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이 없을 수 있는 키스가 아닌데 아무 일이 없었다. 윤정한은 여전했고, 홍지수도 덩달아 여전하게 굴었다. 윤정한은 여전히 자취방에서 이불 둘둘 말고 내리 잠만 자다가 가끔 유튜브 봤고 가끔 동기들 불러 모아서 공 차러갔고, 덕분에 질질 끌어오던 연애를 쫑낸 홍지수도 하루 종일 자취방에 틀어박혀서 그간 밀린 넷플릭스만 존나 봤다. 둘 다 그날의 일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동시에 꾼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홍지수는 처음에 사실 입술까지 비빈 주제에 다시 우리가 아무렇지 않은 사이가 될 수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보면 그게 둘 사이의 첫 키스가 아니라서 금방 덤덤해졌다. 처음도 그러고 넘겼는데 두 번이라고 다를 리가. 그땐 아무것도 몰랐던 열아홉이고 지금은 죄다 알아버린 스물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오히려 더 그깟 키스가 뭐라고. 


어차피 전부 무의미했다. 달라질 게 없을 테니까.


며칠 내내 골몰한 홍지수는 시체처럼 누워서 천장만 쳐다봤다. 늘 이상적이고 침착한 홍지수는 매번 윤정한 앞에서만 원래의 홍지수가 아니게 된다. 열아홉도. 지금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깨달아버리니까 스스로를 정의하기 쉬웠다. 그다지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윤정한이 홍지수를 죄다 헤집어 놨다. 19년 동안 혼자 쌓아 올렸던 세계가 단숨에 무너지고, 윤정한 하나로 처음부터 다시 세워졌다. 이제 나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전부 넌데. 고작 그 1년이 뭐라고 생각부터 행동까지 닮게 돼버렸는데. 그럼에도 왜 쟤 속은 도통 알아 처먹을 수가 없는 건지. 


그래서 이것도 걔의 만병통치약스러운 사고방식인 아 재밌잖아, 로 설명될 수 있는 상황인지 생각했다. 1년 사이에 제법 윤정한다워진 홍지수는 어떻게든 걔 생각을 긁어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재밌다는 이유 하나로 나랑 키스할 만큼 인생이 무료한 새끼인지. 정한이가.


하지만 그래도 홍지수는 윤정한일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어설플 수밖에 없어서 이내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우리는 같지만 다르기 때문에 결국 걔의 깊은 마음 같은 건 읽어낼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모든 걸 덮어두기로 한다. 키스든. 짝사랑이든. 우정이든. 윤정한이든.

그럼 뭐라도 되겠지. 친구가 되든.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든. 언젠가는.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4,645 공백 제외
2,0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