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을 돌려라, 저쪽 1학년이 공을 못 잡게 해.”

71-78, 휘슬이 불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2분. 산왕의 감독인 도진우가 내리는 지시는 짧고 간단하다. 벤치 진이 비켜준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던 선수들이 마찬가지로 짧고 굵게, 그리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네!!”

짧은 작전 타임이 끝나면 다시 경기 재개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겨울의 선발 대회 4강, 상대는 작년 여름부터 악연을 이어온 지학이었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승부의 세계에서 악연이 아닌 팀이 어디 있겠냐마는 해마다 끈질기게 산왕과 엮이는 팀은 얼마 없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손을 꼽는 것도 끽해야 해남대부속고, 지학고 정도가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지학은 이번에야말로 단단히 칼을 간 것 같았다.

지학의 감독이 직접 집까지 찾아가서 스카웃 했다던 1학년 마성지. 지학의 경기를 분석할 때부터 쉽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실제 코트 위에서 보게 된 그는 훨씬 위협적이었다. 시야가 넓고 그때그때 보여주는 패스 플래이에서는 잠재력이 돋보인다. 어떤 포지션을 가도 에이스가 될 1학년이다. 무엇보다도 슛 감각이 좋다. 점수 차이는 7점. 적다고는 할 수 없으나 많다고도 할 수 없다. 삼점슛 두 번이면 따라 잡힌다. 최선의 판단은 아예 그에게 공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

급격하게 키가 큰 신현철의 존재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름, 대열의 가장 마지막 끝에서 공을 받던 신현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 앞으로 나왔다. 나날이 키가 큰 덕분이었다. 1년이 온전하게 지나기도 전에 신현철은 센터에 서도 부족함이 없을 재목이 되었다. 그런 신현철에 대해서 사람들이 자주 깜빡하는 게 있는데, 입학 당시 그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였다. 이명헌을 백업할, 포인트 가드.

1학년 이명헌과 신현철을 주축으로 공들이 이리저리 오간다. 한 번씩 날카로운 커팅이 들어오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실상 두 명인 포인트 가드가 하는 볼 배합과 패스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다른 센터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신현철만의 경험이자 재능이다. 마성지를 누르고 산왕의 추천 입학을 받은 이명헌에 대해서는 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저 둘의 플레이가 앞으로 산왕의 농구가 될 것이다. 도진우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1분 밑으로 떨어지는 숫자에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뗀 도진우는 벤치에 앉았다. 승리가 완전히 넘어온 것을 예감한 그의 버릇이었다. 공을 튀기며 30초를 세던 이명헌이 눈을 흘긴 건 그때였다. 시선이 향한 곳은 신현철이 서 있는 곳이었다. 이제 막 팔짱을 끼고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려던 도진우가 급히 몸을 일으킨다.

코트의 사령관이라고도 불리는 포인트 가드들은 적극적으로 콜 사인을 내리며 다른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그러나 이명헌은 달랐다. 그는 모든 사인을 눈짓과 시선, 고개 방향으로만 전했다. 자칫 건방지게 느껴지는 사인이었음에도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은 불평하지 않고 합을 맞췄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명헌의 지시는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진우가 몸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휘슬이 불리기까지 공을 돌리는 데 지시는 필요하지 않다.

팀 골대 밑에서 드리블로 시간을 벌던 이명헌이 속공 태세로 전환한다. 사인을 받았을 신현철이 마찬가지로 내달린다. 찬스만을 기다리던 지학은 놓치지 않고 둘을 쫓았다. 실점 하나하나가 뼈 아픈 상황이었지만 볼만 돌리던 와중에 펼치는 속공은 분명한 기회였다. 한 번만 막으면 추격의 불씨가 될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은 약 51초, 이명헌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가드 앞에서 고민도 없이 슛을 던졌고, 마성지보다 높게 뛴 신현철은 고민도 없이 공을 붙잡아 림으로 내리꽂았다.

