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맥고나걸의 부탁에 의해 해리가 학교에 남을 학생의 신청서를 접수하게 되었다. 비단 5학년이나 6, 7학년이 아니더라도, 부활절 연휴가 크리스마스 연휴보다 짧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되었는지 학교에 남는 학생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은근히 많았다. 리무스가 학교에 남는다는 신청서를 내러 해리의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해리는 리무스 혼자만 남는다는 것에 의외라는 듯이 반응하고 말았다. 리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붙어 다니는 것은 아니야.”
  “…… 아니야?”
  “뭐, 확실히 그 둘은 이번에도 연휴 내내 붙어 다니려는 모양이지만.”

  리무스는 해리가 내준 코코아를 마시며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이야기를 일부 들려주었다. 시리우스를 마중 나온 블랙가 고용인들을 따돌리고 순간이동으로 엘더베리 밸리에 가서, 그쪽 머글 마을에서 꽤나 소란스럽게 돌아다녔던 이야기를 해주다가 리무스는 문득 재미있는 기억이 떠올랐는지 혼자 웃으며 말했다.

  “해리, 너는 머글들이 쓰는 돈이 종이라는 걸 알고 있어?”
  “응.”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해리가 너무 쉽게 수긍하자 리무스는 조금 머쓱했다. 생각해보면 해리는 어린 시절을 머글 마을에서 보냈다고 했으니 아는 게 당연했다. 리무스가 잠시 말없이 코코아를 두어 모금 더 마시는 것이 재미있어서 해리는 피식거리고 웃었다. 그게 리무스에게는 제법 얄미운 미소로 비쳤던 모양이다. 리무스는 가만히 해리를 쳐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너는 같이 가고 싶지 않아?”

  그 질문은 리무스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짓궂게 들렸다. 그야 같이 가고 싶은가, 아닌가 하고 묻는다면 같이 가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이었다. 애초에 과거로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을 ‘보고 싶어서’ 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리는 그저 애매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드릭 골짜기에는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것 같은 바틸다 백숏이 있었다. 해리는 이 이상으로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을 늘려서 혹시 모를 위험을 초래하기 싫었다. 그리고 이미 그의 조부모는 한 번 만나 본 셈이기도 했고,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제임스가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외의 이유들은 그저 사후에 갖다 붙인 핑계에 불과했다.

  리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너무 불편한 질문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제임스는 왜 해리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다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 물론 그 ‘다같이’ 에서 리무스 본인은 제외한 상태였다. 부활절 연휴중의 보름은 모처럼 혼자서 맞이하는 보름이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리무스는 문득 자신이 ‘모처럼’ 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지금껏 지냈던 수많은 보름들 중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낸 밤은 횟수로 따지면 이제 겨우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리무스에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안정감을 선사했지만, 지금처럼 반대의 경우에는 기묘한 박탈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굉장한 허전함을 가져다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함께 지낼 수 있을까. …… 나도 너도.’

  자신의 학창 시절은 이제 고작해야 2년하고 몇 달이 더 남았을 뿐이었다. 졸업을 하고 나면 지금까지와는 결코 같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리무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리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같이 있을 수는 없을 터였다. 언제가 될 수는 알 수 없었지만 해리 역시 미래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제임스의 아들이니까 다시 만날 수야 있겠지만 지금의 해리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 터였다.

  리무스는 무심코 해리의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수상해 보이는 수업자료들이 꽤나 널려있긴 했지만, 1년 가까이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의 개인 소지품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안쪽의 개인침실로 가면 사정이 달라질 지도 모르지만, 이곳은 개인공간이라기보다는 공용공간으로 보일 정도였다. 마치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을 것처럼……? 리무스가 스스로 한 생각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는데, 해리가 물었다.

  “뭐 찾아?”
  “아니…… 여기 꽤 자주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리무스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애초에 해리는 별로 물욕이 많은 타입도 아니었으니 소지품이 별로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리무스가 뭘 봤던 건지 궁금한 듯 자기도 주변을 둘러보는 해리에게 리무스는 화제도 돌릴 겸 일부러 가벼운 투로 물었다.

  “연휴동안 뭘 할 거야?”
  “글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사실 딱히 할 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해리는 지루하다는 듯이 살짝 코끝을 찡그렸다. 그것은 가끔 제임스가 심심해할 때 짓던 표정과 꼭 닮아있어서, 리무스는 새삼스럽게 신기해했다.

