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와쨩!"

"어?"

오늘도 거리낌없이 뒤를 돌아보는 이와이즈미 때문에 오이카와는 마음의 준비를 다 하지도 못한 채 그의 얼굴을 마주쳤다. 단언컨대 오이카와는 단 한 번도 당황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리라. 추운 겨울바람에 코는 이미 불긋해져 있고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하얀 입김은 마치 수분이 가득한 안개처럼 이와이즈미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뭐 우리가 알 겨를은 없지만. 그래도 오이카와의 눈엔 그게 환상이었음에 사실이었다. 덕분에 오늘도 고백 대작전 실패. 내..내일은 빨간팬티 입구 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린 바보같은 오이카와를 이와이즈미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뒤로 돌았다. 중지만을 펴보이며. 

'아..이게 아닌데.'

오이카와는 애석하게 주머니에 있는 핫팩을 꽉 쥔다. 제 화를 핫팩에 다 쏟아내듯 핫팩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아슬아슬했다. 바닥에 있는 돌은 오늘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두려움을 가득 안고 살아간다. 벌써 몇 명의 아니, 몇 개의 돌이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담장을 한 번 톡 부딪히고 떨어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너다, 당첨. 어김없이 돌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벌써 몇 번째야? 이젠 고백 좀 해라. 지겹다, 지겨워~!

하. 오이카와의 입술 사이에서는 한숨만 나왔다. 매번 똑같았다. 이렇게 이와이즈미와 헤어지는 집 앞 골목에서는 여전히 원하지 않던 말들이 삐져나오고 머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일 하면 된다며 저를 달래고 있었다. 아이고, 주여. 제발 뭐든지 말하게만 해주세요! 오이카와는 내일은 반드시 말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며 가로등 아래에서 다짐을 했다.

자고로 사람은 마음 먹기에 달렸거늘 마음을 아무리 수십 번 깨물어보기도, 끓여보기도, 구워보기도 했어도 항상 먹을 때가 되면 꾸물거리니 참. 이토록 애석할 때가. 오이카와는 노란 가로등불만 켜져있는 집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한참을 연습한다. 스읍 하. 이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아 제발 내일은.

"어! 오이카와 선수 맞죠?"

화들짝 놀란 오이카와는 눈웃음을 지어보며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는 재빨리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혹여나 자신의 팬이 자신이 사는 집의 호수까지 알아낼까봐 바로 아래층에서 5분정도 서있다 올라갔다. 사실 정말 그저 티비의 한 예능 프로에서 오이카와를 본 게 다였던 사람이었지만.

새벽의 취한 행인이 오이카와를 알아본 건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한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고 나서는 이 사람 저 사람 오이카와를 알아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배구라는 종목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그저 예능 프로 하나 나왔다고 알아보는 게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관심받길 좋아하는 오이카와는 이것도 뭐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길거리를 다니는 것도 힘들어지고 스케줄도 더 빡빡하게 잡힌 오이카와는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래서는 이와이즈미와 오붓한 시간도 사라지겠어. 




"고백 대작전"

1.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그래, 며칠 전 아니 몇 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럼 내가 하고 있는 이 짓거리의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건데 우리의 시작을 찾아 아주 천천히 서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내 마음의 시작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우리의 일들을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곱씹으면서 생각해봤다. 우리 둘은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부모님끼리 알고 있던 사이였고, 집도 가까웠고, 그렇기에 학교도 항상 같이 다녔었고. 학교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귀저기 찼을 시기에도 같이 있었단 말이다. 가끔 이와이즈미가 얼굴을 구기며 운 게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할 정도로 우린 항상 같이 있었다. 유치원 때는 이와이즈미가 나랑 결혼하겠다는 그림을 그린 적도 있었고, 초등학생 시절 발렌타인 때 초콜렛은 물론 화이트데이 때 사탕도 꼬박꼬박 이와이즈미에게 받아오던 나였다. 그러고보니 이와이즈미 나 좋아했던 거 아니야?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정색하다가도 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닌가 하며 실실 웃는 내가 한심해질 때 쯤 잠시 붉어진 얼굴을 식히고는 다시 회상에 돌입하기로 했다.

 중학교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성별, 나이 가리지 않고 만나는 바람에 내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순간이자 결코 지울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때는 정말로 내가 이와이즈미를 좋아하게 될 줄도 몰랐고, 그랬기에 이와이즈미에 대한 중학교 기억은 그렇게 남아있지 않는 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감자닮은 이와이즈미 밖엔 생각나지 않는다. 그 후 고등학생 때는 둘 다 배구에 미쳤었던 기억뿐이다. 이렇게 두고 보니 뭐가 뭔지 정말 하나도 잘 모르겠다. 이 마음이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언제부터 꼬물꼬물 감정이 피어 올랐는지 나는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언제부터 이와이즈미를 좋아했는지 정확하게 찾을 수는 없었지만 언제 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는 알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라고 할까나. 나는 프로 선수단에 입단하고, 국가대표를 뛰고, 배구에 나의 모든 것을 올인하고. 이와이즈미는 배구를 그만두고 학교 체육 선생님을 준비하다가 결국엔 헬스 트레이너를 하게 되고. 이래저래 우리는 매일을 붙어있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레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와이즈미의 빈자리를 몸소 느끼게 된 때가. 뭔가 허전하고, 같이 수다나 떨고 싶고, 뭐 딱히 수다 같은 걸 떨지 않더라도 같이 있고 싶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그게 친구로써의 감정일 줄로만 알았지.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 어쨌든 우리가 자연스럽게 떨어진 그때부터 우리는 각자의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는 여전히 이와이즈미의 빈 자리에 익숙해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거 있지 않은 가. 그냥 괜찮다 괜찮다 생각하니까 조금은 괜찮아지는 거. 