앨리웁 덩크였다.



*


선발 대회 결승을 앞둔 저녁이었다. 도진우는 뛰어가듯 숙소 계단을 내려갔다. 평소보다 일찍 시작한 저녁 점호에서 1학년 두 명, 2학년 다섯 명이 빠져있는 탓이었다. 합숙도 아닌 선발 대회 일정에서 선수들이 도망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도진우가 걸음을 급하게 하는 건 그들이 있을 곳을 알아서였기 때문이다.

숙소 문을 나서자마자 건물 뒤편으로 내달렸다.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선발 대회 참여하기 위해 따로 잡은 숙소는 주변이 고요했다. 급하게 챙겨온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사라진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코너에서 2학년 다섯 명이 걸어 나온다. 기어코 도진우의 예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차례대로 감독 앞에 선 그들은 뒷짐을 지고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회 중에는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일부러 목소리를 엄하게 내면 2학년 하나가 한걸음 내디뎠다. 먼저 팀을 무시했습니다. 주어가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도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내 말을 무시한 건 너희들도 똑같다. 그러면 2학년 하나는 몸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그게 당장 여기서 뺨을 갈기든 머리를 때리든 입 다물고 맞겠다는 뜻이라는 건 듣자마자 알았다. 그 한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넷도 같았다. 후배의 잘못을 구타로 해결했으니, 자신들의 잘못 역시 구타로 해결되어도 어떤 불만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눈을 질끈 감은 도진우가 눈가를 쓸었다. 감독 일을 하며 한 번도 남의 자식에게 손을 올린 적 없었음에도, 때때로 선수들은 이런 식으로 굴었다. 도진우가 산왕의 감독이 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한 악습이었다.

“…날이 춥다, 먼저 들어가.”

“네, 알겠습니다.”

“다른 애들한텐 굳이 떠들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대회 중에 애들 이렇게 잡지 마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깍듯하게 허리를 숙인 2학년 선수들은 도진우가 인사를 받아주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 이미 더 올라갈 곳이 없다는 산왕의 감독을 맡으며 막막함을 느낀다면 이럴 때다. 산왕의 역사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해악을 어린아이들에게서 마주할 때.

산왕만큼이나 전통이 깊고 오래된 학교에서 군기를 잡는 구타나 기합 같은 게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이 나서기보다도 나이대가 엇비슷한 선수끼리 적당히 기강을 잡는 게 팀 분위기적으로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선배들과 후배들의 화목한 농구 같은 낭만을 꿈꾸기에는 도진우는 확실한 어른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지나치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과했다. 기강을 잡는 방법으로는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닐 텐데도 무조건 그것부터 택했다. 산을 바꾸려면 숲을 바꿔야 하고, 숲을 바꾸려면 나무를 바꿔야 했다. 그리고 도진우는 나무를 뽑거나 베는 게 아닌 새로운 묘목을 심는 쪽을 택했다. 어떤 변화든 시작은 긍정적인 쪽이 좋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2학년들이 나온 모퉁이를 돌면 사라진 1학년 두 명이 손깍지 낀 채로 엎드려 뻗쳐있었다. 그들이 짚고 있는 땅바닥은 차갑고 거칠기만한 아스팔트였다. 이명헌의 팔이 떨리고, 신현철의 다리가 떨린다. 그러나 누구도 앓는 소리나 죽겠다는 소리는 내지 않는다. 손전등으로 비추면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입고 있는 옷은 반팔 티셔츠였고 계절은 겨울이었다. 산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바뀌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묘목들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

이명헌의 팔이 휘청이던 것도 잠시 금방 균형을 되찾는다. 도진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쯤하고 일어나라.”

“…선배들께서, 앞으로 감독님 앞에서는 허리도 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답한 건 신현철이었다.

“지금 팀 감독보다 선배들이 위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아닙니다.”

