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골목에서, 여자는 담뱃불을 붙일 라이터를 켜기 위해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해야 했다. 그새 비라도 들어갔는지, 찰칵 찰칵 소리만 요란하게 나고 켜지지 않는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물었던 담배를 손에 쥐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다. 씨발, 되는 일 없네.

 

“불 줄까?”

 

이 사람 뭐지, 언제 왔어.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에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왜 담배 피우려던 거 아냐?”

 

술 취한 건가. 쇠로 긁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가 소름끼치게 징그럽다.

 

“돼.. 됐어요.”

 

“왜 됐어? 자, 여기 불.”

 

“뭐..뭐야 당신. 아, 아악!!!!!!”

 

퍽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털썩 쓰러지는 소리와 빠각-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여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차례로 어두운 골목길에 울렸다. 단발성의 비명이 사라지고 난 후, 거리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뚜벅뚜벅 걷는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골목을 빠져나오고도 한참을 걷던 남자가,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아, 이 새끼 대체 뭐야? 전형사, 주변 목격자 진술 확보 했나?”

 

“그게.. 탐문중입니다만, 새벽이고 하필 또 그 날 비가 와서 밖에 사람이 거의 없었던 모양입니다.”

 

“CCTV는? CCTV에서도 건진 거 없어?”

 

“그쪽 방향엔 CCTV가 전혀 없었고, 범행을 끝내고 난 뒤, 클럽으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찍혔습니다. 범인은 이전 범행에서처럼, 볼 캡을 쓰고 있었는데, CCTV를 확인한 바로는, 그 클럽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에 볼 캡을 쓴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마 그 안에서 옷을 갈아입은 모양입니다.”

 

“하-, 씨발. 어떤 미친 새낀지 진짜. 잡히면 확 조져버리고 싶네. 아니, 씨발 우리는 안 잡고 싶어서 안 잡아? 허구한 날 견찰이라고 지랄들만 해대고.”

 

정국은 김반장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월급도 쥐꼬리만 한데, 백날 천날 야근만 해대고, 견찰이라고 비아냥댈 줄이나 알지. 공무원은 씨발, 말이 좋아 공무원이지, 3D업종 중에도 제일 하바리에 속한 거 아니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7급이나, 9급 공무원시험이나 보는 건데 후회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다. 경찰대를 나왔어야 버텨볼 건덕지라도 있을 텐데, 성적이 안 돼서, 특채라도 써보겠다고 경찰행정학과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간부시험이라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공채로 들어간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들 치켜세웠지만, 들어오고 난 뒤 실상은 전혀 달랐다.

 

워라벨은 씨발, 일주일 내내 워크, 워크, 워크만 이어졌다. 실력 좋다고 뽑혀온 강력반에서는 허구한 날 잠복근무한다고, 소변 볼 시간 5분도 내기가 힘들뿐 더러, 샌드위치와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이었다. 공무원 중에서도, 경찰의 이혼율이 왜 제일 높은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정국이 속한 강력 2팀만 해도, 팀원이 6명인데 모두 솔로다. 돌싱이 1명에 나머지 5명은 미혼. 연애 얘기는 팀 내에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어있을 정도다. 누가 지나가는 말로 소개팅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팀원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고 쳐다보는 통에, 주선자는 도망가기 바빴다.

 

“야야, 쌍국, 니네 탐문이나 한 번 더 나가봐. 책상머리에만 앉아있으면 누가 감 떨어뜨려 주냐? 한 달 사이에, 벌써 3번째야. 언론에서 연쇄로 몰고 가는 통에 이쪽저쪽 불려 다니느라 죽겠다 아주.”

 

“알겠습니다, 반장님.”

 

김반장의 채근에 정국과 진국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국과 공채 동기로 나란히 차출되어 온 진국은 정국과 파트너가 되면서 친해졌다. 나이는 정국보다 2살이 많았는데, 공채 시험에 두 번 떨어졌다고 한다.

 

“어제도 못 잤어? 키 줘, 내가 운전 할게.”

 

“네, 미친 것들이 떡을 못 쳐서 환장 했는지, 아오, 씨발. 새벽마다 그 지랄이라니까요.”

