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2.25 제 1회 템플스테이에 나온 단편을 무료공개로 돌립니다. 

* 작중 나오는 캐럴 가사는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way in a Manger>,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의 가사 일부를 차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 본 글은 뮤지컬 2015 라이센스판 JCS를 기반으로 한 2차 창작으로, 공식 및 실존 인물, 단체, 종교,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화성의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on Mars

 

 

 

유다는 약 이천여 년 전 이맘때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기억했다.

쓰는 달력도 그 동안 몇 번쯤 바뀌기는 하였지만, 겨울이 되고 해가 가장 짧은 날이 가까워 오면 그 때가 곧 하누카의 절기였다. 그날이 오면 온 유대 사람들이 다 하누카를 축하하며 해가 지기 직전 하누키야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떠들썩하기보다는 조용히, 가족들과 함께 치즈와 양젖, 잼을 넣은 빵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며 명절을 보내던 기억이 났다. 약 삼십 년을 가족과 그렇게 보냈고, 어느 해부터는 그의 랍비와 다른 사도들과 함께 보냈다. 해가 어둑할 즈음 불을 밝힌 촛대 너머 비친 랍비의 모습, 홀로 성전을 거닐던 고요하고 정적인 그 자태는 이천 년이 넘는 세월을 넘어서도 새삼 떠올릴 때마다 심장을 들뜨게 했다.

물론 항상 그렇게 평안히 보내지는 못하였다. 집을 떠나 스승의 뒤를 따르고 나서부터는 길에서 명절 음식을 마련하는 것조차 그리 쉽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은 랍비를 싫어하던 자들이 하누카 날에 성전을 방문한 그에게 해코지를 하려 해 시끄러웠던 적도 있기는 했었고…….

그로부터 그 후 수백 년 후의 일까지도 기억할 수 있었다. 유대 땅을, 그들의 고향이자 무덤이던 곳을 떠나 이국의 땅에 자리를 잡아 살던 나날들. 유다야 아직은 집에서 하누카를 지내던 때이기는 하였지만 집 밖으로 벗어나면 동지(冬至)절과 이교의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와 행렬이 한참이었다. 고향에서의 그리웁고 지긋지긋한 기억과는 별개로 낯선 종교와 그 신을 기리는 축제가 그리 달갑지는 아니함도 사실이었으나, 하여 축제 기간 동안 대부분 집에서 머물러 있었던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았었다. 모른 척, 가끔은 함께 사는 이와 함께 기분전환을 겸해 구경을 하기도 했다. 좌우간 축제 기간이라 먹을 것도 많았고, 상인들도 많이 몰려왔으니 핑계를 대어 그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에도 좋았고.

그래, 그렇게 유다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벌써 이천 년이나 흘렀고 기억이 군데군데 흐려질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전혀 기억에 없었는데. 심지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유다는 그의 랍비에게도 맹세할 수 있었다. 최소한 그가 죽음을 박탈당한 후 사백 년쯤 흐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가게 안에 흘러나오는 캐럴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유다는 삐딱하게 케이크 진열대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어딜 보나 크리스마스를 맞아 기쁘게 케이크를 고르는 모습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삭막한 분위기에 점원은 눈을 깜박이며 그를 보았다. 이 이상한 손님이―유다가 이러고 선지 벌써 오 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야 크리스마스가 만인에게 기쁘기만 한 날은 아니라지만, 적어도 짧지는 않은 아르바이트 생활 동안 이렇게 딱딱한 얼굴로 케이크를 고르는 남자는 처음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고르던 유다가 비로소 케이크 어느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산타와 루돌프 따위의 장식을 올린 과일 케이크였다. 직원은 이내 능숙하게 영업용 미소를 입가에 띠고 케이크를 상자에 포장하며 물었다.

"초도 필요하신가요? 몇 개 드리면 될까요?"

유다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2016개……."

"네?"

"아니, 아니. 큰 초 두 개랑 작은 초 열여섯 개……."

직원의 표정이 점차 해괴하게 변해갔다. 유다는 잠시 그리 크지 않은 케이크 위에 도합 열여덟 개의 초가 다닥다닥 꽂혀 있는 몰골을 떠올려 보다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헛기침을 몇 번 하고, 그는 다시 직원에게 제 요구사항을 정정했다.

"…큰 초 세 개, 작은 초 세 개 주십쇼. 서른세 살에 맞춰서."

