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 님과 나눈 썰 기반: https://twitter.com/nucloudy_bb/status/1602488395502010368?s=20&t=iYhieVfoknQOJDZOJJ5oTg]


“눈 온다.”


조금씩 흩날리기 시작하는 하얀 눈발을 발견한 버키가 창가로 다가갔다. 드문드문 내리던 눈이 점차 크기를 키워가더니 펑펑 쏟아졌다. 길가엔 그새 하얗게 덮인 곳도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구경하던 버키의 등 뒤로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온기가 덮쳤다.


“계속 보고 있을 거야?”


어깨 위에 턱을 얹은 스티브가 물었다. 버키가 닿은 뺨을 가볍게 맞비비고 허리에 감긴 팔 위로 손을 얹어 만지작댔다.


“예쁘잖아.”

“그러게.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


뺨에 짧게 입맞춤을 남긴 스티브가 멀어져 갔다. 버키가 의아함을 담아 뒤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다시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꽤 오래 내릴 것 같았다. 멍하니 그 풍경을 감상하던 버키의 눈앞에 불쑥 파란 머그잔 하나가 들이밀어 왔다. 달큰한 초콜릿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옆을 돌아보자 미소 띈 스티브가 재촉하듯 고갯짓을 해 보였다. 그의 반대쪽 손에는 같은 색상으로 ‘S’가 그려진 잔이 들려 있었다. 잔을 받아 들고 후, 가볍게 입김을 불어 식힌 버키가 한 모금 들이켰다. 달콤함이 입안을 휩쓸다 사라지고 적당한 쌉쌀함이 혀끝에 머물렀다. 어느새 바닥에 자리 잡은 스티브가 버키의 손을 약하게 잡아 끌었다. 조심조심 그 품 안에 자리 잡은 버키가 편안하게 몸의 힘을 풀고 뒤로 기댔다. 스티브가 등에 걸치고 있던 담요를 무릎 위로 옮겨 덮고 버키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어릴 때 생각난다.”

“언제?”

“애들이랑 눈싸움 하다가 너 쓰러졌던 날.”

“아아. 네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던 날?”


스티브가 장난스레 대꾸하자 버키가 팔꿈치를 뒤로 휘둘러 그의 허리를 가격했다. 야, 너, 왼팔로……. 허리를 움켜 쥔 스티브가 앓는 소리를 냈다. 엄살 떨지 마. 버키가 태연히 코코아를 들이켜며 대꾸했다.


“그때 너 진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잘 놀던 애가 갑자기 쓰러져서 이틀을 꼬박 정신 못 차리는데…….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알아? ”

“응, 알아, 알아. 미안해. 화내지 마, 벅.”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 났는지 격양된 버키를 더 당겨 안은 스티브가 애교스럽게 목덜미에 입술을 부벼댔다. 그 모습이 황당하면서도 거기에 넘어가는 스스로가 더 어처구니가 없어 결국 헛웃음이 터지고 만다.


“하여간, 쓸데없이 의지만 강해서는. 아프면 아프다고 했어야지. 그걸 미련하게 꾸역꾸역 참고 있냐.”

“네가 즐거워했잖아. 너 웃는 거 보고 있으면 하나도 안 아팠어.”

“……. 말은 잘하지.”


민망해진 버키가 조용히 잔만 홀짝거렸다. 그게 귀여워 이번엔 스티브의 입에서 부스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여전히 버키의 목덜미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숨결을 따라 오소소 소름이 돋아 버키가 몸을 가볍게 뒤챘다. 간지러워! 그가 불쾌감이 실리지 않은 짜증을 내질렀다.


“버키, 눈 그치면 눈사람 만들러 나갈까?”

“갑자기?”

“재밌잖아.”

“좋아.”


두 사람 얼굴에 즐거움 가득한 미소가 피어오르며 조용히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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