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2시간 전-



‘하암~’



아직도 멀었나? 교실 칠판 위, 시계를 흘깃 올려다본 태웅이 손등으로 피곤한 눈두덩을 부볐다. 대충 찍고 나가려고 했는데, 시험 시간이 끝나기 전엔 절대 나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시며 들어서던 수학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태웅의 시선이 창 밖을 향했다. 파란 하늘에 동동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고개를 갸웃하곤 지겨운지 눈을 껌벅거렸다. 창 밖엔 시험을 일찍 끝냈는지, 벌써 하나 둘 건물 밖을 나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선배는…시험 다 쳤으려나?’



3학년이니까, 시험과목수가 많을 테니 좀 더 늦게 끝나려나?



‘보고 싶네…다리는 괜찮을까?’



창밖에 일렁이는 초록색 나뭇잎이 파스스-날리는 모습에, 제 곁에 앉아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환하게 웃던 대만이 떠올랐다. 땀이 난 이마에 달라붙어 있던 짧은 머리카락을 마구 털어내던  모습. 턱 아래, 남은 희미한 흉터, 그리고 눈꼬리를 휘며 미소를 짓던 것 하나하나가 자꾸 눈앞에서 동동 떠다닌다. 참, 잘 웃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한 순간, 시원하게 불어온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과 함께 날아오른 작은 새들. 우거진 수관 사이로 흩어지던 햇빛을 받으며 제게 실없는 농담을 하던 얼굴이 주말 내내 잊혀 지지 않았다.



‘이틀 내내 만날 껄…’



갑자기 무리를 하면, 오히려 체력 운동의 효과가 없을 거 같아서 토요일 하루만 만났던 것을 후회하는 태웅이었다. 톡-톡-톡-핑그르르-볼펜 끝으로 책상 끄트머리를 두드리다가 긴 손가락 사이에 끼워 돌려본다. 주말에도 원온원 하자고 할까? 아직까진, 운동을 핑계로 대지 않고 선배를 불러낼 방법을 태웅은 알지 못했다. 이왕이면 예쁜 곳을 데려가고 싶었는데…운동도 되고 선배도 좋아할 만한 곳. 일주일 내내, 고민을 해본 결과, 종종 혼자 러닝을 할 때 들렀던 동네 어귀의 신사를 떠올렸다.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어차피 운동도 해야 하니까.



[헉, 헉, 야, 근데, 여기]

[….]

[끝까지 올라오니까, 바다 한눈에 보이네? 하아, 헉…]



힘들다면서도 대만은 신사까지 올라오면서,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네]

[넌, 헉, 헉, 힘들지도 않냐? 숨도 안 차?]

[그냥, 뭐…이 정도는…]

[헤에~]



역시, 에이스~라며 눈꼬리를 휘는 모습에 묘하게 가슴이 울렁이는 기분. 깊게 숨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켜는 대만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그러자, 피식-웃으며 고맙단 말을 하곤, 읏차! 상쾌하네~라며 좌우로 허리를 뒤튼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꽤나 아름다웠다. 녹음이 짙게 진 신사의 돌 계단 끝에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옹기종기 몰려 있는 마을의 모습이 꼭 장난감 블록을 쌓아 놓은 것만 같다. 뛸 때는 많이 더웠는데, 오히려 올라오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좀, 앉을래요?]



톡톡-선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어?]

[저쪽, 뒤편에 벤치 있는데…]



말끝을 흐리자, 제발 좀 앉자…라며 어딘지도 모르면서 성큼성큼 대만이 앞장섰다.



‘어?’



곁에서 같이 걸을 땐 몰랐는데, 근육이…당기는지 걸음걸이가 조금 흐트러졌다. 무릎만 안 좋은 게 아니라, 햄스트링도 약한 건가? 아니면 예전에 무릎을 다치면서 왼쪽 다리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습관적으로 오른쪽 다리에 하중을 더 실어서 걷는 건가? 대만을 뒤따라 가던 태웅의 시선은 선배의 걸음걸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너무 무리한 건가?’



평지부터 뛸 걸 그랬다. 실내에서 하는 운동과는 달리, 계단을 오르는 건, 다리에 무리가 갈 수도 있었는데…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조금 신경이 쓰였다.



[선배, 이쪽이요…]

[….아, 어]



힘들다더니…걸음은 빨라. 저만치 멀어지는 대만을 불러 세우며 태웅이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키자 그제야 쭐레쭐레 뛰어온다.