 

정국은 몇 달 전부터, 새벽마다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원룸의 얇은 벽을 타고,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참다못해 며칠 전에는 벽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러자 조용해지더니, 깔깔대는 여자의 웃는 소리와 함께 다시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달려가 옆집 문을 두드리고, 쥐어 패고 싶은 걸 겨우 참느라고 힘들었다. 안 되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경찰이 소음 때문에 새벽에 옆집 문을 두드린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시말서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거 쫓아가면 안 되잖아. 신고 들어가면 곤란해.”

 

“알죠, 그래서 지금 더 죽겠다니까요.”

 

“그거 해봐. 스피커.”

 

“스피커가 뭐에요?”

 

“그 우퍼 스피커 있잖아? 옆집 이랬나, 그럼 옆집 벽에 딱 붙여. 그리고 유튜브 같은 데서 귀신소리나, 애기 울음소리나 같은 거, 그런 거 무한반복해서 틀어놔. 당직 설 때나, 잠복근무할 때 틀어놓고 나와.”

 

“그래도 돼요? 신고 들어갈 거 아니에요?”

 

정국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진국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정국에게 대꾸한다.

 

“신고 들어가도, 범죄 사실이나 긴급 상황이 아니면, 집을 못 따는 거 알면서 그래? 문 땄다가 소명하려면, 서류를 몇 장을 써야하는데 그걸 하겠냐, 순경들이? 넌 나중에 들어가서 치우고, 안했다고 우기면 그만이거든. 니가 집에 없으면 간단한 문제다 이거지.”

 

“아- 그러네. 와, 형 천재에요? 지금 당장 주문해야겠다. 쿠*이 어딨더라.”

 

정국의 얼굴이 간만에 밝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잠인데 새벽마다 깨는 게 얼마나 짜증났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본인은 언제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남의 떡치는 소리에 깨야 하는 게 얼마나 억울하던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사비랑 복비 날렸다 치고, 다시 집을 알아보던 차였다. 옆집 새끼, 넌 내일부터 뒤졌다고.

 

사건이 일어난 골목에 주차를 하고, 정국과 진국은 차에서 내렸다. 한 달 동안 세 번 일어난, 묻지마 폭행 사건이었다. 여자만 상대로 해 혐오성이 짙은 데다, 연쇄라는 자극적인 요소까지 포함 되었으니, 언론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어떤 실마리라도 있으면 엠바고를 요청해서라도 언론을 막아볼 텐데, 세 번의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목격자도, CCTV도 건진 게 없었다.

 

세 사건은 피해자가 여자라는 것 빼곤 공통점도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요일, 시간, 장소도 모두 달랐고, 피해자들의 나이, 직업, 옷차림도 전부 달랐다. 지나가다가 아무나 쳤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세 사건이 한 놈에 의해 이루어진 것만은 확실했다. 언론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범인은 세 번 모두 여자들의 오른쪽 팔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피해자 여성 세 명이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도 같았다. 키는 180정도에 보통 체격. 검은색 볼 캡을 쓰고, 검은색 마스크를 했다. 눈빛이 무서웠다. 목소리가 아주 낮았다. 그밖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선생님 혹시, 그저께 여기서 일어난-”

 

“아 몰라요. 못 봤다니까, 그러시네?”

 

“아예, 죄송합니다.”

 

“가뜩이나 그 일 있고, 사람들이 통 이리로 안 지나다녀서 장사 안 돼 죽겠다고요.”

 

사건이 일어난 골목 바로 앞에 있는, 슈퍼 주인은 정국을 보자마자 손 사레를 치며 내쫓는다. 벌써 경찰이 몇 번이나 왔다 갔다면서, 있는 대로 짜증을 부린다. 반대편 꽃집에서 진국이 나오며, 정국을 향해 고개를 젓는다. 어제도 못 봤다고 했는데, 오늘 묻는다고 달라질리 있겠냐고.

 

“아흐, 반장님이 뭐라고 하실지, 눈에 선하다, 선해.”

 

“그러게요. 이건 무슨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해요. 이 새끼 이거 이 주변 CCTV를 다 파악하고 범행에 들어간 건가. 어떻게 이렇게 흔적이 없죠?”

