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조각글을 단편으로 승화
* 긴토키 굴림(?) 주의보




히지카타 토시로 x 사카타 긴토키
written by. 팟챠




" 높으신 분들은 하다하다 떡치는 것도 경호가 필요하네요. "


오키타가 허리춤에 낀 칼집을 메만지며 말했다. 고요함만 감도는 빈 복도엔 중간에 난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벌레 울음 소리가 적막을 돋우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고개를 빳빳이 고정시켰다. 뭐랬더라, 어디서 온 천인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막부와 중요한 거래를 하는 놈들이랬는데. 곤도를 닮아가는 것인지 어려운 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며칠 밤새 잠복근무를 끝낸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야간 경호라니, 아무리 귀신부장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어도 체력에 한계는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수마가 눈두덩 위를 잔망스럽게 끌어당길 것 같아 히지카타는 온힘을 다해 눈에 핏기를 세웠다.


" 입 조심해.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거냐. "

" 사라진 미간이나 찾고 말하시죠. "


그대로 쑤그려앉은 오키타를 히지카타는 흘겨보기만 할 뿐 뭐라 더 말을 붙이진 않았다. 막부나 천인들의 구령이 마음에 안드는게 하루이틀꼴도 아니고 오히려 어쩔 때는 앞뒤 생각없이 태평히 할 말 다하는 오키타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툇마루 위 기둥에 등을 대고 주머니에서 안대를 꺼내든 오키타는 길어질 것 같으니 끝날 때나 깨어달라며 무심히 말해온다. 그 꼴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어 그의 허벅지를 살짝 즈려밟아 보았지만 어찌나 행동이 빠른지 숨소리가 이미 나슨히 변해져 있다. 히지카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반대편 마루에서 오는 이가 보지 못하도록 오키타를 제 뒤로 숨긴 채 바로 섰다.

위치를 옮기니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더 잘 들려왔다. 천인들 때문에 천지가 개벽하듯 변했건만, 더러운 뒷시세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고작 원하던 일이 여인을 품는 일이어서 다행인가, 생떼와도 같은 추잡한 요구사항이 아니니.

못 위를 바람이 만져대고 있는 것인지 동그란 달 그림자가 흔들대고 있었다. 달을 보면 생각나는 이가 있어 히지카타는 잔물결에 눈을 떼지 못했다. 고르게 가만히 있으면 물 위로 허상이라도 떠오를 것 같건만 구하의 온온한 바람이 그걸 허락해주지 않는다.

 얼굴을 못 본지 좀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품은 것은 그 것보다 더 오래 되었다. 일이 많아지는 시기가 오다보니 제 마음을 본의 아니게 은폐해 버려야만 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말해야지, 비번인 날에 말해야지, 연차를 내서라도 말해야지. 차일피일 시간을 건너짚고, 어쩌다 우연히 얼굴을 보게된 날이 와도 답지 않게 준비가 덜 되었다는 나약한 생각에 뒤로 숨어 말할 수 없었다. 

' 이상한 소리를 가락삼아 그 놈을 떠올려야 한다니. 마냥 저 천인 놈을 욕할 수만도 없군. '

등 뒤 너머로 드르륵 거리는 문소리가 들려왔다. 히지카타는 상념을 젖히고 자고 있던 오키타의 허리를 발로 여러번 흔들었다. 싫은 소리를 내며 안대를 꼼지락하는 것을 확인한 히지카타는 먼저 삼방 안으로 들어섰다. 곤도와 막부관리의 옆에서 우직한 덩치의 남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 만족하셨는지요? "

" 보름 후에 또 오도록 하지. "

" …그 말씀은? "

" 이 장소에서, 그리고 상대도 같아야한다. 조항은 없애주도록 하마. "


막부관리가 웃음기를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꾸벅댄다. 수행원과 돌아갈 채비를 하는 천인 남자를 본 곤도가 허리를 굽혀 배웅을 하였다. 히지카타는 그런 곤도를 따라 천인남자의 뒤를 바짝 좇았다. 

걸어가며 흘깃 눈에 들어온 남자가 나온 방 살짝 열린 문 사이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새카만 칠흑에 덮여있었다. 다만 안 쪽에서 헤아리기 힘든 단 향이 터지듯 흘러나와 복도까지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히지카타는 코 끝을 문지르는 그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천인남자의 뒷 모습에만 집중했다.



대문 문턱을 넘자 막부관리가 수고했다며 이 뒤는 자신에게 맡기고 뒷정리나 하라고 곤도에게 지시했다.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골라달라하여 빈 저택을 하루종일 청소 시키더니만 뒷정리까지,쯧. 히지카타는 몰려오는 피로를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짧게 혀를 찼다.


" 토시, 선생님한테 연락 좀 드릴테니 먼저 들어가 있어. "


곤도의 말에 히지카타는 알았다는 말과 함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럼 이제 뭘 해야하는 거지. 다시 청소 좀 하고 흔적 남지 않게 태울건 태우고…. 그리고 여자의 처리인가. 그 여자, 어디서 온 여자더라? 요시와라에서 온 건가. 여인쪽은 막부관리 쪽에서 데려온 것이다보니 얼굴을 본 기억은 없었다. 그래도 어지간히 대단한 명기를 데려온 모양이었다. 거래가 성사된데다, 다시 오겠다는 말까지 한 걸 보니. 덕분에 귀찮은 일만 또 생겼군. 히지카타는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라이터의 불기둥이 코앞에 높이 솟아오른다. 챠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 사이로 히지카타는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춧돌 위로 올라 복도를 돌아오니 이제사 일어난 것인지 오키타가 멍하니 서있다.


