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배변훈련이 필요없다.

나름 괜찮은 사이즈의 화장실에 쓸만한 모래를 부어두면 알아서 배변을 하고 삭삭 덮어둔다. 집사는 그것을 정기적으로 버려만 주면 된다.

이 점은 고양이를 키우는데 가장 큰 장점이다.




한편 강아지는 이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

견주의 발과 견주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의 꼬리가 자신의 것인지도 모르는 2개월령의 강아지에게 배변가리는 법을 가르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었다.

집안에 카페트 까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동거인 덕에 집안에 온통 카페트가 깔려있는 우리집은 더욱더 유자의 소변 실수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유자가 오기전부터 열심히 배변훈련에 대해 검색하고 공부했다.

인터넷 포털이나 유투브를 보면 매우 자주 나오는 주제가 바로 '배변훈련 마스터하는 법'이고, 유기견 입양 공고에 꼭 써 있는 말이 '배변훈련 00%완료'이다.


한편 외국 웹에는 이런 고민이 별로 없다. 있어봐야 '우리집 강아지가 집 안에서 마킹을 해요' 정도이다. 외국은 워낙 마당 있는 집도 많고 그래서 밖에서 배변을 하면 되니 문제될 것이 없고, 산책도 자주 시키다보니 더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

후에 나오겠지만 외국인들이 배변훈련에 대한 고민을 안하는 이유가 곧 유자가 배변관련 이슈가 없는 이유가 된다.


유자에게 배변훈련을 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유자가 지내는 방 (옷방)에 잔뜩 배변패드와 배변판을 깐다.

흔히 배변패드는 기저귀 만드는 것 같은 재질로 된 사각형 패드로, 일회용 소변 흡수장치라고 보면 되고, 배변판은 사각형 플라스틱 판에 그리드 형태의 사각 뚜껑이 있고, 그 안에 일회용 배변패드나 워셔블 배변패드가 들어있는 형태다. 둘다 많이 쓰이는 형태인데 굳이 차이점을 생각해보자면 배변패드는 가벼워 나풀나풀 종이를 깔아둔 느낌이지만 배변판은 뭔가 무게감이 있는 장치같은 느낌이랄까. 여튼 자주 갈아줘야 하는 것은 같다. 

2. 유자가 배변패드/판에 오줌을 싸면 칭찬을 해주며 간식을 주고, 다른 곳에 싸면 무시하고 그냥 조용히 오줌을 닦는다.

3. 배변패드/판에 싸는 빈도가 높아지면 점점 배변패드/판의 숫자를 줄여서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만 한-두개 준다.


여기서 한가지, 내가 굳이 배변패드와 배변판을 둘다 산 이유는 원래 워셔블 배변판 하나만 쓰려고 했는데 위에 나열된 방법상 배변판을 엄청나게 많이 사서 깔 수가 없는 관계로 둘다 깔아서 어찌저찌 배변판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유자는 배변패드만 소변보는 곳으로 인식하였고, 배변판은 간식을 먹는 등의 행동을 하는 딱딱한 쇼파 정도로 인식해 버린 관계로 오래 지나지 않나 배변판은 당근행이 되었다...


유자에게 열심히 배변훈련을 진행하였고, 유자가 콜비와의 합사를 위한 격리에서 해제될 때까지 진행되었다. 신기하게도 어느순간 유자는 배변패드에만 소변을 보기 시작했고, 후에도 카페트에 두어번 소변을 본 것 외엔 딱히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대변이었다. 소변이나 대변이나 대충 둘다 배변패드에 싸면 될 것 같았는데 이놈 생각은 달랐는지 소변은 배변패드에 싸도 대변은 꼭 집안 구석 다른곳에 쌌다.

한번은 유자가 굳이 외출중이던 동거인의 슬리퍼에 대변을 싸서 동거인이 경악을 하며 슬리퍼를 버린 적도 있다.


동거인의 슬리퍼에 똥싸는 유자


그러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도 결국 대변은 (사람)화장실 구석 변기 옆에서 싸는 것으로 굳어졌다.

처음 화장실 구석에 똥을 싼 유자를 보고 '화장실에 똥을 싸다니! 와 진짜 유자 천재강아지 아닌가!' 싶었지만 유투브를 검색해본 결과 대변은 특히나 자신이 살고있는 공간과 최대한 멀리서 싸고 싶다는 생각에 집안 구석에 싸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있어서 유자는 그냥 본인이 가장 집안의 구석이라 생각하는 곳에 싸는구나 싶었다. (다른 부분에선 전혀 천재가 아니라서 천재설은 일단 탈락이다)

 

그러나 이 모든 훈련은 상당부분 무쓸모가 됐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 유자는 대부분의 배변을 밖에서 해결한다. 매일 3번의 산책을 하는 동안 배변을 대부분 해결하기 때문에 소변을 아주 가끔 패드에 보는 경우는 무척 짠 간식을 먹어서 저녁에 물을 너무 많이 마셨거나 할 때이고, 간식을 너무 많이 먹거나 해서 설사를 하면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화장실에서 싸곤 한다.


한국 반려견 커뮤니티에서 배변이 이슈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산책 부족이 아닐까 싶다. 하루 3번 나가는 것은 분명 무척이나 빡센 일이고, 이러지 않는 이상 배변은 집에서 해결을 해야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유자는 인간과 같은 집 안에서 살기위한 첫번째 덕목인 배변가리기를 성공적으로 해내었고, 그렇게 점점 우리와 함께 사는 것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꼭 토를 하면 카페트에 올라와서 할까...? 의문이다.


배변판 위에서 인형을 씹는 유자


평소 잘 모르다가 글을 쓰다보니 세상을 참 삐딱하게 보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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