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지금 뭐라고 한 거지? 감히..신탁의 선택을 받은 이이며 제국의 주인인 짐의 반려를..제국의 희망인 황후를 그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폐..폐하..진정하세요..전 괜찮습니다..그러니 제발..”

“...스테판 남작. 계속 고하라.”


아까의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는 어디에 간 것인지 주먹을 꽉 쥐며 날카롭고 맹렬한 살기를 내뿜는 샤를을 옆에 앉아있던 주영이 말리고서야 겨우겨우 중단되었던 스테판 남작의 보고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저도 뜬금없이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이 이상해 사람을 시켜 알아봤지만, 황성 안에는 두 분이 사이가 좋으시다는 이야기만 돌뿐, 그런 소문은 추호도 없어서 근거 없는 악질적인 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그리고 공작가에서 지어낸 소문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너무나도 분명했지요. 그래서 그 소문의 근거가 어디 있냐고, 왜 이런 짓을 하려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

“하지만 공작가에서는 그 소문을 잘만 이용하면 황제폐하와 황후폐하는 물론이요, 황족들마저 끌어내릴 수 있다며..가세가 기운 저희가문에게 한 자리를 내어줄 테니 도우라고 했습니다. 안 그러면 혼약을 파기하고 이 일의 모든 책임을 저희에게 떠넘기겠다면서..그래서 소문을 황성에 퍼트리고 저희 아들을 시켜서 민가에-”


“모함, 모함입니다! 저희 아젠타인 공작가는 대를 이어가며 황실에 충성을 다한 가문입니다!”


남작의 보고가 이어지고 있던 그 순간, 지금까지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아젠타인 공작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아무리 저희가문이 스테판 남작가같은 한미한 가문과 혼약을 맺었다곤 하나 저희는 명예로운 공작가란 말입니다!”

“.....”

“저희가문은 오랜 세월동안 월프 제국의 황실을 위해 황성에 몸담으며 종사해왔습니다! 어찌 저희를 의심하십니까!”

“입 다물라, 아젠타인 공작. 그대에게 발언을 허가한 적 없다. 스테판 남작. 계속하도록.”

“폐하! 이, 이거 놔라..! 이 무슨 무엄한 짓이냐! 공작의 몸에 손을 대다니!”


샤를의 손짓에 근위병들이 와서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아젠타인 공작을 붙잡아 도로 자리에 앉혔다. 샤를이 손짓을 해 스테판 남작의 발언을 계속 진행시켰다.


“스테판 남작.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공작가의 처벌은 피할 수 없다. 허나, 아젠타인 공작. 그 말대로 그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

“혹, 이 일의 배후가 아젠타인 공작가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가 있다면 제출하도록 하라. 물론 그대들의 저택으로 가서 수색하는 방법도 있다. 무엇이든지 좋으니 증거가 있다면 제출하도록.”

“공작과 주고받은 편지가 집무실 책상 오른쪽 서랍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소문을 퍼트리고 누구를 겨냥할지에 관한 내용을 적은 서신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폐하! 모함입니다!”

“입 다물라 했을 텐데. 공작. 그대에게 발언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근위병. 입을 막아라. 그리고 지금 당장 스테판 남작가의 저택으로 가서 증거를 확보하도록.”


싸늘한 눈빛으로 발버둥치는 아젠타인 공작을 응시한 샤를이 근위병에게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이들이 재빠르게 정무관을 빠져나갔다.


**


“이것이냐?”

“예. 남작의 집무실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제국 내에 돌던 소문의 내용과 같은 것들이 적힌 편지와 소문의 대상이 적힌 서신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폐하께서도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니, 아니다. 그대로 재판관에게 전부 넘기도록 해라.”


조금 뒤. 스테판 남작가의 저택에 다녀온 근위병의 손에는 남작의 말 그대로 여러 장의 편지와 서신이 들려있었다.


내용을 확인하겠냐는 물음에 샤를은 주영을 힐끗, 쳐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분명 아까와 같은 좋지 않은 내용일 것이 뻔했다. 마음 같아서는 확인하고 싶었지만 주영을 생각해 그만두었다.

 

‘더는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절대로.’

