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수가 많다보니 불을 피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데렉이 호미와 작은 삽으로 땅을 고르고, 아이니와 다른 사람들이 돌을 들고 왔다. 


나뭇가지와 땔감은 미리 텐트 안에 준비되어 있었고, 마법사가 여섯이나 있었으니 불씨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이니시스씨는... 사냥대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그 이후에 만나신거요?"



"응. 해체하고 난 이후에 만났지. 


너희는? 해체한 이후로 몇 달 되었는데, 아예 이쪽으로 나서기로 한 거야?"



아이니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면 곤란해질 것이 뻔히 보이니, 데렉은 아예 이 사람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사냥대에 있을 때 부터 마음이 잘 맞았고, 학파로 돌아가봐야 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죠. 


당분간은 남자 넷이 뭉쳐서 괴수나 잡고 다닐까 합니다."



그럴법한 일이라 데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마법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얀센 학파는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학파에 꼭 있어야 하는 인재면 외부로 돌아다니게 두지도 않았을 거다.



"저, 혹시..."



아이니가 쭈뼛거리며 데렉의 옆에 딱 붙어서 입을 떼었다.



데렉도 다른 사람 앞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니를 처음 보아서 꽤 놀랐다.



"용 사냥은, 어떻게 하나요?"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힘들게 물어보았지만, 아이니는 꼭 필요해서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지금이랑은 좀 다르긴 하죠. 


우리가 은신처나 근거지로 찾아가는 입장이고..."



"인원도 훨씬 많고. 


대장이 꾸린 사냥대가 마지막에는 50명 넘지 않았나?"



"넘었지. 색적, 추적을 제외하고 베이스 캠프에서 보급 담당하는 사람들까지 하면 100명은 넘을걸. 


그 와중에도 별 갈등 없이 잘 돌아간 게 신기해."



세 명은 각자 떠들기 시작했는데, 필립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데렉을 바라보았다.



"대장. 이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마지막 사냥에서 어디에 있었던 거에요?



생존자를 구한다고 했는데, 빈 손으로 돌아왔고.



본대랑 떨어져 있어서 위치도 못 잡을 줄 알았는데, 신호에 맞춰서 날아오르는 용을 잘 저격했고.



마지막 사냥이라 뭐 송별회나 파티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랑 똑같이 상단 통해서 정산하고 각자 알아서 갈 길 가라는 식으로 끝났잖아요."



맺힌 것이 많은 걸까, 필립의 말에 나머지 마법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도... 궁금, 해요."



오른팔에 딱 달라붙은 아이니가 팔을 끌어안고 데렉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도 거절할 자신이 없어서, 데렉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럼 그 날 새벽부터 이야기해야겠네."



별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해야만 했다.



"니스 때문이었어. 급하게 떠난 건."









3.









깊은 숲 속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빽빽한 나무 사이에 천막을 이용해 진을 치고 야영중이었다. 


정말 최소한의 천막만 설치하고 수면을 해결한 뒤 다음 목적지로 가는 것이다. 


매일마다 길을 따라 이동하는 행상인이나 짐꾼에 가까운 모양이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짐을 싣는 마차가 없었고, 다들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숲 밖의 베이스에서 연락은 있어?"



아직 일어난 사람이 적을 시간이지만, 때가 많이 탄 하얀색 로브를 입은 사람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같은 자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밤중에 적 움직임은 따로 없었어. 


이제 2주가 지났으니 적도 지칠 때가 됐지."



비교적 깨끗한 파란색 로브를 입은 사람이 눈을 감고 말했다. 


지팡이를 든 자세는 지나치게 진지해서 아픈 것이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건 다행이네. 생존자는?"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말했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사람은 느긋하게 숨을 고르고 천천히 지팡이를 바닥에 두드렸다.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느긋한 태도로.



[통...]



맑은 소리가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한 숲을 울렸다. 


작은 소리이지만 그 소리마저도 숲의 주민들에게는 잠이 깰 자극이었는지 약간의 새가 날아올랐다.



"저쪽. 제일 높은 언덕 보여? 나뭇잎 하나도 없는."



"확인. 앙상한 나무라는 거지?"



나무는 벼락이라도 맞은 건지 표면이 바싹 그을려 있었다.



간신히 저 위쪽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 곳은 해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이었다. 


가는 길이 가깝거나 순탄하지는 않겠지. 


직선거리로 도착하려면 얕지만 바위틈을 통해서 가야 할 것 같았다. 


우회한다면 어디까지 돌아서 가야 할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제 저 근처에서 연기가 올라왔던 것 같으니 거의 확실하겠네."



며칠이나 걸려서 찾아낸 생존자의 단서였다. 


2주나 숲을 뒤적이며 적을 공격했지만 한 번도 생존자의 흔적은 찾지 못했는데...



"가자."



물어 뜯던 입술을 놓고 말했지만... 


이제 막 눈을 뜬 사람은 푸른색 로브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 쓰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몰라. 마법 반응이 있어. 