풀썩-



[아~살 거 같다~]



벤치에 널부러지며, 대만이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원해, 그새 마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부스스해졌다. 붉었던 눈 밑도 많이 가라앉았고, 호흡도 돌아왔다. [뭐해? 안 앉아?]라는 목소리에 대만의 곁으로 가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태웅도 그제야 큰 숨을 돌린다.



두근 두근 두근-



너무 열심히 뛰었나? 왜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거지? 팔을 벤치에 걸친 채, 몸을 뒤로 젖힌 대만의 콧날에서부터 목선을 따라 들썩이는 가슴을 바라보던 태웅이, 한쪽으로 쭉-뻗은 선배의 왼쪽 다리로 시선을 돌렸다.



‘신경쓰여…’



[야, 올라는 왔는데 또 어떻게 내려가지? 너…]

[….?]

[내려가면 아이스크림 쏴라~아니다, 아이스크림으로 안될지도 몰라~]

[….]



하늘만 올려다보며 중얼대던 대만을 태웅은 아무런 말 없이 바라만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라면 얼마든지 살 의향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 태웅의 관심사는 대만의 왼쪽다리에 가 있었다.



[태웅아…?]



자신의 대답을 기다렸는지, 침묵이 길어지자 벌떡-하고 몸을 일으킨 대만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제 쪽으로 돌아앉더니, 얼굴을 쑤욱-들이밀곤 자신의 표정을 살피는 걸 보면…제 생각을 읽어보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왜? 아이스크림 싫어?]란 질문을 하면서, 뭐가 그리 심각한 건지 미간에 핏대까지 세우며 상체를 바짝 기울여 절 보는 선배가 귀여워 저도 모르게 푸스스-웃음을 지었다.



[어?]

[…네?]

[아니…]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와 조금 붉어진 대만의 얼굴에 태웅이 어금니를 꾹 깨문다. 누군가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는데. 이 사람, 왜 이렇게 예쁜 걸까?



[너 웃으니까…예쁘네~하하하]

[….]



두근 두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늘 선수를 빼앗기는 것 같다. 손을 쭉-뻗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넘겨주는 손길에 태웅이 꿀꺽-마른 침을 삼켰다. 스킨십,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어릴 때도 누나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눈을 매섭게 뜨곤 했는데…대만의 손길은 기분이 좋아진다. 사르륵-단단한 손가락 마디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의 감각과 제 볼을 톡톡-건드리며 웃는 대만을 빤히 바라보다가…태웅이 큰 손으로 선배의 손목을 붙들었다.



[….?]

[선배…]

[….]



키는 큰 편이면서, 손목은 왜 이렇게 가는 건지. 한 손으로도 다 잡히는 대만의 손목을 살짝 제 쪽으로 당기며 가까이 다가가자 익숙한 체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샴푸향인가? 아니면 로션? 늘 나던 대만의 향기가 시원한 바람에 어우러진다. 요동치는 마음을 숨기고 싶어서, 시선을 돌리며 태웅인 대만의 왼쪽다리를 가리키며 입을 뗐다.



[다리, 괜찮아요?]

[다리? 아~어, 뭐…]



다리가 왜?라며 곰곰히 생각하는 모습이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다. 이 사람, 자신이 아픈 걸 습관적으로 숨기는 버릇이 있구나 싶어서 괜히 먹먹해 졌다. 많이 아팠을 텐데…그 과거에 내가 함께 있었으면, 당신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었을까?



[좀 전에 조금 절뚝이는 것 같던데…]



낮은 목소리에 서린 다정함. 태웅을 멍하니 바라보던 대만이 왼쪽 다리를 굽혀 들어 보이더니,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인다. [안 쓰던 근육을 썼더니…그냥 종아리가 당기는 거야. 무릎은 괜찮아, 이제…]라며 흘러나오는 담담한 목소리.



[뭐야, 걱정하는 거냐?! 크크, 기특하네~]

[….]

[마, 너 내가 내려갈 때, 진짜 업어 달라고 할 까봐 그러는 거지?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내려 갈 수 있거든~]



‘바보,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닌데…란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태웅이 탁탁-제 허벅지를 두드리며 대만에게 다리를 올려보라 제스쳐를 취했다.



[왜애-?]



