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여 운



[BGM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OASIS - Wonderwall]



"그 아이가 많이 아팠던 거예요?"


"암이었어. 그 어린 나이에. 선천적으로도 약하게 태어났던 아이여서 암한테 차마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나한테 그러더구나. 삶에 미련이 생길까봐 두려워서 음악을 그만뒀는데 그러니까 자기 삶의 시간이 공백으로 비어지는 것 같다고. 그래서 그냥 미친듯이 공부만 했대. 무언가로 그 시간을 채워넣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랐던 거지. 그 아이가 처음 음악실에서 쳐 주었던 그 환상적인 곡은 자기가 어릴 때 직접 작곡한 곡이라고 했어. 아프기 전에. 그 곡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대. 그러다 어느날 어머니가 전자 피아노를 사주신 거야. 밖에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했는데 그 전자 피아노를 한 번 쳐보지도 못하고 그날 밤 그 아이는 병원에 실려갔어. 고통을 호소하면서. 피를 토하면서. 그리고 다시 집에 갈 틈도 없이 암 진단을 받고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어.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그냥 통원치료를 하면서 집에서 요양을 하기로 했대. 어차피 계속 병원에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의사도, 그 아이도, 그 아이의 가족도 깨달은 거야. 암묵적으로 퇴원절차를 받고 집에 도착한 날. 먼지가 끼여있지 않은 전자 피아노가 자기 방에 놓여있더래. 어머니가 매일 닦아주셨거든. 아들이 다시 방으로 돌아와 그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나를 만날 때 까지 2년동안 그 피아노의 케이스도 열어보지 않았다고 했어."


"왜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한 거 아니예요?"


"네 말이 맞아. 그렇지만 그 아이는 그 행복이 무서웠던 거야.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에 담담해져 있는데 다시 행복을 맛보게 되면 것잡을 수 없을만큼 거대해 질까봐. 그래서 결국 최후의 순간에 죽기 싫다는 두려움이 더 커져버릴까봐. 그러다 내가 그렇게 거지같이 치는 피아노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손을 대버린 거야. 나랑 같이. 그 뒤로 매일매일. 즐거움이 커질때마다 하루하루 공포도 늘어났지. 몇개월동안 그 공포를 혼자 감당하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직 해맑아야 하는 18살 밖에 안됐는데 말이야. 다시 음악실로 돌아가서, 그 아이의 끔찍한 울음소리를 한참을 들었어. 차마 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어. 너무 미안해서. 그냥 다 미안해서. 나때문인 것 같아서.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사실에 너무 분해서. 그 아이가 잠잠해질 때 쯤 머릿속에서 생각이 하나 떠올랐지. 터무니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았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어. 우리 둘 모두가 원했던 일이었기도 하고."


"그게 뭔데요? 빨리 알려주세요!"

"야, 박정효. 보태지좀 마. 시끄러워."

"그런는 너는? 너도 시끄러워!"


"너네 싸우면 이야기 안 해준다."


"죄송해요. 제가 정효 조용히 시킬테니까 해주세요."

"난 혼자서도 조용히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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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돼지."

"뭘?"

"공연. 하면 돼지."

"공연을?"

"우리 둘 다 못했잖아."

"무슨 수로 공연을 해."

"왜 못해?"

"그래도,"

"무서워?"


그 아이는 얼굴을 짐짓 굳혔다. 


"......"

"아니면 관둬."


일부러 고개를 다른 곳으로 휑하니 돌리자 평소보다 3배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통 그 아이에게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탓에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 어떻게 하려고."


고개를 숙인 얼굴이 귓가까지 달아올라있었다. 손을 마주잡자 더욱 그 채도가 심해졌다. 귀여워.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언제나 정신 저 멀리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제목그대로 환상적인 아이. 누가 쥐어터뜨려도 웃으며 사라질 수 있는, 그런 허상이 말이다. 



-



"그치만 학생 둘이서 어떻게 공연을해요?"


"뭐 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면 그게 공연이지.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


"그래도 한 번 하는 공연인데 멋지게 하면 좋잖아요."

