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의 모서리를 보고 있으면 그 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 모서리는 나를 찌를 것처럼 날이 서 있었고 두 변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직각의 점이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그 점을 보고 있으면 아득히 먼 옛날의 미신 같은 것이 떠올랐고 나는 그게 왠지 불경하게 느껴져 몸을 일으켰다. 입이 텁텁했고 눈을 꿈뻑이다 협탁을 보았을 땐 물이 반쯤 담긴 컵이 있었다. 누군가 갈증이 잦은 나를 위해 항상 마련하던 그 물컵.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 꼬이는 발을 애써 허우적대며 거실로 나갔을 땐 익숙한 뒷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이 답지 않게 아침 햇살을 받아 초월적으로 보였으나 오른쪽으로 구부정한 어깨는 그와 반대로 평범하고 또 여전했다.


 형.


내가 부르면 매번 부르는 데로 뒤를 돌아 보는 것 또한 여전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실없이 웃고 있었다. 나만 아는 것들. 형, 형은 뒤돌아볼 때 항상 왼쪽으로만 목을 꺾더라.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버릇의 기원을 찾다 보면 견갑골 밑의 모로 그어진 흉이 그 원인이었고 관절의 가동을 저해하는 그 울퉁불퉁한 새살들을 어루만지다 보면 그럴 리가 없는 데도 혹여나 그 새살이 아프진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커져 나는 이따금씩 아프진 않니 묻기도 했다. 형은 명색이 조폭인데 몸에 문신 하나 없냐. 그래 그 흉을 그림으로 감출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까닭이 궁금하였으나 구태여 묻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한 번쯤은, 물어도 괜찮지 않았을지 되뇌어본다. 

형. 이게 벌이라면 벌일까. 죄의 경중치곤 가벼운 듯했고 여전히 괴로웠다. 흐릿한 얼굴임에도 내 기억 속의 그는 웃는 얼굴 밖에 없어서 그게 너무 아팠다. 그 웃는 얼굴이 밉기도 그립기도 했고. 그 웃는 얼굴을 아끼고 아끼다 꺼내어보면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짐은 어쩔 수 없음에 몸부림치기도 했으며. 그 얼굴을 떠올리다 나도 몰래 용서 따위를 해버릴까 두려웠다. 그 얼굴을 잊진 않을까 염려도 되었으나 다른 것들은 희미해져도 그 얼굴만은 잊히지 않았기에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를 떠올리는 것만큼은 타고난 듯 쉬웠다. 


형.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어째서 나를 이런 지옥 속에 떨어뜨려 놓은 건지. 내가 앗아간 건 그의 목숨 뿐인데 그는 왜 하필 그것만 남겨두고 그 모든 잔여물만 빼앗아갔는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왜 이 지옥 같은 삶에서 혼자 도피한 건지. 모래 위의 적어놓은 어떤 시의 한 구절처럼 덧없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죽는 게 사는 것보다 어려웠고, 사는 건 그를 되새기는 것만큼이나 고역이었다. 마음이 빈곤해지거나 정신이 파리해질 때면 중력과 같은 불가항력에 이끌리듯 그를 떠올렸으나 그럴 때면 원인을 알 수 없이 비위가 상해 속을 게워내야만 했다. 먹은 것도 없이 뱉어내는 위산은 어쩌면 죄의식의 덩어리는 아니었는지. 제 멋대로 섞인 기억들 중 그 날만은 여러 갈래로 자라난 흉에 각인되어 휘발되지 않았다. 부러 별다른 치료나 처치 같은 걸 하지 않아 결국 두 갈래로 갈라진 뭉툭한 귀 끝은 만져보면 조그만 맥동이 움트는 것 같았고 귓바퀴로 갈 수록 밉게 자란 그 줄기들을 볼 때마다 귀 안쪽의 어떤 기관에선 불규칙적으로 파도가 쳤다. 


 "왜 그러고 서 있어, 넋 나간 사람처럼. 꿈이라도 꿨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게 현실이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었고 그 모든 일들이 한낱 꿈이길 바랬다. 허무맹랑한 도시괴담 같은 말이었다. 회피하고 싶었으나 태양은 나를 낱낱이 읽었고 나뭇잎은 으스러지듯 부서져 햇살을 가렸다가 거두기를 반복했다. 그의 등에 비친 그림자는 멀리서 보고 있으면 어느 타국의 문자들 같아 보이기도 했다.


  "형."

 "나를 사랑했어?"


