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려 드림 6335자 작업했습니다. 신청 감사합니다!





악몽을 꿨다. 그가 죽는 꿈이었다.

어쩐지 사무치도록 서럽고도 익숙한 꿈이어서, 밤새 울었다.

 

夢中夢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 흠뻑 젖은 잠옷과 내쳐진 얇은 여름 이불. 태화는 헝클어진 머릴 쓸어올리며 헐떡이는 숨을 고른다. 침대 옆 서랍 위 놓인 네모난 전자시계는 이제 겨우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숨을 삼킨다. 다시 잠들어도 겨우 두 시간 남짓 잘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시기였다. 특히나 태화처럼 연차 찬 아이돌에게는 더.

 

태화는 푹신한 베개 위로 다시 몸을 던졌다.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그 잔재가 진득하게 눌어붙어 여자를 괴롭혔다. 눈을 감아도 생생했다.

 

-잘 있어요.

 

그것은 작별인사였다. 그것을 인사라고 부를 수 있다면.

 

서늘한 바람이 칼처럼 뺨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던 옥상, 폐 안쪽 깊숙이 차오른 겨울바람과 긴 경적과……모든, 그 모든 폭발적인 움직임 사이 홀로 정적이던 남자. 염색 한 번 하지 않은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은 사정없이 바람을 타고 부풀었다, 가라앉길 반복하고. 하지 마, 애원조차 닿지 않을 만큼은 시끄러운 도시의 야경, 그 가운데 홀로 아주 오래된 명화처럼 서 있던 남자가.

 

안녕, 내 사랑.

 

잘 있어요. 한 번의 인사, 한 번의 웃음, 망설임 없는 한 번의 발걸음. 세상에서 삭제된 것처럼 눈앞에서 사라지는 사내와 숨 한 번 고를 새 없이 미친 듯이 펜스로 뛰어가던 자신. 피 맛이 그토록 생생하게 느껴지던 목, 너무 차가워서 맞붙은 살을 아프게 만들던 차가운 펜스. 차마 아래를 내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소리쳐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을 알면서도 목이 쉴 때까지 신재현의 이름을 부르던…….

 

태화는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쓸어올렸다.

 

그것은 작별인사였다. 아주 매정하고, 일방적이며, 한없이 이기적인.

 

***

 

“……내가 꿈을 꿨는데, 네가 죽는 꿈이었어.”

 

청려는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들어 올리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태화는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 보는 듯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맞아. 잔잔한 목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다. 여섯 시 반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활동기가 아닐 때 이 시간부터 나와서 연습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희망에 부푼 연습생들, 혹은 이 사내밖엔 없었다. 매사에 그렇게 미적지근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아이돌 활동에만큼은 모든 활력을 쏟아내는, 팬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리고 어제 꿈에서 신청려가 죽었다. 인생을 포기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네가 죽는 꿈을 꿨어.”

 

별로 재미있는 꿈은 아니지. 안 그래? 묻는 여자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왜 자신이 이른 아침, 짧은 휴식시간을 버려 가면서 신청려를 보러 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청려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물을 들이켰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태화는 청려와 연인 관계였다. 시제가 아주 엉망진창인 문장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은, 태화가 청려를 사랑하지 않지만. 언젠가, 태화는 청려를 사랑했고 그러므로 청려가 그 앞에서 뛰어내렸다면, 그렇게 울어 주지 않았을까.

 

그래도 우는 것보단 웃어 주는 편이 더 나은데. 짧은 상념을 뒤로하고, 청려는 여느 때처럼 단정하게 웃어 보였다. 태화가 그토록 싫어하는 빈틈없는 웃음이다.

 

“좀 미안하네요.”

 

“뭐? 네가 왜?”

 

그야 정말로 있었던 일이니까요.

 

“음……제 생각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고 하시니까, 좀. 태화 씨가 절 그만큼 생각해주시나 싶어서?”

 

“아, 꺼져!”

 

버럭 화를 낸 태화는 발을 쿵쿵 구르며 연습실 복도를 벗어났다. 너한테 얘기한 내가 머저리지! 그 엇비슷한 거친 말들이 점점 멀어지다가, 마침내 사라지고 나서야. 덜 마신 물병을 잠그는 표정은 덤덤했다. 가식적인 웃음기를 덜어낸 얼굴은 가볍기보다는 낮게 침잠해 있었다. 내 꿈을요. 곱씹는 말투는 평온했고, 한없이 가벼워서, 한숨 한 번에 날아갈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물병을 내려놓고 다시 노래를 틀었다.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었으므로,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텅 빈 연습실을 쿵쿵거리는 진동이 가득 채우고 나면 그는 몸을 움직였다. 사소한 실수 한 가지조차 없도록. 사소한 실수 한 가지 때문에 돌아갈 일이 없도록.