 

“그럴 가능성이 높지. 범행이 끝나고, 저기 클럽으로 갔잖아. 그 새벽에 사람 많은 데라곤 거기밖에 없으니까. 차를 탔거나, 걸어갔으면 분명히 CCTV에 잡혔을 텐데. 안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나온 거 보면, CCTV 위치도 미리 파악했다고 봐야지.”

 

“그러고 보니까, 범행 장소 옆엔 다 클럽이 있었죠?”

 

정국의 눈길이 정면에 있는 클럽에 머물렀다. 닫힌 클럽 문 앞에는 온갖 명함과 전단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사건의 여파인지, 주변상인들의 말대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현저히 적어 진 것 같긴 했다. 나름 번화가이고, 유흥가인데 썰렁하기만 하다. 아무리 낮이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클럽에 들어간 게 찍힌 건 이번뿐이잖아.”

 

“찍힌 건 이번뿐이지만, 사건 장소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전부 클럽이 있었어요. 우리가 볼 캡이랑 마스크에 너무 집착했는지도 몰라요. 알고 보면 범인의 인상착의는 중요한 게 아닌지도.”

 

“그럼 뭐가 중요한데?”

 

“장소. 범인이 범행을 할 만한 장소요.”

 

“아!! 그래. 만약 CCTV도 알고 피한 거고, 범행 후에 도주를 생각해서 클럽 근처로 범행 장소를 정했다고 하면, 다음 사건도 클럽 근처 CCTV가 허술한 곳으로 점찍었을 수도 있겠네.”

 

“그렇죠, 바로 그거죠. 일단 서로 들어가요, 반장님께 말하고 장소를 추려서 잠복을 하든 뭘 하든 해야겠어요.”

 

그 길로 경찰서로 들어간 정국은 반장에게 추리를 토대로 한, 예상 범행 장소에 대한 보고를 했다. 반장은 정국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범인을 찾는 대신,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해 잠복하는 것으로, 수사의 방향을 바꿨다. 한참을 찾은 끝에, 예상되는 범행 장소는 4군데였다. 건물 한두 개만 지나가면, 완벽하게 외진 공간이 되는 곳. CCTV가 없거나, 한두 개뿐이고, 골목에서 클럽이 채 50미터도 떨어지지 않게 위치한 곳들이었다.

 

“반장님, 여기 클럽 앞에서 잠복하려면 문제 생기겠는데요.”

 

“문제라니?”

 

“경찰이 잠복한다고 하면, M파 애들이 날 잡아 잡수쇼 하진 않을 거 아닙니까. 지들 잡으러 온줄 알고, 시비라도 털면 잠복이고 뭐고 다 날아가는 거죠.”

 

“그래서?”

 

“협조 공문은 못 띄워도, 말이라도 해놔야 되지 않겠습니까?”

 

“뭐? 씨발, 경찰이 잠복한다고 조폭새끼들한테 사정 좀 봐달라고 해야 돼?”

 

김반장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확 달아올랐다. 강력 2팀의 맏형인 제이는 한숨을 푹 쉬고, 김반장을 다시 설득한다.

 

“언론에 까여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신다면서요, 겨우 쓸만한 추리하나 나왔는데 날려먹을 까봐 그러죠.”

 

“하- 말세야, 씨발. 말세라고!! 민중의 지팡이가 조폭 나부랭이 새끼들한테 협조를 구해야 하질 않나.”

 

“좋은 게 좋은 거죠. 막말로 M파가 없어진다고, 조폭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라도 해요? 다른 놈들이 또 와서 빈자리 채우겠죠. 제가 강력 1팀 가서 연락처 구해 올게요.”

 

김반장은 사무실을 나가려는 제이를 불러 세웠다. 아직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삭히지 못한 채 입을 연다.

 

“야야, 연락처 구해올 거 없어. 그 새끼들 어딨는지 알아. 누가 갈래?”

 

아, 씨발. 팀원들의 눈은 자동적으로 정국을 향한다. 정국과 진국, 쌍국으로 불리는 둘은 팀의 막내이다 보니, 이런 하찮은 일에 자주 동원되곤 했다. 어쩔 수 없다, 어딜 가나 막내는 욕받이, 총알받이 신세니까.

