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부(2)







-춘삼이란 자가 찾아와 수령에게 아이를 찾아 달라 했다. 또한 그는 이상한 소리를 했는데, 호신리에 기근이 생긴 후 마을 사람들이 이상해졌다 했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장사하며 근근이 살다 몇 년 전 화마로 힘들어진 노모를 부양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자였다. 그에게는 열 살 난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무슨 일을 꾸민다고 고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며 찾아달라 읍소했다. 영문을 알 수 없던 수령은 포졸과 관리들을 보내 마을을 살펴보라 명했다. 춘삼의 아이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나 사람들은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혹시 창천리쪽으로 놀러 왔다 길을 잃었거나, 엉뚱하게 산을 타고 성문을 나가려다 헤매고 있나 싶어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한 건 호신리 마을은 아이를 찾는 데 매우 귀찮고 심드렁해 보였다는 점이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이를 찾을 수 없자, 가뜩이나 추위와 배고픔에 날카롭던 사람들은 춘삼의 아이를 사망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며칠 후, 춘삼이란 자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수령을 다시 찾아왔다. 아이가 저 북쪽 뒷산 꼭대기에 있는 검은 집에 있을 거라며 소란을 피운 것이다.

그가 매우 난동을 부렸지만, 안쓰러운 마음도 들어 수령은 할 수 없이 검은 집이 있는 뒷산으로 포졸 한 명을 보냈으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 당시 이방은 사방이 닫혀있고 예전의 화마로 탄 흔적만 남아있어 그 어디에도 아이나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말했다. 춘삼을 겨우 달래 보낸 며칠 후, 그의 시신이 호신리로 가는 돌다리 경계선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어느덧 신시(오후 3시~5시 사이)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 꺼진 곰방대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허옇게 새버린 수염을 쓰다듬었다. 수령의 말마따나 무척 흥미롭고 또 어딘가 섬뜩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예?”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이 말일세.”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쪽 입가를 끌어올리며 수령을 재촉했다. 내가 이렇게 볼 때마다 상대방은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꼭 당황해하곤 했지. 그러나 수령은 당황보다는 더 심란한 얼굴이 되었다. 

이런 틀렸군.

“기록은 하나가 더 있습니다. 짧은 내용이었는데, 춘삼이란 자의 일이 있은후, 수령이 이 내용을 장계로 올렸다 합니다. 그리고 눈이 녹자 형조에서 직접 관리가 내려왔지요. 한양에서 직접 관리가 내려왔으니 놀랄 노자였을겁니다. 춘삼이란 자의 일을 다시 조사해보니 호신리 마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온 풍습이 하나 있었는데, 마을에 기근이나 재난이 닥치면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라 합니다.”

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춘삼의 아이도 그런 식으로 없어진 듯한데, 문제는 아이의 시신은 어디 있는지 결국 찾을 수 없었답니다. 아무리 주민들을 고초하고 닦달해 보아도 그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고 하니. 그렇다 해도 뚜렷한 증좌가 없으니 결국엔 그리 허무하게 마무리되었지요. 그런데, 대감.”

그가 빈 찻잔을 꼼지락 만져대며 또 머뭇거렸다. 저 덩치로 뭐가 그리 말하기 어려울까.

“사실 오늘.... 아이 하나가 없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편하게 늘어져 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단순히 아이가 부모에게 말 안 하고 나갔겠거니 하고 찾고 있기는 하나, 여즉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가?”

수령의 귀에 들어왔다는 건 누군가 결국 찾아왔다는 소리다.

“영춘댁이라고 과부 한 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에게 열 살짜리 딸아이 한 명이 있는데, 어제 창천리 관아로 쌀을 받으러 간다며 나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는다 했습니다. 영춘댁도 아시다시피 호신리 토박이올신데, 아무래도 마을 주민들이 아이를 데려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마치 그 기록에 있던 춘삼의 아이처럼 말입니다.”

나는 순간 아주 오래전 죽은 내 아이가 생각났다. 그저.... 아이와 관련돼서그랬을 거다.

“그럼 수령께서는 이 일이 춘삼이의 일과 같다고 보는겐가?”

