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로 여전히 추웠던 3월 초 어느 날.

새내기로 처음 대학교에 가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대학 합격 기념으로 샀던 봄옷을 야심차게 개시했다. 베이지색 얇은 코트였다. 학교로 향하던 길에 칼바람이 몇 번이나 나를 때렸는지. 너무 추웠다. 평소라면 속으로 후회만 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진짜 춥네. 아무렴 어때, 나는 이제 대학생이라고!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생각을 했다는 걸 자각했을 때도 그저 좋았다. 새내기가 된 기분에 제대로 취한 거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집에서 도보 가능한 거리에 있는 곳을 다녔다. 학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놀 때는 버스로 20분 걸리는 중심가나 집 근처 공원에서 노는 게 다였다. 그래서 지하철을 1시간 30분이나 타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지하철로 ‘1시간 이상 걸린다’는 말을 들으면 그 자체로 진이 빠지지만, 당시 나는 마냥 설렜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마치 참고서 1회독을 하는 사람처럼 지하철 노선도를 보기도 했다. 내방. 흑석. 샛강. 처음 보는 역들이 정말 많았다. 신기했다. 우물 안에서 나온 개구리는 어쩌면 이런 기분일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를 발견하고, 또 이젠 경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처음으로 창문 너머 한강의 윤슬을 보았을 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햇빛이 강물을 찬란하게 비추었다. 부서진 빛들이 수면 위로 사뿐히 발을 내디뎠다. 나는 홀린 듯이 출입문 쪽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 찰나에 내가 앉았던 자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민첩한 자들이 살아남는 지하철….)

어릴 때 친구 편지에 아낌없이 뿌렸던 반짝이 가루가 생각났다. 그땐 그게 제일 반짝이고 아름다운 것이었는데. 올해의 나는 무엇을 가장 아름답다고 칭하게 될까. 아마 이 풍경이 아닐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니 생각이 마구마구 불어났다. 지하철이 터널에 들어갈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이번 역은 OO역, OO역입니다.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또 기분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소속감이 들었다. 학교 정문에 도달해선 거의 입꼬리가 주체못할 정도로 올라갔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 바쁘게 정문을 통과하는 사람들, 친구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시간표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그 틈에 내가 있었다. 이방인이 아닌 학생으로. 그 사실만으로 마음이 벅찼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내가 초행길에 매우 어둡다는 점에 있었다. 그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지리를 공부할 때를 제외하곤 지도 볼 일이 전무했으니까. 학교 지도를 봐도 어째 거기가 거기 같았고, 이름이 비슷한 건물이 있어 대체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업 시작 시간보다 일찍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확실하게 가기 위해선 길을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정말 바쁘게 걸었다.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저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난 음식 주문 전화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어쩌지. 그래도 답은 하나였다. 물어보자. 비교적 여유롭게 걷고 있는 사람에게 기름칠 덜 된 로봇처럼 다가갔다. 저..어..기..요…

 

“네?”

“저기, 혹시 A관이 어딘지 아시나요? 제가 오늘 처음이라서 길을 잘 모르겠어서요….”

“저도 처음이라 잘….”

 

아. 그렇다. 나만 처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처음 학교에 오는 날이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인지했다. 그 사람은 멋쩍게 웃어보이곤 저 멀리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다시 머리를 굴렸다. 오히려 바쁘게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목적지를 아주 잘 알기에 발걸음을 빨리 옮기는 것일 테니까, 분명 길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뚜벅뚜벅 걷는 사람을 불러 세웠다. 바쁜데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정말 마음 졸이며 말을 꺼냈던 게 기억난다. 저기요…! 네? 혹시 A관 어떻게 가시는지 아시나요? 제가 오늘 처음이라서….

 

“아, 거기는 이렇게 가면 돼요.”

