, 진짜라니까? 아파서 그렇게 자는 게 아니라…,"

병원 얘기에 반색하고 대거리를 하던 리암이 이유를 설명할 즈음 가서는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 어디 변명이나 해봐라 하고 그 꼴을 지켜보던 노엘이 눈썹 한 쪽을 스윽 올린 것도 그것과 거의 같은 때였다. 

동생의 어물어물한 표정을 본 노엘은 생각한다. 저새끼 저건 지가 이유를 아는 표정인데. 근데 왜 대답을 못하냐? 지금 이 엉아 앞에서 거짓말을 씨부리겠다고? 리암 갤러거, 저 놈이 세상 다른 놈들 다 속여도 노엘 갤러거를 속인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노엘은 그의 다섯 살 많은 친형으로서 그의 생애 첫 거짓말을 목격한 증인이자 배심원이기도 했으니까. 저새끼 머리 굴리는 건 빤히 다 보인다 이거다.

"대답, 리암 갤러거."

"그… 씨발, 자꾸 고문관처럼 굴지 좀 마."

"네가 자꾸 뭘 숨기는 티를 내니까 그런 거 아냐, 인마."

이유를 알면 빨리 털어놓고 해결할 방법을 좀 찾아보자고, 엉? 그렇게 투덜대는 말에는 성질이 왕창 묻어있었지만, 막상 바닥을 파보면 진득한 애정이 모든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된다. 너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어떻게든 해보자는 소리 아닌가. 

아픈 것 같은 동생을 앞에 둔 노엘 갤러거는 지독할 정도로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리암의 눈에 비친 그는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리암은 그가 뭐든 그럴 듯한 이유를 듣지 않으면 이 대화를 끝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그 성질머리랄지 끈질김을 기십 년간 체득해온 동생 갤러거는 그래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사실을 털어놓기로 한다.

"자면, 꿈을 꾸는데."

"꾸는데."

노엘이 말꼬리를 받는다. 리암은 어릴 때부터 저게 진짜 뒤지게 무서웠다.

"꿈 내용이 자꾸 이어진단 말야. 그게 재밌어서…."

그 말을 하며 리암은 힐끔, 눈만 들어 노엘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기가 차다는 얼굴이다. 하여간에 하던 말은 마저 해보라는 듯 노엘이 손을 까닥였다.

"그래서 보던 거 계속 보려고 억지로 자는 거야. 딴 이유 없어. 진짜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수면제 먹는 것도 아니고……."

"……."

노엘은 이제 기가 차다 못해 머리가 아픈 모양인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고 있었다. 곧잘 하던 욕도 한마디 안 나오는 걸 보니 말문이 턱 막힌 모양이다. 청산유수같은 말들을 쏟아내던 입이 틀어막힌 게 신기하긴 한데 사실 이번엔 그럴 만했지 싶다. 리암은 가만히 노엘의 눈치를 보다 빈 컵에 물을 따라 노엘에게 슬그머니 내밀었고, 노엘은 그걸 단숨에 목구멍에 쏟아부은 뒤에도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 오 분이 더 지나서야 말문을 텄다.

"그래서, 계속 이럴 거라고?"

"줄여는 볼게. 근데 그럼, 나…."


또, 말 끝을 우물거리던 리암이 슬쩍 노엘의 눈치를 본다. 생전 안 보던 눈치를 오늘 다 볼 셈인지 좀 전부터 곁눈질이 잦았다.


"뭘 자꾸 말을 하다 말고 그래. 너 뭐?"

"나 형네 집에 좀 더 있으면 안 돼? 요즘 너무 잤더니 혼자선 잠 줄이기 힘들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리암을 향해 노엘은 아주 흔쾌히 그래라 대답했다. 몇 번씩 본 눈치가 무색해지도록 시원한 허락이었다. 그래 사실 이럴 줄 몰랐다고 하면 그게 거짓말이겠지만, 그리고 저 무조건적인 호의가 기쁘긴 하지만 리암은 원하는 바를 이루고서도 가슴 한 켠이 더부룩했다. 심장께가 시큰시큰 찌르는 듯 아린 듯 서늘해지는 이걸 뭐라고 하던가, 흔히 죄책감이라고들 부르던데.