수령은 가타부타 대답하진 않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지금도 그때와 같이 갑작스러운 기근과 재난이 닥치지 않았는가. 게다가 호신리는 예부터 그런 썩어빠진 전통을 지닌 마을이었고, 기록도 있었으니 충분히 의문을 가질 만했다. 헌데, 나는 왜 이 마을에 있는 그런 풍습을 전혀 몰랐을까.

“내가 여기 온 지 5년이 넘는 동안 수령께서 말씀해주셔서 오늘 처음 알았네. 어찌 몰랐을까.”

“그때 이후로 기록이 없는 걸 보면, 몇백 년은 또 아무 일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기록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자기네들의 비밀로 만들었을 수도 있지.”

그랬을 것이다. 나라에서 직접 관리까지 대동해가며 들쑤셔놨으니 그들로서는 그보다 더한 치욕이 없었을 터다. 그들에게 최소한 인간의 도리가 있었다면 애초에 아이를 바치는 그런 허무맹랑하고 끔찍한 미신에 의지했겠는가. 고립된 마을일수록 자신들만의 규칙과 규율에 목메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건 나 역시 많이 보아온 일들이었다.

어쨌든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본 억척스럽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음습한 기운도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단순 사고사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그런 기록들을 봤던지라 예민해져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민할 게 뭐 있나. 그게 수령의 일인 것을. 다만.”

나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기록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던 춘삼이란 자. 그는 어째서 죽었단 말인가. 아이를 잃은 슬픔에 자살을 한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그 또한 자세한 기록이 없었다.

“조심하시게. 나는 조금....그 ‘춘삼’이란 자의 이야기가 걸리는구먼.”

“아, 그렇습니까. 일단 영춘댁의 이야기도 오늘 아침에 들은 것이라. 하지만 이미 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이가 없어져서 찾으라 일렀으니까요. 게다가 워낙 좁은 곳 아닙니까.”

수령은 씁쓸해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답답한 속을 풀어내서인지 상당히 홀가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행랑아범을 불러세웠다.

“이보게. 혹시 마을에 별일은 없는가?”

나의 여상한 말투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별일 없습니다만. 다들 먹고 사는 거 때문에 힘들 뿐이지요. 그래도 대감께서 빨리 나라에 고해주신 덕분에 금방 구휼미를 전해 준다니 다들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입바른 아부를 들으며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영춘댁의 아이가 사라졌다면서?”

나는 그의 아부에 상관없는 질문을 대뜸 던져보았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영춘댁이오?”

저것이 거짓이라면 그는 매우 뛰어난 광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마을에 누가, 어떻게, 무슨 사연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게 더욱 힘들 정도였으니.

“몰랐나?”

“예, 대감. 처음 듣습니다. 어이구, 어쩌다가......”

그는 심지어 혀까지 걱정스럽다는 듯 츳츳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곰방대를 다시 주워들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한숨 같은 숨을 내뱉었다.



*


 

 

[주인, 주변에 별다른 기척은 없습니다.]

 

백구의 목소리가 들리며 곧이어 설랑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신수들도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긴 하나 어딘지 이승의 사람 같지 않은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주인 옆에 다소곳이 앉아 미간을 촘촘히 모은 채 일기를 읽고 있는 자신들의 ‘신(信)’을 바라보았다.

“이미 10월부터 사건이 생긴 걸 보아 꽤 지체되었군요.”

“그렇구나. 대감의 성격으로 봐선 아마 가만히 계시진 않으셨을텐데......”

도영은 아까 만났던 최수령을 떠올렸다. 그에게 딱히 나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평범했다. 즉,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숨기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바로 한양에 기별을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일단 좀 더 읽어보자. 우리가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알아내야 부호- 아니, 왕명에도 누가 되지 않을 테니.”

대감께서 아버님께 서신을 보낸 걸 보면 길어야 열흘일 텐데, 돌아가신 건 사흘 밖에 되지 않았다라.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만큼 도영은 호신리의 주민들부터 수소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윤이 설랑의 머리 양 옆에 솟은 늑대 귀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영도 백구의 하얀 꼬리털을 쓰다듬으며 다시 일기에 집중했다. 두 신수는 주인이 원하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도 언제든 꼬리와 귀를 한껏 드러낼 수 있었다.

 

 


*

 

 

 

10월 11일.

