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Mong




아이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드넓은 들판이었다. 푸른 나무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그런지 들판 역시 푸른빛이 막연했다. 


하늘에 수많은 별과 해와 달이 떠 있어, 잔디들은 저마다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이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삼킨 악어를 찾아다녔다는 말이 실감 났다. 저 해와 달과 별들이 함께 여럿이서 공존한다면 밤이 되어도 환하기에 낮인지 분간할 수 없을 테니까. 네버랜드 평야에서의 장관은 실로 엄청났다. 사방에서 발하는 푸른빛을 몸소 만끽한 그의 얼굴에 어느덧 미소가 그려졌다. 환한 햇살 아래, 푸르른 잔디 위에. 그렇게 서 있던 그는 평야를 휘저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현실에서 느껴왔던 잔디와 별반 차이는 없었으나, 하나는 확연히 달랐다. 이 푸른빛이, 이슬을 머금은 잔디가 그를 안락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그는 손으로 잔디를 담아내며 고개를 젖혔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을 차마 뜨고 있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입꼬리가 대신하여 햇살을 모두 맞았다. 점차 따스하게 말려 올라가면서.



“윤기, 날이 참 좋지?”


고개 너머로 햇빛을 가려오는 아이의 음영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뛸래? 날이 좋으니까 몸도 무지 가벼워, 지금.”


아이는 이전처럼 그의 손목을 연신 잡아당겼다.
 


하지만 이런 한가로움을, 그리고 이런 여유로움을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또 언제 만끽하려나 싶었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는 끈질기게 그의 옆에 달라붙지 않았다. 놀아달라고 심하게 떼를 쓰지도 않았다. 그의 끄덕임과 내저음에 웃음을 터뜨리고, 입을 비쭉 내밀 뿐이었다.


아이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가며 한참이나 평야를 달리고, 또 달렸다. 혼자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넘어져도 그를 보며 웃고, 잔디에 몸을 뒹굴면서도 그를 보며 웃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 울컥한 것이 올라왔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은데…….’



그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푸른 잔디와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그 위를 노니는 ……아이. 지운 줄만 알았던 과거의 프레임들을 하나 둘 씩 꺼내었다. 무채색의 프레임들을.
 


‘형아, 아빠! 나랑 놀자. 놀아줘! 오늘 날씨 무지 좋아!’

‘치, 싫으면 말아. 나 혼자 실컷 놀 거다! 메롱.’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아, 기억났다. 몇 살 때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어린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와 그의 가족들. 모두가 함께 즐겨 찾던 공원 들판. 그는 눈을 떠 주위를 살폈다. 

그래, 그 공원과 참으로 유사했다. 이 들판은.


그의 부모님은 늘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



‘우리 윤기는 어쩜 그렇게 씩씩해요? 엄마, 아빠한테 떼쓰지도 않고, 징징거리지도 않고 혼자 꾹 잘 참잖아. 우리 왕자님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엄마는.’



나름 저대로 아이처럼 뛰놀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모순이었다. 다 큰 어른인 척 슬프나, 즐거우나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것들을 몸으로 부딪히고 받아내려고 했던 작은 아이. 그리고,



“울지 마, 윤기.”

아이인 척 하려는 어른.



아이는 언제 다가온 것인지 그의 옆에 앉은 채, 그의 눈매를 손으로 쓸어냈다. 아이는 언제부터 흘렀는지 모를 그의 눈물들을 쓱 닦기만 하였다. 그의 등을 토닥이지도, 그를 따라 눈물을 흘려대지도 않았다. 그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이 또 물씬 안겨졌나보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물이 흘러나온 것을 보면. 윤기는 지민을 바라보았다. 말 없이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를. 

뛰어놀고, 뒹굴며 놀 땐 한없이 어려보였는데.



‘너 또한 모순이구나.’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볼을 감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어루만졌다.



“아, 윤기! 저기 보여? 저기 엄청 큰 산 있잖아. 보여?”



아이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린 그는 아이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 그제서야 창피해졌는지 머쓱해하며 헛기침을 하였다. 아이가 내민 손가락을 따라 평야 너머로 우뚝 솟아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드높았다. 구름에 가려져서일까 이상하게 꼭대기를 찾지 못하였다. 아이는 인상을 찌푸려가며 금세 산으로 모든 집중을 쏟아내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산에게 시선을 빼앗겨버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저기 보면 꼭대기가 하나도 안 보이잖아.”