언젠가 인터뷰에서 노엘이 그랬다. 난 리암을 너무 사랑하도록 길러져서, 걔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내버려두게 돼. 리암은 이번에도 자기 자신을 인질로 잡아 노엘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 거다. 우스울 정도로 쉬웠다.

노엘은 여기서 네 상태가 좋아질 것 같으면 얼마든지 있다 가도 좋다고 말했다. 리암은 너스레 섞인 말투로 형 소름끼치게 너무 친절한 거 아니냐는 둥 장난을 쳐댔으나, 속으로는 자꾸만 영 다른 생각을 한다. 사실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진 않을 거야. 널 씨발 지척에 두고 만지지도, 입맞추지도 못하는데 당연히 나빠질 수밖에 없지.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그의 고통에는 일 할의 인내와 구 할의 끔찍한 욕정이 섞여있었다. 이 시커멓고 끔찍한 몰골의 심장은 점점 부피가 커져 이젠 숨겨두기도 버거웠고, 리암은 날이 갈수록 노엘에게 이것들을 죄 들키고 싶어진다. 그리고 눈을 감을 적마다 이 모든걸 들켜도 아무 죄책감 느낄 필요 없는 세상을 꿈꿨다. 

***

그리고 리암은 노엘 갤러거의 집에서 근 이주일을 더 보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증상은 전혀 나아진 구석이 없었다. 노엘은 최선을 다해 리암을 제 시간에 깨우려 애썼지만, 눈뜨는 시간만 규칙적으로 변했다 뿐이지 잠들어있는 시간 자체는 더 늘어난 상태였다. 리암은 틈만 나면 습관적으로 눈을 감았고 노엘도 24시간 내내 그를 지켜볼 수야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긴 했다.

노엘은 얘가 혹시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어서 이러나 싶은 마음에 리암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잠들기 전에 머리맡을 지키는 건 둘 모두에게 퍽 낯간지런 짓이라, 리암이 푹 곯아떨어졌을 시간을 골라서 녀석의 머리맡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얘한테 뭐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다면 꿈결에라도 뭔가 털어놓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속셈이 없지는 않았다. 만약 리암을 괴롭히는 무언가가 사람이라면 노엘은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새끼를 없애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별일이었다. 푹 잠든 녀석은 힘든 티를 내기는 커녕 별안간 정신나간 놈처럼 실실 웃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짜 헤벌쭉이라는 단어의 화신이라도 된 것 같은 미소였다. 잠든 리암은 근래 본 것 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상한 일이었다. 꾸는 꿈이 재밌다더니, 대체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악몽을 꾸는 것보단 나은 게 맞는데 참 이상하게도 기분이 개운치가 않았다. 그 찝찝함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한참을 인상만 쓰고 앉아있긴 했지만…. 

그 날 노엘은 한참동안 리암의 머리맡에 앉아있다가, 아침 해가 밝아오는 하늘을 볼 즈음에야 자리를 떴다.

***

하여간에 시간은 흘러 런던답잖게 날이 맑게 개인 어느날 오전, 간만에 인터뷰가 있어 멤버들이 모두 스튜디오에 모였다. 매번 정오를 넘겨 일어나던 리암은 늦은 아침 잡힌 일정에 거의 눈을 감은 채 스튜디오에 출근했고, 노엘은 그런 동생새끼를 꽉 붙들어 어디 가로수나 전봇대에 머리를 처박는 사진이 찍히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락스타의 추태를 원하는 씨발놈의 파파라치들은 사방에 숨쉬듯 산재했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도 넷을 봤고 덕분에 노엘은 아침나절부터 기운이 쫙 빠진 채였다. 간신히 정시를 맞춰 스튜디오에 도착했더니 갤러거 형제가 쌍으로 비실비실하다며 겜이 엄청 웃었다.

