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듯 노트북 화면과 벽면의 시계를 번갈아보는 아이바. 1분이 지나갈수록 두 사물을 번갈아보는 속도는 더욱 빨라져간다. 이윽고 노트북 화면과 벽면의 시계가 동시에 오후 6시를 가리키는 순간, 아이바는 노트북을 소리나게 닫고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먼저 퇴근합니다!"

"에? 아이바군 벌써?!"

"오늘 화이트데이라네요"


주위의 동료들이 놀려대는 소리도 하나도 들리지않는지 후다닥 거리며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아이바. 엘리베이터를 잡으면서 퇴근종료버튼을 누르고는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몽블랑..다 팔리면 안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자신보다 앞에 가고있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고는 회사건물 밖으로 나온 아이바는 거리에 퍼져있는 수많은 인파에 잠시 멈춰 두리번거렸다. 역시 화이트데이라 그런지 잠깐 둘러봐도 줄줄이 짝지어 걸어가고 있는 커플들 뿐이다. 


'카즈도 마쳤을라나'


그런 커플들을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애인, 니노미야 카즈나리. 그저 니노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자신이 여전히 신기하기만하다. 누구와도 길게 연애하지못했던 아이바는 이미 햇수로만 2년을 니노와 연애를 하는 중이다. 화이트데이를 기념해서 처음 둘을 만나게 해줬던 디저트가게에서 몽블랑을 살 계획을 했는데 이 몽블랑이 워낙 인기가 많아 빨리 가지않으면 늘 품절이 되어있었다. 그 때문에 오늘 오전부터 외근시켜달라고 그렇게 부장님을 졸라댔는데 어떤 수를 써도 먹히지가 않더라.


"아맞아! 몽블랑!"


커플들을 넋놓고 쳐다보다가 가장 중요한 '몽블랑'이 다시 떠올랐다. 아직 꽃샘추위로 살짝 추운 날씨인데도 이마에 맺힌 땀구슬들을 닦아내고는 아이바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딸랑- 거리는 가게문 종소리와 함께 숨을 고르는 아이바. 가게주인 사쿠라이는 가게문이 부러질듯이 열어재끼는 놈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아이바임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몽블랑때문에 그렇게 뛰어온거야?"

"사,사쿠라이상. 몽,몽..블랑"

"걱정마. 아이바군꺼는 내가 챙겨놨어"

"으앗, 감사합니다 정말"


사쿠라이가 웃으며 보관하고있던 몽블랑 상자를 건네주자 아이바가 반갑게 받아들고는 상자 속 몽블랑을 열어보았다. 아주 이쁘고 먹음직스럽게 상자 안에 자리잡고있는 몽블랑을 보고서야 안도하는 아이바. 


"그날이후로는 아이바군이 우리가게를 뛰어들어오는일은 없을거라생각했는데 말이지"

"저도 그럴줄 알았는데 아니였네요. 작년 화이트데이때는 다 팔려서 못먹었었잖아요. 그때 카즈가 얼마나 아쉬워했는데요"

"그랬지. 이번에는 아주 실컷 먹을 수 있겠네."

"네, 진짜 감사해요"


사쿠라이에게 몇번이나 감사인사를 전하고 가게를 나온 아이바는 올해는 몽블랑을 손에 넣었다는 기쁨을 니노에게 전해주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액정에는 하트가 떠있었다. 예상하겠지만 니노였다. 


"앗! 니노 때마침 나도 전화할랬는데! 내가 방금 뭐를 얻었는줄.."

- 마사키, 미안해! 오늘 좀 늦어질거같아

"에? 늘 정시퇴근이였잖아."

- 오늘 클라이언트에게 넘긴 자료를 급하게 수정해달라고 다시 요청이 들어왔어. 진짜 미안해. 내가 최대한 빨리 끝내고 들어갈게!

"하지만..몽블랑도.."

- 응? 뭐라고? 아! 네! 지금갈게요! 마사키, 진짜 미안해. 얼른갈게. 사랑해!


몽블랑도 샀는걸.. 뒤늦게 휴대폰에 대고 중얼거려보지만 이미 니노의 목소리를 사라지고 없었다. 손에 들린 몽블랑 상자를 쳐다보던 아이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그런 화이트데이겠지만 아이바와 니노에게는 둘이 처음만났던 소중한 날이었다.

매일가던 디저트가게에서 늘 마지막 몽블랑을 가져갔던 아이바는 어느순간부터 그의 마지막 몽블랑을 가져가는 누군가에 의해 심히 불편해하고있었다. 사쿠라이에게 몽블랑을 팔지말라고 땡깡을 부리기도했지만 물건을 파는 주인에게 물건을 팔지말라고 주장하는건 무슨 억지인가. 그렇게 매번 마지막 몽블랑을 뺏기던 아이바는 대망의 화이트데이날 결심을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겠다고.


"또? 으아악!"