이 선배는…눈치가 빠른 것 같으면서도 둔한 면이 있었다. 설마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도, 잊어 먹은 건 아니겠지? 당연히 걱정이 되니까 신경이 쓰이고…좋아하니까,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세세한 것들도 눈에 들어오는 건데…순진한 표정으로 예쁜 갈색 눈동자만 또르르 굴리는 선배를 바라보던 태웅이 입술을 살짝 씹었다.



‘뭐, 나도 일일이 말로 설명 안 하니까…’



-야, 서태웅. 넌 모르겠지만, 말야…연애를 하려면 마음을 표.현.을 해야지. 그냥 멀뚱하게 서 있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아냐? 너 그 놈의 얼굴 하나만 믿고 가만히 있으면 옆에서 누가 채 갈지도 모른다~-

-….?-

-힘 내보란 말야, 임마! 에이스잖아, 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절 올려다보던 선배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었다. 왜 나한테 이런 말을?, 얼마 전,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갑자기 궁금하지도 않은 연애코치를 늘어놓던 태섭의 말이 떠올랐다. 그땐,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마음의 표현? 어떻게 하는 거지? 잘 해주란 건가? 어떻게 잘 해줘야 마음이 표현되는 거지?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걸로 부족했나 보다. 특히, 이 사람한테는…후우, 한숨을 삼키며, 태웅이 허리를 숙여 큰 손으로 대만의 왼쪽 무릎을 더듬었다.



[저, 저기, 야…]

[…무릎보호대, 했어요?]

[….?]

[…..]

[아, 어…]



연습할 때와 달리, 오늘은 긴 트레이닝복 아래 가려진 대만의 무릎이 걱정되었다. 근육이 많이 올라왔는지,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무릎 뒷부분과 종아리 위쪽 근육을 살짝 주무르자 대만이 미간을 찌푸린다.



[아파요?]

[니 악력이 세서…]

[다리 올려봐요…]

[….?]

[풀고 내려가요…]



아니, 저, 괜찮…다며 웅얼대며 몸을 빼려는 대만의 왼쪽 다리를 제 허벅지위로 끌어올린 후, 단단히 뭉친 근육을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손 끝에 만져지는 감각으론, 펌핑이 상당히 많이 된 거 같은데…[바지, 걷어도 되요?]라 묻자,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대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트레이닝복 밑단을 둘둘 말아 허벅지 위까지 올리자, 근육이 바짝 선 긴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유독 가는 발목과는 달리, 재활훈련의 성과가 돋보이는 탄탄한 근육이 잘 잡힌 다리를 손바닥으로 살살 어루만지며 대만의 반응을 살폈다. [아프면, 얘기해요…]란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대만의 미간에 깊은 주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엄청 단단한데?’



부드럽게, 종아리 뒤쪽에서부터 오금과 무릎 주변을 꾹꾹 누르다가, 조금 강하게 허벅지 바깥쪽을 주무르자 읏, 하며 대만이 푹-고개를 숙여버린다.



[아파요?]

[아니, 거기…계속 뭉쳐 있었어서…]

[….?]



그럼 뭉친 다리로 계속 운동을 했던 건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태웅의 눈 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입술을 앙 다물고 빤히 쳐다보자, [집에 가서 찜질하거든~요즘에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 거야. 늘 그런 게 아니라~계속 근육 올라오면, 인터하이 개막전에 물리치료 받을 생각이었어~]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대만을 보고 태웅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 잔소리하게 만드네…’



대만이 방금 아프다고 얘기했던 부분을 엄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듯, 만져주며 태웅이 입술을 뗐다.



[앞으론, 연습 끝나고 나한테 얘기해요…]

[….]

[다리, 뭉친 상태로 두면 안 좋으니까…]



고개를 숙인 채,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어서 대만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대답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신경 쓰여 결국 눈을 들어 얼굴을 쳐다보자, 붉어진 두 볼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요, 열 나요?란 질문에…[너, 진짜…하아…]라며 푹-자신의 어깨로 묵직한 체온이 기대왔다.



두근 두근 두근



[진짜 아파요?]

[시끄러, 니가 너무 세게 누르니까 그러는 거야…]



웅얼대며 말끝을 흐리는 대만의 어깨가 떨리는 것 같은 기분.



[….]



놀라서 화들짝 손을 떼는데, 단단한 손가락이 손 끝을 잡아왔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계속 해도 돼…]

[아, 네…]

[너…]

[….]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냐?]

[무슨…?]



