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2021. Lemon. All rights reserved.


-카라이치

-조각글

-3기 11화를 보고 든 망상

(3기 11화 B파트를 보시고 글을 감상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W.레몬





 조금 나른한 오후, 잿빛 하늘만을 비추던 창문에 물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빗방울은 보기와는 다르게 거세게 내리는 듯했다. 투둑, 툭, 귓가에서 빗소리가 맴돌았다.



 '요즘 비가 자주 오네...'



 분명 얼마 전에도 이런 비가 내렸다. 그러니까, 카라마츠가 거의 처음으로 본심을 드러냈던 그날 말이다. 뒤죽박죽 엉켜 응어리진 마음을 하나하나 풀듯 카라마츠는 형제들에게 비수를 내리꽂았다. 그때 형제들은 모두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카라마츠의 말이 끝나고 그 잠깐의 정적 속에서, 거슬릴 정도로 들렸던 빗소리가 지금의 빗소리와 무척 닮았다.



 '배타마츠, 라...'



 카라마츠가 하는 말 속에는 분명 그 이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이 정도로 심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당시 카라마츠가 내뱉었던 말이 형제들 모두가 아니라 오로지 나에게만 향했던 말이었다면 아마 내 심장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아팠으니까.

 순간 누군가가 2층으로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문을 연 사람은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였다.



 "오옷! 이치맛츄~ 여기 있었구나?"



 오소마츠 형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카라마츠를 힐긋 봤다. 평소와 다름없는 저 안쓰러운 미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더는 카라마츠를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미움받지 않으려면 최대한 눈에 띄면 안 돼.'



 나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어라, 이치맛쨩? 어디 가려고?"



 "...산책."



 "밖에 비 오는데?"



 "아, 그게, 고양이 돌보러 가야 해서..."



 카라마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도망치듯 1층으로 내려갔다.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대충 하나 챙긴 채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심장이 쿵쿵 뛰는 건 계속 달리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우산을 썼는데도, 얼굴에서 차가운 게 흘러내린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런 시선도 없이 편하게 마음 정리를 하고 싶었다. 그런 내가 다다른 곳은 결국 늘 다니던 더러운 골목길이었다.



 '숨을 곳이 여기밖에 없구나, 나는.'



  내 처지가 조금 비참했다. 그러면서도 카라마츠를 마음껏 괴롭히고 욕하다가 이제는 피해 다니는 꼴이 되어버린 게 우습기도 했다.



 '이제 카라마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지? 아니, 애초에 이게 이렇게 고민할 일인가...'



 '다들 단순히 지나간 일로 여기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카라마츠를 대하는데, 나 혼자 이렇게 예민한 걸지 몰라.'



 '하지만 내 마음이 불편한 걸 어떡해.'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게 싫다. 적어도 카라마츠에게 만큼은 완전히 외면당하기 싫다.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미움받는 것만큼 더 아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럼 대체 왜 여태까지 카라마츠를 그렇게 괴롭혔던 거야?'



 '카라마츠가 내게 다가올 때마다 내 마음이 자꾸 커져 버리니까, 그게 너무 두려웠어.'



 '미움받을 각오는 어느 정도 했었는데, 그런 각오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걸지도 몰라.'



 끝이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에 나는 벽에 기대 그대로 주저앉았다. 우산은 어느새 바닥을 향해 있었다. 우산에 빗물은 점점 고이고, 몸도 마음도 차갑게 젖어갔다. 여태껏 카라마츠를 욕하고 비난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도, 그 순간마다 카라마츠가 속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가 너무 두려웠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다. 카라마츠의 눈에 최대한 밟히지 않는 것.



 '그래, 이제부터라도 욕을 좀 줄이고... 카라마츠랑 웬만해서 말을 많이 섞지 말고, 그리고 또……'



 내 위에 우산이 씌면서 그림자가 드리운다. 우산을 씌어준 건 카라마츠였다. 꼭 이런 순간에 나타나서 사람 마음 복잡하게 한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감기 걸리게 우산도 안 쓰고 뭐 하는 건가, 이치마츠..."



 "...난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써."



 나는 내 위에 드리운 우산을 손등으로 살짝 밀어냈다. 그래도 우산은 다시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 까칠하지 않게, 좀 더 상냥하게 카라마츠를 대하려고 했는데 역시 당장 태도를 고치는 건 힘든 듯 나도 모르게 평소대로 행동해버렸다. 카라마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꿋꿋이 내게 우산을 씌어주고 있었다.



 "...여태까지 속마음을 어떻게 숨겼던 거야?"



 "갑자기 무슨 말인가?"



 "그렇게 쓴소리 할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그러지, 왜 괜히 바보처럼 행동해서 욕먹고 그래?"



 "..."



 "...우리를 그렇게 배척하는 거, 좋아?"



 나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바보같이, 그 순간에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카라마츠의 얼굴은 답지 않게 진지했지만 어째서인지 그 눈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카라마츠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본다.



 "이치마츠, 그럼 최근 나를 피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떨구었다.



 "...여태까지 넌 나를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지 상상도 안 가."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서 오한이 느껴졌다. 이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카라마츠가 나를 벽에 밀어붙여 세웠다.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팔로 벽을 막은 채.



 "내가 싫어졌어?"



 카라마츠의 한마디에 나는 온몸이 굳어버린 듯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은 카라마츠를 좋아한다. 정말 많이, 지금까지도.



 "난 애초부터 너에 대한 좋은 감정이 없었어."



 "거짓말."



 정적 속에 빗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음속에서 나는 카라마츠를 좋아한다고 외치고 있다. 비록 빗소리에 묻혀 그 울림은 덮였지만, 나는 끊임없이 외쳤다. 전부터 지금까지 쭉.



 "이치마츠 네가 날 좋아한다는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어."



 한기가 맴돌 뿐이었던 내게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우산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두 손이 내 얼굴을 감쌌고, 서로의 입술이 포개졌다. 카라마츠의 본심은 겉과 다르게 어두웠지만, 이 입맞춤은 너무나도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내가 언제나 봐왔던 카라마츠처럼.











Fin






쉬어가는 곳

[Lemon]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