“그럼 빨리 일어나! 내일 시합 자체를 포기할 거냐?”

목소리를 높이면 그제서야 신현철이 발가락 끝으로 서 있던 다리를 굽혔다. 참았던 숨이 터진다. 신현철이 자세를 바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깍지 낀 손으로 버티던 이명헌이 제대로 바닥을 짚었다. 표정은 언제나와 같았지만 초점이 조금 흐려져 있었다. 찬 바닥에서 일어선 둘은 곧장 뒷짐을 진 채로 앞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호흡을 조절하는 건 그다음이다. 그것조차도 작게 소리를 죽여서, 어떤 기색도 티 내지 않고 있었다.

“공기가 차다. 앉아서 심호흡 천천히, 제대로 해.”

명령처럼 말하면 두 사람은 그제야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앉은 뒤 숨을 골랐다. 시선은 여전히 앞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일이 경기라고 몸에 손을 대진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걸 다행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찬 바닥에 몇십분은 대고 있었을 손등은 엉망이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쉰 도진우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왜 그런 플레이를 했지?”

그리고 묻는다.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도 저지른 문제아들에게.

51초를 남기고 갑자기 시작된 산왕의 속공은 성공적이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공격권이 넘어가고 마침내 턴을 잡은 지학은 곧바로 공을 마성지에게 돌렸다. 오직 이명헌과 신현철만이 플레이를 공유하면서 진영이 흐트러졌던 산왕은 한 번의 삼점슛과 디펜스 파울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기세가 지학 쪽으로 기울었다. 그럼에도 이명헌과 신현철이 내일의 결승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남은 시간으로는 벌려 놨던 점수 차이를 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 더군다나 결승까지 연전으로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플레이는 어느 프로에서든 권유되지 않아.”

슛이 먹히면 먹히는 대로 지지 않고 돌려주던 이명헌의 끈기와 다리가 움직이는 한 끝까지 달리고 뛰는 신현철의 투지가 있었기에 해낸 일이기도 했지만, 그 시작이 안전한 승리를 포기한 도박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도진우가 그들에게 가혹 행위가 펼쳐질 것을 예상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도진우 뿐만이 아니다. 이명헌이 달리는 순간 산왕의 모두가 이런 결말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걸 당사자인 이명헌이, 신현철이 모를 리가 없었다.

“너희가 지금 2학년, 어쩌면 3학년보다도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손바닥에서 얼굴을 뗀 도진우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객관적으로 둘의 실력은 벌써부터 산왕이 아닌 전국구급으로 평가해서 매겨야 할 수준이었다. 그 사실까지도 본인들은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관자놀이 부근이 욱씬거렸다. 1학년임에도 벌써 3학년만큼이나 든든하게 느껴지는 선수들이었기에 더더욱 골치가 아팠다. 감독의 지시를 거부하고 삐딱선 타는 선수들은 원래 실력 불문하고 머리 아프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실력도 좋은 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한 놈들이 이상 신호를 보내니 없던 위염이 생기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런 도진우 개인의 건강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선수진에 불만이라도 생긴 거냐?”

이명헌과 신현철이 더 이상 오만해지지 않도록 막는 것. 전국구로 노는 산왕 중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난 선수들이지만 아직 갈고 닦아야만 했다. 이명헌은 좀 더 낮게 드리블할 줄 알아야 했고, 신현철은 스크린 아웃을 좀 더 활용할 줄 알아야 했다. 지나친 자만심은 그런 성장을 틀어막는다. 그것을 방관하는 일이야말로 장래가 유망한 선수들을 망치는 길이다.

“그런 거 아닙니다.”

이번에도 대답한 건 신현철이었다. 도진우는 손전등을 내려놓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도록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면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신현철의 시선이 도진우를 향했다. 혹독한 훈련을 버텨온 선수답게 차가운 공기에도 호흡은 어느샌가 진정되어 있었다.