인터뷰는 늘 그렇듯 다소 산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기운이 쪽 빠진 노엘 대신 겜과 앤디가 말을 좀 더 많이 하게 됐다는 거였다. 리암은… 꾸물꾸물 몰려오는 잠을 견디는 것만 해도 버거운지 유난히 말수가 적었지만, 그 버텨보려는 노력이 가상해서인지 야단을 듣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인터뷰 중간 쉬는시간에 노엘이 에스프레소 투 샷을 동생의 입에 냅다 들이붓는 소동이 있긴 했는데, 놀랍게도 별 효과는 없었다. 그 꼴을 본 노엘은 잠귀신이 붙어도 아주 지독한 새끼가 붙었다며 투덜투덜 욕을 해댔지만, 그래놓고선 인터뷰어가 리암 앞에 박수를 짝짝 치자 험악한 얼굴로 그 짓을 관두게 했다. 쟤가 하고싶은대로 하게 놔둬, 뭐 시키지 마. 우리랑 인터뷰하려면 그건 지켜야 돼. 꾸벅꾸벅 졸던 리암이 그 말을 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본인만 알 일이었다.

다소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점심즈음이 될 무렵 끝이 났는데, 간만에 만났으니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 그럼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말한 사람은 앤디, 멀리 가기 귀찮으니 배달 주문을 하자고 말한 건 겜, 그럼 메뉴는 좋을대로 하라며 카드를 꺼낸 부엉이가 노엘이었다. 리암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일찌감치 카우치에 처박혀 골골 잠에 빠져있었고….

"리암은 아직도 그래?"

"보면 모르겠냐. 저새끼 근데 내가 병원 가자니까 한다는 소리가 글쎄…,"

"왜?"

"그, 씨발…… 아냐. 하여간에 좀 더 지켜보다 나아지는 거 없으면 그냥 병원 데려가버릴 거다. 잘 때 들어옮기면 지가 뭘 어쩔건데?"

"너 리암 들 수 있어?"

가만히 노엘이 하는 말을 듣던 겜이 깔깔 웃으며 노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 근데 이게, 부엉이가 슬그머니 빡칠 즈음 키다리 베이시스트도 슬그머니 이 대화에 낀다.

"힘들지 않을까요? 옮기다 떨어트리면 그땐 잠이 문제가 아닐텐데."

우리 프론트맨 허리…. 앤디 벨은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섬뜩해졌는지 한참동안 제 허리를 문질러댔다. 노엘이 당장 이 두 녀석을 쪼아버리지 않는 건 이 대화의 목적이 이쪽을 놀리려는 게 아님을 아는 덕분이다.

"너넨 사람 달래려거든 차라리 돈을 줘라."

"헉, 나도 방금 그 생각 했는데."

겜이 너 이제 독심술도 하냐며 농담을 하는 동안(네가 연습 한 시간 더 시켰을 때 했던 생각 진심 아니었어. 진짜야!) 앤디는 진짜 주머니에서 5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냈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싶어 둬보니 진짜 그걸 이쪽 주머니에 꽂아주는데…, 위로금으로 삼기엔 금액이 좀 모자라거든. 하지만 노엘의 그 진심 70% 농담 30%섞인 말은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때마침 주문한 음식을 가져온 배달부가 문을 쿵쿵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구석에 서서 시시덕거리던 세 명의 락스타가 우르르 스튜디오 입구로 움직였다.

"벌써 와? 어딜 시켰길래?"

"바로 요 옆에 인도 음식점. 근데 진짜 빨리 오긴 했다."

"딱히 카레 먹기 이른 시간도 아닌데 말이야…. 나 가서 저새끼 깨울테니까 계산은 이걸로 해줘라."