 

사실 그렇게 잊힐 사소한 이야기 중 하나여야만 했다.

 

***

 

“……숨 쉬어요, 태화 씨.”

 

청려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새벽 두 시였고, 태화는 분별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새벽 두 시에 남자 아이돌 숙소로, 아무리 혼자 사는 사람의 집이라고 해도 이렇게 충동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의 연애는 주로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를 닮았지 이토록 격정적인 폭포처럼 휘몰아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곧 죽을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태화와 청려의 숙소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밤중 한걸음에 달려올 만큼 가깝지도 않았다. 얼굴은 터질 듯 붉었고 청려가 단단히 붙든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가 아는 태화는 종종 감정에 휩쓸리긴 해도 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러니까, 이것은 낯설었다. 청려는 아무리 오랜 시간 돌고 돌아 태화와 함께하더라도 언제나 여자에게 그가 모르는 시간, 그가 모르는 일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긴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 않던가……. 그는 태화를 끌어당겨 부드럽게 등을 쓸어 주었다. 그러나 태화는 가만히 안겨 있는 대신 청려를 밀쳐냈다.

 

“너.”

 

밭은 숨을 내뱉으며 여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알고 있었어. 그거, 있던 일이었잖아. 진짜로 있었던 일이잖아.”

 

정말이지 두서없는 헛소리였다. 그러나 그 순간 청려는 알았다. 아득하게마저 느껴지는 기억을 헤집고, 오래전 물 한 모금에 흘려보냈던 시간을 건져 올린다. 공포에서부터 의심, 확신까지 천천히 얼굴로 번지는 것들을 가만히 내려보며 청려는 침묵했다. 사실 침묵 외 무언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을 말하겠는가? 긍정도 부정도 어차피 통하지 않을 텐데. 마침내 애원하듯 바르르 떨리던 입술이 분노로 하얗게 굳는다. 야. 짧은 호칭은 과거로 회귀한 듯 매정하게 떨어져 내리고.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런 짓을 해, 이 새끼야!”

 

이렇게 심각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청려는 기꺼이 당신에게선 오랜만에 듣는 욕설이네요, 따위의 말을 주워섬기며 태화를 두 배로 화나게 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것에 능했으니까. 가벼운 것은 무겁게 말하고, 무거운 것은 가볍게 말하고……사실, 너무 오랫동안 돌아버렸던 탓에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조절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일지도.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잘 다린 셔츠가 사정없이 구겨졌다. 어쩌면 단추 몇 개가 뜯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바짝 당겨진 목덜미 탓에 고개를 따라 내린다. 옷이야 새로 사면 된다지만, 태화는 그에겐 유일하다. 그는 분노로 떨리는 손이 상처라도 입을까 조심히 감쌌다. 씨근거리는 숨이 제풀에 꺾여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던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야.”

 

다정하게 연인을 붙들고 청려는 말한다.

 

“그야, 다시 돌리면 되는 일이니까요. 차라리 좋은 일 아닌가? 다음번에는 더 완벽할 텐데. 그냥, 음…… 사소한 시행착오 같은 거예요.”

 

여느 때와 같은 웃음에, 태화는 다시금 청려의 손을 뿌리쳤다. 여전히 분노가 가득 들어찬 눈을 보며 청려는 눈을 깜박였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 늘 같은 사람이다. 당신도 나도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시행착오는 모두 건너뛰고, 완벽한 연인으로 남을 수 있다고. 단지 그뿐이다.

 

태화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눈을 감고 나면 그릴 수 있다. 안녕, 내 사랑. 잘 있어요…….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가 그렇게 굴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누가 그에게 그렇게 멋대로 굴 권리를 내려주었나. 적어도 태화는 허락한 적 없었다. 단 한 번도.

 

“……내가 고작 시행착오, 거기 포함된 사람이야?”

 

내가 고작 네 실수 때문에 너를 영원히 잃어야 하는 사람이야?

 

신청려는 돌아간다. 태화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태화가 궁극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번에도 만족하지 못한 신청려가 다시 한번 돌아가고 나면. 뒤에 남겨진 태화는?

 

“너는……너는 다음을 위해 돌린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나한테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거잖아.”

 

적어도 사정을 설명했어야 한다. 나를 사랑했다면, 그런 식의 이별을 준비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차라리 개새끼로 남을지언정 잠수 이별을 택하거나, 문자 한 통으로 헤어짐을 결정했다면 태화는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신청려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만은.