 

주영이 상처 받을만한 일은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반려였다. 서로의 마음까지 확인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반려.


그리고 범인이 눈앞에 있다. 그런 이의 명예와 마음까지 해하려한 범인이 눈앞에 있었다는 말이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그깟 편지 따위, 이 사건의 주범인 발칙한 인간들을 처벌하고 소중한 반려가 잠든 사이에 홀로 확인해도 충분했다.

 

“과연..이리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나왔으니 공작의 범행은 확실해졌군. 어떻소, 공작. 이래도 모함인가?”

“..모함입니다! 그깟 편지와 서신 따위..충분히 위조가 가능합니다! 소신과 소신의 가문은 이 일에 무관합니다!”

“.....”

“소신은 그저 황실의 안위가 염려 되어서 좋은 방향으로 소문의 내용을 바꾸자고 했을 뿐입니다! 이 사건은 전부 스테판 남작가의 소행이란 말입니다!”

“그, 무슨! 공작 각하! 분명 이번 일이 잘 성사되어 이대대장과 재상 각하께서 직위를 박탈당하면 그 자리는 우리가 꿰찰 것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가, 감히 그런 모함을..!”

“지엄하신 황제폐하! 소신의 증언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증거로서 증명된 소신의 뜻을 부디 믿어주십시오! 분명 아젠타인 공작께서 저희에게-”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는 스테판 남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평정심을 잃고 얼굴이 붉어진 아젠타인 공작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우당탕탕- ,

 

“아젠타인 공작!”

“네, 네까짓 게..! 감히! 입 닥치지 못할까! 모함이다..! 전부 공작가를 노린 모함이란 말이다!”

“..근위병. 아젠타인 공작을 끌어내고, 무릎을 꿇려라.”

“예!”

“아무래도 공작은 잠시 입을 다무는 것이 좋겠군. 도저히 재판이 진행이 안 되니.”

 

샤를의 명에 근위병 둘이 공작의 팔을 잡아 무릎 꿇리고, 그 입을 막았다. 그리고 붉어진 뺨을 한 채 찢어진 입술을 감싸며 일어난 스테판 남작이 기침과 함께 품속에서 아젠타인 공작가와 스테판 남작가의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꺼냈다.

 

“큭..”

“괜찮은가. 스테판 남작.”

“예..소신은 괜찮습니다.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것은..”

 

가세가 기울고, 공작가의 기에 눌려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사실 스테판 남작가는 그 누구보다도 잡초처럼 살아왔던 가문이었다.


약하면 질기다. 그저 본인이 할 일을 묵묵히. 그것이 스테판 남작가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문의 수장이 가문의 안위가 걸린 일에 우물쭈물하거나 망설여서 일을 망칠 리 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 누구도 위조하거나 도용할 수 없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지장. 수장들끼리의 거래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 으읍..! 으으읍!!!”

“이건..계약서로군요. 아젠타인과 스테판의 지장이 찍혀 있네요.”

“예. 혹 일이 잘못될 것을 대비해 작성해둔 것입니다. 바로 어젯밤 아젠타인 공작가에서 증거 인멸을 위해 가장 첫 번째로 없애라고 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것을 발견하고 발버둥치는 아젠타인 공작에도 차분히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재판관에 귀족들과 샤를, 주영이 놀란 얼굴을 했다. 설마 이런 결정적인 증거가 있을 줄이야, 싶었던 것이다.

 

“아젠타인 공작가와 스테판 남작가는..”

 

아젠타인 공작가(갑)와 스테판 남작가(을)는 이 계약을 체결함으로서 스테판(을)은 아젠타인(갑)이 요구한

 

1. 여론 조작. 대상도 아젠타인에서 정한다.

2. 비밀유지 및 입단속.

3. 계약서의 유출금지.


1, 2, 3번을 등을 이행하며 그에 아젠타인(갑)은


1. 인사권.

2. 재정적인 후원.