 

“저희가 가겠습니다.”

 

진국이 입을 삐죽 내민 정국을 대신해, 손을 들었다. 버틸 때까지 좀 버텨보지. 정국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저를 쳐다보는 진국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야, 지금 M호텔 지하 클럽으로 가면, 딱 걔들 모이는 시간이다. 걔네가 관리하는 클럽들 정산하는 시간이거든. 니네 둘이 할 수 있겠냐? 백업 해줘야해?”

 

“아닙니다, 협조요청만 하는 건데요, 뭘.”

 

“그래, 혹시 모르니까 근처 역삼 지구대에 순찰차 두 대 지원요청 해놓을 테니까, 밖에 세워놔. 그럼 허튼 개수작은 안하겠지.”

 

정국은 가기 싫어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밍기적 거린다. 김반장이 다가와 딱 소리가 나게 정국의 머리를 서류철로 내리쳤다.

 

“아!! 왜 때려요?”

 

“임마, 진국이 좀 보고 배워. 너는 대가리는 그렇게 잘 돌아가면서, 인성은 왜 그 모양이냐? 빨리 엉덩이 안 떼? 이 새끼가 빠져갖고.”

 

“아 간다고요. 갑니다.”

 

정국이 의자 끌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때는 어쩌고 하는 꼰대들의 목소리가 정국의 뒤통수를 찔러댄다. 정국이 고개를 획 돌리자, 얘길 하던 선배 팀원들은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이다. 열 받으면 내키는 대로 뒤집어엎는 정국의 성질을 알고 있는 터라, 나갈 때까지 꽉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아 형, 왜 맨날 우리만 해요? 솔선수범 좀 하지 마요.”

 

“막낸데 어떻게 그래. 누가 해도 할 건데, 우리가 하면 되지.”

 

“하- 형은 명대로 살긴 글렀어. 그러다가 대신 칼침 맞고 간다고요.”

 

“너 믿고 그러는 거지. 니가 살려줄 거잖아, 임마.”

 

하여튼 착해 빠져갖고. 정국이 운전대를 잡으려 하자, 진국이 대신 하겠다며 운전석으로 온다. 이거 봐, 이러니까 호구라는 거지. 괜히 별명이 호구진국이겠냐고. M호텔에 도착하니,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순찰차 두 대가 입구에 서 있다. 진국이 그 옆에 차를 대자, 두 대의 순찰차에서 순경 두 명씩 총 네 명이 내린다. 정국은 그 중 두 명을 알아봤다.

 

“야, 니네 여기 대기해. 우리 나올 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알겠습니다.”

 

“저번처럼 핫도그 사 처 먹는다고, 자리 비움 뒤질 줄 알아?”

 

“언제 적 얘길 지금까지 하십니까. 여긴 근처에 핫도그 파는데도 없습니다.”

 

“나발나발 말은 잘해요. 얼마 안됐거든? 핫도그를 입에 처 넣어버릴라.”

 

“알겠습니다, 전형사님. 충성.”

 

정국의 엄포에 순경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각자 순찰차로 돌아간다. 정국과 진국은 지하 클럽으로 가는 입구로 향했다. 호텔과 따로 분리 설치된 입구에는 덩치 두 명이 지키고 서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가드냐? 우리 여기 형님들 좀 만나러왔거든.”

 

“무슨 일이십니까.”

 

덩치가 제법 되는 가드들은 정국과 진국을 곱게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듯 문을 막고 섰다. 진국이 지갑을 꺼내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자, 잠시 기다려달라고 고개를 숙인다.

 

“야, 대한민국에서 이 일처리 속도가 말이 되냐? 5분이면 임마, 컵라면 두 개는 처먹고, 남는 시간에 식후땡까지 끝냈겠다.”

 

정국이 꽁초까지 다 태운 담배를 끄고, 휴대용 재떨이에 꽁초를 넣으며 말했다. 진국은 정국의 휴대용 재떨이를 보고 웃음이 터져서 고개를 돌려야했다. 몇 달 전, 정국은 수사를 나갔다가 무심코 바닥에 꽁초를 버렸고, 한 시민이 그걸 찍어 고발을 해서, 된통 곤욕을 치렀었다. 법을 우습게 아는 경찰이라며, 시말서는 물론이거니와,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갔다. 고작 담배꽁초 하나에 그랬다. 진국은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정국이 그 일로 경찰직에 대한 회의가 심하게 든다고 했기 때문이다.

