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제노








이제노는 개 같다.


아니. 사람들이 흔하게 하는 욕으로 하는 그런 '개 같다.'라는 말이 아니고 진짜로 '개'같다고.






* * *






"모두 수고했어. 내일 보자고."


“수고하셨습니다-"





퇴근 인사와 함께 나가시는 팀장님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컴퓨터를 끄고 갈 준비를 하는데 파티션 너머로 오늘 한잔 할 사람!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저요! 저도요! 하는 대답이 들려온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한번 쳐다보는데





“왜. 김여주 너도 가게?"


“아니. 갈 생각 없어. 그냥 누구누구 가나 본 거야."


“그럼 그렇지. 강아지 때문에 회식도 잘 안 가는데.”





헉, 여주 대리님 강아지 키우세요? 뒤에서 최희진과 하는 대화가 들렸는지 신입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온다.





“아니.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


“네? 근데 방금 희진 대리님이...”


“아아- 현정씨가 생각하는 강아지 말고.”


“?”


“현정씨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 간다.”





얼른 가라. 너희 강아지 목 빠져라 기다리겠네. 최희진에게 대충 손을 흔들고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퇴근하는 직원들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 끼여 타 1층에 도착했다는 차임벨이 울리고 우르르 빠져나왔다. 그대로 1층에 있는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나!”





카운터에 서서 얘기를 하다 나를 보고서는 바로 인사를 하고 달려오는 해맑은 이제노. 눈짓으로 뒤에 있는 카페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 이제노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오늘은 밖에서 뭐 먹고 들어갈까?”


“어! 좋아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누나는요? 누나 먹고 싶은 거 먹어요!"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반대로 나에게 그 대답을 재촉하는 이제노. 흐음- 고민을 하며 같이 걷다가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초밥으로 메뉴를 정했다. 주문을 한 초밥이 이제노와 내 앞에 각각 놓이자마자 젓가락을 든 이제노가 연어초밥을 집어 내 앞접시에 놔줬다.





"나도 여기 있는데?"


"누나 연어 좋아하잖아. 내 것도 먹어요."





그러는 자기도 연어 좋아하면서. 여기서 괜찮다고 해도 먹으라고 할 게 뻔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연어초밥을 먼저 먹자 이제노가 맛있냐고 물어온다. 고개를 끄덕이자 눈을 반달로 접어가며 웃는다.






* * *






“야. 김여주씨. 여기 커피.”


“오, 땡큐 땡큐-”





들려오는 최희진의 목소리에 구부정하니 숙이고 있던 허리를 쭉 펴며 몸을 돌려 커피를 건네받았다. 진짜 간절하게 커피 수혈이 필요했던 차라 받자마자 바로 커피를 마시는데 책상 위로 놓이는 쿠키 포장지에 마시던 걸 멈추고 시선을 올려 이게 뭐냐는 뜻으로 쳐다봤다.





“설마 고생하는 나를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고.”


“너무 칼 같이 대답하네. 서운하게.”


"네 강아지가 너 주라고 챙겨준 거야."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이제노는 알라나. 최희진이 자기를 김여주의 강아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걸. 너 안 보이니까 엄청 서운해하던데. 뒤이어 들려오는 최희진의 말에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제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뭘 서운해해. 어차피 퇴근하면 볼 참인데."


"그러니까. 그런데도 점심에 그 잠깐 못 봤다고 그러잖아."


"저... 제가 감히 이런 말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며칠 전에 SNS에서 본 짧은 영상이 있었거든요? 뒤에서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입이 의자를 끌고 와 조심스레 말을 꺼내길래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커피를 쭉- 들이키며 신입의 말을 듣다가 커피를 뿜을 뻔했다.





"주인이 강아지 미용 맡기고 갔는데 들어오는 사람마다 그 강아지가 자기 주인인 줄 알고 쫑긋거리면서 쳐다봤다가 아닌 거 알고 바로 시무룩해지는 거였는데."


"아하...."


"저 오늘 그걸 보는 줄 알았잖아요. 그... 여주 대리님 강아지 분...?"


"하... 현정씨도 그렇게 부르면 어떡해요."


"앗, 죄송해요. 희진 대리님이 계속 그렇게 부르시길래 저도 입에 붙어서..."





하여튼 딱 저희가 문 열고 들어가니까 눈을 이렇게 크게 뜨시더니! 여주 대리님이 안 보이니까 눈꼬리가 이렇게 쳐지는데- 양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눈앞에 갖다 대더니 이번에는 눈 끝을 잡아내리며 우는 표정을 짓는다. 최희진이 말하는 대로 이제노가 강아지처럼 귀와 꼬리가 달렸으면 축 처진 모습이었겠지.






* * *






지금 시간은 늦은 10시. 근로계약서에 적힌 퇴근 시간보다 좀 더 늦게 퇴근한 나는 뭘 해 먹을 기력도 없어서 집에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캔맥주와 과자를 몇 개 집어 샀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때워야지. 터덜터덜 걸어가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퇴근이 늦어질 거 같으니 먼저 집에 가라는 내 연락에





- 안 그래도 누나한테 연락하려고 했어요. 나도 오늘 약속이 생겨서....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 하... 가기 싫어어...


"왜. 누구랑 만나는데?"