다행인지 아닌지 이와이즈미는 잘 적응한 것만 같았다. 나 없이도 잘 사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같이 붙어서 지내던 우리 둘이었는데 나 혼자만 회상하고 돌이키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시계는 멈추지 않고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었고 우리의 추억들도 바늘이 몇 천 번이나 돌았던 그 사이 어디쯤엔가 끼워져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각자의 삶에 치여 서로 얼굴 볼 시간조차 내기 어려워졌다. 



사건의 날. 그날의 늦은 오후, 나른한 몸을 끌고 집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치익-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제 입을 여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며 허무하게 흰 천장만 바라볼 때. 바로 그때였다. 가끔 자연스럽게 이와이즈미가 천장에 그려지곤 했는데 이 날 나는 정확하게 알아버렸다. 이 전에는 그냥 '아- 오래된 친구가 그립구나'했었다. 연락도 간간히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사이임에도 여전히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하는 나. 그제서야 두 뺨을 손으로 치며 눈을 번쩍 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꾸욱꾸욱 눌러담고는 두 눈을 꿈뻑거릴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찾아온 그날. 그때 알았다. 

나 이와이즈미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얼굴이 갑작스레 홧홧하고 붉어지는 것을 느끼고 입을 막았다. 막연하게 흩어져있던 온 감정들이 가슴에 모이는 듯 하더니 터질 듯이 쿵쾅댔다. 그만, 그만해! 제발 멈춰줘! 가슴을 꽉 쥐어도 심장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심장에게 멈추라는 소리를 한 나도 살짝은 제정신이 아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바로 사랑?! 참을성도 없고 행동력도 강한 나는 방금 감은 젖은 머리를 다 말리지도 않고 차키를 갖고 문 밖으로 나섰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용기가 있어서인지 몇 년을 문자로만 대화하던 친구의 집을 아무런 귀띔도 없이 쳐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이와짱! 문 열어! 나야!"


문은 서서히 열리고 이와이즈미 역시 방금 전에 씻고 나온 건지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과 장미꽃 색으로 은은하게 물든 두 뺨, 그리고 남은 물기 때문에 몸에 딱 붙은 옷까지. 잠깐 코피가 날 것만 같아 어서 손으로 코를 가렸다. 다행히도 붉은 색의 액체는 묻어나지 않았다. 대신 입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을 뿐.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코를 막는 나를 보고 뭐하냐는 이와이즈미의 질문에 누가 볼새라 문을 재빨리 닫았다. 이와이즈미와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이대로 쳐다보면 나 죽을 것만 같아.


"무슨 일이야? 바쁘다면서."


거친 목소리 속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청각적으로 첫 번째 충격을, 


"뭐..뭐 옛날 친구 보러 오는데 이유가 피..필요해?"


동시에 제 몸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한 몸이 시각적으로 두 번째 충격을, 


"너 좀 이상하다."

"...뭐가..."

"아니 말 더듬는 것도 그렇고 계단으로 뛰어온 것도 그렇고 진짜 무슨 일 있어?"

"...."

"너 혹시..."


마지막으로 그냥 그 곳에 있던 모든 요소들이 나의 심장에 충격을.

추측성을 띄는 이와이즈미의 질문에 내 심장은 빠르게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 뭐라고 대답하지? 그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떠올렸다. 


"맞아."


이.. 이 대답? 맞을까? 이 대답을 하는 게 맞을까?


"차였냐?"

"....어?"


그러니까 딱히 차인 적도 없고, 더군다나 누굴 사귄 적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차였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바로 직진고백을 하기엔 너무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내야해. 제발, 평소에 경기하는 머리로 좀 돌려봐! 아차차,


"그..그러니까 어, 내가 매니저가 필요해. 그, 저, 내가, 텔레비전에, 음, 나가...거든."


아예 없던 말은 아니다. 내가 연예계에 진출한 후로 스케줄은 꽉꽉. 여러 프로그램에 나가 인기도 훨씬 많아지고, 내가 하는 경기에 팬들도 두 배 이상 많이 찾아오게 되고. 그러다보니 내 경기장으로 선물을 들고 오는 팬분들도 많이 생기고. 여러모로 매니저가 필요했단 참이다. 절대 급하게 생각해 낸 것도 아니고 변명은 더더욱 아니다. 정말이다.


"매니저?"

"..어! 나 요즘 많이 바쁘거든...그래서 나 혼자 못 하겠어서... 너 안 되면 굳이 할 필욘 없어! 너 요즘 일 잠깐 관두고 운동만 한다며...그...매니저일도....운동이 좀 잘 되지 않을깡..."

"갑자기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모드야? 그 뭐 너네 사장님이랑 얘기해야하는 거 아니냐?"

"아 그렇지, 맞어맞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대답..해줘.."


"뭐, 그래."


사실 나도 방금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나는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철회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이래봬도 내가 유교보이라고. 그러니까 이와쨩, 이와쨩도 말한 거 절대 철회하면 안 돼! 

그렇게 이와쨩은 내 매니저가 되었다.






"고백 대작전" 

2. 그러니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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