이른 아침부터 수령이 찾아와 다시 놀랄만한 이야기를 전했다.

“아이가 한 명 더 없어졌다고?”

“예, 사건을 조사하면서 열 살 이하 아이들이 몇 명인지 알아보던 중에 발견하였습니다.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이미 없어진 거겠지요.”

보통 열 살 이하 아이들은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열 살을 채 넘기지 못하고 병과 여러 가지 이유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갓난아이나 어린애들은 마을 이장이 관리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몇 명 정도 있는지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대부분 어디에 누가 아이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다 알기에 따로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보통은 이방이 호신리 마을에 대해 감독을 해 온 터라. 포졸들이 일일이 집을 찾아다니며 알아보라 시키지 않았다면 아이가 한 명 더 사라진 줄 몰랐을 겁니다.”

“이방은 뭐라고 하는가?”

“그저 자신이 실수한 것 같다 하니, 다시 자세히 조사해보겠다 했습니다.”

“그 아이가 사라진 건 언제인가?”

“시간상으로는 나흘 전 오후부터 보이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이웃집에 살던 열두 살 아이와 오시(11시~13시)까지 집 앞에서 놀았다고 하고, 저희가 알게 된 게 어제 유시(5시~7시)가 조금 넘어갈쯤이었으니. 사라진 아이는 최성택의 열 살 난 아이라 합니다.”

최성택은 작게 농사를 짓고 사는 아전 중 한 명이었다. 슬하에 열 살 난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이 있었다. 아들은 제 어미가 잠시 마을 이장댁으로 일을 도우러 간 사이에 없어졌다 한다. 하지만 희한한 건 부모들의 태도였다.

“전에 말한 첫 번째 아이 전에 이미 사라졌다는게요?”

나흘 전이라면 며칠 전 영춘 댁 아이보다 먼저 사라진 아이가 있다는 소리였다. 이 시국에는 영춘 댁처럼 직접 고하지 않는 한 누가 죽고 사라졌는지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다. 특히 호적에 올라가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예, 의뭉스럽게도 최성택은 직접 관아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이 저의 꾸짖음을 듣고 포졸과 함께 그를 불러 다그쳤다기에 제가 다시 불러 얘기해 보았지만, 부모가 모두 밭에 나가 일을 하다 보니 아이가 사라진 줄 몰랐다 할 뿐입니다.”

“무려 나흘이나 지났는데 말이지.”

“그렇습니다. 저 역시 어찌 부모 된 자가 그리 무정할 수 있냐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이 어찌나 황당하던지.”

“영춘 댁은 어떠한지 들은 게 있소?”

“그 댁은 어미가 며칠째 바깥으로 나오지도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데, 이웃에서 끼니를 챙겨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희가 한 번 더 조사하러 갔었는데 분명 멀쩡하던 여인이 정신이 나가 횡설수설해서 그냥 왔다고 합니다.”

아이가 사라졌는데도 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 직접 신고를 했으나 별안간 정신을 놔버린 과부댁. 애초에 호신리를 감독해 오던 박철한과 마을 이장도 왜 수령에게 보고를 안 했는지 의문스러웠다.

“이쯤되면 한양에 파발이라도 띄워야 하겠군.”

“그래야.....하겠지요? 일단은 아이들을 찾는다는 목적으로 수색을 하고는 있지만, 최악의 경우.....”

수령은 말을 아꼈다.

“일단 장계를 써서 올릴까 합니다. 날씨가 이래서 기발을 띄워도 제날짜에 도착할지 의문이고, 나라 전체적으로 상황도 안 좋아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이왕 보내는 김에 내 서신도 같이 보내주게. 그러면 조금이라도 관심 가져주겠지.”

태상왕, 상왕을 넘어 현 임금까지 연결되어있는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서신을 허투루 미룰 일은 없을 것이다. 관직에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공신에 좌의정까지 지냈던 장군이었다. 나는 이합지 위에 왕에게 따로 올릴 글을 빠르게 작성한 후 수령에게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돌아가는 수령을 보며 나는 내일 관아로 직접 찾아가겠노라 말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수령이 계속 나를 찾아와 의논하는 것을 봐도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 나 또한 이번 일에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은 탓이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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