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력 2000년 신성의 날.

 화창한 하늘 아래로 새하얀 장식들이 건물의 이곳 저곳에 붙어있었다. 그 중에는 별이나 달이 대다수였다. 지금의 왕국이 탄생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이 별과 달이다. 오래된, 2000년도 더 된 신화에 따르면 처음으로 신이 지상에 내려왔을 때 밤이 내려앉았고 그 속에서 새하얀 별과 달이 웃으며 신을 반겼다고 한다. 신이 상상을 하자 수많은 종류의 존재들이 탄생 했고 그 존재들의 탄생을 지켜본 것이 별과 달이었다. 때문에 별과 달의 성질이 그 존재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들을 닮은 존재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존재가 인간이었다.

 신이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든 인간은 신과 같았다. 신이 상상력으로 세상을 창조했듯이 인간도 상상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창조한다. 다만 이 사실을 자각하고 의식을 통제하는 사람이 몇 안 될 뿐이다. 

 나는 아마도 하이튼이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눈동자를 지녔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왔지만 한번도 그가 진실을 못가려내는 일이 없었다. 매번 내 거짓말은 들통났으며 곧잘 어른들의 거짓도 알아챘다. 궁금해진 내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알아.’

 그래서 나는 그를 존경하다시피 했었던 것 같다. 나의 우상이자 유일한 혈육이 죽었을 때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하지? 나를 이끌어주던 그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하이튼의 방을 정리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띄는 책이 문 앞에 놓여있었다. 마치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 책만 어색하게 내 시야에 놓여있었다. 연한 보라색의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제목도 지은이도 없는 이상한 책이었다. 내가 이러한 세상의 법칙을 알게 된 것도 다 그 책 때문이었다. 

 그 책은 오빠의 일기장이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이 적힌 글이라 일기라고 하기엔 뭐했다. 나는 오빠를 잊기 위해 방을 정리하려 했는데 되려 그 일기가 나를 붙잡았다. 결국 나는 오빠의 방을 정리하지 못했고 그 일기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듯한 말투와 저절로 들리는 오빠의 음성에 가슴을 부여잡고 읽어내려갔다. 그 속엔 세상의 이치와 오빠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세상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때문에 지금의 이 세상은 이 세상 사람들의 의식이 모여져 만들어진 곳이다. 나는 이 왜곡된 에너지를 없애기 위해 이 곳에 왔다.’

 첫 페이지에는 자신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곳은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아니 어쩌면 모두가 혈연관계이며 모두가 서로의 가족이자 연인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아가 뚜렷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신의 의식에 거의 가까웠기 때문이고 모든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하이튼은 어두운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이 곳에 태어난 이유가 바로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였다고. 그가 그러한 욕망을 느끼자 곧 바로 신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를 그곳으로 보내줄테니 그곳의 왜곡된 에너지를 바꾸렴.’

 오빠는 태어나자마자 울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걱정을 해 아이의 엉덩이를 세차게 다시 때렸을 때 오빠는 굉장히 뚱한 표정을 지었다고. 그랬던 이유를 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오빠는 전생의 기억과 능력 그대로를 지니고 태어났다. 그래서 똑똑했던 오빠는 매번 선생님들을 당황시키는 질문을 퍼부어 댔고 자신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규칙에는 따르지 않았다. 이유도 없는 규칙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딴건 쓸데없이 존재하는 이곳의 문화일 뿐이라고 했다. 오빠가 매번 불만 많은 표정으로 선생님들의 생각을 비꼬고 공격한 데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아마 오빠는 자신이 제거당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다. 오빠는 자신의 일기장에 나에게 할 말을 적어놓았다. 나는 오빠의 말에 충실히 따랐고 오빠가 죽은지 4년째 되던 날 나에게 편지가 온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글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좋아서 경험하고 싶은 세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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