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영이 한국에 돌아온다고 했다. 5년 전, 기타 하나 매고 호기롭게 유럽으로 떠난 그 아이가 유명가수가 되어서 드디어 돌아온단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여주는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돌아오는구나, 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그렇게 반응한 건 아니었다. 사실 여주와 순영은 그 누구보다 친한 사이였으니까.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봐온 사이이고, 같이 살았다.(정확히는 같은 주소를 공유하고 있다.)그러니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였다.

 

뭐..엄밀히 따지자면 법적 관계가 더 가깝긴 했으나 아무튼 여주와 순영은 친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부부사이였으니까.

 

5년 전. 25살의 여주와 21살의 순영은 결혼을 했고, 결혼하자마자 헤어져서 서로의 얼굴을 못 본지 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부부였다. 다만, 여주가 보고 싶은(?) 법적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그렇게 미지근하게 반응한 이유는 그게 별로 놀라운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5년 전, 독일로 떠난 순영은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편지나 엽서를-카톡이나 이메일을 보내면 되지 않으냔 말에 순영은 그게 더 낭만 있잖아, 라고 대답했다-보내왔고, 가끔씩 한두 달씩 연락이 끊길 때도 있었지만..? 그 뒤에 장문의 편지로 이러이러한 사정 때문에 연락하지 못했다는 고해성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주는 제 법적남편이 독일에 있든, 한국에 있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지난 5년 동안 순영의 빈자리를 느낀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계속 함께 있는 것 같았는데, 그가 발 딛고 서있는 나라와 장소가 조금 바뀐다 한들..그게 그렇게 큰일인가?

 

누군가는 매 순간을 함께하며, 함께 울고 웃고 하는 그런 형태의 관계를 ‘행복한 가족’이라 정의하겠지만 여주는, 5년 동안 연락만 주고받는 사이여도 충분히 행복한 ‘가족’이란 이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여주에게 가족이란 순영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사람, 정도였으므로. 더 보태자면 미치도록 미운 사람들, 정도랄까. 행복한 가족은커녕 가족에 대한 의미조차 부족했다.

 

하지만,

 

누나! Lange nicht gesehen!

..무슨 뜻이야?

아, 무슨 뜻이냐면..그게, 오랜만이야!

아..오랜만이란 뜻이구나. 그래, 나도 오랜만.

응! 으아아..드디어 돌아왔다. 역시 유럽이랑 한국은 다르네!

고생했어. 밥은?

기내식 먹었지, 뭐. 기내식 먹는 시간 빼곤 다 잤어. 전날 밤 샜거든. 으으, 삭신이야.

 

여주는 순영을 만나고 나서야, 가족에 대한 정의를 찾았고 가족이란 단어에 의미를 새겼으므로 순영이 돌아오는 날에 시간 맞춰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마주한 순영은 그 전보다 조금 선이 굵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고,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던 검은색 머리는 주황빛을 띄는 갈색곱슬머리로 변해 있었다.


家族になってください

가조쿠니 낫테쿠다사이


01화. 5년이란 세월.

 

“먹고 싶은 거 있어? 한식 그리웠을 텐데, 사줄까?”

“진짜? 그럼 백반 먹으러 가자..! 나 그거 너무 먹고 싶었어.”

“그래, 내가 살게.”

 

여주는 순영을 바라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5년 만에 만난 순영은 많이 달라졌으니까.


21살의 권순영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인사를 했는데, 26살의 권순영은 웃는 얼굴로 I'm come back을 알렸다. 5년 전의 순영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ㅇ이 들어가 웅냥냥거리는 새끼 고양이 같았는데, 지금은 제법 어른 고양이 같이 또박또박한 말투를 구사했다.


그때의 순영은 외국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심지어는 한국말을 잘 못할 때도 있어서 한국어 레슨도 받아야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의 순영은 숨 쉬듯이 외국어를 말했다. Lange nicht gesehen!나(조금 전의 인사말이다.), Mi ciudad natal es Corea!나(심호흡을 하고 난 후에 한 말이다.), Mon Dieu, c'est trop mignon!(걸어가는 아기를 보고 주저앉으며 한 말이다.)같은 것 말이다.

 

“아, 순영아.”

“응?”

“돌아온 걸 환영해.”

“..응. 고마워. 진짜 돌아온 것 같다.”

“진짜로 돌아왔어, 바보야.”

“앗, 그러네. 헤헤헤.”

 

하지만, 돌아온 걸 환영한단 인사에 환하게 웃는 건 5년 전과 같아서, 여주는 안심했다. 역시 권순영은 권순영이구나.

 

‘5년 만에 만난 그 애는 여전했지만, 또 달랐다.’