등을 이행할 것을 엄숙히 약속한다. 일에 착오가 생길시 이 계약서는 소각하기로 하며 이 일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년, **월, **일. 아젠타인 (인), 스테판 (인)

 

계약서를 읽어 내려가던 재판관의 목소리가 그치자 정무관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여러 마디의 말보다 침묵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한 마음으로 아젠타인 공작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었고, 모두 같은 마음으로 제국과 황제를 배신한 그와 그의 가문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


“폐하! 감히 대 월프 제국의 황실에 반역을 꾀하고 해를 입히려한 저 발칙한 죄인과 그의 가문을 끌어내려 처벌하소서!”

“처벌하소서!”


평온한 표정의 샤를이 어서 죄인을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대신들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죄인은 들으라.”

“.....”

“아젠타인 공작가는 월프 제국의 황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분수에 맞지 않는 부정한 권력을 누리려한 것과,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워 황족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죄를 지었다. 또한 황후를 헛된 소문으로 공격하려했으니 그 죄가 크다.”

“.....”

“공작가의 성년이 된 남성에게는 재산몰수 및 작위 파면을 명하고 태형 오십대와 제국 추방령을 내린다. 어린아이와 여성은 작위를 파면하고 제국 추방령을 내린다.”

“.....”

“스테판 남작가는 아젠타인 공작가를 도운 바가 있으나 죄를 자백한 것을 감안하여 작위를 파면하고 평민으로 강등한다.”

“.....”

“삼년간의 자숙 후에 작위를 되찾게 될 것이며, 황성 출입을 금한다. 그리고 향후 오년간 수익의 절반을 조세로 바치며 제국에 헌신할 것을 명한다.”

“자, 잠시만..! 황제폐하!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정녕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유는 처벌이 끝난 후에 들어도 되겠지. 끌고 가라. 옥에 가두고 공작가의 모든 이들을 감옥으로 이송하라.”

“폐하! 폐-”

“그리고 스테판 남작. 그대의 가문은 삼년 자숙 후 다시 작위를 되찾거든, 영지를 잘 보살피며 다시는 그러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청렴하게 살도록. 짐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자비이니.”


뭐라 변명을 해대려는 아젠타인 공작은 냉정한 얼굴을 한 샤를로 인해 근위병들에게 입을 막힌 채로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끝까지 아젠타인 공작이 끌려가는 것을 바라보던 스테판 남작. 아니, 찰스 데인 스테판은 샤를의 자비에 감사했다.


“예,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와 숙인 고개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그를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히 지금까지의 일을 돌아보며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있으리라. 그 눈물이 참회의 눈물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알았기에 그 뒤로는 적막만이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일이 순식간에 해결된 것 같은 느낌에 조금 지친 샤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 앉아있던 주영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작게 속삭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로 수고하셨어요, 폐하.”

“..그대야말로 수고했소. 이제 다 해결되었으니 별일 없겠지..이제 더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예..”

 

그리고 그런 주영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툭, 하고 머리를 맞댄 채로 속삭이는 샤를에 주영은 붉어지는 귀를 느끼며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는 계속 평온한 일상만이 이어질 테고, 저도 그런 나날들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


“아..여름별궁이요? 별궁이라..혹 여름휴가라도 가는 건가요?”


일주일 뒤. 제법 더워진 날씨와 쨍한 햇빛, 매미소리가 가득한 야외테라스에서 얼음을 두어개 넣은 홍차에 설탕을 넣던 주영이 입가에 다가온 수저에 올려진 빙수를 받아먹으며 물었다.


“그렇지. 날도 더워졌고, 더 늦기 전에 한번쯤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음..그렇군요.”

“황성보다 규모는 작아도 바닷가에 지어진 덕분에 시원하지. 근처에서 여름을 맞아 제철과일로 만든 간식을 파는 축제도 많이 열리니, 조만간 다녀올까 했는데. 그대는 어떻지? 가고 싶나?”

“아..물론이죠. 저도 좋아요. 폐하께선..더위를 많이 타시니까 이번에 다녀오면 좋겠네요.”


자연스럽게 주영에게 내밀었던 스푼으로 빙수를 떠먹으며 고개를 끄덕인 샤를이 은근슬쩍 반말을 시도했다. 그걸 눈치 챈 주영이 아이스티를 마시며 뺨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여름별궁이 기대되는 것인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뿐만이 아닐 텐데, 율서보다는 서늘해도 여름은 여름. 게다가 월프 제국은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아주 크지.”