“…….”

“그래서 꼭대기가 없는 산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그게 뭐냐. 작명 솜씨는 별로네, 지민이.”

“됐거든! 무튼 인어들이 그러는 거야.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고. 무지 신기하지!”

“그런 거 믿지 마. 다 너 고생시키려고 하는 허언이야.”


윤기는 아차 싶어 곧장 지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의 희망을 짓밟아버린 것은 아닐까 조심히 아이를 살폈다. 하지만, 줄곧 산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그 또한 숨을 돌렸다. 아이와의 차이점이 확연하게 보였다. 모든 만물에 의심부터 하려는 어른, 그리고 무엇이든 믿어보기로 하는 아이. 윤기는 멋쩍음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서, 너는 올라갔었어?”



윤기의 물음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지민은 한참이나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곧 개구진 얼굴로 헤실거리며 윤기를 맞았다.



“비밀!”



지민의 짓궂은 대답에 윤기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는 혹여나 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노심초사하며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얼른 말해달라니까. 올라갔어? 올라갔지? 어?”

지민의 곁에서 그를 간지럼 태우기 시작했다. 해맑은 미소를 띤 채.



“아, 아! 비밀이라니까! 하지 마, 하지 마! 으, 으 간지러워!”



해와 달과 별이 많아서 참 다행이었다. 아직 아이가 시계를 삼킨 악어를 찾지 못하여 다행이었다. 시간이 가도, 또 지나가도 날이 어두워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간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땀이 이마를 흐를 정도로, 숨이 차오를 정도로, 너무 웃어 입꼬리가 떨려올 정도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윤기였다.



“이쪽은 조금 어둡네.”

“그치, 너무 어둡지. 그래서, 윤기 올 때밖에 안 와. 여기에만 들어오면 갑자기 확 어두워져서 너무 무서워! 혼자 다니다가 잡아먹힐 것만 같다니까?”

“그러고 보니 나랑 비슷한 점이 참 많네. 나도 어두운 건 질색이거든.”



평야를 거닐다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걸어간 둘. 숱한 나무들에 가려졌는지 그들의 하늘에 해도, 별도 그리고 달도 드려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들어온 흐릿한 빛 몇 줄기와 우거진 풀숲, 나무들이 전부였다. 아이는 그의 팔을 꼭 부여잡은 채 어딘가로 계속 이끌었다. 어두운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 어둠 속에서 한 발, 한 발 떼어가는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머릿결을 매만져주며.



‘여긴 또 어딜까.’


윤기는 눈자위를 굴렸다. 이 또한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더욱 미심쩍었다.



“지금은 인어의 호수로 가고 있어! 조금 어둡지만 들어가면 더 어두울 거야. 그러니까 윤기, 내 손 꼭 잡고 따라와야 해. 알았지?”

“인어의 호수는 왜.”



그의 물음에 지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릿해진 눈매가, 옴짝달싹 못하는 그의 입 언저리가 안쓰러워 보였다. 윤기에게 밟히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내젓던 지민. 아이는 수풀 너머로 보이는 고여진 물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윤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여기는 윤기가 항상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왔던 곳이야.”



아이의 떼어진 입에 윤기는 침묵했다. 말을 내뱉는 아이가 처량스러웠다. 무슨 일인지, 활기찼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대신에 울음보를 터뜨리기 직전의 아이가 그의 앞에 섰다.
 



“윤기는 네버랜드 하면 뭐가 생각나?”

“피터팬 아닌가.”

“맞아, 피터팬.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여기에 남겨진 건 나랑 악어떼들, 그리고 인디언이 전부잖아.”

“아, 그러게…….”

“피터팬도 떠났어. 웬디가 네버랜드를 떠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터팬도 그랬거든. 웬디를 찾으러 가겠다고. 그런데, 그 뒤로 단 한 번도 네버랜드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어. 왜 못 왔게?”

“…….”

“그 사이에 피터팬이 너무 많이 자라나 버렸거든.”

“…….”

“나도 모르는 새에 어른이 된 피터팬은 네버랜드를 떠난 거야. 훌쩍 내가 모르는 세상으로.”


아이는 그의 손을 놓았다. 대신에 그 작은 손을 세게 주먹 쥐었다.