" 어제도 늘어져라 잔 놈이 뭐가 피곤해서 그 모양이야? "

" …히지카타야, 너 알고 있었어? "


슬적 든 고개 밑으로 적갈색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졸린 눈이 아니라 바짝 날이 선 이채에 히지카타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려보였다. 그 찰나에 꿈이라도 꾼 건가. 왜 갑자기 저리 악심이 가득 오른 것인지.


" 알고 있었냐고 묻잖습니까. "

" 뭘 알고 있었냐는 거야? 덜 깬거면 가서 세수라도 하고…. "


히지카타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어둡던 그 방 안, 니글거리던 향이 풍만했던 그 장소에서 나온 것은 백색의 달이었다. 엉망이 된 옷을 껴안듯 걸치고 나와 마루 밖 서있는 히지카타와 오키타의 얼굴을 보던 이는 슬적 웃어보였다. 왜, 네가…. 자신이 노병의 상태인지라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럴리가 없는데. 내가 보고싶어 하던 달은 물 안에 갇혀있었지, 이런 곳에서 추악한 잡취에 뒹굴어져 있을리가. 


" 여기서 이런 걸 떨어트리면 불나잖냐. "


히지카타의 벌어진 입에서 흘러내리듯 떨어진 담배 도막을 주워든 사내가 히지카타의 입에 장난치듯 도로 꽂아준다. 단 향이 사내에게서 확연히 풍겨져왔다. 벌어진 나가쥬반(기모노 속옷)의 사이로 벌겋다 못해 얼룩진 흔적들이 보인다. 히지카타는 남자의 옷을 열어제꼈다. 놀란 듯한 남자가 살짝 뒷걸음질을 쳤지만 오비끈 하나 없는 실오라기는 그대로 가르듯 벌어졌다.


" …너 어떻게 된거야. "

" 너무하네. 경찰이 성추행도 하고. "


드러난 몸 위엔 무슨 짓을 한 건지 폭행의 모양까지 남아있었다. 히지카타의 두 동공이 경련했다.
자신의 농담에도 웃어주지 않자, 긴토키는 어색하게 쥬반 깃을 잡고 여몄다. 히지카타는 주먹을 쥐고 덜덜 떨다가 이내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긴토키의 어깨 위로 걸쳐주었다. 그런 히지카타의 모습에 긴토키가 씁쓸한 호선을 입가에 담아냈다. 그러고는 바들대는 그의 손을 잡으며 나는 괜찮아 라고 귓가에 조그맣게 흘리듯 말한다.

긴토키가 감당하기 힘든 것들을 스스로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전장을 누빈 백야차였던 사내가 지금은 이토록 늘어져가는 세월만 고집하는 것은 얼빠져 보이긴 해도 그에겐 뒤늦게 찾은 안식같은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을 적에도 위화감이 드는 사내였고 그런 것들이 보인 이후로는 지금처럼 손에 다 쥘 수 없는 감정의 수렴이 터져나와버리곤 했다. 그래서 신경쓰였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무작정 다가가지 않고도 그가 자신의 앞에서만 보여주는 모습이 늘어갔을 때, 비록 제 마음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거라 생각했다. 허나 직접적으로 내보인 적은 없어 맺힌 것 또한 없으니 이토록 끓는 열분을 배신감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또 너는 혼자 무엇을 감당하고 있기에 여기에서 이런 짓을 당한 것인지. 그저 괜찮다고만 말하는 그 목소리의 뒤에서 터져버릴 것 같은 애수는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인지.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끌어안았다. 

아니야, 이 냄새는 아니다. 내가 아는 너의 냄새가 아니다. 가끔 네가 먹는 것들의 단내가 나긴 했지만 이 냄새는 너의 것이 아니야. 냄새가 지워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 히지카타는 쓸어내리듯 긴토키의 등을 올려잡았다.


" 아무 것도 하지마. "


못본 걸로 해. 네 일이 아니야.


" 너는 진선조의 부장님이잖아. "


껴안아주고 있는 것은 히지카타인데 어르는 것은 긴토키였다. 경직된 명령조의 말투와는 달리 감정이 고인 나긋한 목소리에 히지카타는 안쪽부터 천천히 무언가가 무너져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진선조의 무게를 저울질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거의 처음으로 그의 말이 옳게 느껴졌다. 당장에 자신이 무엇을 해봐야 뒤에 남은 밤그림자까지 지워낼 수 없었다. 그래서 물을 수 없는 거겠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이리도 무력감에 젖어야 한다니─. 히지카타는 결국 삼키던 낙루를 눈 밑으로 호소했다.


" 보름 후에는 네가 나 마중 하러 와줄래. "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목덜미 쪽에 머리를 슬적 기대며 말했다.


" 이 나이 먹었지만, 아무리 긴 씨라도 좀 무섭걸랑. 그땐 네가 손도 좀 잡아줘. "


잔인한 환송을 부탁하는 긴토키에게 히지카타는 대답 하지 않았다.
한심 천만한 밤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자란 내초의 밤이었다.






백야차라는게 천인들 사이에선 유명하다보니
전쟁 끝나고 막부 협박하면서 백야차 그 놈 좀 데려와봐라 하는 천인들이 있진 않을까
하면서 쓴글.. 책임질 것도 없었을 때야 쌩까고 엿이나 잡수쇼 하며 쳐부수기나 했을 긴토키지만
지금은 카구라나 신파치 오토세 등등 소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짠한 요소 은근히 수두룩한 긴토키라서 자꾸 괴롭히고 싶다..^_ㅠ..

팟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