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슈들은 revu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일종의 editor’s note

추석이 껴 있었던지라 한 주가 더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확실히 설과 추석은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추석이 좀 더 풍요롭다는 생각은 듭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공감하시나요?

어렸을 때와 달리, 저한테 명절은 몸은 편한데 마음이 편치 않은 휴일이 되었습니다. 평소에 덮어놓았던 고민들이 한꺼번에 해야하는 까닭이겠지요. 그래도 일년에 한두번쯤은 이런 날이 있는게 좋은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며 살려고요.

[주간탐구](2) 만나서 반가워요

인사가 희박한 사회에서 건네는 첫 인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사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정도만 하며 삽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인사로 해본 적도 손에 꼽아요. 사실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얼마 전 제 물건들을 스스로 정리했습니다. 지나간 추억이, 혹은 (조금은)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서린 물건들이기도 했지요. (자의 반 타의 반)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간 활용도 못할 정도로 물건을 쌓아놓고 사는 것은 이제 슬슬 지겹더라고요. 제 손으로 묶어 버린 종이가 20 kg는 될 것 같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써놓은 노트, 받은 책, 어디서 가져온 팜플렛들이 많았는데, 인쇄된 종이는 그나마 정리가 편했지만 손으로 써놓은 글조각, 그림 조각은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고통스럽더라구요.

언젠가 어떤 책에서 물건을 버리는 것은 ‘심정적 효용'이 끝났을 때 버리면 된다고 했는데, 저는 그 '안녕'의 순간들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요. 물건을 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너무 클 뿐더러, 저는 물건에 저의 시간을 투영하거든요. 이건 무엇을 했을 때, 저건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썼던 것 하면서요. 그렇게 모든 물건에 스스로를 투영하고, 지나간 시간을 상기하는 짓은 좀 자학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시간이 흐른 후에 살펴본 저의 노트(대부분은 필기)들은 참 생소했어요. 저는 제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완전 까먹고 있었거든요. 그 물건들을 정리하고 책장에 다시 꽂으면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렸습니다. 제가 어느 순간부터 일기를 쓰지 않는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일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요. 저는 떠나감을 크게 느낍니다. 하다못해 물건한테도 그러고 있어요.

부득불 기억하겠다고 모아놨던 나와, 기억하기 싫어서 발버둥 쳤던 저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지요. 문득,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적절한 인사를 한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인사가 희박한 세상에서 적절한 인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어떻게 말하면 잘 인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는 어떤 말이 필요한 것일까요? 저는 여전히 물건을 정리하는 마음을 익히지 못했고, 이건 아마도 적절히 인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적절한 이별은 첫 만남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둘 다 미래지향적이라는 의미에서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알던 분이라 그런 인사를 들을 일이 없었지만, 그런 인사를 받을 때의 기분이 무척 독특할 것이라는 예상할 수는 있어요.

이 글은 물건을 비우세요나 물건을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놓지 못하는 무수한 일 중에 하나를 고백하는 일에 가까워요. 어느 날 도를 깨우쳐 미니멀리스트가 될지도 몰라요. 저한테 미니멀리스트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기억과 그 부산물을 끌어안고 산다는 뜻일 겁니다. 그건 저 스스로에게 적당한 인사와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겠죠.

그러므로 이번주의 [주간탐구]는, 언젠간 그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初맥시멀리스트의 추석안부였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죠?

@dug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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