아이바의 결심과는 무관하게 텅 비어있는 쇼케이스 안. 거의 절규하며 사쿠라이에게 푸념하는 아이바를 보며 사쿠라이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쿠라이의 표정을 캐치하지못한채 마지막 몽블랑을 얻지못한 사실에 열변을 토하는 아이바. 결국, 사쿠라이가 손가락으로 아이바의 뒤를 가리키며 눈치를 주자 아이바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이바의 뒤에는 테이블에 앉아 아이바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마지막 몽블랑을 입에 넣기 직전의 니노가 몽블랑을 입에 넣지 못한채로 굳어있었다. 


"하,하.. 이거 드실래요?"


지금까지도 아이바는 니노에게 말한다. 그 날 자기가 엄청 놀랬는데 그건 마지막 몽블랑을 사간 놈 뒷담화를 하다가 니노에게 들켜서가 아니라 아이바를 향해 몽블랑을 내밀며 멋쩍게 웃어보이던 니노가 너무 예뻐서 놀랬다고.


"그렇게 의미있는 날인데"


니노의 전화를 받고 터덜터덜 먼저 집으로 돌아온 아이바가 불도 켜지않은 채 테이블에 몽블랑 상자부터 내려놓았다. 외투를 대충 벗어 의자에 걸치고는 소파에 앉는 아이바. 소파에 팔을 걸치고는 깊게 한숨을 내뱉는데 누군가가 아이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버린 아이바가 소리를 지르며 소파에서 펄쩍 뛰어올라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까 몽블랑 사러 뛰어갈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땀이 이마에 맺힌 듯하다. 너무 놀라 소리도 못지르고 어둠속에서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려 눈을 가늘게 뜨는 아이바. 그리고 불이 켜지는 동시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핫! 마사키, 놀랬어?"

"카즈?"


여전히 바닥에 붙어있는 아이바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있는 사람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늦을것같다던 니노였다. 아이바가 상황파악이 되지않아 눈만 껌뻑이자 니노가 아이바를 일으켜세웠다. 


"늦는다고하지않았어?"

"음, 사실 거짓말이였어. 마사키보다 훨씬 먼저 집에 도착해있었는걸"

"에?"

"나 몽블랑도 사왔어! 역시 마사키도 사왔구나. 사쿠라이상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하길 잘했어"


니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가보니 테이블에는 아이바가 사온 몽블랑 상자 뿐 아니라 다른 상자가 하나 더 올려져있었다. 어쩐지 자기가 올걸 미리 예상하고 몽블랑을 따로 챙겨놨다했더니 이미 사쿠라이는 니노가 가게를 다녀간걸 알고도 아이바에게 말을 하지않은 것이다. 그제야 니노가 서프라이즈를 위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걸 안 아이바는 내심 기쁘면서도 집에 오는동안 혼자 실망하고 꿍해있었던 자신이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나도 놀려줘볼까'


신이나서 떠들어대며 몽블랑과 자신이 준비한 사탕을 꺼내는 니노를 아이바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이거 진짜 맛있는 사탕이야! 라고 말해보지만 아무 반응없는 아이바에 슬쩍 눈치를 살피는 니노. 사탕봉지를 벗겨내려던 손을 멈추고는 아이바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마사키, 화났어?"

"아니, 별로."


안절부절못하는 니노의 표정을 보고있으려니 귀여워서 웃음이 터질것같은 아이바는 니노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으려 입에 손을 가져다댔다. 


"잘못했어..난 서프라이즈해주면 마사키가 기뻐하지않을까하고"

"기쁘긴한데, 난 그 잠깐동안이라도 아주 외로웠다고"

"이렇게하면 화풀어줄래?"

"글쎄, 웬만해선 풀리지않을.."


아이바는 자신의 등을 조그마한 손으로 쿡쿡 찌르며 자신을 봐달라는 니노에 웃지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리라 다짐하고 니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진짜 그 표정은 반칙이라고"


아이바가 마주한 니노는 입에는 작은 사탕을 하나 물고는 고양이같은 눈망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웃지않으려 손으로 입을 가려보았지만 이미 아이바의 입꼬리는 귀에 걸리듯 승천해있었다. 아이바의 모습에 자신도 웃음이 나온 니노가 입에 물려있던 사탕이 위태롭게 떨어지려하자 아이바의 셔츠자락을 잡고 흔들자 아이바가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고는 니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잡아 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아이바의 얼굴을 향해 뜨고있던 니노의 눈이 감기고 두 사람의 입 안 가득 달콤한 사탕이 퍼져나갔다. 자신을 놀린 벌이라고 말하는 듯 거칠면서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아이바에 니노가 그에게서 떨어지지않으려 아이바의 목에 팔을 둘렀다. 두 사람의 입술 가운데 머무르던 사탕은 아이바가 주도권을 잡았고 아이바는 사탕을 머금고 니노의 입술에서 살짝 떨어진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맛이지. 딸기맛인가?"

"포도맛 아니야?"

"그런가. 카즈가 다시 먹어봐"


그렇게 다시 한번 포개진 입술은 두 사람의 사탕 맛에 대한 의견이 일치할때까지 떨어질줄 몰랐다고 한다.


180224~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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