 

캠퍼스 지도를 짚어가며 알려주는 친절함에 긴장이 눈 녹듯이 풀렸다. 감사합니다. 연신 인사를 하며 알려준 길을 차근차근 따라갔다. 그러니 수업 건물이 나왔다. 게임 퀘스트를 깬 느낌이라 왠지 뿌듯했다. 씩씩하게 건물에 들어서니 두 번째 난관이 있었다. 그 건물은 내부 구조가 독특한 곳이라 처음엔 누구나 길을 헤매기로 유명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던 나는 5분 정도 건물을 뱅뱅 돌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강의실이 안 보이지? 또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나, 했던 찰나 누군가가 나를 콕콕 찔렀다. 학교에서 아는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던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길 찾고 계세요?”

 

한 손에 노트북 파우치를 안은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에게선 왠지 ‘여긴 내가 다 알고 있지!’라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 장소에 녹아든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가시는데요?”

 

나는 강의계획표를 뒤적이며 강의실을 말했다. 아, 거기. 저랑 같은 방향이네요. 같이 가요. 뜻밖의 동행에 놀람 반 고마움 반인 상태가 되었다. 아, 감,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내 반응에 살짝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새내기를 귀여워하는 정든내기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때 내가 말을 더듬거린 게 그렇게 웃겨보였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하기 바빴다. 얼굴에 열이 올랐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강의실에 도착하자 그 사람이 말했다. 여기예요.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히 교실에 도착해서 안심했던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니에요. 오늘 학교 첫날인가봐요.”

“네 맞아요.”

“입학? 편입?”

“입학이에요.”

“그렇구나. 길은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너무 걱정 마요.”

“네에. 감사합니다!”

“입학 축하해요. 그럼 잘 가요.”

 

그 말을 들었을 땐, 마치 마음이 보글보글 끓는 것 같았다. 재학생에게 직접 입학 축하를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감동이 두 배였다. 그 인사는 차가운 봄바람을 데우기 충분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갖고 있던 소속감을 타인에게서 확인한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멋진 선배가 바로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도 꼭 저런 선배가 되어야지!

 

돌이켜보면 그 다짐이 실현되었는진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멋진’ 선배와 거리가 멀었기에. 하지만 그동안 쌓은 경험으로 길 하나는 열심히 알려주었다. 

우리 학교는 학기 초만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학교 야구점퍼나 굿즈를 입고 온다. ‘저 재학생입니다! 혹시 모르는 게 있으시다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의 의미다. 나도 늘 거기에 합류했다. 학기 초, 조심스럽게 내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을 보면 늘 입학 첫날의 내가 떠올랐다.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안았으려나. 아직은 학교가 크고 낯설게 느껴지겠지? 그렇기에 길을 다 알려주고 나면 늘 그 말을 덧붙였다. 입학 축하드려요, 혹은 편입 축하드려요! 그때의 내게 가장 따뜻하고 소중했던 말을 나눴다. 내가 느꼈던 그때의 감정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길 바라며.

 





💡 대학 생활이 처음인 새내기를 위한 소소한 팁!

 

  • (코로나가 종식되면..!) 수업 첫날엔 학교에 좀 더 일찍 가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학교 건물도 둘러보고, 시설도 눈에 익히면 학교에 좀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길 찾기에 서툰 분들의 경우엔, 길을 헤매더라도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심적으로 좀 더 편안해지는 효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 강의계획안을 꼭 챙기세요. 의외로 OT 당일에 강의계획안이 수정되는 일이 빈번합니다. 다운로드 혹은 프린트하여 이런저런 중요한 점들을 메모해보세요. 특히, 출석 및 성적 산출 기준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니까 잘 적어두시면 좋습니다.

 

  • 학교 공지사항을 주목해보세요. 학교 공식 사이트엔 매일 수많은 공지사항이 올라오는데, 단기 아르바이트, 교환학생, 장학생 등 유익한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 제 경우엔 학교 홈피를 인터넷 기본 화면으로 설정해두었어요. 그러니 자동으로 자주 보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방법이기에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학교 커뮤니티를 미리 훑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신입생들을 위한 정보 글이 올라오기 때문이에요. 학교 지도, 강의실 줄임말 등등. 입학 전에 미리 이것저것 알아두면 학교와 좀 더 친해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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