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대인기피, ADHD, 섭식장애, 알콜의존증의 나가타 카비 작가의 에세이 만화 신간이다. 분명 저번에 더는 신간이 나오지 않겠거니 했는데 또 나왔다. 평범하게 알콜의존증 2탄이다. 삶의 실패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인 나가타 카비와 독자인 나는 즐겁지만, 순수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괴롭다.

나가타 카비의 문제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숙명이 있는 법이다. 다가오는 숙명의 크기는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에겐 넘을 수 없는 장벽인 반면, 또 누군가에게는 발에 채이는 돌멩이 수준이다. 나가타 카비는 만화를 통해 자신의 장벽을 이쁘게 꾸미고서(이쁘다고 하는 그림체는 아니지만 이 거칠기가 와닿는 부분은 분명 있다) 이러한 고통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만화를 보고 비웃거나 이맛살을 찌푸릴 것이다. 하지만 장벽을 마주해본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가타 카비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안다. 장벽을 마주하고 이것이 쉽사리 뛰어넘을 수 없단 사실을 통감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서거나 도망치지는 않는다. 작중에서는 자주 도망치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돌아온다. 계속해서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다가 회복 된 것 같다고 안심하다가 다시 아프다고 말하는 이 굴레, 수 많은 몸과 마음의 질병을 끌어안고 치유의 과정에서도 자기 자신을 부분적으로 잃었다고 느끼는 삶의 필연적 굴곡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생의 보편성을 돌아보게 한다.

나가타 카비는 "췌장이 망가지니 조금 살기 편해졌습니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택했다. 작품 내용에 맞게 풀어보자면 '췌장이 망가지는 바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삶의 형태를 바꿀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거 같다'정도가 되겠다. 내 마음대로 축약하자면 이렇다. '고통은 좋은 것입니다.'

언어도단과 같지만 다들 알고 있듯 그것이 고통의 진짜 기능이다. 고통은 그 자체로 쓸모인 악(惡)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부위를 쉬거나 치료할 수 있도록, 나아가 고통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내도록 하기 위한 신호 체계다. 나가타 카비는 자신의 질병으로 병적인 만화를 그리는듯 하지만 사실 더 없이 기본적인 원시생물의 반응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만화가 괴롭고 고통스러운 덕분에 독자는 이 선험적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삶과 문제를 재점검할 기회를 가진다. 나가타 카비의 만화가 곧 고통에 대한 신호 체계인 셈이다.

오후 5:06 2024-01-03

단편 「미궁에는 괴물이」가 네이버 ‘오늘의 문학’란에 실려 첫 고료를 받았다. 이후 여러 지면에 장르소설 단편을 게재하고 웹소설을 연재했다. 소설집 『백관의 왕이 이르니』, 웹소설 『슬기로운 문명생활』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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