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이자 뉴욕의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의 화려하고 놀라운 인생에서도 이건 정말 손에 꼽힐 만한 수준의 사건이었다. 피터는 새삼 자신의 흔치 않은 맹한 표정을 마스크가 가려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하, 처음에는 그저 건물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 이름이 뭐라고? ....... 꼬마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요.”


  디테일만 조금 다를 뿐이지 똑같이 생긴-그러니까 피터가 디자인한 슈트와 똑같은-스파이더맨 슈트를 입은 고작해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 알 수 없는 존재는 이름마저도 피터와 똑같았다. 마스크가 벗겨진 채로 억지로 결박되어 피터의 아래에 깔린 그 작은 피터 역시 나처럼 혼란스러운 얼굴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피터는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에 멍하니 있다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작은 피터를 놔주었다. 이렇게 결박하고 있다 해도 피터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런 그럴듯한 설명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스파이더맨은 피터에게서 풀려난 후로도 놀란 얼굴로 굳어 있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것 같은 작은 피터에게 피터는 한숨을 쉬며 그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었다.


  “그래, 스파이더맨. 난....... 피터 파커야.”


  피터의 인사에 작은 피터는 동그란 눈을 더 커질 수도 없을 만큼 크게 떴다.






  작은 피터는-피터는 편의를 위해 그렇게 불렀다.-놀랍게도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것 같았다. 피터와 작은 피터는 얼굴과 체격, 목소리, 성격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똑같았다. 똑같은 초능력과 똑같이 뛰어난 두뇌, 똑같이 생긴 슈트, 똑같은 이름....... 작은 피터는 처음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 피터의 학교도 그러했다. 건너오기 전까지 고등학생이었다던 작은 피터는 지치지도 않고 뉴욕 전체를 이 잡듯 뒤지며 그가 아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썼다. 거의 울 것 같은 그의 목소리에 피터는 저도 모르게 그를 쫓아다녔다. 결국 이 세계가 그가 아는 그 세계가 아니란 것을 스스로 납득한 후에, 작은 피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피터는 높은 뉴욕의 건물 꼭대기에 위태롭게 앉아 있던 작은 피터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피터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재 백수였다. 가끔 숙모를 따라서 보육원 봉사활동 같은 것도 다니기도 하고, 공모전이나 그런 데에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이상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 탓에 오늘도 날을 넘겨서 들어가면 메이 숙모는 진심으로 화낼 지도 몰랐다. 아슬아슬하게 12시 직전에 집 현관문을 열자, 그 곳에는 메이 숙모가 소파에 앉아서 인상을 쓰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자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숙모의 등장에 피터는 당황한 채로 눈만 굴렸다.


  “메, 메이 숙모, 다녀왔습니다........”


  “피터! 너 자꾸 이렇게 늦게....... 음?”


  메이 숙모는 화난 얼굴로 일어서며 소리쳤지만, 곧 자신의 조카 뒤로 보이는 작은 인영에 말을 멈추었다. 피터는 재빨리 웃으며 입을 열었다.


  “메이 숙모, 이 쪽은....... 피터에요. 피터, 이쪽은 우리 숙모. 피터가 지금 사정이 있어서 우리 집에서 며칠만 신세 좀 져야할 것 같아요.”


  자신의 조카보다 작은 키에 또래 고등학생들보다 훨씬 앳된 얼굴의 피터에 메이 숙모는 조카에게 내려던 화를 잊은 얼굴이 되었다. 피터를 고등학생보다 더 어린 나이로 본 듯 메이 숙모는 자세한 사정도 캐묻지 않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나, 지금 손님방이 엉망인데 어쩌니. 미안한 얼굴로 나온 메이 숙모의 말에 피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요. 내 방에서 재우면 되니까. 내가 카우치 소파에서 잘게요. 메이 숙모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지만 피터의 만류에 결국 자리를 피해주었다.

  작은 피터는 멍한 얼굴로 피터의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저기, 피터.”


  네?!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서며 대답하는 작은 피터에 피터는 오히려 더 당황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빨개진 얼굴의 작은 피터를 진정시킨 피터는 말을 이었다.

 

  “우선 며칠은 우리 집에서 지내. 네가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 내가 도와줄게.”


  “....... 고맙습니다.”


  작은 피터는 울망울망한 얼굴로 속삭이듯 대답했다. 피터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피터를 제 방에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왔다. 막 문을 닫는데 뒤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초인 같은 청력도 이럴 땐 불편하다니까. 피터는 한숨을 쉬고 계단을 내려갔다.


스파스파 거미거미 


맛잘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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