순간 떠오른 문장에 여주는 그 문장이 마치 웹소설 제목 같다고 생각했다. 뭐, 사실 여주와 순영의 삶은 정말로 웹소설과 비슷하긴 했다.


**


집에 돌아오자마자 순영은 요란법석을 떨며 커다란 캐리어를 열었다. 5년 만의 재회를 기념해 여주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순영은 5년 동안 공연하는 지역을 옮길 때마다 작은 선물을 보내곤 했는데, 대부분 손수건이나 인형이나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사탕 같은 간식이었다. 독일과 한국사이의 거리 때문에 갓 만든 빵이나 음식 같은 걸 보낼 수 없다는 점을-정확히는 ‘보낼 수는’ 있지만 갓 나온 음식을 함께 먹을 수는 없다는 점을-순영은 가장 아쉬워했다.

 

“찾았다!”

“찾았어?”

“응! 자, 이건 뭐냐면 말이지-”

 

지잉- , 한참을 커다란 캐리어를 뒤적거리던 순영이 드디어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꺼내든 순간-여주는 그 동안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받아 정리하며, 저 캐리어에 물건이 얼마나 들어갈까를 생각했다-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순영아. 전화 오는 것 같은데.”

“아, 괜찮아. 안 받아도 돼. 나 한국 들어왔다는 기사 떠서 그런 거야. 아마 친구들일 걸.”

“진짜? 진짜 안 받아도 돼?”

“음..그게...”

 

받을 필요 없는 전화라며 자신하던 순영은 진짜 안 받아도 되냐고 묻는 여주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도리질을 했다. 그 필사적인 얼굴이 지금은 그 전화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안 돼..! 라고 외치는 것만 같아 여주는 잔소리하려던 것을 관뒀다.

 

하지만, 세심한 여주와는 달리 그 진동 소리는 무지 끈질기고 포기를 몰랐다.

 

진동 소리는 10초 정도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내다가 스스로 꺼지고, 신난 순영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또 다시 울렸다. 그게 세 번 정도 반복되자 순영은 눈치 없는 자식 같으니! 라고 외치며 씩씩거리는 얼굴로 전화를 받으러 갔고, 여주는 그런 순영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아, 나 지금 집이라고..! 연락하지 마! 기사 봤으면 됐지, 뭘 그래! 아, 진짜! 이래서 내가 너 싫어해! 꼭 이런 때만 전화해서 방해하고 있어! 어?”

 

덜 닫힌 문 너머로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라더니, 정말로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내는구나. 순영은 발까지 동동 구르며 씩씩거렸다. 여주는 그런 순영이 열 받은 햄스터가 펄펄 뛰는 것 같아 보여서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조금 뒤, 흡사 전쟁을 치른 것만 같은 표정의 순영이 시익시익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왜 그렇게 짜증이야. 친구 전화 아니었어? 살살 달래듯 물으면 초췌하던 얼굴이 서서히 동그랗게 차오르더니, 서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변한다. 누나아, 내가 있지이..늘어지는 말꼬리와 울망한 얼굴은 꼭 사탕을 뺏긴 5살짜리 어린아이 같아서 여주는 순간, 순영이 5년 동안 외국에 있던 것이 아니라 5살짜리 아이가 되어 돌아왔나 생각했다.

 

“짜증났어?”

“응..5년 만에 만난 건데, 방해하잖아.”

“난 괜찮은데.”

 

난 안 괜찮아! 괜찮지 않다고 소리치는 얼굴이 제법 단호하다. 여주는 아이 같다가 어른이 됐다가를 반복하는 순영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순영이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분명 걔, 기사 보고 전화했을 거란 말이야..나 한국 들어왔다는 기사 떴을 텐데..

 

“그래, 그렇겠지. 너무 화내지 마. 네가 그렇게 반응해주니까 더 그러는 거야.”

“응...”

 

알고 있겠지만, 순영의 직업은 가수다. 26살. 예명, 호시. 가수가 되겠다며 호기롭게 외국으로 떠났던 21살의 권순영이 26살의 가수가 되어 돌아온 거다. 그 사실이 너무 기특해, 여주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누나? 왜 그렇게 웃어?”

“아, 그냥..가수가 되겠다면서 다짜고짜 독일로 갔을 때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가수가 돼서 돌아왔네?”

“아..”

“대견해서 그러지, 대견해서.”

 

갑작스러운 칭찬에 순영은 귀 끝까지 붉게 물들었다. 빨갛게 변한 얼굴을 감싸 쥐고 순영이 온 몸을 배배꼬았다. 누, 누나는..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순영의 말에 여주가 하하,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러게, 넌 변했는데 난 변한 게 없네.

 

확실히, 5년 전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여주는 천천히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주가 26살이고, 순영이 21살이던 그때의 기억 속으로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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