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b_type.20


누군가에게 어둠은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붉게 할퀴어진 흔적을, 

회복하지 못해 굳지 못한 피를, 

치료받지 않아 그대로 남은 상처까지. 


그렇게 생존하며 살아남은 존재에게 

빛은 함부로 밝기를 올려서는 안 된다. 


빛이 드러나게 한 

상처로 각인된 존재를 

도망치지 않을 용기가 있다 하여도. 


넌 네게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지. 


"나는 나 자신을 멈출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이유를 묻게 되면 

넌 항상 같은 대답으로 답하곤 했고. 


"나는 행동이나 결정을 내리는 것에 있어 

누군가에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 


"듣기 싫었던 건 아냐.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질 때 

주변에 사람이 없었거든." 


"내가 어떤 선택을 택하건 무엇을 하건 

관심을 받았던 적 없어." 

"그래서 익숙해. 내가 스스로 내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택하는 게." 


"다만 그래서인지 더더욱 두려워."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닥쳐오는 결과들, 밀려오는 자책감, 

그것에 대한 책임까지도." 


"계속 내가 감당해야 하니까." 


"멈춰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심지어 내가 멈춰도 되는지에 대한 

말도 대답도 들어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항상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나서 

그제야 잠시 멈추고 말아." 


"나는 내가 간직한 병에 대해서 

네게 그동안 말해왔었지." 

"그래서 부탁하는 걸지도 모른다만..." 


"내가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네가 와서 막아줘." 

"그때가 언제일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렇게 대답을 끝내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꼭 그럴게라고 말하지만 

환각을 보지 못하는 내가 그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내게 들려. 


그리고 자리를 옮기려 

움직이는 의자 소리만 들릴 뿐. 



이 말을 계속 네게 해오면서도 

나도 어쩌면 불안하기도 해. 


가족이란 단어, 관계라는 단어는 

이제껏 내가 마음에 담지 않은 

단어이기에. 


 자신을 태어나게 한 사람에게마저 

관심도 사랑도 받은 적 없어. 


오히려 가족에게 느껴졌던 공포감으로 

이후 자신과 연결된 죽음을 보게 됐지. 


내가 간직한 병은 환각. 

나 자신의 죽음과 

내 주변에 사람들이 죽는 걸 보는 환각이야. 


나는 그 환각을 보게 된 지 

15년이 되어갔고 

나는 너를 만나며 그동안 

그 환각에 증상들을 모두 말해왔지. 


너는 네게서 도망치지 않았고 물론 

아무렇지 않게 나를 마주한 것도 알아. 

하지만... 


내 마음 안에서 울리는 의문이 

내 스스로 택하려던 선택이 

너에게 영향을 끼칠 뻔했던 

그 일이 너를 두렵게 해. 


상담이 끝나면 내가 어떤 걸 깨닫게 될지 몰라. 

너를 다시 마주한다면 오히려 

내가 너에게서 도망 칠지도. 


그렇지 않게 된다면 좋겠지만 

너도 이미 알겠지. 


어떤 결정을 내린 순간 

난 나를 멈출 수가 없는 사람이란걸. 



언제부턴가 너는 말이 없어졌지. 

자신에 어둠을 드러내면서도 

내겐 빛을 보여주던 너였는데 

 

넌 분명 내 앞에 있는데도 

악몽을 꾸다 일어난 것처럼 

너의 눈은 어디를 바라보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표현을 하지 못하는 나지만 

너처럼 빛을 보여줄 수 없는 나이지만 


용기를 내볼게. 

네가 있는 어둠으로 들어갈 용기를.


By Self(셀프)


Bulb_type.20 ~ 22는  

연결되는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이제 Bulb 시리즈에서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에 대한 설명이 드러날 듯 하네요. 

모든 사진에 저작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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