그제야 직원이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고 초를 준비했다. 어쩐지 괜히 낯이 뜨거워 유다는 빤히 애꿎은 계산대만 노려보았다. 생각해 보면 아, 굳이 초까지 달라고 할 필요는 없었는데. 항상 후회는 언제나 자각을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케이크를 살 필요도 없었잖아?

마침내 포장이 끝나고 점원이 유다에게 포장된 케이크를 내밀었다. 크리스마스 기간 한정으로 맞춰 특별히 빨간 색에 포인세티아와 눈꽃 무늬가 그려진 상자였다. 유다가 카드를 내밀어 값을 치르는 동안, 한편 가게 안에도 어느덧 나오던 캐럴이 끝나고 새로운 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주아주 익숙한, 유다로서는 전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곡 중 하나가. 하긴, 유다는 캐럴 전반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는 했다.

‘* Away in a manger, no crib for a bed…….’

유다는 건조한 시선을 창밖으로 두고 라디오를 외면했다. 익숙해진 지는 수백 년은 넘었으니 굳이 이제 와서 기막혀 할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미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 건 안 드는 게였다.

계산이 끝나고 점원이 영수증과 함께 돌려주었다. 카드를 챙기자마자 유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왔다. 쌩하니 가게를 나오는 유다의 뒤로 캐럴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낭랑하게 자리를 메웠다. 이천 년 넘게 살아온 옛 사도가 저를 외면한 사실을 모른 채, 라디오 속의 합창단은 천진하고 거룩하게 오늘 그들의 구주가 이 땅에 오심을 찬양하였다.

'…* The little Lord Jesus laid down his sweet head…….'

 

“다녀왔습니다.”

보통 그렇듯 시큰둥한 목소리에도 지저스는 별반 개의치 않은 듯 반갑게 밖에 나갔다 온 제자를 맞아 주었다. 구석에 둔 트리 아래 크리스마스 장식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광경을 보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대충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왔느냐?”

유다는 케이크 상자를 들어 올려 보였다.

“케이크 사왔습니다.”

“뭘로?”

“…전에 잘 드셨던 거요. 왜, 그 딸기 올라간 거.”

단정한 얼굴 위로 빙긋 미소가 떠올랐다. 얇은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걸 본 유다는 뺨을 살짝 발갛게 붉혔다가 문득 몰려오는 진한 체념어린 자괴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와 함께 한지가 벌써 약 이천 년, 그런데 아직도 스승의 미소 한 줄기에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이 콩닥대는 제가 퍽 한심하게 느껴지는 까닭이었다.

지저스는 상자를 넘겨받아 식탁 위에 두었다.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걸 보아 유다가 없는 사이에 아마 무언가를 만든 모양이었다. 유다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그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남기에 오랜만에 요리를 해 보았단다.”

"저녁은 제가…아니, 네. 그래서 뭘 만드셨는데요?”

“예전에 네가 만들어 준 로스트 치킨 있지 않느냐? 그걸 해보고 있다.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보고 하니 그리 어렵지는 않아서."

유다는 내심 찔리는 동시에 (사실 백화점에서 사왔었다)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이 되어 입술만 달싹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툴툴댔다. 물론, 지저스가 요리에 능숙하지 못해서 따위의 이유는 아니었다……그럴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니니까.

"제가 다녀와서 한다니까요."

"너도 피곤하지 않느냐, 같이 하면 좋지."

"신경 써 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그리고……."

"응?"

그리고 당신한테 오늘 같은 날 요리를 대접은 못할망정 대접을 받자니 어쩐지 좀 거북해서 그럽니다, 라는 말은 마저 하지 못한 채 속으로 삼켰다. 세상에, 조소하던 때는 언제고 벌써 이젠 저마저 물든 모양이지. 어쩌면 케이크에 초까지 챙겨왔을 때 이미 진작 그른지도 몰랐다.

유다로서는 어느 정도 다행스럽게도 지저스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저 유다의 속내를 짐작하는 듯 아닌 듯 엷은 미소만 살짝 띠어 보이곤 그는 곧 돌아온 제자를 방으로 떠밀었다. 권능은 두고 오셨다면서, 이럴 때마다 정말 두고 오신 게 맞는 건지 이따금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발칙한 의문에 유다는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다.

"가서 씻고 오너라. 그리고―"

"네?"

지저스가 손가락을 들어 트리를 가리켰다.

"다 구워질 때까지 저거 같이 장식하자꾸나."

