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는 트레이너로써의 재능이 보이는구나."




 첫 뱃지를 어렵지않게 딴 레드는 회색시티 체육관 관장인 웅의 인정과 덕담에 머쓱한듯 모자를 고쳐썼다. 몸에 자잘한 생채기가 생겨 기진맥진한 피카츄가 레드에게 쓰러지듯 안겼다. 빈사상태까진 오지 않은것에 안심한듯 레드는 걱정스럽게 피카츄의 등을 다독이며 뱃지도 받지않고 바로 체육관을 나갈 기세였다. 그런 둘을 바라보던 웅은 상처약을 꺼내 레드에게 건넸다. 차피 곧 센터에 갈테지만 고통스러워보이는 피카츄가 걱정되는건 웅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레드도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스프레이형 상처약이 뿌려지자 표정이 좀 편해진 피카츄는 잠들었고 레드의 표정도 좀 편해졌다. 웅에게 고맙단듯 연신 고개를 숙이던 레드는 어느세 손에들린 뱃지를 꾸욱 움켜쥐었다. 




 "이리줘봐, 달아줄게. 여기에 달아주면 되나?"

 "....."




 피카츄를 안고가는 거동이 불편할 것 같아 웅은 제 동생 돌보듯 레드에게 뱃지를 친히 달아주려했다. 굳이 달아주려는 웅에 레드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으나,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웅이 픽 웃곤 가까이 다가와 레드의 옷자락에 뱃지를 달아주었다. 웅은 흘긋 레드를 바라보았다. 머쓱한듯 가만히 있는 레드를보며 웅은 얘가 참 숫기가 없네 싶어했다. 배틀할때와는 전혀 다른눈을 한채 레드는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려 체육관을 나가려했다. 모처럼 실력있는 새내기 트레이너를 만났는데 이대로 보내자니 웅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잠깐! 기다려봐!"

 "...?"

 "이것도 가져가."




 어느세 저만치 멀어진 레드에게 몸소 발걸음까지 옮긴 웅이 레드에게 기술머신을 건네주었다. 멋쩍은듯 기술머신을 건네받은 레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웅을 쳐다보았고 기술머신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던 웅은 픽 웃었다. 참 재밌는 녀석이였다. 배틀할땐 그렇게나 날이 서있더니 끝나고보니 낯가림 심한 소년이였다. 




 "참 대단한 재능을 가졌구나."

 "...?"

 "그래도 설마 피카츄 한마리로 이길 줄 몰랐는데?"




 상성무시. 

듣기만 했었는데 실제로 겪어볼줄은 몰랐었다. 처음 체육관 문을 열고 나타났을땐 솔직히 말해 얕잡아 봤었다. 오히려 상성에 대한 공부도 없이 찾아온 초짜 트레이너인 것 같아 화가 나려던 참이였었다. 전기타입으로 돌타입한테 덤빈다고? 호되게 혼내고 돌려보낼 생각이였으나 상황은 예상밖으로 흘러갔었다. 


 눈앞에 픽 쓰러진 롱스톤에 웅은 믿을 수 없단듯 레드를 바라봤었고 감정없이 단호한 표정을 짓던 레드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버티고있는 피카츄를 들어안았다. 그 충격이 체육관 관장을 시작한 후 겪었던 숱하게 많은 엘리트 트레이너들을 잊을만큼 컸다. 세상엔 이런 일도 있다는게 웅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였다. 


 그랬기에 웅은 쉽게 레드를 보내기 아쉬워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사심으로 그의 피카츄에게 상처약도 아낌없이 주었던 것이나 이 풋내기 트레이너는 상당히 과묵했다. 요즘 이 나잇대 얘들이 원래 이런가? 결국 웅은 아쉬움을 뒤로하기로 했다. 어차피 언젠가 다시한번 만날 것 같은데 그때는 이야기를 더 깊이 나누겠지 싶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웅이 말했다. 




 "블루시티 체육관 관장에게 도전해서 너의 실력을 더 높여봐. 그리고, 좋은 승부였다."




***




- 웅 인정 트레이너

   그린

   레드




 쓰여진 글자를 바라본 레드가 체육관을 나섰다. 정식 체육관전은 처음이였으나 생각보다 할만하다 싶던 레드는 황급히 포켓몬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친 피카츄가 숨을 색색거리는게 내내 걱정이 되었었다. 바닥이 돌바닥같이 울퉁불퉁한 회색시티는 비포장도로가 많았는데 정신없이 센터를 향해가던 레드의 발이 유독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

"우이씨..! 깜짝이야..! 정신차려, 레드..!"




 넘어지려는 와중에도 피카츄를 더 품에 꼬옥 껴안은 레드가 눈을 질끈 감았으나 뒤에서 강하게 붙잡아오는 누군가에 아슬하게 넘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레드가 질끈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고 뒤를 돌아보았다. 레드를 붙잡은건 황당한 표정을 짓고있던 그린이였다. 의외의 인물에 레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느긋할 여유가 없었다. 비틀거리며 겨우 똑바로 일어선 레드가 그린에게 고맙다고 한 뒤 바로 포켓몬 센터를 향해 뛰어가려했고 그에 더 어이가 없어진 그린이 레드의 팔을 붙잡았다. 