“아, 네..”

“특히 제국의 여름은 버티는 것 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끔찍하다는 소문까지 나있어서..듣자하니 황후도 목욕을 하루에 세 번씩이나 한다지?”

“음...”

“하하, 그럼 조만간 휴가를 떠나지. 일정을 정리해야겠군. 일정을 조율하는 대로 알려줄 테니 그대는 마음 편히 기다리시오.”

“네, 폐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샤를에 제 일과를 곁에서 지켜본 것 마냥 전부 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그새를 못 참고 보고를 받았구나 싶어서 못 말린다는 듯 웃은 주영이었다.


게다가 다시 원래의 말투로 돌아왔으니 귀엽기도 했고.


원래도 이런 면이 있었지만 마음을 주고받은 뒤로는 업무를 볼 때에도 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못 견디는구나 싶었다.


‘그나저나..이번엔 정말로 둘만 가겠군. 메리와 카인은 근신처분. 오라버니와 소피아는...여러모로 바쁠 테니까. 뭐, 좋기는 하지만..’


기뻐하는 주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샤를이 일주일 전의 재판 직후를 떠올렸다.


누명도 벗었고,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지만 어찌 보면 사건에 관여한 셈인 메리와 카인이 직접 한 달간 근신 처분을 받겠다며 청해왔던 것이다.

 

메리는 본가로, 카인은 황성안의 처소에서 자숙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뜻을 알기 때문에 샤를은 별말 없이 허락해주었다. 그 김에 카인의 일도 풀었다.


그래서 그날은 샤를이 황후궁에 늦게 들었고..지금은 둘 다 자숙 중이며 두 사람의 업무는 각각 보좌관과 카일러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또한 카일러와 소피아는 여러 가지 일로 바쁠 테지만 아직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청해 와서 그에 관해서는 황후에게도 함구해야 했다.


**

 

“응? 왜 이리 기운이 없으세요? 폐하께서 집무실에 가셔서 그러세요?”

“아니..것도 그건데 소피아가 요새 통 몸이 좋지 않나봐..며칠 전에도 피곤해보였는데 그때 아무래도 몸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는 황성에 못 올 것 같다고 했거든..걱정이 되서.”

“아..그렇군요..너무 걱정 마세요. 카일러 장군과 어울리실 정도로 건강하고 강하다고 했어요. 분명 금방 나으실 거랍니다. 이래봬도 늑대족인 걸요.”

“그렇겠지? 으음..그래, 그럴 거야. 아..근데 또 더워지네..목욕이나 하자!”

“네. 준비해드릴게요, 황후폐하.”


샤를이 밀린 보고서와 휴가 일정을 조율하러 집무실로 간 사이 주영은 소피아에게서 온 서신을 펼쳐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채고 다가온 늑대족 시녀들 중 특별히 살가운 성격을 가진 이가 주영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계속해서 속도 좋지 않고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드는 탓에 몸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는 입성을 할 수가 없겠다던 소피아의 소식에 친우가 걱정되어 한숨만 내쉬던 주영은 그 덕분에 기운을 차리고선 벌떡, 일어섰다.


그런데 샤를이 오기 전 목욕을 끝마쳤건만, 다시 더워지는 날씨에 주영이 목욕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말대로 월프 제국의 여름은 율서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더웠다. 얼른 여름별궁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주영이 가운을 걸친 채로 시원한 물이 담긴 욕조로 향했다.


“그런데, 참..제국에서는 여름을 어떻게 보내..? 우리 율서에서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과일도 먹고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시원한 얼음이 들어간 음료나 간식을 먹는데. 제국도 비슷해?”

“네. 아마 그럴 거예요. 먹는 것과 축제 같은 것들만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제국은 여름이면 여름축제가 열리고 일을 잠시 쉬거나 가족끼리 호숫가에 놀러가거나 한답니다.”

“오, 그래?”

“아시다시피 제국이 율서국보다는 전체 기온이 낮은데,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큰 탓에 여름은 정말 덥거든요. 그래서 물을 뿌리는 축제도 있고요. 황족 분들은 여름별궁에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죠.”