겜에게 카드를 내민 노엘이 후다닥 걸어 리암이 뻗어있는 카우치로 향했다. 녀석은 밥이 왔는지 오다 엎어졌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깊게 잠든 채였다. 그 잠깐 새 저렇게 푹 잠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예의 그 재밌는 꿈이라도 꾸는 모양인지 표정도 잔뜩 풀어진 채로 따끈한 햇빛 이불을 덮고 있는 게, 사실 깨우기 미안할 정도로 포근해 보이긴 했지만 노엘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 새끼 어제오늘도 왕창 자고 일어났으니까….

야 이 새끼야, 그만 자고 일어나서 밥 처먹어. 동생의 어깨를 다정하게 잡아 흔들며 마찬가지로 다정한 말을 속삭이자 녀석이 느즈막히 눈을 떴다. 좀 전까지 실실 웃고있던 얼굴이 조금 불만스럽게 일그러지긴 했지만 요상하게도 마땅히 돌아와야 할 욕지거리가 없었다. 대신 멍청하게 눈을 몇 번 더 깜빡이더니 살살 깨워, 루이스, 그딴 소리를 하다 화들짝 놀라 노엘, 노엘 하며 말을 고치고 앉았을 뿐이다. 누가 봐도 잠 덜 깬 사람 모습이라 노엘은 낄낄 웃으며 리암을 손가락질했다.

"루이스는 누구야, 너 형아 놔두고 다른 놈 만나냐?"

속상하다 새끼야. 형 갤러거는 장난기 다분히 섞인 표정으로 리암을 놀려먹었지만, 곧 음식 더미를 든 앤디와 겜이 좀 도와달라고 소리를 치는 통에 대답을 들을 겨를도 없이 현관으로 나가야 했다. 카우치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리암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린 자기 얼굴을 더듬다가 노엘이 이 꼴을 못 봐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는 그 날, 눈꼬리에 조금 매달린 눈물의 이유를 점심으로 먹은 매운 카레 탓으로 돌렸다. 그 꼴을 본 노엘은 뭐 먹지도 못 할 매운 걸 골랐냐는 타박과 함께 후다닥 스튜디오 근처 카페로 가 차가운 밀크티를 사다줬고… 리암은 자기 속도 모른 채 마냥 화창한 하늘이 아주 좆같다는 생각을 했다. 런던이면 씨발 런던답게 먹구름에 비나 죽죽 내리란 말이야….


***


노엘이 그의 남동생에게 확실히 문제가 생겼다는 걸 확신한 건, 잠든 동생의 머리맡을 지켰던 날로부터 며칠이 더 지난 정오즈음 되는 때였다. 식사 준비를 위해 부엌에 있던 노엘은 어느 순간 홀연히 나타나 식탁에 앉아있던 그의 동생을 발견했고, 무심한 표정으로 잘 잤냐고 물었다. 그러자 리암은 마치 꿈 꾸던 간밤의 그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응, 제임스' 하고 대답했는데…, 제임스, 그래 그런 소리를 하더라는 거다.

걔는 그래놓고도 자기가 뭘 잘못 말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제이, 왜그래? 아직 화났어? 굳은 노엘을 보며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헛나온 소리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노엘의 이름글자 그 어디에도 제임스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의 친동생은 이쪽을 바라보며 굉장히 사랑스러운 것 보는 듯한 표정으로 자꾸만 그 낯선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노엘은 덜컥 겁이 났다. 스튜디오에서 스치듯 있었던 일이 왜 지금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쪽을 쳐다보며 루이스라고 부르던 녀석의 그…, 무서운 기시감이다. 쟤의 어딘가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이 노엘의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하지만 노엘은 그의 형이었다. 쟤한테 문제가 생겼다면 이쪽은 기꺼이 그걸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고, 거기에 등떠밀린 노엘은 벌벌 떨리는 손을 탁자 아래로 숨긴 채 입을 열었다. 책임이니 뭐니 해도 당황한 채로는 별 대단한 말을 할 수 없었지만 하여간에 뭔가를 말하긴 해야했다. 최소한 이 소름끼치는 공기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너 왜그래, 씨발. 왜 날 그렇게 부르냐?'

