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보름째였다.
드림주가 승효와의 첫 아이를 유산한 후 승효는 근 20일만에 내관을 통해 오늘은 드림주(훗날 의빈성씨) 소용(정 3품 품계의 내명부)의 처소에서 침수 들 것을 재차 전해왔다. 승효(정조 이산)의 모후인 대비 혜경궁 홍씨가 붙여준 정상궁이 드림주가 떠난 아이에게 입혀주고자 직접 지은 옷을 들여다보고 만지며 아이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을 보다 드림주의 눈치를 살폈다.

- 오늘도 전하께서 김내관을 보냈나요?
- ...네. 마마. 벌써 여섯번째입니다. 어제까지 근 보름 이상을 혼자 강녕전에서 침수 드셨다 하시니 오늘은 전하를 모시는 것이...

참으로 꾸준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직접 저를 불러 역정을 낼법도 하고 감히 네가 나를 거부하냐고 내쳐도 뭐라 할말이 없는 일이었는데도 그저 궁녀 시절 같이 동기로 지낸 경희를 불러 한번 호되게 꾸중하는 것으로 끝을 냈다.

- 소용은 어째서 그렇게 고집이 센거냐. 말해봐라. 네가 어떻게 옆에서 모셨기에 이렇게 괘씸하게 구는것인지. 아이를 잃은 것이야 그 맘을 이해하고 남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더는 이해할 수도,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너는 이 길로 당장 소용에게 가서 전해라. 오늘은 내가 일정을 마친 후에 소용의 처소에서 침수 들 것이라고. 절대로 물러주지 않을 것이고 한번만 더 거절하면 소용은 물론 네 목까지 달아날줄 알라고!! 알겠느냐?!

서슬이 퍼래서 승효가 경희를 노려보는 눈길이 불길이 이는것 같았다. 면역이 되어서 어지간해선 놀라지 않던 경희가 손을 파들파들 떨었다. 어찌나 불같이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지 눈물이 투둑 떨어지기 직전에야 상선인 김내관이 불러내 돌아가라고 해서 대전에서 나왔다.

- 됐다. 얼른 돌아가거라. 괜찮으냐?
-...ㅇ...예. 괜찮습니다.

겨우 말은 그렇게 했으나 잔뜩 굳어 겁에 질려서 얼굴이 하얬다.

- 오늘따라 좀 심하시구나. 경희 네가 이해하렴.  요즘 심기가 많이 불편하셔서...조정의 일도 그렇고 부왕이신 장헌왕의 능 이전 문제로 예민하시단다.
- 알겠습니다.

눈물이 생각과 달리 후두두둑 떨어졌고 내관이 손수건을 건냈다.

- 정말 많이 놀랬구나. 가서 좀 쉬렴.

드림주와 승효 사이에 끼어 괜시리 나이 차도 얼마나지 않는 나인인 경희만 날벼락을 맞았다. 김내관은 닫힌 강녕전의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따뜻하고 온화하며 올곧은 면도 있으나 어릴때 그의 부왕인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 영조의 애정과 동시에 따라 붙은 지독한 감시 아닌 감시와 아버지의 자리가 빈 조정의 신료들 사이에서 끝도 없는 죽음의 위협까지 받으며 자란터라 철두철미하고 예민했으며 깐깐했다.


어머니 혜경궁과 있을때는 아니였지만 궐이란 것이 일반 사가와 달라 할아버지인 영조로 인해 반강제로 혜경궁과 떨어져 자신의 처소에서 많은 시간을 따로 지내며 자란터라 성질에 내키지 않으면 종일 곡기를 끊고 제 침소에서 책만 파며 밤을 새기도 했다. 덕분에 친정을 하는 스물이 진즉 넘은 나이인 지금까지 혜경궁의 걱정거리인 아들이기도 했다.

- 책은 적당히 보고 일찍 침수 드셔야죠. 주상. 어찌 이리 고집스러운지.  언제쯤 이 어미의 말을 한번이라도 들어주실 것인지요? 요사이 정사도 많다고 들었는데..참 어지간 하십니다. 
- 죄송합니다. 어머님. 일찍 자도록 하겠습니다.
- 이럴때 보면 주상은 할아버님을 똑 빼다 박았어요. 그거 압니까?

승효는 피식 웃었다. 드림주의 우는 얼굴이 또 어른거렸다. 어쩌자고 이렇게 내 맘을 몰라주는지.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정치는 어느 정도 내 뜻을 관철시킬수 있는데 너란 아이..너란 여자는 내가 대체 어찌 해야 하는거냐. 아이를 앞세운 나도 맘이 편치는 않지만 왜 나를 멀리하고 혼자 이렇게 아파하는거니..

-  아..안돼...아가...우리...내 아이..정말 이젠 느낄수도 볼수도 없는겁니까? 전하, 아니지요? 저를 놀라게 하시려고 농 하시는거죠? 아니..아닐거에요. 아니고 말구요. 얼마나 튼튼히 자라고 있다 했는데 유산이라뇨. 아닐겁니다. 이렇게 과한 농은 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홀쭉해진 배를 만지며 눈물을 쏟다 아니라며 소리를 지르고는 엉엉 통곡하다 혼절한 드림주였다.  아니야, 아니에요!! 귀를 막고 사리문 입술이 터져 피가 나도 승효의 손을 밀쳐내며 내내 울기만 했었다.