“내가 언제부터 네버랜드에 들어왔는지는 나도 잘 몰라. 그치만, 내가 처음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보인 건 윤기였어.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줬고, 같이 산책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러다가 여기에만 들어오면 또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렸어. 나를 두고. 그런데, 이상한 건 또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 더 기다리면 항상 윤기가 나를 다시 찾아왔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말야.”


윤기는 미간을 좁혔다. 몇 차례나 마주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어도 남아있는 기억, 혹은 추억 따위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 왔을 때는 눈이 퉁퉁 부어있었어. 나에게 일어났냐고 물어본 뒤에도 한참이나 울었어, 윤기는. 내 앞에서. 그때는 윤기 막 목소리도 얇고, 여기 볼에도 살 퉁퉁 붙어있고 그랬는데. 그때 얼마나 귀여웠다고! 아, 맞아. 이상하게도 그 날부터 윤기가 줄곧 나에게 한 말이 있었어.”

“…….”

“살기 싫어.”

“…….”

“죽고 싶어.”

“……!”

“너는 이대로 남아줘. 지금 이대로 이렇게 있어 줘. 더 성장하지 말아줘. 어른이 되지 말아줘, 지민아. 이랬어 나한테.”


그는 험하게 인상을 구기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굳이 살고 싶지 않아. 살아야 할 의미도 못 찾겠고. 참 이상하지, 어른이라는 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돌이킬 수만 있다면 시간을 몇 번이고 돌리고 싶어. 딱 네 또래로서라도.’



흐릿하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얕은 신음을 뱉었다. 분명 그의 목소리는 맞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목소리뿐. 대상도 말을 내뱉은 장소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의문투성이였다. 윤기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시선을 낮춰 아이를 마주했다.
 

지민아,

너는 누구니.



“이리 와, 윤기.”



아이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손을 끌었다. 수풀 너머로 발폭을 넓혀 걸은 아이는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호수 앞에 앉았다. 그 옆에 윤기를 앉히며. 숲속의 암흑은 옅었던 정도였다. 인어의 호수라 일컫는 이곳은 흑색, 먹색. 온통 어두운 색감의 물감을 쏟아부은듯 했다. 짙은 암흑이 만연했다. 아이는 맞잡은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하나씩 집어보기도, 간지럽히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무언가를 떠올리려 애를 쓰는 윤기를 위한 배려였는지도, 아니 방해였는지도.



“날 봐, 윤기.”

“…….”

“윤기가 이렇게 오래 머물렀던 적은 없었어. 그리고, 매번 인어의 호수를 찾은 건 윤기지 내가 아니었어. 오늘이 처음이야, 나는. 그래서 무서워 지금.”

“…….”

“혹시 말야. 이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윤기 …… 죽었어?”


단호한 아이의 표정,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그의 요동치는 목소리. 아이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겁을 먹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알아챈 것일까. 윤기는 실로 놀랐다. 하지만, 그 역시 어떠한 답도 아이에게 내세울 수 있는 건 없었다. 약을 많이 먹긴 했지만, 한 번도 죽어본 적은 없었으니 본인이 죽어있는지 살아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 답으로 아이를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그의 대답이었다.


아이는 한참이나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한 그 아이의 눈이 낯설었다. 왼쪽 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흘러나왔다면 그가 잘못 본 것일까.



“거짓말쟁이.”

아이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았다. 아니, 발가벗겨졌다. 분명히.



“어른이 그렇게 싫었으면 나를 조금 더 일찍 부르지 그랬어. 그게 그렇게 싫었으면 일찍 와서 나랑 계속 놀았으면 됐잖아! 왜, 왜 하필 지금……, 왜. 왜 갑자기 왜 하필 오늘이냐고. 왜! 나는 윤기를 더 보고 싶단 말이야. 왜, 왜 떠나는 거야 왜…….”



아이는 점차 울먹이더니 와락 윤기의 품에 안겨 울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끅끅거리며 숨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면서 귓가에 울음 그치라며 여러 번 속삭여주었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울음을 독촉했다. 더 거세진 울음소리.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축 늘어진 아이의 몸체가 윤기에게 느껴지자 그는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운 채 아이를 들어 올려 그의 허벅지에 앉혔다.


아이의 익숙한 말, 행동 그냥 모든 것이.



“내가 미안해.”

“…….”