"맞아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도 그런 생각을 안했던 건 아니였어. 그래도 일단 누군가의 앞에서 공연을 하자는 그 소리가 마음을 뛰게하는 데에는 충분했지. 철없던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우리는 우선 무슨 곡을 할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어. 내가 할 수있는 건  기타와 노래고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피아노였으니 우선 밴드의 노래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 뒤로 곡을 정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우리 둘 다 좋아하던 곡이 있었으니까. 신기하게도. 오아시스라는 영국 밴드의 노래였는데 그 밴드가 지금은 해체했지만 그 당시에는 해체하기 전이었거든. 악보를 여기저기서 구한 뒤 우리가 칠 수 있을 정도로 편곡도 했어. 미숙한 실력이니까 지금 들으면 별로였겠지만 그 때에는 우리가 마치 엄청난 유명 밴드라도 된 기분이었지. 그 아이도 치료를 그만두었을 때라 둘 다 남는게 시간이었어.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갔는데 문제가 터진거야. 걔가 내 친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우리는 방과후랑 방학때는 온종일 같이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어. 나는 학교에서 질 좋지 않은 애들이랑 놀았고 그 아이는 모범생이니 서로 지내는 환경이 다를 수 밖에. 그 아이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어. 없다고 하면 없었지. 내가 같이 있어주고 싶어도 선생님들이 싫어할까봐 일부로 가까이 지내지 않기도 했고. 하루는 내가 친구들이랑 학교 분리수거장에서 수업을 째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 뭐, 양아치라고? 맞아. 그때는 왜 그랬는 지 모르겠는데 그 아이를 만나기 전 까지 나는 집에서 쫓겨났을 때 만날 얘들이 걔네밖에 없었거든. 여하튼 담배를 피고 있다가 내 친구들이 그 아이 얘기를 꺼내는 거야. 그런 범생이랑 요즘도 어울리냐고. 자기들끼리 그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하며 킬킬거리고 웃고 있었어. 화는 났지만 거기서 옹호하면 그 아이에게 해가 갈 것 같았어. 무서운 얘들이었거든. 그냥 가만히 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그래, 실컷 떠들어라. 하고 듣고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입에 물린 담배를 확 뺏어가는 거야. 뭐야, 하고 쳐다봤는데 그 아이가 굳은 표정으로 내 앞에 있더라고. 범생이가 갑자기 나와서 내 담배를 뺏어가니까 주위에 있던 얘들은 무슨 상황인가 신이나서 떠들어댔고."



-



"범생이가 이 시간에 수업안듣고 여긴 웬일이래?"

"네가 피울거 아니면 조용히 가라."


친구들이 조롱하듯 비웃자 그 아이는 손에 들고 있는 담배를 입으로 가지고 갔다. 


"야, 뭐하는 거야. 그냥 가."


내가 말리려 손을 뻗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마저피우고선 내 패딩에 담배를 지져껐다. 


"뭐하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아이가 먼저 발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심부름이라도 갔다 오는 건 지 손에는 종이뭉치를 들고선 그대로 나를 지나쳐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로 향했다. 마음이 조급해 져서 얘들한테 '야, 나 좀 가볼게.'하고 따라 나섰다. 주위에서 '뭐야, 어디가.'하는 소리와 웃는 소리들이 여럿 들렸지만 아랑곳 하지않았다. 그저 앞에 걸어가는 작은 생명체 하나만 오롯이 눈에 박힐 뿐이었다. 나랑 같이 운동좀 했다고 걸음이 조금 빨라져서 거의 뛰다싶이 가 그아이의 팔을 잡아 세웠다. 


"야, 잠깐만!"


돌아선 그 아이의 얼굴은 이상했다. 눈은 빨갛게 충혈됐고 아까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는데 곧 바로 참았던 기침을 토해냈다. 당황해서 괜찮냐고 물었지만 내 목소리는 큰 기침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무슨 장기를 다 토해내듯이 내뱉는 기침에 겁이 나 '그러니까 그걸 왜 피워!'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그 아이의 눈에는 괴로운 지 눈물이 고여있었다. 이러다 어디 잘못되는 거 아닌가 덜컥 겁이나서 양호실에 가자고 어깨를 감쌌는데 동시에 유난히 커다란 기침소리가 들렸다. 


"피?"


입에서 뗀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몇 번 더 잔기침을 하자 금방 입주변도 붉은 자국이 남았다. 


"너 괜찮은 거야?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당황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내 손을 그 아이는 피가 묻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잡아주었다. 진정하라는 듯이. 어째서 넌 그렇게 담담한 거야?


"이정도로 병원 안가도 돼."

"이정도? 피가 나는데?"

"흔한 일이야."


흔한 일이라고 말하는 그 아이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담배피면 안되잖아!"

"너는?"

"나는,......"

"너도 나랑 똑같아. 너도 피면 안되잖아. 미성년자니까."


차마 몸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나한테는 담배 한 개비가 그 아이한테는 천 개비를 피운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둘 다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 아이는 기어이 나한테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피가 몇 방울 튄 프린트는 대충 바닥에 버려두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 아이의 뒷모습은 또래치고 참 작았다. 사라질 것만 같은. 