“맞아요. 율서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제국에선 여름은 거의 휴가철이랍니다. 황족 분들부터 백성들까지 모두가 더운 여름을 쉬면서 잘 보내는 거죠. 물론 일을 아예 안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거예요.”


시원한 목욕물에 몸을 담군 주영이 세수를 하며 좋은 향이 나는 꽃과 향유를 가지고 오는 시녀들에게 제국의 여름나기 전통에 대해 물었다. 


율서는 이러한데, 제국은 어떠냐고. 목욕물에 꽃들을 띄우면서 대답해준 시녀들에 주영이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구나..이번에 여름별궁에 가는 것도 내가 처음으로 폐하랑 함께하는 휴가니까 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이죠. 그저 폐하와 함께 잘 즐기면서 행복한 여름을 보내시면 되어요. 요새 정신 없으셨잖아요. 시원한 곳에서 놀다보면 몸도 마음도 나아질 거랍니다.”


보슬보슬한 머리카락에 물을 끼얹어 주며 여름휴가를 잘 보내시라고 충고하는 시녀들에 주영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 힘껏 부푼 마음을 느끼며 대답했다.


뜨겁고 열정적인 계절인 여름. 처음으로 둘이서만 보내는 그 소중한 나날들을 사랑하는 이와 잘 보내고 말리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응!”

 

**


“기분이 좋아보이시는 군요. 최근에 그럴 일이 없으셨던 것 같은데..소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까, 폐하?”


벌써 백장의 보고서들을 읽고, 앞으로의 일정을 기록한 일정표를 건네받으면서도 싱글벙글 미소가 떠나갈 새가 없이 웃고 있는 샤를을 향해 그녀가 휴가를 떠나고 나면 할 일이 더 많아질 보좌관 에일런이 톡 쏘는 말투로 물었다.

 

마치 지금도 근신중인 메리의 일을 대신하느라 눈 붙일 시간도 없는데 그런 제게 또 많은 일을 안겨주고서 그리 속없는 웃음이 나오는 거냐며, 그게 엄청 얄밉다는 것 같았다. 물론 악의는 없겠지만.

 

사실 열정적인 계절인 여름에 바쁘고 또 바빴던 황제가 처음으로 마음을 나눈 반려와 휴가를 떠나겠다는데, 오래 봐온 만큼 일이 많아진 것은 힘들지만 자식을 보는 것 같은 기꺼운 마음이 더 컸다.


지금은 괜한 투정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


“..하하, 그대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해. 가뜩이나 정신이 없을 텐데, 더 큰 짐을 짊어지게 한 것 같아서.”

“.....”

“하지만 황후는 제국에 온 몇 달 만에 많은 일을 겪었으니 좀 쉬게 해주고 싶어. 아직 일이 마무리되지 않기도 했으니까. 계속 황성에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안 좋은 일들을 접할 수도 있을 테니까. 짐의 말, 이해하지?”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폐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황성은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즉위하시고 처음이 아닙니까.”

“.....”

“폐하와 황후폐하께서 황족이라고 해도 제국의 일원이지요. 온 제국이 여름을 즐기며 쉬는 만큼, 두 분께서도 푹 쉬셔야합니다. 일 생각하지 마시고 쉬다 오십시오. 황성에선 계속 보이지 않게 날을 세우고 계시니 분명 피로가 누적되어 있을 겁니다. 이참에 전부 풀고 오세요.”


미안함과 안도함 같은 여러 감정들이 섞인 표정을 짓는 샤를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에일런이 든든한 얼굴로 당부했다.


“알겠다. 그렇게 할게.”


“음..다만, 기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을 넘기지 않으시면 좋겠군요.”

“응?”

“아무리 제가 유능한 보좌관이라고 해도 재상 각하와 폐하께서 전부 황성을 비운 상태에서 그 업무를 감당하기는 버겁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뜻입니다. 아시겠지요?”


그 당부에 알겠다는 듯 웃어 보인 샤를이 벌써부터 피곤한 얼굴을 하고 말을 덧붙이는 에일런에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 알았어. 그리 하도록 하지. 짐의 소중한 보좌관을 과로사 시킬 순 없으니.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꼭 휴가를 줄 테니, 그때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휴가를 보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때까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래.”