- 여준이...


"김여준?"





김여준. 밑으로 하나 있는 동생이었다. 이제노를 알게 된 것도 김여준이 친구라고 집에 몇 번 데려와서 친해진 거였고. 흔하디 흔한 남매답게 김여준과 나는 별거 아닌 걸로 투닥거릴 일도 많았고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이제노가 우리 둘 사이를 중재시키고는 했다. 아니, 사실 중재라기보다는...





'아, 김여준 진짜 제발! 너 설마 내 아이스크림 먹었어?'


'하나뿐인 동생이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아깝냐!'


'그래서 네 것까지 사다 놨는데 왜 다 먹냐고!'


'누나 화내지 마요. 아이스크림이야 다시 사 오면 되지.'


'맞아. 아이스크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여준아 뭐해? 아이스크림 사 와야지.'


'엉....?'





이제노는 싸움을 말리는 척하며 내 편을 들어줬고. 아니! 넌 내 친구면서 왜 맨날 누나 편만 드냐고! 무척이나 억울해하며 말하는 김여준에게 이제노는 웃으며





'하지만 누나가 잘못한 게 아닌 걸? 잘못은 누나 아이스크림 말 없이 먹은 여준이잖아.'


'야. 제노야. 그냥 김여준 말고 네가 내 동생 하면 안 돼?'


'아, 뭐래. 제노 괴롭히지 마!'





그 이후로 이제노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흠, 김여준 만나서 노느라 정신 없겠지. 그런 생각으로 집에 들어와 샤워를 마치고 덜 마른 머리를 늘어뜨리고 캔맥주를 들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TV를 틀어 대충 볼만한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는데 울리는 전화 벨소리. 김여준이었다.





"어, 왜."


- 누나 이제노랑 같이 있어?


"제노 오늘 너랑 만난다 했잖아."


- 어어.


"근데 이제노를 왜 나한테 찾아?"


- 아니. 술 마시다가 3차로 넘어가려는데 갑자기 이제노가 안 보여.


"뭔 3차까지 가냐. 거기 가기 싫어서 집에 간거 아냐?"


- 아, 그런가 해서 전화했는데 안 받으니까.


"뭘 걱정해. 제노가 너보다 주량이 더 쎈데."





분명히 김여준의 넉살과 오지랖에 가기 싫었던 2차까지 갔겠지. 그래서 몰래 빠져나왔을 거고. 김여준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고 있다고 얘기하려는데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에 짧은 진동이 울렸다. 대고 있던 휴대폰을 살짝 떼어 확인했고





"야. 끊어봐."


- 누나 그래도 제노 잘 들어갔는지...


"어어. 알겠다고."





김여준의 전화를 끊고 바로 이제노에게 전화를 걸자 1초도 안 돼서 받는다. 누나아- 말꼬리를 늘리며 나를 부르는 거 보니 얘 술을 좀 마시긴 했구나.





- 누나 잠깐 내려올 수 있어요?


"너 어딘데?"


- 여기 누나네 집 밑!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가 아래를 보자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이제노가 보인다. 금방 내려가겠다는 말을 하고 겉옷을 챙겨 입고 내려갔다.





"야. 제노야. 김여준이 너 전화 안 받는다고 나한테 전화 오더라."


"으음- 그렇구나-"


".....제노 너는 김여준 귀찮아하면서도 잘 논단 말이야."





내 말에 이제노는 헤헤 하며 웃으며 대답을 대신 하길래 뭘 웃어 임마. 나는 그런 이제노를 보며 따라 웃었다. 근데 왜 집으로 바로 안 가고 여기서 내렸어? 우리 집에서 이제노의 집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바람도 쐴 겸 걸어가려고 여기서 내렸나 생각하며 물었는데 이제노가 아, 맞다! 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내게 건넨다. 눈을 깜빡이고서 봉지를 받아 안을 살펴보니 아이스크림이 한가득이다.





"누나 오늘 고생했잖아요-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이거 주려고 여기서 내린 거야?"


"네. 근데 늦어가지고..."


"응? 늦었다고?"


"누나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 오려고 했는데 여준이가 안 놔줘서..."





한참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일 때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었다. 주기적으로 제일 큰 사이즈로 사다 놨었다. 그 시절 때는 김여준도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내게 허락을 맡고 먹었었다. 안 그러다 걸리면 진짜 나한테 호되게 욕 먹었으니까. 하여튼 이제노는 그때 내 모습을 봐서인지 가끔씩 이렇게 내가 야근을 하거나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게 보일 때는 아이스크림을 사 오고는 했다.





"됐어. 나 이제 아이스크림 많이 먹지도 않아-"





괜찮다는 뜻으로 그렇게 대답을 하고 봉지에서 아이스크림를 골랐다. 어떤 거를 먹을까- 고민을 하고 2개를 꺼내 이제노에게 건네려는데





"표정이 왜 그래?"


"....그럼 이제 뭐 좋아해요?"


"응?"


"이제 누나한테 뭘 사다 줘야 좋아하지..."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물어오는 이제노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왜 그게 알고 싶은데? 내 질문에 이제노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해왔다.





"그거야 제가 누나를 좋아하니까요."


"......"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까 누나, 누나가 뭘 좋아하는지 알려주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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