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ISS










펭귄은 로우와 함께 하면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묵묵히 그의 명령을 따르는 게 다반사였다. 자신의 논리, 그리고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고개를 숙이고, 로우의 뒤를 받쳐주는 것이 옳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펭귄의 선장이었으며, 뒤에서 받쳐줘야 할 소중한 동생이었다. 그렇기에 로우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논쟁을 벌인 일은, 그다지 없었다. 펭귄은 항상 불만을 마음속에 고이 담아두기만 했다. 그것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려고 시도한 적도 없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그랬다. 펭귄은 로우를 믿었고, 펭귄의 신뢰만큼 로우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어떠한 일로도 멘탈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근 십년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가 무릎을 꿇은 일을 단언컨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펭귄은 로우가 자랑스러웠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세계로 뛰어들 만큼 로우를 믿어왔다. 그랬을 텐데. 펭귄의 하얗게 질리도록 꽉 쥔 주먹이 볼썽사납게 바닥으로 향해 떨어졌다. 들은 말, 단 한 가지도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단독 행동을 하겠다니, 그것도 누가, 뭘 하고 있을지 모를 미지의 섬으로 혼자. 게다가 도플라밍고를 치겠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지. 같은 칠무해를 치는 것이야 항상 있는 일임을 펭귄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었다. 로우는 지극히 냉정하고, 항상 침착함을 유지했으나, 그런 그가 그의 인생의 절반을 자신의 목적이 아닌, 펭귄이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복수를 위해서 준비해뒀으며, 그 복수의 칼날을 들이댈 사람이 도플라밍고인데다, 그의 이야기만 나왔다하면, 그렇게 차갑던 그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하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흥분을 한다는 건, 상대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보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 없다면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 분명했다. 펭귄은 뒷짐을 지었다. 욱하면 튀어나오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옛 습관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속셈이었다.



"전 반대에요, 캡틴. 아니, 반대가 아니지, 못 받아들여요. 전 수긍할 수 없어요. 할 생각도 없고요.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네가 쉽게 설득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어."


"생각 안 했으면서, 제게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어요? 캡틴! 우리들은 선장의 밑에서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해적이라고요. 선장 없이 우리가 어딜 가요? 간다고 하더라도 같이 가야죠! 이런, 무모한 짓은 납득 못 해요. 도플라밍고가 어떤 사람인지는 캡틴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 그 일을 하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물론 펭귄, 네가 하고 싶은 말도 뭔지 알아. 하지만 이 일은 내게 너무 중요하다. 신세계를 항해하는 것보다, 더."



전 당신이 제일 중요해요. 펭귄은 목구멍 밖으로 차마 토해내지 못 한 단어를 힘겹게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로우의 우선순위와, 자신의 우선순위는 매우 다르다. 그런 것쯤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펭귄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해적단의 선장이다. 그리고 해적단은 우두머리를 잃게 되면 아래에 있는 녀석들도 자연히 흩어지게 되어버린다. 이미 그것을, 로우는 흰수염 해적단이라는 본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며, 펭귄의 마음도 어떤지 십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펭귄은, 로우가 지금 자신은 알지 못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목숨을 거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화가 치밀어올라 악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적어도 13년, 그 긴 시간동안 항상 로우는 그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그렇게도 가까운 사람을 셋이나 두었음에도 혼자 삼켰고, 그런 연정하는 마음을 견디지 못 한 날이면 방 안에 며칠이고 틀어박혀 뭔가에 미친 사람마냥 자신만의 계획을 뜯어 고치고, 뜯어 고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 때문에 우리 선장이, 우리 로우가, 하고 저주를 퍼붓고 미워도 해보고, 생판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의 험담도 서슴없이 늘어도 놔봤으나, 결국 펭귄은 마음의 위로를 얻기는 커녕, 도리어 비참하기만 했다. 자신이 로우에게 특별한 인간이 되지 못 해도 상관없었던 것도 맞고, 만약 누군가와 지금 당장 연애를 한다고 해도 반대 하지도 않았을 것도, 물론 맞았다. 펭귄의 위치는 그 정도, 딱 로우의 뒤였으니까. 펭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야속한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도 기정사실이었다. 펭귄은 갑갑함에 막히는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로우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알기에 펭귄은 더욱 기가 찬 것이었다.



“그 사람이죠, 지금 계획이니 뭐니, 이루려는 이유.”


“··· ··· 그래.”


“정말, 많이 참았어요, 캡틴. 13년 동안 내가 존경하는 선장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선장이 늘 말했죠, 말로 뱉어야 어디가 아픈지 안다고. 나도 마찬가지인 걸 왜 몰라주는 거예요? 정작 캡틴이 아플 때 아무 위로가 되어주지 못 하는데, 동료면 무슨 소용이에요?”


“펭귄,”


“지금도 그래요!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완전히 새까만 앞을 보는 기분이에요, 벽을 보고 서있는 기분이라고요. 캡틴은 갑자기 훌쩍, 혼자 떠난다고 하지를 않나, 계획을 이룰 때가 됐다느니 뭐라느니···. 부하된 도리로서 막을 수도 없게 선을 긋는, 그 모습을 보는 기분을 알아요?”


“··· ···.”


“···로우, 다 좋아. 네가 가는 곳 어디든 따라갈게. 네가 설령 지옥으로 간다고 해도 난 거길 따라갈 거야. 네가 가는 길이 곧 내 길이고, 네가 내 지침이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혼자서 가버리는 건 아니잖아···.”