유다는 끄응, 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유다는 옛날 이맘때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 대강은 기억하고 있었다.

유다에게 있어 태어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또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시기는 곧 하누카의 절기였다. 그들 민족의 중요한 명절, 어둑어둑해질 즈음 그는 하누카 초에 불을 밝히고 그들 조상이 성전을 탈환함을 기념하며 준비한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가족과 그리 보냈고 그 다음부턴 3년을 그의 스승과 다른 사도들과 함께 했다. 전만큼 잘 챙기지는 않게 되긴 하였으나 유다는 아직 창고 어딘가에 남아 있는 메노라를 기억했다. 꺼내지 않은 지 좀 오래 되기는 하였지만 좌우간 옮겨 다닐 때도 버리지는 않았으니 아직 짐 속에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 뒤 죽지 못하고 불멸의 삶을 살며,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와 이교도의 땅을 돌아다닐 때에도 어딜 가나 이 시기는 중요하게 기념되는 편이었다. 집안에서야 다들 무슨 의례를 따르고 있는지 유다가 알 바는 아니었지만, 가는 곳마다 대개 동지를 기념하여 축제가 벌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로마와 저 애굽 땅에서는 그때쯤 그들이 모시는 신―특히 태양신에게 제례를 올리기도 하더란다. 아무튼 해가 가장 짧은 날이 중요한 절기임에는 틀림없기에, 각 나라와 시대마다 그 시기에 다양한 축제와 기념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로마가 숭배하는 저 솔이며 사투르누스며 하나도 전혀 믿지 않는 유다로서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바였다. 따지고 보면 하누카도 동지에 가까웠고. 혹시 아나, 지금이야 태양신의 제사를 지내지만 나중에 가면 그 때 주류가 되는 신을 바꿔서 모시게 될지?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그랬던 유다도 정말로 코앞에 닥칠 때까지는 이렇게 되리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하였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그 결과, 제길, 집에서까지 바로 이날 빌어먹을 캐럴송을 듣게 될 줄이야.

유다는 TV를 그냥 끄고 싶은 은근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정말 잠깐이었을 뿐이고, 전현직 회계답게 머잖아 냉정한 이성이 머릿속에 돌아와 곧 그 비이성적인 충동을 몰아냈다. 꼭 지저스가 그 캐럴송을 따라 작게 흥얼거리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렇고말고.

다행히 이번 곡은 그리 길지 않아 곧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그 뒤에 계속 흘러나온 곡도 다른 캐럴이기는 했지만. 옆에 앉은 제자의 부루퉁한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저스는 여전히 캐럴을 흥얼대며 트리에 루돌프 장식을 매달고 계셨다. 매년 그랬기는 했지만 그 모습이 참 유독 신이 나 보여 한편 저를 괴롭히고 있는 우스움과 불편함, 기타 등등이 일거에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래, 저분이 저리 즐거워하시면 되었지. 유다는 작게 투덜거렸다. 저분이 즐거워하는데 내 감정이야 어떻든 그게 무어 중요할까.

“즐거우십니까?”

제가 생각해도 참 묻는 의미가 없는 질문에 지저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즐겁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이냐.”

할 말이 없었다. 유다는 얌전히 입을 다물고 묵묵히 트리에 지저스가 건네는 금색 장식을 달았다. 다문 입술이 약간 삐죽 튀어나온 듯한 건 그냥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캐럴이 끝나고 TV 화면이 이번에는 프로그램 패널들을 비추었다. 지금까지 노래를 부른 성가대에 박수를 보내고, 남녀 각 한 명씩으로 이루어진 패널들은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에 으레 하는 상투적인 말을 주고받으며 올해의 마지막 명절을 축하했다.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이란 게 만들어진 이래 매년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반복될 진부한 멘트가 몇 번 오간 끝에 남자 패널이 웃으며 말했다. 유다의 입장에선 그 진부한 멘트들 중에서도 특히 더 진부하고 우습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지만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 바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니까요…….“

유다는 그만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러다 그만 제 얼굴에 빤히 와 닿는 시선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황급히 기침을 하며 수습하긴 했으나 이미 때는 한참 늦어 있었다.

허둥대는 사이에 지저스는 지그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도로 시선을 돌렸다. 유다는 속으로 제 망할 주둥이를 몇 번이나 철썩철썩 두들기며 그저 제 랍비의 눈치를 곁눈으로 살폈다. 간신히 변명조의 말을 입에 담은 것은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지저스, 그런 게 아니라…….”

