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은 생각보다 무척 힘든 작업이다.


예전에 같이 글을 쓰던 사람들과 공동으로 운영할 블로그 이름을 짓기 위해 거의 일주일을 소비한 적이 있다. 일주일간 여러명이 나름의 '집단 지성'을 이용해서 만든 작명은 결국 이상한 이름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 후로 여러 다른 이유로 작명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일이 여러번 있었고, 이 작명이라는 것은 결국 참신한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름 후보군을 만든 다음 구린 이름을 지워가는 행위에 가깝다.

내가 살고 있는 빌라 주변에도 '좋은 음파 작명소' 뭐 이런 업체가 있는 걸 보면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작명에 매우 큰 의미를 두지만 실상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시골에서 김박스에 버려진 강아지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나와 동거인은 강아지 작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번 작명을 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해본 경험이 있던 나는 우선적으로 작명을 위한 조건을 정했다.


1. 젠더리스 이름

2. 구린 영어 이름(찰스, 맥스, 코디 등) 안됨

3. 한국어 이름

4. 기존에 있던 명사

5. 발음하기 쉬운 이름

6. 받침이 없던가 해서 영어로 쓰기 쉬운 이름


4번을 넣은 이유는 작명 과정을 줄이기 위함이다. 기존에 있던 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백지에서 시작하면 정말 괴랄한 이름이 리스트에 올라가다가 듣기도 좋지 않은데 억지로 이상한 의미를 넣은 말을 만들거나, 결국 기존에 있던 명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5번을 넣은 이유는 내 이름 때문이다. 내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심지어 내 부모님 조차 대충 비스무리한 발음으로 부르는데, 난 그게 너무 싫었고 이름은 무조건 부르기 쉬워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6번은 단지 내가 혹시 한국이 너무너무너무 싫어져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넣기로 했다.


그래서 나와 동거인은 위 여섯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부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채소나 과일 이름 중 찾기로 했다.

채소와 과일 이름은 특히나 젠더가 없는 이름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던 카테고리였다.


이렇게 수많은 이름이 약 사흘간 두명의 이름에서 오르내렸고, 결국은 "유자"라는 이름이 되었다.

유자라는 이름이 된 이유는, 그냥 어감이 좋아서이다. 보통 흰개 이름이면 백설기나 솜 이런 걸 많이 하는데 난 굳이 흰개라는 이유로 흰색 어떤 것의 이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유자는 흰 개라기 보다는 흰색이 대부분이지만 노란색이 섞여 있는 개 이다)


유자

Yuja

이 이름은 앞으로 나와 십여년을 함께할 강아지의 이름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부르고 나와 나의 강아지를 이어줄 단어.


그렇게 유자는 유자가 됐다.





 


평소 잘 모르다가 글을 쓰다보니 세상을 참 삐딱하게 보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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