말은 다소 험했지만 리암의 어깨를 붙든 노엘의 손길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리암은 그런 노엘을 덩달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한참을 눈만 깜박였고, 그러는 동안 그의 어깨를 쥔 노엘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누가 봐도 잔뜩 겁먹은 표정인데 노엘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제임스가 누구냐고, 이 개새끼야.'

'….'

'너 왜 이래, 씨발놈아. 응? 왜 이래?'

'…….'

'씨발아, 나 진짜 무섭단 말야….'

그 즈음 해서 리암은 완전히 잠이 깬 표정이었다. 그의 입가에 걸려있던 환한 미소도 간 데 없이 사라졌는데, 웃음기가 가신 그의 표정은 언뜻 보기에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사람의 그것을 닮아있었다. 그는 그 상태로 어깨 위에 올라온 노엘의 손을 겹쳐잡은 뒤 몇 차례 더 입을 어물거리고서야 대답을 했다.

'…미안, 형. 나 잠이 덜 깨서 그랬어.'

겁줘서 미안해, 노엘. 네 이름 노엘인 거 알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는 리암을 바라보며 노엘은 눈을 감은 채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고, 그대로 꾹 닫힌 입은 그 날 내내 열리는 일이 없었다. 노엘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리암을 대하게 된 건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난 뒤부터였는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너 뭐하냐?"

"어어."

"뭐하냐고 물어봤는데 무슨 어야, 어는."

때는 리암 갤러거가 머무른 지 이주일하고도 닷새가 더 지난 날의 낮,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거실로 나온 노엘은 웬일로 눈을 뜬 채 뭔가를 하고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그래 안 자고 깨 있는 건 좋은 일인데…. 이새끼 진짜 뭐하냐? 리암의 뒤편에 서서 녀석이 하는 양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봤지만 노엘은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감조차 안 잡혔다.

리암 갤러거는 과자를 꺼내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걸 먹는 건 아니고 진짜 꺼내만 놨다. 무슨 초코 발린 비스켓 같은 걸 한봉지 뜯어다가, 그 내용물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개 꺼내 테이블 위에 나란히 붙여놓은 거다. 그리곤 그걸 진짜 존나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는데 빈말로도 저게 멀쩡한 꼬라지라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아니 씨발, 밤에 잘 때는 그렇게 행복하게 웃더니 이제는 또 저렇게까지 어두침침한 낯이 될 일이란 말인가? 것도 초코 비스킷을 보고? 그 모습이 당혹스럽기 짝이 없던 노엘은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던 과자 하나를 낼롬 줏어먹는 것으로 이 상황을 끝내보려 했다. 아니 근데, 그랬더니 이게…,

"씨발, 뭐하는 거야!!"

이러고 소리를 치잖아. 이새끼 진짜 과자때문에 이러는 거야? 당황한 낯이 된 노엘이 잠시 눈꺼풀만 껌벅거리다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그 신경질적인 웃음 아래로는 며칠 전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안감이 짙게 깔려있었다. 요 근래 리암이 점점 모르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아끼는 거였어? 새거 사줘?"

"아 씨, 그게 아니라…. 됐어…."

"이거 점점 이상해지네."

말만 걸어도 화들짝 떨고 말야, 못마땅한 듯 혀를 차는 노엘의 옆모습을 흘끗 곁눈질한 리암이 티나지 않게 벌개진 눈가를 훔쳤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 형 말마따나 난 요즘 이상한 게 맞잖아. 스스로 생각해도 이게 정상이 아닌 건 안다. 노엘과 같이 지내는데 상황이 더 좋아질 리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나빠질 거라는 짐작을 한 적도 없었다.