  “리무스는 역시 시험 준비?”
  “그렇지 뭐. OWLs가 코앞이니까.”

  대답하다 말고 리무스는 ‘아,’ 하더니 해리에게 물었다.

  “교수실 출입 금지는 언제부터야?”
  “음? 그게 뭐야?”
  “응? 시험기간이잖아. 부활절 지나면 다들 그러실 텐데.”
  “아…… 그래?”

  처음 듣는 것 같은 이야기에 해리는 눈만 깜빡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해리는 별로 교수실에 자의적으로 찾아가본 적이 없었다. 맥고나걸이 해리를 가끔 불렀고, 스네이프를 찾아갔던 건 자의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 외에는 록허트라든가 엄브릿지라든가― 하나같이 달갑지 않은 이유로 자신을 호출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니 시험기간에는 출입금지가 되는지 마는지 알 리도 없거니와 애초에 그걸 알 만큼 관심도 없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해리가 자의로 자주 찾아갔던 교수가 한명 있긴 했다. 눈앞에 있는 리무스 루핀이었다.

  지금은 리무스가 자신을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해리는 지금도 가장 좋았던 교수님을 말하라면 루핀 교수를 첫 번째로 꼽았다. 해리가 자기를 보고 웃자 리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 갑자기 예전 생각이…… 라고 하니까 좀 이상한가. 아무튼 나한테는 예전 생각이 나서.”

  해리는 전에도 궁금해 했던 것이 있었다. 해리는 리무스에게 배웠던 것을 리무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면 리무스는 후에 해리에게 배웠던 것을 해리에게 가르쳐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 먼저인지, 혹은 무엇이 무엇의 원인이고 혹은 결과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이것이 덤블도어가 말했던 타임 패러독스일까 생각하면서, 해리는 이것을 리무스에게 말해주었다.

  “나하고 내 친구들은 리무스를 교수님이라고 부르거든.”
  “교수님?”

  자기가 들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호칭에 리무스는 놀란 것 같았지만, 해리는 그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고, 다만 자신과 친구들이 리무스에게 배운 마법이 많다고만 말했다. 정식 교수가 된다는 것인지, 별명처럼 교수님이라고 불렀을 뿐인지 모호한 말에 리무스는 잠깐 고민했지만 곧 해리가 말한 타임 패러독스라는 개념에 더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해리로서는 그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같지 않냐며 ‘참 어렵죠?’ 하고 한번 웃고 말 생각이었지만, 무려 시간여행을 한 당사자를 눈앞에 두기까지 한 김에 리무스는 거기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 또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해리는 선수쳐서 말했다.

  “음, 리무스, 언제 한번 래번클로 기숙사에 가보는 게 어때?”
  “래번클로 기숙사? 거긴 왜?”
  “어…… 기숙사 문앞에 가보면 알게 될 거야.”

  해리도 래번클로 기숙사에 가본 건 딱 한 번이었지만, 입구로 들어가려면 난해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류의 이야기라면 어쩌면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다른 기숙사 입구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원래는 모르는 게 정상이지만, 행동력이 발군인 친구들을 둔 덕분에 리무스는 가본 적은 없어도 래번클로의 입구가 서쪽탑 6층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해리가 저렇게 말한다면 한번 가볼까, 투명망토를 빌려달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는 리무스에게 해리가 말했다.

  “아니면 나중에 내 친구랑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친구?”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미온느라면 이런 주제로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해리는 그 주변에 절대 접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쩌면 리무스가 모르는 책까지도 자료로 찾아올지도 몰랐다. 마침 얼마 후면 OWLs이기도 했기 때문에, 헤르미온느에 관해 OWLs에서 모두 O를 받은 친구라고 말해주면서 해리는 괜히 자기가 뿌듯해했다. 리무스는 약간 질려하면서도 굉장하다며 솔직하게 감탄했다.


 
  연휴동안 마땅히 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해리는 마법부에서 주관하는 5학년과 7학년을 제외한 다른 학년들의 시험 문제를 내보기로 했다. 학생일 때는 미처 몰랐지만 막상 문제를 내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것도 생각보다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자신은 시험 때 어떤 문제를 풀었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려다가 해리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만 좌절했다. 처음에는 문제를 다 낼 때까지 학생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교수실에만 있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굉장히 답답한 일이었다. 휴가 끝나기 전까지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해리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했다.