“아..폐하. 더우십니까? 냉수라도 내오라고 할까요?”

“그래.역시 여름은 여름이군. 아이스티를 내오라고 하고 그 김에 그대도 조금만 쉬다와.”

“아, 예..”


그런 와중에도 더워진 날씨에 반응하는 몸에서 열이 후끈, 올라오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신없이 음료를 준비하러 간 에일런을 미소로 배웅하던 샤를이 한쪽 턱을 괴고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황후는 제국의 여름을 좋아할까.”

 

‘내가 겪어왔던 여름을. 부디..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여름별궁 근처에서 열리는 다양한 여름축제와 제철과일로 만든 달콤한 간식거리. 바닷가에서 펑, 소리를 내며 터지는 아름다운 불꽃들.


소란스럽지만 활기를 띄는 축제와 그것을 마음껏 즐기며 어느새 훅 다가온 여름을 실감하고, 몸소 그 더위를 느끼고, 함께하는 서로를 바라보는 제국의 사람들.

 

샤를은 익숙하다면 익숙할 여름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주영이 그걸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환한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덥지 않을 것 같았다.

 

**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

정말 오랜만에 편지하는 것 같네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제국에 오며 눈물을 흘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뜨거운 여름날이네요. 율서도 꽤 덥겠죠?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귀여운 누이와 든든하신 형님과 아름다우신 빈궁마마. 그리고 어여쁘신 조카님께서도 무더운 여름날 무탈히 보내시면 좋겠어요.

제국의 여름도 만만치 않은데 덥기론 율서보다 더한것 같아요. 그래서 조만간 폐하와 휴가를 가기로 했답니다.

즐거운 축제와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다고 말해줘서 기대하는 마음이 가시질 않아요. 더군다나 폐하와 처음으로 황성을 나가 둘이서만 보내는 휴가라서 더 들뜨네요. 여름별궁이라니, 너무 즐거울 것 같아요!

아참, 율서에서는 수박도 먹고 시원한 빙과나 빙수를 먹고 계시겠죠? 어릴 때처럼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나지 않게 조심해야할 텐데요. 제국도 여름을 나는 것은 비슷해서 시원한 것을 먹고 목욕도 자주하고 부채질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율서에선 과일을 얼려먹거나 이열치열로 뜨거운 것을 먹기도 하고 보양식으로 허한 기를 채우기도 한다고 말해주었더니, 저와 함께하는 이들이 재미있다고 하면서 웃어주었답니다.

유모와 율서에서 온 이들은 다 같이 율서에서 여름에 먹던 냉면, 시원한 식혜, 수정과가 그립다며 울상을 짓곤 했지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저는 간식만큼은 제국의 것이 좋아요. 오늘도 달콤한 제철 과일과 여러 단것들을 올린 빙수와 ‘셔벗’이라고 부르는 새콤달콤한 얼음 간식을 먹었는걸요. 셔벗은 얼린 과일과 우유, 물을 얼린 것을 같이 간 것이래요.

그리고 시원한 차나 음료도 자주 마시죠. 물도 그만큼 많이 마시고요. 목욕물 온도도 낮추고 땀을 많이 흘리기에 향기로운 꽃도 많이 띄워요. 옷도 조금씩 얇은 것들로 꺼냈어요.

다음 편지부터는 제국의 꽃이나 찻잎. 책이나 책갈피 등등..제국에 있는 것을 보내드릴 게요. 제가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을 모두가 함께 느꼈으면 해서요.

폐하께서는 여름 맞이 축제에는 제철 과일로 만든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불꽃놀이를 할 수 있는 폭죽, 여름 맞이 부채나 책갈피 같은 신기한 물건도 많이 판다고 하셨는데 겪어보고 말씀 드릴게요.

더위를 가시게 하려고 서로 물을 뿌리는 날도 있다지 뭐에요! 감히 상상이 가세요? 제가 황제폐하께 물을 양동이 째로 뿌리는 장면을요...! 

불꽃놀이도, 시끌벅적한 축제도 전부 전해드릴게요.

