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얼떨결에 식구가 늘었다. 물론 아빠 식구지. 내 가족은 절대 아니다. 

 

 늘 고요한 방에서 인기척이 난다는 거, 좀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우리 집은 오래전 지어진 집이라 철저히 안방 중심이다. 집을 들어오면 마주하는 복도에 방 두 개가 나란히, 그 맞은 편은 화장실과 방이 자리했다. 

 

 애초에 내가 쓰던 방은 거실과 가까운 방이고, 화장실은 내 방 바로 옆이었다. 북향 방 두 개는 우리 가족의 드레스 룸과 엄마의 서재였다. 

 

 분명히 그랬는데…. 

 

 “잘 잤어?”

 

 화장실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을 때, 등 뒤의 방문이 열렸다. 반갑지 않은 아침 인사였다. 이른 시간부터 어딜 가는지…. 머리를 질끈 묶어낸 김여리가 현관으로 향했다. 곧이어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뛰쳐나온 김보리는 내가 잡은 문고리를 응시하다가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부엌에서는 아침을 준비하는지 요란한 소리가 났고, 아빠의 목소리도 더불어 들려왔다. 

 

 “애들 데려올게.”

 

 아빠는 자식이 하나인데, 왜 자꾸 ‘애들’이라며 칭하는지 모르겠다. 

 

 “아이고, 여리야, 밥은 먹고 출근하지?”

 “여덟 시까지 가기로 해서요.”

 

 대학생이라며? 출근을 해?

 

 “아침이라도 한술 뜨고 가. 데려다줄게.”

 

 아빠? 나나 좀 데려다주지? 안방에서 나오던 김보리를 보고, 아빠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다래, 언제까지 이럴래?”

 “뭐?”

 “화장실. 정말 언니들이랑 같이 안 쓸 거야?”

 

 내 집이고, 내 화장실이야. 내 말에 아빠는 혀를 찼다. 이 소란을 듣고 복도로 나온 아줌마는 아빠를 말렸다. 

 

 “괜찮아요. 다래가 아직 불편하면, 언니들이 조심하면 돼.”

 

 김여리는 한숨을 쉬며 중문을 열었고, 김보리는 내 어깨를 칠 듯이 스쳐 지나갔다. 이 복도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싫어진 나는 화장실로 숨어버렸다. 등 뒤에 들리는 아빠의 한숨 소리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나라고 이러고 싶겠어? 

 

 방 하나만 내어줬으면 됐지. 내 개인적 공간을 모두 침범당하기 싫었다. 그래서…. 공용 화장실인 현관 앞 화장실을 단독으로 쓰고 있다. 애초에 아빠와 둘이 살 때도 그랬다. 아빠는 안방을 나는 현관 앞을. 우리 부녀의 생활 공간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불청객이 찾아와 이 균형을 깬 것이다. 이런 사고가 벌어진 데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았다. 김 씨들은 내가 공부방으로 쓰던 옛 드레스 룸에서 둘이 함께 지낸다. 얼핏 들으니, 사람이 셋인데, 방 하나에 거실 하나인 곳에서 살았다고 들었다. 

 

 거지가 맞지, 뭐.

 

 화장실 휴지가 묘하게 줄어든 것 같아 휴지 끝을 접어두었다. 찬장에 옷가지를 올려두고 샤워기 앞에 섰을 때, 저 밖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으라는 듯 내뱉는 말에 알몸으로라도 문을 열고, 김보리 머리채를 잡고 싶었다. 

 

 “공주님은 천것들과 화장실 같이 쓰기 싫으신가 봐.”

 

 말을 거지처럼 하는 데 재주가 있네.

 

***

 

 “미친년이 따로 없다니까? 지금 술을 얼마나 퍼마시고 온 건지…. 방문을 닫았는데도 냄새가 나!”

 

 내 말에 가민이는 작게 웃었다. 학원을 마치고 들어온 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회식 후 아빠가 풍기던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꼭 닫힌 문 안쪽에서 헛구역질하는 소리까지 났다. 더러워. 절대 못쓰게 할 거야. 

 

 “그래도 언니잖아.”

 “야, 친언니 아니거든? 그리고 언니 취급 안 할 거야.”

 “너도 참 너다.”

 “너 숙제 언제 할 거야?”

 “너는?”

 “나? 그냥 지금 하고 자게. 아까 애들 많은데…. 쪽팔리게.”

 

 숙제 몇 문제 못 풀어갔다고 다른 학교 애들 앞에서 창피를 준 수학 선생님을 욕하며, 책상에 가방을 내렸다. 안방 쪽은 조용한 걸 보니, 두 분은 방에 계시거나 잠이 든 것 같다. 아빠는 매일 밤늦게까지 식탁에 앉아 술을 마셨는데, 요즘은 조용하다. 

 

 좋아해야 하는 일이 분명한데, 아빠의 평화로움과 내 평화로움을 바꾼 기분이 들었다. 

 

 수학 문제집을 펼치고, 공책을 옆에 펼쳐두었다. 샤워하고 나오자마자 해야지. 옷방에 들어가 잠옷을 꺼냈는데, 바닥이 묘하게 차가웠다. 부쩍 추워지는 날씨가 체감됐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방문 앞에 귀신처럼 선 김여리와 마주쳤다. 저 ‘언니’는 뭐 하고 다니는지…. 얼굴 볼 새가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가? 

 

 “뭐하냐?”

 “김보리가 방문을 잠갔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대답하는 김여리를 두고, 현관의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난 거…. 내가 옷방과 내방 문을 잠그고 다니면서…. 김보리도 자기 방 잠글 거라고 열쇠를 빼갔다. 나는 집주인이고, 자기는 손님이면서…. 내가 하는 거 다 하려고 해. 언젠가 이런 문제가 터질 줄 알았다.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고.”