 싱거운 질문을 했고 시야가 잠시 흐려졌다. 그는 내가 울면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거봐, 이런 데도 형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그는 내게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형은 이게 가장 잘 어울려. 아침 해의 불규칙적인 빛은 순식간에 폐건물의 습한 그늘로 바뀌었고 검푸르게 멍이 드는 것처럼 어두웠던 그 장소에선 곰팡이 핀 지하실 같은 냄새가 났다. 그땐 타다 만 화약 냄새가 났던 것 같은데. 그의 정장은 그때와는 달리 성한 곳 없이 멀끔했으나 그 얼굴만큼은 피로해 보였다. 그 무심한 얼굴. 그 방심을 부르는 얼굴로 내게 저와 같은 실수하지 말라니. 참 설득력 없는 말이었다. 

그 날은 비가 왔고 유리창은 모든 사물에 직선의 그림자를 그어댔다. 그는 초조한 기색을 떨치지 못하고 영양가 없이 날씨 얘기나 꺼냈으며. 생각해보면 형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지겹지 않았을까. 그 권태로운 삶이. 그래도, 하물며, 나만큼? 

 나를 원망하는 눈초리. 끝까지 몰랐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어쩌면 잘못은 나의 몫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끝까지 모르지 그랬어. 그냥 그럴 걸, 그럴 걸 그랬어 형. 

 그는 왼쪽 귀가 아닌 내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현수야." 

"잘 생각해봐." 


  - 탕……. 


 "허억……." 


 머리에 총알이 박히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갑자기 많은 양의 산소가 뇌로 들어온 탓에 눈앞이 휘청였고 첫 숨을 튼 신생아처럼 그 감각이 생경해 혹여나 잠든 사이에 아가미라도 돋아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목덜미를 연신 더듬어보기도 했다. 호흡이 정상으로 되돌아올 때쯤엔 천장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유난히 낮아 보이는 그 천장의 불경한 모서리가 악몽의 원인은 아닐까 하고 천장 탓이라도 하면 그나마 마음이 결여해지진 않았다. 얼마 전엔 꿈도 꾸지 않고 잘 잤던 것 같은데. 이틀 전의 일이었고 그것까지가 꿈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귓가에 희미하게 남은 총성이 창밖의 빗소리를 지웠다. 



 왜 자꾸 나를 찾아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날 그 차를 몰아 바다를 들이받지 않은 게 평생의 후회로 남진 않았을 텐데. 그 날의 일출을 보지 말았어야 했고. 그 날의 바다를 보지 말았어야 했고. 우린 거기 있지 말았어야 했고 나는 실수하지 말았어야 했고. 그럼에도 그때의 우리가 궁핍한 추억 비스무리한 것이었기에 그 날의 태양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 날의 웃음소리가, 그 날의 싸구려 폭죽 소리가. 이명도 아닌 환청이 귓전을 울렸고 무겁지도 않은 그 웃음의 무게가 내 폐부를 압박해옴을 느꼈다. 그런 일이 없었어도 난 그대로였을 텐데. 그의 불안이 나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것 같아 탓하고 싶었고, 그 불안이 지금은 내 삶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졌기에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닌 후회로 남아서 아직도 산 사람 행세를 하는지. 지옥에서 만나면 다시 죽여버릴까, 그냥 안아버릴까 싶다가도 그냥, 잘 지냈냐는 안부나 물을까 하고. 

 사랑이었나. 그런 거라면. 그런 거였다면. 달라질 건 없었다. 여전히 천장의 모서리는 날이 서 있고 창밖으론 비가 쏟아졌다. 

 사랑이란 말을 입안에서 곱씹다 보면 목이 타 물을 떠다 마셨다. 형은, 귀찮지도 않았을까? 매번 내게 물을 떠다 주는 일이. 나는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데 형은, 형은…….

 내가 죽으면 형을 누가 기억해주지. 변명 같은 까닭이었다. 죽으려는 마음을 먹을 때마다 나의 생사에 일일이 관여하는 그의 탓도 있었으나 내가 죽어버리면 정말 그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닌가. 그를 세상에서 또는 나의 생애에서 지워버리기가 싫었으며 이렇게라도 나의 삶에 붙들어놓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살인의 형태가 복수나 증오가 아닌 사랑이었음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남은 건 손바닥의 남은 감각 과 그의 숨 뿐이었고 사랑이었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라는 식으로 기어코 나를 찾아오는지.


 형. 나를 사랑했어?


 한 번쯤은 그 실없는 말에 웃어줄 걸 그랬다.





@KINGMYEONG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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