그럼 또 편지할게요? 아마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저와 폐하는 여름휴가를 떠났겠네요. 

부디 건강 잘 챙기시고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세요.

언제나 가족을 가장 사랑하는 율서국의 이 왕자이자, 월프 제국의 황후인 주영이.

 

“..다 썼다!”

“편지인가요? 다 쓰신 거면 이리주세요. 전령에게 시켜서 율서국에 부치도록 할게요.”

“그래. 부탁해. 아마 내 생각엔 휴가 떠나기 전에는 율서에 도착할 것 같아. 아니..꼭 그러면 좋겠네.”

“네? 왜요? 특별히 전해야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다른 편지를 붙이실 때와는 다르네요..”

 

율서국에 부칠 편지를 다 쓰고 기지개를 켜는 주영에 그 뒤에서 대기하던 시녀가 주영의 손에 들린 편지를 받아 봉하고는 혹시나 봉투가 뜯어질까, 조심스럽게 봉투를 매만졌다.


그러다가 다른 편지들을 부칠 때와 달리, 조급해보이고 유난히 편지가 빨리 전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주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아, 아니..오랜만이기도 하구..여름이라 휴가를 갈 건데, 이왕이면 휴가 떠나기 전에 답장을 꼭 받았으면 해서. 휴가 중엔 편지 확인도 어렵고 답장은 더 어려울 테니까.”

 

왜인지 민망한 듯 발그레한 뺨을 긁적이며 대답한 주영에 그러냐며 웃어준 시녀가 편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군요. 그럼 서둘러 달라고 부탁해놓을게요, 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응..”

 

그리고 그런 시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주영의 표정은 왜인지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


사실, 주영이 편지가 빨리 고국에 전해지길 바란 것은 앞서 말한 그 이유들이 아닌 다른 것 때문이었다.

 

조만간 폐하와 함께 휴가를 가기로 했답니다. 즐거운 축제와 볼거리, 먹을거리들이 많다고들 말해줘서 기대하는 마음이 가시질 않아요. 더군다나 폐하와 처음으로 황성을 나가서 둘이서만 보내는 휴가라 더 들뜨네요.

 

편지의 초반에 적은 구절. 사실, 샤를과의 관계가 몇 달 사이 변했다는 것을 암시한 문장이었는데..가족들이 이 뜻을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든, 샤를에 대해 물어봐주길 바라는 의도에서 적은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도 샤를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녀에 대한 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속마음을 담은 편지들을. 마음 여린 가족들이 받을 충격과 상처를 걱정해 미처 부치지 못한 채, 혼자 간직하고 있던 문장들을 뒤늦게나마 보낼 수 있으니까.

 

솔직히 하자면 아직은 저를 어리다고만 생각할 가족들에게 먼저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래서 철저한 계획아래 적혀진 문장에 대해 거짓말로 설명하자니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자신이 가족들을 두려워하나 싶고, 이미 부부사이인 샤를을 뭐가 걸려 당당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할까..

 

아마도 그건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지만 일평생 일족끼리만 살아왔고, 전쟁 한 번 겪은 적 없는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늑대들에 대한 편견이 있을..모두들.


그들의 제국과 그녀에 대한 잣대가 곱지만은 않을 테니, 조금 더 마음을 열고나서 정식으로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저도..사랑하는 이가 상처받는 건 싫으니까.

 

‘분명..내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겠지만, 그때도 그랬듯 필사적으로 감정을 참았다가 터트려서, 정신없이 우는 와중에도 눈물을 흘리는 게 그렇게 슬프고..남이 보듬어주지 않으면 홀로 우는 것조차 그렇게 서툰 사람인 걸..


그런 사람을 더 이상 참게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펑펑 울게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내 앞에선 그 사람이 행복하게 웃고 있으면 좋겠어.


울어도 기뻐서, 행복해서 우는 것이면 좋겠어. 만약 울게 된다면 내가 눈물을 닦아줘야지.


그럼에도..웃었으면 해. 행복했으면 해. 그 사람도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나도..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샤를을 떠올리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 주영이었다. 생각에 잠길 때의 샤를이 하던 버릇을 그대로 닮아버린 것이었다.