아니야, 자기가 저렇게 버텨내고 있는데 내가 약해지면 안된다. 나는 저 아이의 고통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감히 내가 판단해서는 안된다. 

나도 그대로 그 아이가 갔던 계단을 따라 교실로 올라갔다. 수없하는 도중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날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볼테니까 나도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곧바로 맨 뒷자리로 가 드러누웠다. 

아. 빨리 음악실이나 가고 싶다. 



우리가 정한 음악은 Oasis의 Wonderwall이란 노래였다. 그냥 별 이유는 없었다. 내가 뜻을 아는 몇 안되는 노래였고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곡이였으니까. 그 아이는 오래전부터 이 밴드를 좋아해 왔다고 했다. 설레보이는 표정이 떠올랐다. 복숭아 같이 싱그러운 표정. 먼저 음악실에 가 기다릴때면 항상 그 아이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지만 언제나 6시 정각이 되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담배일이 있고나서 저녁에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멀쩡하다고 대답했었다. 괜히 나때문에 몸에 안좋은 일을 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따가 오면 진짜 절대로 다시는 안 하겠다고 백 번은 더 말해줄 것이다.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나서는 담배만 봐도 구역질이 올라와서 어제 남아있던 한 갑을 전부 땅바닥에 조각내서 버려버렸다. 그것도 말해줘야지.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아 시계만 들여다 보았다. 오늘은 내가 가사를 다 외워서 처음으로 제대로 맞춰보기로 약속한 날이다. 어제까지는 뒷부분을 조금 까먹었었는데 아까 오전 내내 한글 발음을 보며 전부 다 외웠다. 뿌듯한 마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6시 되기 5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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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바늘은 막 6에 다다랐는데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좀 늦으려나 보네. 웬일이래. 항상 칼같이 시간 지키던 애가. 공부하다가 저번처럼 잠들었나? 조금 더 기다리다가 6시 반이 되었을 때는 무언가 이상해서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음악실을 나섰다. 

하지만 학교 그 어느곳에도 그 아이를 볼 수는 없었다. 


"뭐야. 어디갔어."


내일 되면 다시 가사 까먹을 것 같은데...... 어딜 간 거야. 패딩 양 주머니에 손을 꼽아넣고 느릿느릿하게 학교를 나가는데 자꾸 불안함이 샘솟고 올라왔다. 어제의 붉은 피가 떠오르면서 점점 나도 모르게 발이 빨라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달리고 있었다. 자주 데리러 가서 이제는 익숙한 길을 달렸다. 이렇게 달렸으면 작년 계주는 내가 됐었을 텐데. 숨이 차올라도 멈추지 않고 단숨에 작은 주택까지 달렸다. 

집앞에 도착해 호흡을 다듬었다. 유난히 이 집의 주변 공기만 조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적도 잠시.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절대로 원하지 않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졌다. 구급대원들은 내 옆에 차를 세우고선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지 어깨를 밀치며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얼마 안 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사람을 실어 나왔다. 들것 위에는 작은 체구의 몸이 이리저리 달싹이고 있었다. 거친 호흡. 새하얀 들것이 몸이 움직일 때마다 빨갛게 물들어갔다. 어머니는 맨발로 달려나와 울고계셨다. 대원들이 내 앞에 지나가는 순간 나는 이미 피로 물든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힘들게 숨을 쉬고 있는 그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몸의 모든 힘이 빠져나간 것 같이 보였던 그 아이가 갑자기 악다구니를 치며 발작했다. 


"가! 가라고! 네가 왜 여기있어!"

"......"

"보지마! 보지마! 보지말라고!"

"너......"

"나 보지마. 눈 감아! 아니, 그냥 가! 제발...... 제발 가......"


잔뜩 긁어져 나오는 목소리는 끔찍했다. 그 아이가 느끼는 고통이 발목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그 아이는 기어코 악바리를 치다가 구급대원의 제지를 받았다. 그들이 사지를 붙잡고 주사기로 약물을 투여하자 펄떡이며 움직이던 몸이 금새 죽은 사람처럼 추욱 가라앉았다. 정신을 놓기 직전까지흐느끼던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미동도 없이 들것 위에 쓰러진 모습은 창백했다. 마치 죽은 사람의 것 같아 심장이 덜컥했다. 쥐고있던 피범벅이 된 수건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가려져있던 붉어진 얼굴과 옷이 드러났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구급차의 문이 닫히기 직전 어머니가 '탈거니?'라고 물어보시는 질문에는 그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차 문이 닫이고 구급차가 떠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변은 다시 평화로운 침묵을 찾았다. 좀 전의 일을 알려주는 건 널브러져있는 수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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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질 것 같아 중[中] 에서 한번 끊겼습니다! 다음편은 하편으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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