  복도에서 리무스와 마주쳤을 때, 리무스의 안색이 유난히 파리한 것을 보고 해리는 처음에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나 하는 생각에 걱정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말하던 중에 해리는 곧 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무스가 말로는 신경써주어서 고맙다고는 했지만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져서 해리는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제임스는 기분이 내키면 해리를 자신들의 비밀장소 중 하나로 초대하기도 했지만 아직 몇 가지는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리무스가 늑대인간이라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을 못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리무스가 비밀로 하기를 원한다면 비밀을 지켜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보름이 지나고 리무스가 다시 기운을 되찾을 무렵 해리도 가까스로 문제를 다 낼 수 있었다. 자신이 낸 시험문제를 한번 훑어보고 정말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며 뿌듯하게 맥고나걸에게 말하러 갔을 때, 맥고나걸은 뭘 이렇게 서둘렀냐며 오히려 놀라워했다.

  해리는 그제야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를 하는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기왕 만든 문제를 없었던 걸로 할 수도 없어서 그저 머쓱하게 웃으며 ‘좀 성실해져 봤어요.’ 하고 둘러댔다. 맥고나걸은 그저 ‘성실한 것은 좋은 일이죠.’ 하고 말했을 뿐이었지만, 해리에게는 제풀에 ‘학생 때 좀 그래보지 그랬니.’ 하는 것처럼 들려서 괜히 뜨끔했다.



  시험 문제도 다 냈겠다, 해리는 모처럼 연회장에서 학생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일부는 뭔가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해리에게 눈을 빛내며 시험에 뭐가 나오냐고 물었고, 일부는 시험 얘기 같은 거 듣기 싫다는 듯 귀를 막고 테이블에 엎어지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5학년과 7학년들은 어차피 해리가 자기들 문제를 내는 게 아니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죽을 상을 하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반쯤 지났을 무렵 슬리데린들이 내려왔다. 이번에는 네 기숙사 중 유난히 슬리데린 중에 남는 학생이 적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은 인원의 반도 되지 않았다. 해리는 그중에 스네이프가 섞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 겨울에는 계속 혼자 있더니 이번에는 친구들과 지내는 건가, 하고 해리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고개를 돌리던 스네이프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해리를 마주보던 스네이프의 시선이 곧 해리의 옆에 앉아있는 리무스에게 가 닿았다. 그 직후 스네이프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해리는 그가 혐오스럽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것을 보았다. 해리는 문득 겨울학기 내내 그가 자신에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에반스 교수님?”

  해리가 갑자기 식사도 멈추자 리무스가 해리를 불렀다. 해리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스네이프의 주위에 앉아있는 슬리데린들을 계속 흘끔거렸다. 그리고 해리는 머릿속으로 바쁘게 기억을 더듬었다. 스네이프가 언제쯤을 죽음을 먹는 자가 됐더라? 처음에는 막연히 친구들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지만, 그들 중 뮬시버와 애버리의 얼굴을 알아보고 해리는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처 신경쓰지 못하던 사이에 과거는 차근차근 원래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혹시, 자기가 조금 더 움직이면 미래를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떠올리다 말았던 막연한 생각이 다시금 좀 더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볼드모트를 처치하고 완전히 미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큰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들은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해리는 지금 볼드모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덤블도어라든가 다른 누군가에게 물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는 호크룩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늘 볼드모트의 옆에 있을 내기니라든가 인페리우스가 지키는 동굴에 있는 슬리데린의 로켓, 벨라트릭스의 금고에 있는 후플푸프의 잔처럼 당장 손대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바로 이 호그와트의, 필요의 방에 래번클로의 보관이 있었다. 해리의 생각은 점점 호크룩스를 없애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호크룩스 하나를 없애면 볼드모트가 약해지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었지만, 해리는 자신이 미리 래번클로의 보관을 없앴을 때, 적어도 볼드모트와의 마지막 일전에서 그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렇다면 최소한 한 명의 죽음이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날 싸움에서 덧없이 스러졌던, 프레드나 리무스, 통스, 어린 콜린 크리비, 누구라도. 해리는 점차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래번클로의 보관만 호그와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그리핀도르의 검 역시 호그와트에, 정확히는 교장실에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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