별로 신통치는 못했지만. 그런 게 아니면 ? 뭐라고 말할 건데?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저주하며 골을 싸매는 제자를 구원한 것은 이번에도 그의 자애로운 스승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제자의 얼굴을 흘끔 본 그는 덤덤한 어투로 유다를 다독였다. 아주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노여운 기색 역시 찾아볼 수는 없는 어조였다.

“괜찮다.”

유다는 다급히 덧붙이려 했다.

“그게.”

“오늘을 내가 태어난 날로 기념함이 네 심기를 거스른 것 아니냐. 사실은 오늘이 아닌데.”

열리려던 입술이 다시 딱 다물렸다. 진짜 권능을 두고 오신 게 맞나?

그러나 곧 속을 찔린 뜨악함에 뒤이어 밀려온 것은 역시 그간 꾹꾹 눌러오던 아니꼬운 반감의 홍수였다. 유다는 도로 입을 여는 대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부끄럼 대신 가슴 속에 고개를 쳐든 것은 자괴감이었다. 역시 그가 랍비의 눈을 피함은 애초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곧게 뻗은 손가락이 바닥에 널려 있던 장식들 중 금색 리본을 골라 집었다. 리본을 나무에 매며, 지저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녹색 전나무 가지에 하나씩 늘어가는 금색 장식물이 얼른 보기에도 퍽 잘 어울렸다.

“하지만 괜찮아. 정말로.”

“…….”

“오히려 기쁘기도 하구나. 날짜야 어떻든 이토록 많은 이들이 태어남을 축하해 주는 게.”

그야 당신은 지저스 크라이스트니까.

유다는 또 불쑥 튀어나올 뻔한 말을 눌러 참았다. 스스로를 희생하사 전 인류를 구원하신 사람의 아들께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생일은 알지도 못하고 알 생각도 없고, 저들 편한 대로 생판 엉뚱한 날에 매년 축하해 주어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실 수 있을는지 몰랐다. 설령 그 생일이 그들 민족이 이를 간 저 로마가 모셨던 신의 축제일과 똑같이 겹치게 된다 하더라도.

하지만 세상에, 보통 사람인 유다는 아니었다. 하물며 유다는 그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그리 마음이 넓은 편도 되지 못했다.

괜히 트리에 달 사탕 지팡이를 (생각해 보면 이 크리스마스 트리도 랍비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오래 만지작대며 유다는 새삼 울컥 치솟은 짜증을 다시 삭히려 노력했다. 사실 정말이지, 그는 참 많은 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야 저 로마 태양신의 탄생일로 기념되던 날에 사람들이 당신의 탄생일까지 막 축하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래, 어른의 사정이 꽤 많이 개입되어 있었음을 유다도 알았다. 하지만 젠장, 그게 21세기가 되기까지 천육백 년이 넘게 정정도 안 되고 이어질 건 없지 않았나. 유다는 분명히 이천 년 전 이맘때를 어떻게 보냈는지 나름대로 거의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하누카 준비를 하느라 장부와 씨름한 기억은 있어도, 다른 때도 아닌 이때 스승의 생일을 위해 무화과 얼마간을 더 살 돈을 긁어모으며 전전긍긍했던 기억은 없었다.

설마 이대로 계속되랴, 하지만 그 설마가 맞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 태양신이며 대지신의 생일은 정말 그때여서 로마인들이 축제를 벌였겠나. 스스로의 안일함을 자책하는 한편 그는 속으로 그나마 복음서를 남겨 랍비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공헌한 나머지 사도들을 향해 불만을 퍼부었다. 베드로는 사도들 중 제일가는 이라며 선교하는 동안 스승이 언제 태어났는지 정도는 한 번 언급할 수도 있지 않았단 말인가? 마태, 요한,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너, 요한, 주께서 가장 사랑하는 제자라며 문단마다 1인칭을 쓸 시간이 있었으면 우리가 스승님 생일을 언제 축하했단 얘기도 몇 줄은 좀 써놓을 수도 있지 않았냐?