 

“저희는 컵라면 안 먹습니다. 지금 안에 얘기했으니까, 곧 연락 올 겁니다.”

 

“허이고, 씨발. 그러세요? 컵라면 따위는 안 드세요? 그치, 컵라면은 우리 같은 경찰 나부랭이들만 처먹는 거지. 니네 깡패분들은 스테이크 같은 거 썰고, 그치?”

 

클럽의 가드들은 정국의 비아냥에 잔뜩 약이 오른 것처럼 보인다. 시간 없다며 재촉하는 정국에게 기다리라고 손을 뻗어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한다.

 

“아, 씨발 아깝네? 나한테 손닿았으면, 너 뒤졌는데. 이게 우리가 먼저 칠 순 없어도, 경찰한테는 정당방위가 좀 너그럽거든. 우리는 법 집행기관이잖아. 아주 쪼오금, 존나 쪼오금만 손이 닿아도, 니 팔 정도는 부러뜨려도 되는데 말이지.”

 

정국의 으르렁거림에 클럽 가드들이 한발 물러난다. 아무래도 또라이 새낀 거 같다고. 경찰 중엔 이런 새끼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놀랍지도 않으니까. 가드는 인이어를 눌러, 다시 한 번 안쪽에 연락을 취한다. 이 또라이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이어를 타고 명령이 떨어졌다. ‘들여보내.’

 

“들어오시랍니다.”

 

“왜 꼭 이렇게 쌍소리를 박아야 길을 터줄까? 능동적으로 살자, 얘들아.”

 

정국이 가드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진국과 함께 계단을 내려간다. 정국은 클럽을 자주 다녔다. 경찰에 임용되고 부턴 전혀 못 갔지만, 대학 다닐 때는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올 정도로 즐겨가곤 했었다.

 

“형, 낮에 클럽 와봤어요?”

 

“아니, 밤에도 안 와봤어. 지금 처음이네.”

 

“와- 천연기념물이네. 어떻게 한 번도 안 와봤지?”

 

“여유가 없었어.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경찰 공채 준비하느라고.”

 

“아니, 대학 다닐 땐 뭐하고요?”

 

“사느라 바빴어. 넉넉한 형편 아니라서. 알바하고, 과제하기에도 바빴었지.”

 

“아아, 다음에 같이 한번 가요. 제가 쏠게요.”

 

정국이 괜한 말을 했다 싶어 진국에게 미안한 기색을 내비친다.

 

“됐어, 경찰이 무슨 클럽이냐. 괜히 사고나면 큰일이고.”

 

진국은 미안해하는 정국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클럽의 문을 열었다. 정국도 낮의 클럽은 처음이다. 빽빽하게 둘러싼 사람이 없고, 귀를 찢을 듯이 시끄러운 음악이 없고, 번쩍이는 조명도 없는 클럽은 참 볼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 꽤 많이들 모여 계셔?”

 

정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는 여러 명의 남자들이 앉아, 클럽 안으로 들어서는 정국과 진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뭘 숨기느라 이렇게 늦게 들여보내주시나?”

 

“용건만 간단히 하죠. 무슨 일입니까.”

 

정국의 말에 테이블에 앉은 남자 중 한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정국의 시선이 남자를 따라간다. 뭐야, 이 안 어울리는 별종은. 한 덩치 하는 어깨들 사이에 작고 가냘프게 보이기까지 한 남자가 섞여있었다.

 

“뭐지, 너도 깡패야? 별종이네.”

 

“이 새끼가, 근데!”

 

앉아있던 덩치 중 하나가 쾅-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씁- 작은 남자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손을 들자, 정국을 쏘아보는 눈을 거두지 않은 채로, 덩치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도로 앉는다. 강력 2팀은 조직범죄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정국은 M파의 두목이 누군지, 그 아래는 또 누군지, 조직 계보를 전혀 모른 채로 왔다. 보아하니, 별종은 여기서 서열 꽤나 높은 모양이다. 계속 입을 열고 있는 걸로 봐선, 적어도 이 안에선 가장 높은 위치이지 않나 짐작만 할 뿐이었다.