로우는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펭귄은 어느새 자신이 볼썽사납게 흐느끼고 있는 것을 로우의 샛노란 금안을 통해 눈치챘다. 눈 속의 펭귄은 너무도 가엾게 울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슬퍼할 일이던가, 펭귄은 문득 생각했다. 어떠한 이유를 대서도 이만치 서러운 것이 성립이 되지 않았다. 로우가 선뜻 손을 뻗어 펭귄의 눈가를 엄지로 쓸어내렸다. 그의 차가운 손이, 고스란히 뜨겁게 달궈진 피부를 스치는 감각을 적나라하게 느꼈다. 펭귄은 절로 몸을 떨며, 못난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펭귄, 로우는 그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펭귄은 그가, 도저히 그런 목소리로 부르지 않기를 바랐다. 그 감미로운 목소리는, 펭귄의 독하게 먹은 마음을 해이하게 만들었기에. 펭귄이 고집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자 로우는 연거푸 이름을 두 번 더 호명하고 나서야 뺨을 감싸 고개를 들렸다.



“펭귄, 내가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잖아. 대답 해야지.”


“···죄송합니다.”


“내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해도 안 되겠어? 네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냐, 잘 알고 있어. 그런데도 가야만 해. 너를 만나기 그 전, 훨씬 전에 그의 약속을 지키기로 스스로 마음 먹었으니까. 날 믿어. 아니면 내가 선원에게 신용조차 받지 못 할 만큼 약한 선장이던가?”


“··· ···아뇨, 캡틴. 하지만···."


"펭귄."



꽤 단호한 어투였다. 간결한 호명이었음에도 펭귄은 그 말에 힘이 있음을 인지했다. 펭귄은 속에서 엉망으로 나부끼는 수많은 불만들과 갖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혔다. 더는 자신이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상, 로우의 앞으로 나설 자격도 펭귄에게는 없었다. 펭귄은 고개를 숙여 수긍했다. 그렇게 펭귄은, 로우를 폴라탱 호에서 내려, 눈발이 사납게도 날리는 펑크 하자드로 사라지는 뒷모습조차 배웅하지 못하고 그를 허무하게 떠나보냈다.




수개월, 하고 며칠. 틈틈이 전보벌레로 오는 선장의 연락을 받는 것은 고스란히 샤치의 몫이었다. 펭귄은 멀거니 서서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는 로우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크루들을 바라봤다. 펭귄에게는 로우의 목소리조차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애초부터, 펭귄은 몹시 심사가 뒤틀려있던 상태였다. 하루 온종일, 머리끝까지 예민으로 꽉꽉 채운 그의 기분은, 마치 시한폭탄처럼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아슬한 상태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것은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못해 훤히 꿰고 있는 소꿉친구 샤치였다. 그가 적당히 크루들과 분리해둔 덕에 펭귄은 홀로 꽤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말만 한가한 시간일 뿐이지, 펭귄은 온갖 번뇌하는 마음을 다스리느라 진을 빼고 있었다. 스스로도 답답했다. 이 감정을 정의 내릴 수 있으면, 어떻게 대처가 가능할 텐데, 아무리 자신을 마주해도 이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인 건지, 자문자답을 몇 번째 했던가. 진전이라고는 하나 없이, 펭귄은 로우의 비브르 카드를 손안에서 만지작거렸다. 엄지의 지문을 스치듯 지나가는 매끄러운 종이의 감촉, 펭귄은 그런 의미도 없는 행위를 몇 차례 반복하고서 비브르 카드에 입술을 대었다. 시기, 질투, 시샘, 그것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것마저도 확실한 정답은 아닌지 펭귄은 찝찝하기만 했다. 그의 안위가 걱정된다. 잘 지내고 있을지, 또 배를 곯지는 않았는지, 잠은 잘 해결하고 있는 건지, 그런 걱정이 이만저만으로 쌓여가 펭귄은 들판에 등을 대고 누웠다. 펭귄의 속도 모르는지 원체 푸르고 맑기만 하늘을 보며, 펭귄은 괜스레 짜증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와 욕지기를 씨부렁거렸다. 베포가 고개를 내밀었다. 캡틴이 곧 도착할 거래.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까, 그렇게 혼잡하고 혼란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정리가 된 게 웃기다. 펭귄은 베포의 비브르 카드의 인도에 따라 외딴 숲속에 주둔하고 있던 하트 해적단을 찾아온 로우를 마주했다. 그는 여전히 거만했고, 시니컬함으로 무장한 미소를 내보였다. 좋아 보였다, 모든 게. 물론 펭귄만 그렇지 못했을 뿐이었다. 펭귄은 걸음을 옮겨, 수개월을 안지 못했던 자신의 소중한 동생의 몸을 끌어안았다. 밀짚모자 해적단과 동맹이라더니, 그 배의 셰프가 식사는 잘 챙겨 준 건지 살이 오른 게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로우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로우의 시선이 펭귄에게 머물렀다. 아직도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느냐는 눈빛이었다. 펭귄은 가볍게 숨을 삼켰다. 로우도, 내내 그것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펭귄은 고개를 모로 저었다. 이제 와서 자신의 감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당신만 있으면 되는 걸. 평소처럼. 그러면 되는 것이다. 펭귄은, 속에서 울렁거리며 쏟아져 나오려는 수백가지의 말을, 잠자코 삼켰다.

글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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