하여 유다는 참으로 이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은근히 신경에 거슬렸다. 날짜도 안 맞는, 뭇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생일, 그나마도 정말로 온전히 스승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로써 지나갈 때는 차라리 나았지, 그러나 그 의미마저도 세월이 지나며 흐려져 가고 있었다. 만들어진 생일조차 이제는 착한 아이 한정으로 선물을 준다는 산타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노인에게 인지도가 넘어간 지가 한참이다. 그리고 그날을 무시는 못 하고 굳이 또 올해 두 번째 케이크를 사온, 그것도 산타와 루돌프 장식이 있는 (산타 장식이 없는 케이크가 없어서 할 수 없었다) 케이크를 사와야 했던 자신도 정말 지긋지긋했다.

“유다야.”

지저스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러 타일렀을 때에야 유다는 제 손에 들린 사탕 지팡이의 몰골을 보고 침묵했다. 얼마나 세게 문질러댄 것인지 포장이 다 벗겨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포장지 안의 내용물은 몰라도 장식물의 기능은 이미 잃은 지 오래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지저스가 말없이 다른 장식을 유다 손에 건넸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유다는 못쓰게 된 지팡이를 치우고 지저스가 건넨 장식을 잠자코 받아 트리에 달았다. 찬바람처럼 내려앉은 어색한 적막을 TV의 소음이 메우고 들어왔다. 얼마간 두 사람 사이로 아무 대화도 더는 오가지 않았다.

 

다 구워진 로스트 치킨의 냄새가 알람과 함께 훈훈히 거실까지 풍겨왔다.

어느덧 트리 장식도 거의 다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약간의 보람을 느끼며 유다는 그의 스승과 함께 완성한 작품을 지켜보았다. 한참 속으로 툴툴대긴 했어도 막상 거의 완성된 트리를 보니 기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일부러 전등은 감지 않았다. 아직 목수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은 지저스는 전등은 나무에게 좋지 않다는 등, 마치 유다가 장을 보거나 가계부를 정리할 때 그러하듯 생각지 못한 곳에서 직업을 드러내곤 하였다.

오븐 알람이 시끄럽게 울림에 따라 지저스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 마무리는 유다에게 맡겨 둔 채였다.

“다 됐나 보구나. 그럼 난 가서 식사를 차리마.”

유다도 급히 따라 일어서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굳이 오늘 스승에게 식사 준비를 시키고 싶지 않은 건 진심이었다.

“식사 준비라면 제가,”

그러나 지저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트리를 마저 완성하고 오거라. 식사 준비를 하던 건 나였으니.”

결국 유다는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 번, 그는 도무지 제 스승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지저스는 일어서 놓고도 바로 주방으로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트리 위에 별을 달려던 유다는 가만히 저를 바라보는 제 랍비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 저러시지, 고민하다 입을 뗄 무렵 지저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평온한 목소리였으나 유다는 왠지 그가 살짝 머뭇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다야, 나는 정말 괜찮단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다는 살짝 눈썹을 치켜떴다. 스승의 말씀은 이어졌다.

“사람들이 오늘을 내 생일로 알고 축하해 주어도.”

…아아, 또 무슨 말씀을 하시나 했더니.

유다는 하마터면 잔뜩 찡그릴 뻔한 얼굴 근육을 겨우겨우 붙잡았다. 그는 더 이상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지금은 말이다. 그러나 유다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번에도 지저스가 한 발 더 빨리 입을 열었다. 유다가 끼어들 틈도 없이 그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만은 내 진짜 생일이 언제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네?

유다는 멍하니 저를 내려다보는 스승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지금 이분이 무슨 말씀을 하신 거지?

“그걸로 충분하단다.”

유다는 제 스승이 마치 외계어를 하기라도 한 듯 바라보았다. 원래도 랍비의 말씀은 헤아리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제자가 미처 제 말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지저스는 먼저 딱딱히 고개를 돌리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평소보다 묘하게 발걸음이 빠른 것이 어쩐지 약간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물론 그럴 리는 없었지만. 유다는 자신 없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귀찮게 꼬치꼬치 따져대던 바리새인을 앞에 놓고도 일일이 대답하여 끝내 물러가게 만든 분이 그럴 리 없다. 아마도. 그렇지?

그리하여 홀로 거실에 남겨진 유다의 머리가 비로소 느리게 삐걱삐걱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초 또는 몇 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보다 못한 천사가 한 대 후려갈긴 듯 깨달음은 계시와도 같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불사의 사도는 외마디 비명 같은 탄식을 내뱉으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다른 손에 들었던 별장식은 여전히 쥐고 있는 채였다. 트리의 꼭대기에 매다는 별, 제 스승의 탄생을 알렸다고 하는 베들레헴의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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