 

 김여리는 머리를 풀어내고, 쏟아져 내리는 머리카락을 넘겼다. 그리고 한숨을 쉬더니, 뒤로 돌아 나를 보며 물었다. 

 

 “옷방에서 자도 돼?”

 

 거기 잘 곳이 있나? 가운데 자리 깔면 될 텐데…. 이부자리가 있나? 방에서 같이 잘까? 아니지. 절대 안 돼.

 

 “그래.”

 “고마워.”

 

 참고로 오래 쓰던 소파를 버린 지 오래라…. 거실에 나가도 잘 곳이 마땅치 않기는 했다. 게다가 거실에서 이 언니 잠든 거 보면, 분명 아빠가 한 소리 할 게 뻔했다. 나도 나름 살길을 찾은 건데, 순순히 허락한 내가 이상한지. 김여리는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왜?”

 “샤워도 하고 싶어서.”

 “뭐? 아주 방도 내어달라 하지?”

 

 말과는 달리, 마음과는 달리, 몸은 화장실 문을 열고 있었다. 신경 안 쓸 거야. 방으로 들어와 드라이어를 켜고, 머리를 말렸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고, 한참 뒤에 눈을 떴을 때, 맞은편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기억났다. 유독 차게 식어있던 옷방 바닥. 우리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라 올겨울이 오기 전 난방 설비를 점검한다고 했다. 그게 이번 주 인데…. 괜찮을까? 게다가 옷방은 베란다를 확장해서 유독 추운데…. 

 

 펼쳐둔 숙제를 뒤로 하고, 내가 덮던 이불을 챙겼다. 나는…. 담요 덮으면 돼. 그리고 오늘 숙제 양이 많아서 얼마 못 잘 거 같아. 잠이야 학교에서 자면 되니까!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이게 뭐라고 남모르게 하고 싶은지…. 노크라도 하면 다들 들을까 봐, 조심스럽게 옷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뒤돌아 있던 속옷 차림의 김여리가 나를 돌아보았다. 

 

 “미안, 잠옷도 방에 있길래.”

 “아….”

 “네 옷 좀 입어도 돼?”

 “네.”

 

 다급히 서랍으로 다가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잠옷을 꺼내주었다. 이건 다른 의미 아니야. 

 

 “고마워, 네 방은 항상 잠겨 있어서…. 그리고 자는 줄 알았어.”

 “아…. 저는 늦게 자요.”

 “일찍 자야지. 학교 가야 하잖아?”

 

 나는 김여리의 가슴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숨을 쉴 때마다 떨리는 기분이 들어…. 김여리는 내가 준 잠옷을 입었고, 나는 바닥에 내려둔 이불을 보란 듯 다시 들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다가가 이불을 내밀었다.

 

 “이거 덮고….”

 “고마워.”

 

 김여리는 바지만 입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얼른 윗옷도 입지?

 

 “계속 보고 있을 거야?”

 “네?”

 “속옷 벗을 거라서.”

 “아!”

 

 허둥지둥 옷방 문을 닫고 나왔다. 방문에 등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던 나는 미칠 듯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손을 들어야 했다. 가슴을 꾹 눌렀는데….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방에 들어와서도 떨리는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뭘까? 이 기분은?

 

 나는 언젠가 연애한다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 대상이 여자일 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엉성하고, 감정적인 아빠를 통해 남자를 바라보아서는 절대 아니다. 그냥…. 그랬다. 학원 선생님을 유독 따르고 좋아하는 것도, 학교 선생님을 남몰래 좋아하는 것도, 학교 친구나 선후배를 동경하는 것도 그 대상은 모두 여성이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면 그 대상은 여자일 거라 막연히 상상했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거슬리는 사람일 리는 없다. 내가 아무리 ‘애새끼’라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지금 심장이 바르르 떨리는 것은 전부…. 김여리 가슴과 허리선이 내가 보기에 예뻐서라고 하자. 막연히 동경하던 몸이라 그랬던 거야….

 

 그런데 그렇게 마른 건…. 내가 싫어도 아침 꼭 먹고 다니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러다 숙제도 못 하고 잠들 것 같아 벌떡 일어나 앉은 나는 문제집을 빤히 바라보았다. 손으로 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눈으로 풀어 낼 사람처럼 한참이나 종이만 바라보던 내가 겨우 샤프를 들어 올렸을 때. 가민이에게 메시지가 왔다. 

 

 [난 끝. 너는?]

 

 벌써? 놀란 내가 시간을 확인했을 때, 벌써 열두 시가 지난 뒤였다. 아무래도…. 아까 방문 앞에서 심호흡을 오래 했나 봐…. 

 

 내일은 학원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을 각오로 문제집을 넘겼다. 그리고 숙제 공책에 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구가민이 좋다고 매일 같이 가민이 옆자리에 앉는 남자애가 유독 크게 웃었다. 그래서 복수라도 할 듯 이를 물었다. 

 

 내가 연애한다면, 그 대상은 가민이가 될지도 모른다. 

 

 김여리와 구가민의 모습에 얼핏 닮은 부분도 있으니까. 그게 맞아. 내가 아까 떨린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여리에게 선의를 베풀어서야. 그 마음을 먹은 내가 낯설고, 그 언니 모습에서 가민이를 봐서다. 

 

 가민이 생각으로 김여리를 지우고, 문제에 집중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이 뻑뻑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마지막 문제를 풀 때까지 버텼다. 마지막 문제의 답을 적고, 문제집을 덮은 뒤 확인한 시각은 새벽 두 시가 지난 뒤였다.


 오답은 내일 학교에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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