“…패스만 하다 보니 제가 공격이 하고 싶어서,”

“그렇게 이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현철의 말을 끊은 건 이명헌이었다. 처음 하는 대답이었다. 그는 산처럼 세운 무릎 위로 팔까지 얹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모든 게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지만 손등만큼은 여전히 붉었다. 얼핏 살이 까진 것 같기도 했다. 야, 이명헌. 중간에 말이 잘린 신현철의 말끝이 올라간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누구의 말이 친구의 잘못을 덮으려는 거짓인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공격적으로 점수를 따내지 않아도 이길 팀이었지만… 그렇게 이기고 싶진 않았습니다.”

“…….”

마지막까지 경기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싶었습니다.

말을 마친 이명헌이 눈을 감았다.

“감독님, 제가 먼저 꺼낸 이야기입니다.”

옆에 앉은 신현철이 빠르게 덧붙였다. 도진우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어떤 말이 남았든 간에 더 듣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감독의 사인을 알아들은 1학년들의 고개가 숙여진다.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너희 둘은 누구와도 합의되지 않은 플레이를 선보인 건가?”

“…….”

“경기에 어떤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너희 둘은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코트에서 같이 뛰는 팀원을 무시한 건가?”

“…죄송합니다.”

마침내 이명헌이 대답한다. 시간을 재는 것처럼 무릎만을 꿇고 있던 도진우는 찬 바닥에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명헌.”

“네.”

“말해봐라, 너는 어떻게 이기고 싶었지?”

“…네?”

“신현철, 너는 어떻게 이기고 싶었지?”

도진우는 드물게 이해에 시간이 걸리는 이명헌을 기다리는 대신에 신현철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마지막에 그들이 시도할 수 있는 건 1학년의 삼점 슛, 그리고 3학년 에이스를 활용한 돌파… 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명헌과 마찬가지로 놀라하던 신현철은 금방 대답을 내놓는다. 마성지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3학년 에이스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남은 시간 동안 점수를 어떻게 따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자칫 결과론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에도 도진우는 입을 닫고 묵묵히 들었다. …마지막에 포인트 가드를 압박하는 방식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이어서 말을 얹는 건 이명헌이었다.

두 사람이 작전이라고 내놓는 것들은 하나같이 점수를 리드하는 팀이 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공격적이고, 리스크가 크며, 저돌적이었다. 바로 다음 날에 있을 경기 컨디션이나 체력 같은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건 덤이었다. 만약 원하는 대로 플레이 했다면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걸 전부 쏟아부어서 최선을 다하는 경기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헌과 신현철은 자신의 무지를 입밖에 내놓고도 뭐가 문제인지 모를만큼 멍청하지 않다. 자기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건방졌는지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기세 좋게 최선을 말하던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이 느려지다가 끝에는 도진우의 눈치를 봤다. 이제는 모두를 내려다보는 게 익숙할 신현철은 고개를 숙였다. 시선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명헌은 바닥만 바라보았다. 반성이었다.

“이제 좀 알겠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게 승리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게 팀에게도, 나에게도, 너 자신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리고 도진우는 그들의 반성을 알면서도 다른 것을 지적했다. 고등학생으로 이제 막 1년을 보낸 그들의 부실한 전략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명헌과 신현철이 거의 같은 순간에 고개를 들었다. 도진우는 웃고 있었다.

“산왕의 슬로건을 기억하나?”

“일의단심(一意摶心)입니다.”

신현철이 단번에 대답했다.

“뜻은 뭐지?”

“하나의 뜻으로 마음을 뭉친다…… 베시.”

응? 뜻밖의 소리에 도진우의 고개가 돌아간다. 뿅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향하면 이명헌이 눈을 크게 뜨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노룩패스를 실패하고도 저렇게는 안 놀랐는데.