 

“피차 바쁜데, 용건만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너도 가만히 좀 있어.”

 

진국이 앞으로 나서며, 정국을 뒤로 당겼다. ‘반장님이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했잖아.’ 진국의 속삭이는 말에 정국이 입을 삐죽이며, 뒤로 물러난다.

 

“요즘 세간을 시끄럽게 하는 사건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묻지마 폭행 사건이요.”

 

“아, 잘 알죠. 공교롭게도 다 저희 구역에서 일어났더군요.”

 

“네, 다음 범행 장소도 아마 그쪽 구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말인데, 저희가 잠복근무를 할 예정인데-”

 

“아아- 모르는 척 해달라, 협조 요청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별종이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옆에 있던 덩치중 하나가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인다. 저런 건방진 새끼를 봤나. 뒤로 빠져있던 정국이 테이블 앞으로 두 걸음 다가왔다.

 

“야, 실내 흡연 금지인 거 몰라? 딱지 떼?”

 

담배 연기를 정국 쪽으로 뱉으며 남자가 웃는다. 가소롭다는 듯 웃는 모습에 정국이 부아가 치밀었다. 저게 대한민국 경찰을 뭘로 보고?

 

“경찰이 한가한가봐? 실내흡연 딱지도 떼게? 아니면 궁한가. 아무리 궁해도, 구청 밥그릇을 뺏으면 되나.”

 

남자의 말에 주변이 킥킥거리며, 정국을 비웃는다. 하, 씨발, 쪽팔려. 그런 것 같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건,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어도,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경찰 소관이 아니다. 좆같은 법이 그렇다. 저 새낀 뭐 그런 것도 다 알고 다녀, 깡패새끼가. 얼굴이 빨개진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정국을 보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기간은 일주일만 하시죠. 그 이상하시면 저희도 영업에 지장 있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순찰차는 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지만, 전달하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진국은 아직도 열이 받아 씩씩대고 있는 정국을 끌고 나온다. 끌려 나가는 정국의 뒤로, 남자의 담배연기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 정국의 기분은 한없이 더러워졌다. 저 씨발, 깡패새끼가.

 

“야, 안에 저 작은 새끼는 뭐냐? 안들려? 작고 하얀 새끼 뭐냐고. 줄무늬 수트 입은 새끼.”

 

정국이 계단을 올라, 아직도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클럽 가드들을 향해 물었다. 대꾸를 않자, 정국은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며 말한다.

 

“어어, 지금 쳤어?”

 

“아, 아니. 제가 언제 쳤습니까? 형사님이 치셨죠.”

 

“하, 씨발 또 쳐?”

 

“아 진짜, 박이사님입니다. 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일 다 보셨으면, 제발 좀 가세요.”

 

정국의 억지에 겨우 박이사라는 것만 알려주곤, 클럽 가드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 버린다. 정국이 또 달라붙을까봐 겁나는지, 후다닥 뛰는 소리가 요란하기도 하다.

 

“박이사?”

 

“왜 알고 싶은데? 쪽팔려서?”

 

“아니 씨발, 깡패새끼가 건방지게 경찰을 가르치려고 들잖아요. 나이도 어려보이더구만, 무슨 이사야, 이사는. 깡패같이도 안 생겨갖고.”

 

“그러게, 깡패 같이 생기진 않았더라. 곱상한 게.”

 

“곱상? 그런 건 기생오라비같이 생겼다고 하는 거죠.”

 

진국이 차에나 타라며, 정국을 조수석으로 밀어 넣었다. 계속 있다가는 뭔 일을 쳐도 치겠다 싶어, 경찰서를 향해 차를 몰았다. 정국은 차에 타고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박이사, 박이사 라고 중얼거리며, 뒤통수를 시트에 쾅쾅 찧는다. 성질하고는, 진국이 그런 정국을 보고 작게 혀를 찼다.

 

 

As i wish & As you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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