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주제: 사랑을 주세요

*다이아몬드 에이스 미유키 카즈야 드림(?)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어릴 적 우리 옆집이었던 미유키 스틸 공장 2층엔 어린 나이부터 안경을 끼고 안경캐릭터의 본분에 충실하게 똑부러지는 꼬맹이가 살았다.


"누나, 아주머니가 도시락 놓고 갔다고 전해달래."

"오오. 땡큐."

"중학교 들어가고부터 몇 번째야. 바보야?"

"요 꼬맹이가."


건방지게 종알대면서 내가 잊고 나온 도시락을 건네주곤 하던 꼬마의 이름은 카즈야. 미유키 카즈야. 아주 어릴 땐 주로 카즈쨩이라고 불렀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미유키 군'이라고 부르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타협해서 호칭을 조금 바꿨다.


꼬맹이로.


나보단 네 살이나 어린 데다 젖먹이일 때부터 봤고 막 걸어다닐 땐 걸음마 연습도 도와줬던 사이인데 정없이 미유키 군이라니. 약간 섭섭해서 그랬던 것도 있고.


"언젠가 누나보다 클 거거든."

"네, 네. 기대하겠습니다, 꼬맹이 군."


학교에선 나도 키가 썩 큰 편은 아니었지만…라기보다 반에서 제일 작았지만 그때 카즈야는 나보다 훨씬 작았으니까 조금 우월감을 느꼈던 것도 있다. 나이 차이가 네 살이나 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 자존심이지.


"11월 되니까 날씨도 쌀쌀하다~"

"으응."


카디건을 여미면서 옆을 돌아봤다가, 초등학교 3학년 평균에 비해서도 한참 작은 카즈야의 조그만 어깨에 후드티 한 장 밖에 걸쳐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즈야, 너 외투는?"

"응? 아, 까먹었어."

"…………."


이거 분명히 미유키 아저씨가 겨울옷 꺼내놓는 거 잊어버린 거군.


미유키 아저씨는 좀 더 카즈야한테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공장 일이 바빠도 그렇지 아직 생일도 안 지나서 8살 밖에 안 된 애한테 너무 신경을 안 쓴단 말이야. 뭐 좀 무뚝뚝할 뿐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아빠라고도 생각은 못하겠어.


"으휴. 이거라도 입어."


한숨을 내쉬면서 카디건을 벗어 카즈야에게 걸쳐줬다. 이거 또 감기 걸리면 어차피 간호해야 하는 건 나니까 어쩔 수 없지.


"누나는?"

"나는 학교 가서 체육복이라도 입고 있지 뭐."


카즈야에게 억지로 카디건을 걸쳐주고, 꼬맹이가 불편한 얼굴로 팔을 꿰어넣는 것까지 확인했다.


"누나 팔 되게 짧다. 나랑 별로 차이도 안 나네. 금방 따라잡겠는데."

"하하, 명줄도 짧아지고 싶으면 계속 말해."


건방진 꼬맹이랑은 (당연하게도) 학교가 다르니까 중간에 헤어져야 한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카즈야에게 인사하고, 싸늘한 팔뚝을 양손으로 감싼 채 학교로 달려갔다.





그리고 감기는 내가 걸렸지. 빠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11월 아침 기온을 우습게 본 자 감기 바이러스 변종에게 호되게 당할 것이니….


"에취."


기침은 나오고 코는 훌쩍거리고 열은 또 나고 죽겠다. 마스크를 낀 채 열심히 기침을 하고 있으려니 카즈야가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누나 바보야?"

"하하, 카즈야는 누나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떤 응징을 당하는지 학습 능력이 없나봐."


볼을 한 번 꼬집어줬지만 손에도 영 힘이 안 들어가서 금방 관뒀다.


"누나는 중학생이니까 괜찮아. 너는 꼬맹이잖아. 아, 됐고 연로하신 누나 부축 좀 해봐."

"무거워."


인상을 찡그린카즈야의 어깨에 손을 걸친 채로 불쑥 안경 앞에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다.


"생일 축하해, 건방진 꼬맹아."

"어."


선물 내용물은 늘 그랬듯이 우리 가게(반찬 가게) 이용권. 거기에 올해 수예부에 들어서 만든 곰인형을 더했다.


"…보통 남자애한테 곰인형 같은 거 안 주지 않아? 반찬 가게 이용권은 늘 잘 쓰고 있지만. 그보다 이거 귀 삐뚤게 달렸어."

"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받아, 요 건방진 것아. 올해 첫 완성품이란 말이야."


핀잔을 주긴 했지만 기쁠 때 말이 많아진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아까도 아버지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초코 케이크랑 (포수 미트가 아닌) 글러브를 사왔단 얘길 쫑알쫑알 잘도 떠들었는걸.


"뭐어, 고마워."


안경 너머로 씩 웃는 카즈야의 머리를 한 번 눌렀다가 놔줬다.


"내일은 휴일이니까 글러브 바꾸러 가자. 같이 가줄게."

"그게 제일 의미 있는 생일 선물 같은, 아, 아파!"