냉정해져, 데렉."



하얀색 로브를 입은 데렉은 마법 반응이 있다는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이를 악물었다.



"니스. 먼저 출발하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존에 세운 작전대로 하라고 연락 남겨 줘. 


혹시라도 본대랑 너무 멀면... 날아오를 때 쏘아서 떨어뜨린다."



니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것을 알고 있었는지, 데렉을 쫓아가는 것에 별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 1시간 전의 일이었다.



입이 벌어져 헉헉거리고, 입에서 쓴 물이 올라올 정도로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두 명은 전혀 멈출 기미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주의를 늦추면 바로 넘어질 거고, 너무 땅만 보고 걸으면 방향을 잡지 못해서 길을 헤멜거다. 


하지만 두 사람은 꽤나 능숙하게 해쳐나가고 있었다. 



앞서 달리는 데렉은 조금 비틀거릴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뒤에 따라가는 니스가 조금 느리더라도 넘어지거나 위태롭지 않게 잘 달리고 있었다.



나무 뿌리가 발목을 잡고, 어린 나뭇가지는 머리를 때린다. 


그러면서도 앞길은 사람보다도 큰 나무가 막고 있다. 



이를 악물고 감정에 휘둘리면서도, 터질 것 같은 심장과 허파에도 데렉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생존자를 구해야 하니까.'



원래라면 생존자 수색은 전투 이후의 일이었겠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조금만 늦으면 사람들이 모조리 몰살당할 거고, 아마 재수 없으면 유품도 남길 수 없을 거다.



[쿵]



땅은 주기적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커다란 것이 땅에 닿으며 대지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본대도 지금 사력을 다해서 적을 잡아두고 있겠지.



"데렉!"



뒤쪽에서 니스가 다시 불렀다. 


아마 본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 같은데...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려서일까, 이 근처에 터를 잡고 있던 동물들이 다시 한 번 수런거렸다. 


날아오르는 새, 잠에서 깨어 도망치는 동물. 


하지만 그런 것에 정신을 쏟을 틈이 없었다.



"왜, 니스! 또 돌아 오래?"



둘의 거리가 좀 있었지만 목소리는 서로 또렷하게 들렸다. 


니스는 평범하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을 섞어서 뜻을 전달하고 있었다. 


데렉은 그냥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14번째 귀환 요청! 생존자를 구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것! 


나도 동의해!"



니스가 이번에는 마법도 쓰지 않고 소리질렀다. 


숨이 턱까지 차서 발음이 많이 뭉개졌지만 어떻게든 전달은 된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지?"



소리치는 데렉의 목에 핏대가 섰다. 


이미 체력은 바닥일텐데, 이성적인 판단이나 반응보다는 이를 악문 발악에 가까웠다. 


감정적인 트라우마가 자극된 걸까.



"알지!"



서로 긴 시간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은 몇 번 겪어 보았다. 


그렇기에 무슨 말을 할지도 충분히 짐작했다.



"닥치라고 전할까?"



데렉은 결국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으니까. 


이미 본대에서 생존자를 구했다고 알리지 않으면, 돌아오라는 말에 응한 적이 없었다.



[쿠웅]



니스가 그렇게 소리치는 동안 숲을 통째로 흔드는 커다란 진동이 땅을 울렸다.



점점 커지는 진동은 땅을 울려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니스와 데렉은 잠시 흔들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땅을 붙잡고 자세를 낮췄다. 


이대로 달리다가 다치면 생존자고 뭐고 움직일 수 없게 될 테니까.



"젠장... 본대는 고전중인가 본데. 감지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옆으로 따라붙은 니스를 바라보며 데렉이 혀를 찼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얼굴에는 잔뜩 짜증이 서려 있었다. 


잠깐 멈춰섰다고 얼굴을 따라 땀이 비 오듯이 떨어졌다.



"근방에 사람 형상은 없어.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내 감지 반경은 제한적이야."



니스는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근성과 정신력까지 가져다가 끌어 쓴 건지, 니스는 아예 털썩 주저앉았다. 


데렉보다 요령은 좋게 뛰었지만 아무래도 체력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았다. 



둘이 이야기를 하던 사이 커지던 진동이 약간 잦어들었다. 


슬슬 다시 뛸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었다.



"본대에서는 뭐래?"



데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눈에 섞여 들어간 땀을 로브의 소매로 닦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려 했다. 


하지만 간만에 장거리 달리기를 한 몸은 제대로 된 휴식을 요구할 뿐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이리 와서 본거지 째로 날려달라고 하지. 


나는 네가 뭐라고 할지 아니까 그냥 아무 답도 안 하고 있을 뿐이야."



거친 숨소리가 약간 가시자 니스의 목에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미성이 들렸다. 


소리지르면서 뛰느라 목이 쉬었을 법도 하지만, 성악가나 가수를 했다면 훨씬 더 풍족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니스는 숲 한가운데에서 흙먼지를 뒤집어 쓴 인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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