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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는 알고 찾아온듯하니 소개는 안 하겠고. 사람의 인연을 이렇게 강요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전하주겠나"

 

 

확실히 눈앞에 있는 이라면 운영의 목숨을 겁박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도 고두놀이에서 이겨서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었다. 한양에 올라와서는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서 치이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최근에 그 자신감이 좀 떨어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 제가 청혼을 청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한참을 말없이 운영을 사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건 검은 복장의 이가 신분을 밝히었다. 동시에 전각의 곳곳에서 숨김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목소리에 아무런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지만 그 내용은 가히 듣는 이의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것이었다. 무미건조한 말투에 운영은 속으로 이 치도 원치 않는 일을 강요받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룡이 막 영화당 계단을 몇 걸음을 올라온 참이었다. 위에 있는 두 명의 대화소리는 은밀한 것도 아니었으니 지척에 가까웠지고 있던 룡과 그 안내자는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꽤나 곤란한 와중에 당도하게 되었음에 방금 전까지 날쌘 몸놀림을 하였던 사내의 발걸음이 눈에 띄이게 느릿느릿 하여졌다.

 

 

"크음..."

 


 

룡이 앞사람만 들릴정도로 작게 헛기침을 하자 검은 무복의 사내가 멈추어 룡을 돌아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는 제자리에 섰다. 그의 겸연쩍은 표정에서 사내도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심을 하는 게 짐작되었다. 



"저..."


남자는 룡과 운영이 어떠한 관계인지 알고 있는걸까? 그의 눈동자에서 룡은 감출 수 없는 당황함을 보았다.룡은 작게 고개를 저은 후 뒷걸음을 쳐 올라온 계단을 조심히 내려갔다. 그 행동에서 의도를 알아챈 사내는 서둘러 룡을 말리기 위해 손을 허공에 들었다가, 그 자신도 때가 안 좋다고 판단하고는 발소리를 죽여 따라 내려왔다.

 

 

"......"

 

 

둘은 영화당이 시야에서 안 보일 때까지 말없이 걸었다. 룡의 기억력이 나쁘지 않았고 둘이 거의 직선으로 난 길을 따라온 터라 쉽게 나가는 길을 되짚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사내 둘이 어색하게 떠나가는 동안 영화당에서는 새로운 모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단이라 소개를 한 사내는 운영이 말없이 한참을 있자 홀연히 떠났다. 인사 없이 나타난 그이기에 다른 예의를 기대하지 않았던 운영은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가 떠나자마자 온 사방에서 갑자기 색의 짙고 옅음은 각지 다르지만 모두 검은색으로 된 무복을 입은 사내들이 나타났다. 나무에서 지붕과 전각 곳곳에서 모습을 들어내더니 운영의 곁으로 몸을 날려 왔다.

 


"이봐요 단주"

 

 

"어이 수령, 수령 듣고 있소?"

 

 

"두목님 굉장하시군요"

 


 

홀연히 나타난 이들은 제각기 좋을 대로의 호칭으로 운영을 불렀고 운영이 아무 말이 없자 모인 이들끼리 회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 생각에는 말이요 이 혼인은 무조건 찬성이오. 세상 천지에 단이라니!! 그가 우리 쪽으로 들어와 준다면야. 단주 열 명하고도 바꿀 수 있을 텐데 말이요."


 

"허허, 자네 말이 좀 과하구먼! 어떻게 수령 열과 하나를 바꾼단 말인가. 다섯이라면 몰라도"

 

 


다들 눈만 빼꼼히 나오거나 혹은 얼굴은 반 이상 가린 터라 그 표정을 가늠할 수 없으나 대체로 흥분한 기운은 감출 수 없었다. 굉장한 일이 일어났다며 반색을 하며 반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운영의 앞에 놓인 차상을 분노를 담아 쾅 치며 반발을 하였다. 그 바람에 찻잔이 흔들려 엎어져 운영의 앞섬에 찻물이 다소 튀었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저는 반대입니다. 그에게 당한 형제들을 생각하면 그자와는 같은 하늘을이고 살 수가 없소이다!"


 

운영의 생각을 물어보는 이는 없는 와중에 편이 갈리더니 곧 싸움박질을 시작 할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뭐.. 아까 그가 그냥 돌아가지 않았소. 이대로 거절했다고 생각할게 분명하니 우리가 이리 논쟁할 게 뭐 있겠는가."

 


"크... 아까운 기회를 놓쳤구려. 내 일전에 두목이 남색 가라 처음 듣었을 때에는 한동안 두목 근처에서는 절대 살결의 틈새도 보이지 않으며 지냈소만. 이리 쓰일 줄 알았다면 좀 더 널리 이 사실을 알릴 걸 그랬소이다."

 

 

그때 룡을 밖으로 안내해 주고 사내가 돌아왔다. 그 역시도 운영의 새 신부?의 정체를 듣고 다소 놀랐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광분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한편에 섰다. 가운데 조용히 앉아있는 운영을 슥 보았는데 그는 어떤 생각에 잠긴 건지 아수라장 안에 고매한 불자처럼 보였다.

 

남자는 속으로 역시 이런 집단의 수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로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다니 대단..까지 생각하며 감탄의 탄성이 목을 막 지나가던 참이었다. 운영이 앞에 놓여있던 찻상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밖으로 던져 버렸고 상은 꽤 높은 단에서 떨어져서는 굉음을 내며 산산이 부서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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