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축은 3.0 이후. 모험가 이름, 성별, 외형, 종족 고정입니다. 주의해 주세요.

  리올이 잠입 조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러 온 돌의 집에서 밀리아리아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멀찍이 보이는 모습에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하자 밀리아리아는 마침 타타루에게 의뢰 종료 보고를 끝낸 참이었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부리나케 뛰어왔다. 서로 장기 임무로 예정이 꽉 차 있었던 탓에 무척이나 오랜만에 이루어진 재회였다.

  "오, 잘 지냈어?"

  음식을 주문하고 즐겨 앉던 둥근 테이블 앞에 자리하는 리올의 옆자리에, 마찬가지로 주문을 마치고 착석한 밀리아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곤 방긋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쌓인 회포를 풀었다. 위험했던 임무, 시시콜콜한 일상, 동료의 안부 등등……. 주위에서 빈 그릇을 치워준 것조차 몰랐을 정도로 대화에 열중했던 두 사람은 갑자기 들리는 링크펄 소리에 놀라서 마주 보았다. 리올에게 온 연락이었다.


  "…산크레드? 그래. 그쪽은?"

  리올은 정기 통신조차 잊고 있었던 부주의함에 내심 혀를 차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확실해지기 전에는 새벽 동료들에게까지 기밀인 경우가 많았기에 혹시 몰라 자리를 피해주려고 움직이는 밀리아리아의 손을 그가 덥석 잡았다. 밀리아리아가 일어서려다 만 채로 입을 뻐끔거리며 수줍어하자 리올은 순간 아차 싶어 하던 말을 멈추고 멍하니 상대를 바라보았다.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그저 여기 있어도 된다는 뜻으로 얼결에 잡은 것이었고, 워낙 조용하고 침착한 사람이라 담백하게 수긍하며 도로 앉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간단히 잡힌 자그마한 주먹이 그의 손바닥 안에서 꼼지락거렸다.

  '…아, 젠장. 글렀다.'

  산크레드에게는 미안하지만, 손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연락 내용 따위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맡은 바를 다하려면 손을 놓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도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손아귀에 힘을 주니,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여 꼭 마주 잡아 왔다. 리올이 옆으로 슬쩍 눈을 돌리자 반짝사과처럼 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고 딱딱하게 굳은 밀리아리아가 보였다.

  "미안. 이따 다시 연락할게."

  그는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며 다급하게 부르는 산크레드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서둘러 링크펄 통신을 종료했다. 멀리서 동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의 테이블에는 오로지 어색한 침묵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리올은 이어진 손을 바라보다 다른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 곤란한 아가씨를 어찌한다? 슬쩍 몸을 움직여 사람들의 눈에 닿지 않도록 가리고 손가락으로 손등을 살살 간질이자 몸이 파드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애처로울 정도로 귀여운 반응을 보며 리올의 가슴 속에 크게 풍랑이 일었다.


  밀리아리아가 리올 자신에게 동료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말은 안 해도 표정이나 태도에서 다 드러나는 사람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특별하고 대단하신 영웅님. 어느새 발치에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린 상대가 보이는 희미한 연정은 서로에게 득이 될 것 같지 않아 애써 못 본 척하려고 했다. 최전선에서 심신이 너덜거릴 때까지 싸우는 영웅과 잠입처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첩보원은 가까워져서는 안 될 거라고, 이제까지 그래왔듯 적당히 기분 좋은 거리를 유지한 채 표표히 떠다니는 편이 딱 맞을 거로 생각했었다.

  "……이럴 예정이 아니었는데."

  작게 중얼거린 말이 들렸는지 밀리아리아가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휘둥그레 뜬 머루색 눈에 열없어 얼굴이 붉어진 자신이 비쳤다. 아무 일도 아닌 척 리올은 씩 웃어 보이고 쥐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서로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온기가 온몸을 훈훈하게 덥혀 주고 있었다.


  "조금만 더 얘기할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대답하고선 자신과 이어졌던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고 웃는 밀리아리아를 보며 리올은 결국 견디지 못한 작은 배 한 척이 백기를 올리며 정박할 때가 머지않은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에 몸을 잘게 떨었다.


드림러.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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