 

어떻게 내 앞에서 영영 사라질 수가 있나? 가장 최악의 이별을 안겨주고서.

 

“얼마나 많이 돌렸어? 얼마나 많이 나를 버렸어?”

 

그렇게 물으면 청려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청려에게 있어 그것은 버린 것이 아니었다. 청려는 늘 같은 사람이었고, 태화 또한 그랬으므로, 그저 더 나은 자신을 선물했을 뿐이다. 남아있을 사람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자신을 건사하기에도 이미 벅찼다. 원하지 않아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이용하기로 했을 뿐이다. 태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모른 척했다. 여자는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연인이 되기 전부터, 유구하게 그에게 지기 싫어했으므로, 약한 모습이 곧 그녀의 약점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목덜미를 맹수에게 노출하지 않는 것과 꼭 같은 이치로. 그러니 청려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한 걸음. 태화가 비틀거리며 청려에게 다가섰다.

 

“내가, 내가 무서운 건.”

 

애달픈 목소리로 기꺼이 약점을 드러내면서.

 

“네가 또 나를 두고 죽어버리면 어떡해? 너는 다음의 연태화를 찾아갈 테지만, 나는, 나는……여기 남아 상실한 너를 그리워해야만 하는 거야?”

 

신청려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연태화도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같은 사람일 뿐이다. 다만 같은 사람이 아닐 뿐이다.

 

사람을 소유할 수 있는가?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가? 사랑조차 소유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연태화가 쥔 패는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있어야만 신청려를 붙들고 소유할 수 있는가? 여자는 마침내 두려움에 빠졌다.

 

“날 두고 돌아갈 거야?”

 

“안 그래요.”

 

“……그 약속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했어?”

 

“이번이 처음이에요.”

 

당신이 꿈으로나마 기억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제야 조금은 누그러진 얼굴이다. 청려는 한 걸음 더 물러나는 대신 다시금 여자를 껴안아 등을 가만히 쓸어 주었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과 가는 어깨를 매만지는 손을 끌어내려 입 맞춘 태화는 명령한다.

 

“날 두고 떠날 생각 하지 마.”

 

알겠어? 신재현.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태화는 속삭였다. 여자의 깨끗한 갈색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청려는 미지근하게 웃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두고 도망가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세 여신의 이야기를 아는가. 양치기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고 선택을 종용하던. 지혜의 여신은 지혜를 약속했다. 가정의 여신은 권력을 약속했다. 사랑의 여신은 사랑을 약속했다. 그리고 양치기는 사랑의 여신에게 사과를 바쳤다. 언젠가 그는 양치기의 선택을 어리석다며 비웃었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사랑만이 영원한 승리를 가져다준다. 오직 사랑만이. 그러므로 가장 비참한 패배를 가져오는 것까지도 모두 사랑일 것이다. 기꺼운 일이다. 그를 붙든 것이 사랑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면, 신청려가 조용히 물었다.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건가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럼 절 싫어할까요, 당신은.”

 

그 말에는 여자가 꾹 입술을 말았다.

 

“널 싫어할 수 없으니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슬퍼하겠지.”

 

“그런가요.”

 

“오래 울 거고.”

 

“…….”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널 잃은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거야.”

 

행복을 위해 반드시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니나, 사랑을 잃고 나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이미 알아 버린 후에. 그 모든 다정함과 온정을 알아 버린 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신청려의 부재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신청려가 너무 깊게 스며든 탓이다.

 

신청려에게 있어 연태화의 부재가 돌이킬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는 미지근하게 웃는다. 어쩔 수 없이 만족스러운 것은 긴 회귀의 탓은 아닐 것이며, 오로지 당신을 가졌다는 믿음 하나에서 오는 것이다. 구태여 말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한 번도 있었던 적 없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당신이 삶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때는 이미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그 옥상 펜스 너머에 서게 될지도 몰랐다. 이번에야말로 쫓아올 당신이 없었으므로, 웃을 필요도 울 필요도 없다. 관객 없는 연극이 막을 내리고 나면, 아주 보통의 죽음으로 남을 것이다.

 

“떠나지 않을게요.”

 

연인을 끌어안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끝 입 맞춘 청려는 대신 물었다.

 

“그렇게 하면 태화 씨는 행복할까요?”

 

“적어도 불행하진 않을 거야.”

 

“그래요, 그렇다면 좋아요.”

 

그러므로 보통의 죽음으로 남는 대신 당신 곁에 설 수 있다면 전부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때 이른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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