죄송합니다. 틀에 박힌 사과는 그다음이었다. 보아하니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고 튀어 나간 소리인 것 같았다. 이명헌 말버릇입니다. 경기 중에는 안 합니다. 덩달아 당황한 신현철이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이명헌의 기행 아닌 기행이 꽤 익숙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말버릇은 언제부터 갖고 있었지?”

“입학할 때부터 계속…….”

“너희는 계속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구나.”

“네?”

신현철과 이명헌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팔짱을 낀 도진우는 괜한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에 그들을 바라보았다.

“선배들이 뭐라고 하든 내 앞에서는 편히 말해도 된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베시.”

“야, 너 그렇다고 감독님께 그걸 바로.”

“너도 할래? 아, 그래도 이건 안 된다. 내꺼야, 베시.”

“절대 안 해, 임마.”

동갑내기 둘이서 금방 투닥거린다. 이제 열일곱을 앞둔 그들은 아직 앳되고 어리다. 도진우는 그들을 말리 거나 엄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실전 가치가 0%에 수렴하는 그들의 작전을 들으며 시작했던 반성을 아직까지 끝내지 못한 탓이었다.

점수를 리드하고 있는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공격적이고, 리스크가 큰데다가, 저돌적이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상대와 자기 자신 둘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남지 않는 플레이는 바로 그들이 고교 농구에서 하고 싶었던 경기였던 것이다.

도진우는 선수들이 어떤 농구를 하고 싶은지 조금도 몰랐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 최강이라 불리는 산왕공고까지 와서도 제 모든 것을 불태워서 경기하고 싶어 하는 그들에게 한순간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오만하다는 말을 붙인 게 부끄럽다. 이명헌에게 어떤 말버릇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게 부끄럽고, 다른 학교였다면 신현철도 충분한 주장감이었음을 오늘에서야 안 게 부끄럽다.

그러나 사과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무능한 어른의 사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하고 싶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전략을 만들어내고, 선수들을 이끌며,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유능한 감독이다. 지금의 이명헌과 신현철은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성장해도 전국에서 가장 강한 콤비가 될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지 않는 것은 감독의 기본이었으나 도진우는 확언할 수 있었다.

“다 떠들었으면 이만 숙소로 돌아가라. 내일도 너희는 중요한 전력이야.”

“네, 알겠습니다.”

땅에 두었던 손전등을 잡고 일어서면 이명헌과 신현철이 빠릿빠릿하게 일어섰다. 돌아가라고 꺼낸 말과 달리 숙소로 향하지 않는 도진우의 모습에 주춤거리는 것도 잠깐이다. 그들은 더 이상 감독의 말에 불응하지 않는다. 당장 이해하지 못해도 뜻이 있을 거라 믿고 움직인다. 도진우는 확언할 수 있었다. 그러다 못해 당당하게 목소리 낼 수도 있었다.

재능과 끈기와 투지가 합쳐진 너희들이라면 일본 누구를 데려와도 쉽게 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경기가 코트 위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경기라면, 나는 산왕을 그런 팀으로 만들어 보이겠다. 1분도 남지 않은 데다 점수 차는 고작 3점 안팎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너희를 믿으며 전력으로 승부하는 팀을 만들겠다.

그런 팀이 되기 위해서 바뀌어야 할 것들, 필요로 한 것들을 되짚어도 막막하다기보다는 웃음만 나왔다. 당장 선발 대회의 결승을 앞둔 상황임에도 그랬다. 내년 추천 입학 대상자의 집에 찾아가 무릎 꿇고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 숙이게 된다고 해도 기쁘게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딘가에 존재할 신마저 그런 미래를 응원하는 기분이다. 점점 멀어지는 1학년들의 하늘 위로 별이 하나 빛나서였다.

위성인지 항성인지, 그것도 아니면 떨어지는 유성인지 모를만큼 반짝이는 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별을 주운 날에 산왕은.






도 감독, 설마 여기서까지…….

시간벌기로 이길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어. 그게 무패의 기록을 가진, 저 녀석들의 특기니까.



경멸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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