"하하, 꼬맹이가 진짜. 인생을 더 의미있게 볼 수 있게 해줄까?"


뭐 본인한테 필요한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닌 선물에 케이크를 받고도 본인이 좋다니까 할 말은 없지만………역시 미유키 아저씨는 애한테 좀 더 사랑을 줘야 한다니까. 옆집 누나가 챙겨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지.


내 카디건을 돌려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카즈야에게 인사하면서(또 외투를 안 입었길래 어릴 때 입던 패딩을 줬다) 한숨을 쉬었다.






…뭐, 어릴 적 나랑 카즈야의 관계는 대략 이랬다. 내가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카즈야는 중1) 관서로 이사하게 되면서는 그마저도 못 챙겨주게 되었지만.


"카즈야는 잘 지내고 있나…."


종종 메일을 주고받곤 했지만 대개 보낸 메일에 답장할 뿐이고 그마저도 일주일 걸려 답할 때가 있는 걸 보면 썩 귀염성 있는 성격으로 자란 것 같진 않다. 이게 다 미유키 아저씨 탓이야. 그러게 애한테 사랑을 듬뿍 주고 키웠어야죠.


<이젠 누나보다 훨씬 크니까 말이야.>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건방진 면은 크게 바뀐 것 같진 않은데…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원.


얼굴이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쯤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가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나에게도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얼른 승낙하고 도쿄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누님 도쿄 감.>


카즈야에게도 메일을 보내두는 건 잊지 않고.


시간도 빠르게 흘러 도쿄로 올라가게 되던 날까지 카즈야한테서 답장 같은 건 안 왔다. 건방진 놈……야구만 하느라 메일 보낼 시간도 없다 이거지……싸가지…….


<누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구나 인정머리 없는 놈아 야구랑 평생 살아라>

<야구 독거노인>

<야구쟁이>

<야구중독자>

.

.

.


……아니 뭐 나도 유치했다곤 생각하고 있다. 이번 메일은 또 보내자마자 읽는 바람에 발신 취소가 안 돼서 이불에 구멍을 좀 냈을 뿐이지.


"끙."


<도쿄 오면 우리 학교 한 번 와>


카즈야한테서 온 답장은 간결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또 그걸 보고 머저리호구등신 같이 꾸역꾸역 고쿠분지시까지 왔단 말이야……옛정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아마 미유키 아저씨도 학교 보러 안 왔다고 생각하는데. 나 거의 미유키 카즈야 명예 부모인 거 아니냐?


약도를 보고 열심히 찾아온 세이도 고교 야구부 그라운드의 관중석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거기 끼어서 팔짱을 낀 채 연습 중인 고등학생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다들 너무 청춘이라 내 인생이 부끄러워지는 기분마저 든다. 오늘 자취방에 가게 되면 짐정리부터 미루지 말고 하자.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도쿄 온 기념으로 맥주는 마시고 싶었는데. 정리하고 마실까.


"으음."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연습이 끝난 후 펜스 근처로 다가온 포수 복장의 덩치 큰 남학생이 손으로 펜스를 퉁퉁 두드렸다.


"누나!"


누나라는 분 누구신지 무서우시겠…


…어?


"누나!"

"………………어?"


촌스러운 고글 뒤로 익숙한 꼬맹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아니 뭐 얼굴이야 어릴 때부터 떡잎이 보였고 얼마 전에 본 고교야구 잡지에서 사진도 봤으니까 알아보겠지만….


"………카즈야?!?!?!?"


덩치 언제 이렇게 커진 거야??


입을 딱 벌린 채 나보다 거의 머리 하나는 위에 있는 카즈야의 잘생겨진 얼굴을 멍하니 구경했다. 잡지엔 전신 안 실렸단 말이야!!!


"허어얼."

"언젠가 누나보다 클 거라고 했잖아."


………이렇게 죽순처럼 쑥쑥 자랄 거라곤 안 했잖아!!!! 중1 때까지만 해도 작았는데? 뭐 사랑이라도 먹고 자랐니? 마녀니? 빨간 하트 먹었니? 슈가슈가룬 카즈룬?


"진짜로 왔네. 할 일 없었어? 하하."


건방진 소릴 하는 걸 보니 카즈야인 건 확실한데. 이제 구레나룻 한 번 잡아당기는 것도 힘들 것 같은 위치에 머리가 있다니…….


"내, 내 카즈야 돌려줘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고마워?"

"……칭찬 아니거든……."


잃어버린 제 명예 남동생 좀 찾아주세요. 이케이케 조그만 애였는데요……. 초코 케이크랑 글러브에도 기뻐할 줄 아는 애였는데요………….


"으에엥……."

"에? 왜 우는 거야? 오기 싫었으면 안 왔으면 됐잖아?"


공감능력 1도 없는 소리 하는 거 봐. 이게 다 미유키 아저씨 탓이다. 미유키 아저씨를 공격한다!!!!


"그러게 애한테 사랑을 주면서 키우라니까아……."


남의 고등학교 그라운드 옆에서 대성통곡한 경험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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