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은 어둠 속에서 홀로 앉아 쉼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겨우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 도망친다고 해도 또 다시 영성군은 자신을 쫓아올 뿐이었다. 자신에게 이 힘이 있는 이상 도망갈 길은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이 곳에서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연은 그게 누군지 알고서 고개를 들었다. 

 

 

“여랑은 무사합니까?” 

“무사합니다. 지금 쉬고 있으니 곧 회복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하연님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감사하다는 말은 자신이 들을 말이 아니었다. 하연은 여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흑영을 마주봤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따로 있으시겠지요.” 

 

 

흑영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연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렸다.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흑영이 말했다. 

 

 

“어찌하실 계획입니까.” 

“글쎄요. 계획없이 저지른 일이니 이제부터 고민해봐야겠지요.” 

“그들은 당신 또한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압니다. 그래도 여랑까지 여기 갇혀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이제 제가 뭘 선택하더라도 그의 안전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 죽을 생각입니까?” 

“할 수 있는 한 죽지 않고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제 바람이지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제가....” 

“마음은 감사하지만 하실 수 없는 일인 거 압니다. 아마도 제 운명은 이렇게 정해져 있었나 봅니다.” 

 

 

흑영은 하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었다. 자신은 하연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운명이 정해진 일이었고, 그것은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였다. 

 

 

“하연님. 부디 견디시길 바랍니다.” 

“견딜 겁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텨볼 겁니다. 분명 길이 있겠죠.” 

“당신을...” 

 

 

흑영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문 앞에 인기척이 느껴지며 문이 열렸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영성군이었다. 그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들어와 하연에게 말했다. 

 

 

“그래. 아직도 나를 돕겠다는 마음이 안 드는 건가?” 

“말씀드렸듯이 전, 절대 당신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네가 죽어도 말인가?” 

“예.” 

 

 

하연은 영성군의 어떤 말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한 모습에서 영성군은 더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러던 중 문득 여랑이 떠올랐다. 

 

 

“만약에 너를 죽인다고 하면 그 요물은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 

 

 

영성군의 말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던 하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영성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네가 목숨 걸고 탈출시켜줄 정도인데 너를 죽인다고 하면 그 요물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관계 없는 사람은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관계가 없다라... 글쎄.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다음 수를 생각해야지.” 

“영성군!!” 

“나는 궁금하군. 과연 그 요물도 너를 돕기 위해 돌아올 것인지.” 

“그는 이미 떠났습니다.” 

 

 

입술을 깨물고 있던 하연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맛에 더욱 마음이 불안해짐을 느꼈다. 여랑이 이 상황을 알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누구의 방해를 받아도 반드시 왕이 될 것이다. 사실 네 놈이 필요한 것은 그걸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도일 뿐. 자꾸 내 계획에 방해가 된다면 너를 살려둘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절 죽이신다고 해도 당신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당신이 지금의 임금보다 더 뛰어난 임금의 자질이 있다고 해도 당신은 결국 자신의 욕심 때문에 반역을 저지르는 겁니다. 그런데 어찌 더 뛰어난 군왕이 될 수 있습니까.” 

“나 하나를 위한 욕심이라… 그런 것 같은가?” 

“아니라고 하실 수 있으십니까? 지금의 임금께서 민심을 잃으신 건 사실입니다. 백성을 살피지 않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겠지요.” 

 

 

하연의 맑은 눈빛이 영성군에게 향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연을 보던 영성군이 처음으로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영성군은 아무런 대답도 그 어떠한 표정도 없는 얼굴로 하연을 보고 있었다. 하연은 자신이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백성들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임금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서겠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겠지요. 그만큼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일 겁니다. 허나, 영성군께서는 정말로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 이러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희 일족은 백성이 아니었습니까?” 

“그건..” 

“압니다. 그저 왕명이었다고 하시겠지요. 그러나 제가 봤을 때 결국 영성군은 지금의 임금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사욕을 위해 왕위를 탐내는 것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잠잠하던 영성군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그리고 분노한 그는 검을 꺼내 하연에게 겨누었다. 서늘한 그 감촉이 하연에게 닿자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연은 그 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제 말에 화가 나십니까?”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럼 말해보십시오. 지금의 임금과 당신은 무엇이 다릅니까?” 

 

 

 

 

달을 보며 위안삼듯이 누군가가 나의 글에 재미와 위안을 받길 바라며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공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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