요즈음 리암은 별것도 아닌 일에 자주 놀랐다. 노엘과 대화를 하다 징조도 없이 화들짝, 방 안에 혼자 누워있다가도 움찔…. 노엘에게 이런 모습을 들킬 적마다 그의 걱정이 불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 그는 자신의 막냇동생이 제게 비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서운해하는 눈치였지만 굳이 자세한 내용을 캐묻지도 않았다. 그의 어린 동생이 스스로 모든 걸 털어놓기를 기다리는 듯싶었다. 바로 며칠 전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겁먹은 표정을 짓게 만들었는데도.

하지만… 하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 순간순간,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욕망을 남에게 들키는 것 같은 기분에 계속 제 발을 저렸다는 말을 대체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들켜도 네 눈만은 가리고 싶어하는 새끼가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울음기가 목구멍을 뜨겁게 태웠다. 입 안이 바싹 말라간다. 꾸역꾸역 마른침을 삼켜 애써 목을 축여보려던 리암은, 그러나 더이상 그 불덩어리를 씹어넘길 수 없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건 이제 알겠다. 하지만 울고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 노엘이 손을 뻗어 이쪽의 뺨을 닦아준 이후의 일이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동생을 보며 노엘은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한 번 울고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입 밖으로도 적나라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그간 참고 억누르던 일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어쨌는지 안간힘을 써도 입을 닥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카우치에서 일어나려다 미끄러지듯 맨바닥에 주저앉은 리암이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눈물을 삼켜가며 고개를 든다. 눈 앞이 부옇게 흐려져 노엘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걸 그쳐야 하는데, 그쳐야 하는데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되레 속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그래 꿈으로 도망칠 적마다 차라리 다 들키고 싶다고, 다 들켜서 끝이라도 내고 싶다고 중얼거렸던 놈 역시 리암 갤러거였으니까. 리암이 눈물로 가쁜 숨을 헐덕이며 말들을 토해낸다. 열기에 시달린 목소리가 그새 푹 잠기고 갈라져 아주 끔찍했다. 형은, 너는…,

"내가 무슨, 무슨 꿈 꾸는지 왜 한번도 안 물어봐?"

울음을 누르느라 입꼬리가 경련하듯 아래로 일그러지는 동생을 보며 노엘은 가만히 카우치에 앉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리암과 불과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그래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묻는 목소리는 또 얼마나 다정한지. 꾸역꾸역 울음을 삼키던 리암은 저 말을 듣자마자 심한 헛구역질을 해댔다. 먹은 게 없어 나오는 건 질질 늘어지는 침밖에 없었지만 리암은 알고있었다. 이건 속에 내내 가둬뒀던 말들이 기어나오려는 신호다.

하지만 리암은 이게 노엘이 들어선 안 될 말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았다. 그는 친형제를 사랑할 정도로 미쳐있었지만, 그걸 상대방에게 말해선 안된다는 걸 알 만큼은 제정신이었으니까. 그래서 리암은 참았다. 온 힘을 다 해 참으며, 이젠 목구멍이 아니라 혀뿌리까지 올라온 시꺼멓고 정신 나간 말들을 어떻게든 다시 집어넣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며 애를 쓴다.

하지만 담담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노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모든 노력들이 삭은 종잇조각처럼 바작바작 바스러졌다. 저 갖가지 애쓴 흔적들이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남는 것은 체념 뿐이다. 저 눈, 저 표정, 뭘 말해도 이해해 줄 것 같은 저 얼굴. 사실 리암은 그게 낯설지 않았다. 노엘은 때때로 리암 갤러거를 그렇게 바라보며 이쪽이 부리는 말도 안되는 고집들을 들어주곤 했다. 꾹 참던 말들이 기어코 목구멍 바깥으로 흘러나온 건 다 그 탓이었다. 노엘 갤러거는 그의 동생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길이 들었지만 그 어지간한 사랑에 길이 든 건 리암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다.

"꿈에 자꾸 네가 나와. 너랑 내가 나오는데…,"

"그래."

"근데 거기선 네가 내 형이 아니고, 그냥, 우린……."

울음기 잔뜩 먹은 목소리로 리암 갤러거가 털어놓는 말들은 이랬다.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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