- 소용이 주상의 마음을 아직도 몰라줘서 야속하신게지요?
-....
- 주상. 여인은 어미가 되어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진답니다. 주상을 가졌을때 나도 그러했구요. 그래서 부왕이신 아버님을 먼저 보내고도 견딜수 있었지요. 그러니 소용의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사랑하는 지아비를 닮았을 아이가 갑자기 떠났으니 주상을 어찌 대해야 하나...이제 주상의 마음이 식은건 아닌가.  다른 누구도 아닌 주상의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으니 혹여 궐을 떠나야 하는게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 겁니다.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프고 불안할지.  게다가 ㅇㅇ는 주상이 먼저 택한 유일한 아이가 아닙니까. 세자 시절에는 어미가 그리 반대해도 그 아이가 아니면 안되겠다고 해 놓고선 막상 지금은 주상을 쉬이 모시지 못하는 여인의 마음을 그리 모르니 어쩌면 좋을지. 시일도 어느 정도 지났고 하니 어서 가서 달래주세요. 첫 아이를 잃은 마음이 주상 못지 않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주상보다 더 심히 아프고 괴로울터이니. 모질거나 아픈 소리는 하지 마시구요.
- 알겠습니다.

아이를 유산한 뒤 바깥 산책도 삼가고 처소에서 거의 죽은 사람처럼 지내던 드림주 소용은 오늘은 승효가 제 처소에 유하겠다는 전갈을 받고 과하지 않을만큼의 아침도 들고 세소도 마치고 간만에 잠시지만 경희와 다른 어린 나인 몇을 데리고 궐내를 산책하기도 했다. 겨울이 와 바람이 상당히 차가워 옷을 두툼히 신고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얼마전까지 곱게 물들었던 단풍나무도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으나 아이를 잃기 전, 승효와 나누던 대화가 떠올라서 드림주는 오랜만에 슬며시 웃었다.

-  빛깔이 어쩜 이리 고울까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  그야 때가 되면 매해 돌아오는 것인데 새삼스럽긴.
- ..참 야박하십니다. 매해 돌아오는 것이라도 보기 좋다. 곱다. 소첩의 말에 장단 한번 맞춰주시는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요?
-  정작 내게 차가운 것은 너 뿐이다. 소용. 마치 안 그런 것처럼 그러니 나야 말로 황당하네. 참..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고 얄밉다는 듯 쳐다보는 승효의 눈길에 드림주는 풋 웃었다. 아이도 아니건만 어찌 저러시는지 정말 못 말리지.

- 가자. 어찌 그리 못 따라오냐. 어릴때는 온 궐이 먼지가 일도록 빨빨거리고 잘만 돌아다니더니. 그러게 의원에게 일러 지은 약 잘 먹으라 당부했지? 그래야 내 뒤를 이을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테니까.

낮인데도 낯부끄런 소릴 얼굴 하나 바꾸지 않고 평상시 대화하듯 해서 드림주는 제 손을 쥔 승효의 소매를 잡고 걸음을 멈췄다.

- 왜?!
- 누가 들으면  어쩌라고요. 제발 말을 가리세요. 전하.
- 밤에는 가끔 나를 놀래키면서 늘 조신했던 사람처럼 이제와 내외하잔거냐?
- 전하!!

드림주는 약이 올라 손등을 살짝 아프게 꼬집었다. 승효가 아프게 한 벌이라며 걸음을 멈추고는 안된다 놀래서 거부하는 드림주의 입술을 한참 머금고 놓아주지 않았다. 경복궁 내에서 경치 가장 좋다는 경회루 앞이었고 햇살이 둘을 내리 쬐어주고 있었다.


그날 밤에는 나인과 상궁들에게 단장을 받았다. 장신구도 과하다 하여 아주 조금만 소장하고 있었으나 승효가 멀리 나갔다 오거나 임금인 신분을 숨기고 민심을 살피고자 평복차림으로 저잣거리에 나갔을때 샀다며 쥐어준 반지며 비녀, 노리개는 신주단지마냥 깊이 아껴 두었다가 승효가 처소에 들어 둘이 있을때만 착용했다. 


ㅡㅡㅡㅡㅡ

이어집니다.


실제로 정조는 어릴때 아버지(사도세자)를 잃은 일로 인해 조정 신료외에도 늘 죽음의 두려움에 둘러 싸여 자라선지 학문도 상당히 뛰어났으나 반면, 성정이 까탈스럽고 예민. 담배와 술을 상당히 즐겼다 합니다. 심지어 신료들과의 술 자리에선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 라고 했을 정도라 합니다. 

*덧붙임 사소한 정보)경복궁의 경회루 현판 글씨는 태종 때 그의 아들이자 세자였던 맏아들 양녕대군(이 재)이 썼다 합니다. 그는 학문외에 모든 것에 우수,능통했으며 특히 사냥과 활쏘기에 특출 났다 하고 음주와 가무는 폐세자가 되어 궐에서 나간 후에도 한참 즐기며 나그네 같이 살았다고 해요. 아버지 태종과 조부 이성계의 피 터지는 싸움만 아니였어도 좋은 임금이 되었을텐데 세종이 되었으니 더 잘된거라 해야 할까요?

**그린내:연인의 우리말

가끔 글 쓰는 사람.

가은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