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내 스토리와 상관없는 그냥 무도회가 보고 싶어서 썼던 글.. 아무래도 2.5 이전 시점에 쓴 글이라서 아직 총장님과 서먹한 사이라는 느낌으로(라고 썼지만 저는 홍련 와중에도 총장님이 조금 서먹해요)








널찍한 연회장 안은 사람으로 된 파도로 가득했다. 이런 날은 얼마만인지. 그동안 에오르제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문제에 엮여있다 휴식을 권유 받은 것이 며칠 전이다. 동료들과 함께 에오르제아 동맹이 새로 추진됨을 기념하는 연회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이 들어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레네를 포함해 사교장의 예절과 춤에 어두운 모험가들은 차례대로 주요 인물들의 리드를 받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슈가르드의 대표격으로 참석한 아이메리크가 레네의 첫 파트너였다. 이슈가르드의 신전기사단 총장 위치에 있는 아이메리크는 굉장한 실력과 매너를 갖추고 있어 뭇 사람들의 주시대상이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그의 파트너가 된 것 때문인지 레네는 안 그래도 많았던 관심을 더욱 받게 되었다.

 황송함도 황송함이지만 레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모험가로서 많은 일을 해냈지만, 이런 식으로 주목 받는 건 또 처음이었다. 잘못해서 발이라도 밟으면 어쩌지?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높은 하이힐에 익숙치 않았다. 하이힐 덕분에 아이메리크와 비슷한 위치에서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긴장하지 말고 힘을 빼."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녀의 굳은 표정이 읽혔는지, 아이메리크는 조곤조곤 그녀를 타일렀다.


 "턱을 조금 당기고, 어깨선을 바로 하게. 스탭은 내가 가는 대로만 따라오면 돼."


 그는 차분히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짓으로 그녀에게 춤을 추기 시작함을 알렸다. 심호흡을 하고 한 발을 디딘 레네는 자신이 무기 없이도 부드러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만큼 그는 매너가 좋았다. 왈츠의 박자가 다소 빠름에도 적절한 리드와 스텝을 맞춰주는 배려덕에, 춤에 문외한인 레네도 금세 따라 출 수 있을 정도로 느긋한 흐름이었다. 동료들의 장난 섞인 야유와 박수를 받으며 빙글빙글 연회장 안을 돌았다.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빛과 악기 연주소리가 또렷하게 느껴져, 더 즐거웠다.

 놀라움을 가득 머금은 웃음이 그녀의 얼굴을 채웠고, 입술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고맙습니다, 아이메리크."


 한창 잘나가는 인사인 그와 댄스 파트너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에, 그녀는 짧게 댄스를 마치고 손을 놓기 전 감사인사를 했다. 별말씀을. 아이메리크가 눈꺼풀을 내리깔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도 따라 웃으며 손을 놓았다. 그러나 강한 힘에, 그녀의 손은 계속 그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었다. 의아했다.


 "다른 분들과 추고 나면 마지막 몇 분은 다시 함께 출 수 있을 것 같군. 기다려주겠나?"


 아이메리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물었다. 댄스 재신청이었다.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되면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시 보지."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고, 아이메리크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멀어졌다.

 자신의 뒷통수에 들러붙던 사람들의 시선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그녀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을 보니 자기들 방식대로 춤을 추거나, 음식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슬며시 그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다행히 그녀의 춤을 뭐라 지적하는 말은 없는 듯 했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레네는 연회장의 도우미들이 서빙하는 샴페인을 한 잔 집어들어 맛을 보았다. 달짝지근하면서 청량감 있는 맛이 혀에 닿았다.


 "뭐라 하던가?"


 어느새 알피노가 다가와 그녀에게 물었다. 소년의 차림은 평소와 많이 다르지 않았지만, 연회라 조금 더 격식을 차린 차림이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추자고 했어."

 "그렇군......"


 알피노는 한참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손을 턱에 가져다대고 있는 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표시이기에, 레네는 구두 굽을 연회장에 흐르는 연주의 박자대로 두드리며 기다렸다. 연주가 다음 곡으로 넘어갈 무렵에야 소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나와 추지 않겠어? 키가 맞지 않아서 어려울지도 모르네만..."


 알피노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는 곧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상관 없어. 나야말로 춤을 잘 못 추는 쪽이지."


 그리고 소년에게 제 손을 내밀었다.


 "한 곡 하실까요, 도련님?"

 "......자네. 그리 부르지 말게."


 소년의 엷은 미소가 번졌다. 사각사각, 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연회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레네의 가슴께에도 닿지 않는군. 알피노는 그녀를 가까이서 올려다보며 새삼 놀랐다. 늘 올려 봐야하는 시선일진대, 오늘따라 깨닫게 되는 그녀의 사소한 하나하나가 눈에 박혔다. 한쪽으로 모아 늘어뜨린 검은 머리칼, 드러난 어깨와 목선, 날렵한 턱선 끝에 자리한 작은 귀, 그에 달린 옅은 노란색 깃털 악세사리, 눈부신 조명이 비치는 눈동자, 와인색 짙은 입술까지. 마지막으로 밤하늘과 같이 묘한 짙은 색의 드레스는 그녀에게 퍽 잘 어울렸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 레네가 슬며시 웃으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무슨 생각해, 알피노?"

 "자네 생각이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알피노는 스스로 놀랐다.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최대한 태연하게 레네의 얼굴을 보니 그의 말을 농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발짝 내딛는 순간, 그녀는 다시 그녀의 등에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뿔싸. 이녀석도 엄청난 주시대상이지! 레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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