 "야! 너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슨..."




 붙잡힌 레드가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센터와 화난 그린을 번갈아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곤 이내 뭔가 생각난듯 그린의 손을 꽉 잡고 포켓몬센터를 향해 뛰어갔다. 갑자기 제손을 잡고 냅다 뛰는 레드에 그린도 어어 하다가 끌려갔고 그제서야 레드의 품에서 불편한 표정을 짓고있던 피카츄를 발견했다. 상황파악이 되다가도 그린은 제손을 잡고있는 레드의 손을 의식하고 심장이 쿵 떨어졌다. 판단하는 것도, 그에 굴러가는 상황도 참 레드답다고 생각되었으나 그린은 심장이 요란하게 쿵쾅거려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달리고 있어서 심장이 난리난거라고 넘겨짚은 그린이 레드의 손을 더 꽉 잡았다.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센터에 피카츄를 맡긴 레드가 이내 안심이 되는듯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여전히 잡고있던 그린의 손을 슬그머니 놓으려했다. 그러나 꼭 잡고 놔주지않는 그린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레드는 그린의 눈을 쳐다보았다. 의아심이 가득한 레드의 표정에 그린은 천연덕스럽게 손깍지까지 낀 체 대화화재를 돌렸다. 




 "그나저나 왜 저렇게 다친거야? 피카츄로 체육관에 다녀오기라도 했냐?"

 "....."




 재미로 던진 말에 레드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고 그에 그린은 설마싶어 눈썹을 찌글였다. 




 ".. 진짜 다녀왔어?"




 레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피카츄가 저 난리가 났더라. 그린이 어이가없는 표정으로 레드에게 잔소리를했다. 




 "멍청아, 회색시티 체육관 관장은 돌타입 포켓몬만 사용한다고. 그런데 상성으로 안맞는 피카츄가 이길 수 있을리 없잖... 응? 너 이거 뭐야?"

 "...?"




 잔소리를 퍼붓던 그린은 순간 레드의 옷깃에서 반짝이는 뱃지를 보고 눈을 크게떴다. 멍하니 굳어져있던 그린이 믿을 수 없단듯 물었다. 




 ".. 이거 회색뱃지..? 너 설마 이겼어?"




 레드가 말없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카츄로...?"




 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안돼, 어떻게...?"




 그린의 물음에 레드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고 조금 힘이 빠진 그린의 손에서 제 손을 뺐다. 하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린 그린에게 다시 손이 잡혔고 새삼스러움에 레드가 눈을 흘겨떴다. 말없이 손가락만 꼼질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그린은 결론을 내렸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겨짚기로 했다. 의문은 많았으나 사실 머리가 아픈건 질색이였기에 그린은 물음을 아꼈다. 


 물음표가 가득하던 그린의 표정이 순간 가라앉자 레드는 괜히 긴장한듯해 보였다. 그에 그린이 웃기단듯 콧방귀를 뀌었다. 가만히 맞잡고있던 손이 이젠 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즈음이 되어서야 레드는 편하게 앉아서 피카츄의 회복을 기다렸다. 남자아이 둘이서 손이나 맞잡고 있는게 누가본다면 귀엽다고 할 모습이였지만 그린의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기세좋게 고집을 부려 손을 맞잡고 있기는 하였으나 심장이 못견디게 간질거려서 슬슬 귀가 빨개지고 있었다. 


 그러나 평정심이 무너진 그린과는 반대로 레드는 꽤 노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그게 그린은 괜히 괘씸해졌다. 레드는 늘 아무렇지도 않다. 나만 늘 난리나지, 나만. 한숨을 푹 내쉰 그린이 깍지낀 손을 들어올려 레드의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어보였다. 




 "조금은 의식하고있지 그래? 너무 편한거 아니야?"

 "....?"

 



 그렇게 말하며 그린은 미련이 남는듯 레드의 손을 강하게 꾹꾹 눌러잡고 손을 떼었다. 당황하고 의아한 빛이 살짝 감도는 레드의 표정에 웃음이 터진 그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몸은 누구랑은 다르게 바빠서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거든? 미안하지만 기다리는건 혼자 기다려야겠네, 레드? 정말, 그렇게 쳐다보지마. 나 진짜 바쁘다니깐?"

 "....?"

 



 레드의 모자를 살짝 삐뚫게 기울인 그린이 만족스럽단듯 웃었고 발걸음을 돌려 포켓몬센터의 출입문까지 걸어갔다. 삐뚫어진 모자를 바로쓴 레드의 눈빛이 의아심이 가득했다. 그린은 레드의 그런 시선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거침없이 나아가다 우뚝 멈춰선 그린이 빙글 뒤를 돌았다. 




 "레드, 난 지금 당장 블루시티로 갈거야."

 "...."

 "거기에 있을테니 올테면 와보던지?"




 그럼, 바이비. 

뒤돌은 그린이 포켓몬센터를 빠져나왔다. 어느세 생각없이 저만치 걸어간 그린이였지만 곧 미련이 남는듯 우뚝 멈춰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레드는 보이지않았다. 꽤 중상을 입었던 피카츄였기에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게 당연한 일이였지만 그린은 괜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를 헤집어 잡념을 떨치려하던 그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난리였다. 

다시 시작하는 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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