참 말도 안 되지만



“살고 싶어서 그랬어. 모든 걸 끝내야 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

“울지 마, 지민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윤기……, 나 궁금한 게 있어.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윤기가 살아있다면. 지금 혹시 살아있는 거라면 말이야. 그러면, 그러면 혹시 죽을 생각이야?”



그는 아이의 물음에 시선을 내리깔았다.



‘만약에 살아있다면 나는 다시 죽으려고 할까.’



하지만, 그의 턱을 올려 드는 아이의 손길에 결국 시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앞이니 그래도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던 윤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면서, 아이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여준 그였다.



‘아직 엄마를 보지 못했으니까, 나는. …… 저 호수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나있었으면 좋겠다. 나 홀로 남겨진 세상이 아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시 살고 싶어. 처음부터.’



그리고, 그는 호수를 흘겨보았다. 어두컴컴한 호수는 그의 시선을 눈치채었는지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다. 시나브로 일렁이던 그 물결은 점차 지민과 윤기가 있는 자리 부근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거짓말하는 거 다 보여, 나는. 윤기 왜 자꾸 거짓말해. 내가 가지 말라고 막 징징거리고 화낼 줄 알았어? 나 완전 씩씩해! 그거 모르지?”

‘아빠, 난 괜찮아! 형아만 사줘도 돼. 나 아기 아니잖아. 나 징징거리지 않을 거야! 나 완전 씩씩해. 그거 몰랐지?’

“윤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윤기가 속상하면 울고, 기쁘면 웃는 거잖아. 힘들면 쉬고, 그렇지?”

‘속상하면 울고, 기쁘면 웃고, 힘들면 쉬어야지. 형 울어. 내가 옆에서 위로해줄게.’

“나는 윤기 마음만 편하다면 다 좋을 것 같아!”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기는 지민을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어린 시절의 제 모습과 너무나도 겹치는 이 아이가 너무나도 안쓰러워 보였는지, 그는 아이를 제 품에 가둔 채 눈물을 흘렸다. 조금씩 흐느끼는 윤기의 품에서 조용히 미소 짓던 지민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울음을 그치라 토닥거리지도, 소리 내지도 않은 채. 그의 허리에 감은 두 손에 힘을 쥐었다.



“아무래도 윤기가 떠나면 나도 그만 떠나야 할 것 같아. 윤기랑 같이 시간 보내면서 나도 훌쩍 큰 것 같기도 해. 그러니까, 윤기. 다시는 네버랜드에 찾아오면 안 돼, 알았지? 내가 없을 테니까 오늘만 이렇게 꼭 끌어안고 내일부터는 가족들 품에서 안겨있어야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지?”



아이는 그를 꼭 끌어안은 채, 물가 쪽으로 천천히 그를 이끌었다. 아이의 발 언저리 물이 조금씩 들어서자 고개를 들어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들었지?”



윤기는 지민의 말에 결국은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그 한 마디. 그 말을 제게 해준 것이 아이라는 게, 누구에게서도 바랄 수 없던 그 말을 아이가 제게 해주었다는 게 울컥했는지 윤기는 아이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의 상체가 위태로이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요동쳤다.



“자, 윤기. 이제 엄마 아빠 품에서 편하게 지내.”

“…….”

“호수에 발을 담그면 차가워서 벌떡 깰 거야. 그래서 매번 윤기가 떠날 때쯤에 여기를 찾아왔어. 일하러 가야 한다고 하면서.”



역시나 모든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런데, 항상 돌아오면 나를 기억하지 못했어. 그거 엄청 서러웠단 말이야 진짜.”

“…….”

“그래서 말인데 윤기! 이번에 깨어나면 말이야. 나 꼭 기억해주면 안 될까? 나는 윤기의 기억 속에서 오래 머물다 가고 싶거든. 윤기가 날 기억해준다면 또 윤기의 곁에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아!”
 


참으로 덧없는 꿈.



“보고 싶을 거야, 윤기.”

“아……,”

“……안녕.”



아이는 윤기를 있는 힘껏 호숫가로 끌어당겼다. 아이의 두 눈은 흠뻑 젖어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낯설어졌다. 정말 순간에 성장한 것일까, 의문스러웠다. 윤기의 발밑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발밑으로 서서히,



“기억할게! 지민아, 기억할게. 기억할 거야, 내가.”



그리고, 그 물은 그의 발과 금세 맞닿았다.



E-mail | hervan.bt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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