**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황제폐하, 황후폐하. 황성은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부디 즐거운 여름휴가를 보내시길.”

 

그로부터 사흘 뒤. 황성입구에는 여름을 맞아 그에 어울리는 간소한 복장을 한 샤를과 주영이 서있었다.


두 사람 뒤로는 유모를 포함한 시녀 다섯과 친위대가 있고, 그 뒤로는 제국 내에서 가장 큰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오늘이 젊은 황제 부부가 휴가를 떠나는 날이었던 것이다.

 

“알겠다. 황성을 부탁하지. 일주일 정도만 다녀올 계획이긴 하지만 일이 생기면 전령을 시켜서 연락하도록 하고. 되도록 여름별궁을 벗어나지 않을 테니.”

“예..황성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가십시오. 정말이지..두 분 나이 때에는 이런 것들 신경 쓰지 않으시고 노는 것에만 집중하셔야 정상입니다. 어서 떠나십시오! 이러다가 아까운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겠습니다. 예?”

 

끝까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그리하면 바로 달려올 거라고 당부하는 샤를의 등을 얼마나 답답했던지 냅다 떠밀어 버린 에일런이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이 어린 황제와 그 곁에 얌전히 서있던 어린 황후. 


황제부부는 정말이지, 제국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수십 분을 더 당부의 말을 전했으리라.

 

“..알았어. 알았다고..그럼 일주일 뒤에 보도록 하고..우리는 그만 가지, 황후.”

“예. 모두들 잘 있어요. 다녀올게요.”

 

약간 당황한 듯 등을 떠밀린 샤를이 그동안 고생한 어린 황제부부를 위한 모두의 뜻을 잘 알겠다는 듯, 입 꼬리를 올리며 웃으며 주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샤를의 옆에 서있던 주영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맞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예, 다녀오십시오.”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르고, 아마도 그 마차가 움직이고 눈부신 태양이 반짝이고 있을 여름별궁으로 출발해, 언덕을 넘어가서 점이 되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을 충실한 보좌관 에일런의 인사를 끝으로 두 사람의 휴가는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단 둘이 황성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는 일주일간의 휴가.


이번 휴가만큼은 황제, 황후라는 직함을 다 내려놓고 평범한 십대의 소년, 소녀로 돌아가 실컷 즐기고 서로를 아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날씨는 너무나도 맑았고, 이번의 여름은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뜨거웠다.

 

“황후. 이번 휴가, 많이 기대했소? 쉴 새 없이 밖을 쳐다보는 걸 보아하니 그런 것 같은데.”

 

“아, 네! 그거야 물론..당연한 거죠! 제가 얼마나 기대했다고요. 가족들께 보내는 편지에도 그리 썼고요.”

“그것 참 다행이군. 난 이번 휴가가 그대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번의 여름이 좋은 기억만 가득했으면 해.”

 

넓은 마차에 마주 앉아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고 있는 주영을 바라보던 샤를이 그녀의 질문에 힘차게 대답한 주영의 손을 잡으며 한 말이었다.

 

“그럴 거예요. 저를 사랑하시는 페하께서 제게 해가 되거나 제가 실망할 일을 만들 리가 없으니까요. 그렇죠?”

“하하..그렇지. 그렇고말고. 난 절대로 그대에게 해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어. 그대의 말마따나 그대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이에게는 뭐든지 좋은 것만 해주고 싶지. 넝수 소중해서.”

“네, 저도요. 제게도 폐하가 소중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주영이 그 손을 맞잡으며 꼭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 모습이 마치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저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 수 있겠냐는 뜻이 느껴져서, 사랑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샤를이었다. 주영 또한 덩달아 웃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사랑해.”

“내가 더.”

 

여름은 열정적인 계절. 뜨겁고 무더운 계절이지만 그만큼 정열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계절.


어느새 옆에 앉아서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제 나이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격식 있던 말투를 버리고, 소년과 소녀로서 사랑을 고백하는 어린 황제부부는 그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끝. 

꿈꾸는 일은 즐겁다. 얼렁뚱땅 굴러가는 글방 주인장 & 초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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