피식-또 대만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툭-다시금 제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그냥…그냥, 다정해서…라고 속삭이는 목소린 조금 달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쿵쾅대는 대만의 심장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동그란 뒤통수를 가만히 쓰다듬자, 어젯밤…라멘집에서 입술 끝에 닿았던 대만의 볼과 피부의 감촉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부드러웠는데…’



그리고 순간, 쪽-



고개를 틀어 어깨에 얼굴을 묻은 대만의 볼에 뽀뽀를 했다.



[….!!]

[….?]



화들짝-놀라 얼굴을 든 대만의 귀 끝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왜 그러세요?]

[하아, 넌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뻔뻔하게…]



뻔뻔한 거 아닌데…그냥 하고 싶어서…라 중얼대자, 졌다, 졌어~라며 두 손으로 대만이 마른 얼굴을 쓸어 내린다.



[진짜…야, 나도 마음의 준비라는 걸 좀 하자…]

[….]

[갑자기 그러면…]

[싫어요?]

[아니, 야, 싫다는 게, 아니라…놀라잖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다리를 붙든 제 손등을 찰싹-때리는 대만은 쑥스러운지 시선도 못 맞추고 있다.



[그럼, 얘기하고 하면 돼요?]

[…어?]

[뽀뽀…]

[….]

[해도 돼요?]



이렇게 정직하게 물어오는 녀석에게 안된다고 어떻게 말하냐…대만의 마음의 소리를 태웅이 알아차릴 리는 없다. 곤란한 듯, 한숨을 폭 쉬더니, 대만이 웅얼거렸다.



[그래~니 맘대로 해라~](그래봤자, 얘가 뭘 하겠어? 싶어서 안일한 생각을 한 대만이었다)

[….]

[….!!!!]



쪽-



아랫입술에 닿았다 떨어지는 촉촉한 감촉에 대만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사르륵-피부에 닿는 머리카락과 제 목을 살짝 감아 당기는 큰 손. 파르르-떨리는 대만의 속눈썹을 응시하며 한 번 더 쪽-짧게 입술을 부딪힌 태웅이 천천히 얼굴을 물렸다.



두근 두근 두근-



좀 전엔 눈도 못 마주치더니. 정말 놀랐는지, 뚫어져라 절 응시하는 대만의 머리카락을 한번 쓰다듬은 태웅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향했다. 조금 전, 아팠다고 얘기한 허벅지 쪽 근육 부분에 신경을 써서 손을 움직였다. [힘들면 그냥 저한테 기대고 있어요…]란 말에 그저 부스럭거리며 안겨온 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쿵쾅-쿵쾅-쿵쾅-



‘뜨거워…’



긴장을 한 대만은 열이 오른 것처럼 뜨거웠다. 짧은 머리카락이 볼과 목에 닿아 간지러움 느낌. 축축한 호흡이 살에 와 닿는 감각에 태웅의 볼에도 약간 열이 올랐다.



[안…아파요?]

[….응]

[선배 입술 부드…]

[시꺼, 임마…지금 미칠 거 같으니까…]

[네?]

[심장…터지는 줄 알았…다고]



웅얼대는 대만의 붉어진 목덜미와 귓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태웅의 긴 눈꼬리에도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라락-불어온 바람이 나뭇가지에 스쳤다. 시끄럽게 울어 대는 매미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운동을 할 때보다 더 세게 요동치는 서로의 고동소리에 머리가 멍 해졌다. 오롯이 둘만이 존재하는 공간.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쌓여가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꾸벅-인사를 하며 체육관으로 들어선 태웅의 운동화 끝에 통통통…굴러온 농구공이 툭-하고 걸렸다. 허리를 숙여 공을 주워 들자, 체육관 구석에서 투닥거리는 태섭과 백호가 눈에 들어왔고 맞은 편 골대 아래서 절 보고 피식-웃어주는 대만이 보였다. 꾸벅-다시 한번 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예쁜 입꼬리가 스윽-말려 올라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못 나가게 해서”

“진짜?”

“….응, 기다렸어요?”

“아니, 뭐…”



다분히 기다린 모습이 역력했다. 하루 만에 보는 건데…묻고 싶은 말이…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당장이라도 팔을 뻗어 끌어안고 싶단 생각을 꾹꾹 누르며 태웅이 손가락 끝으로 공을 돌렸다.



“잘 쳤어?”

“아뇨…선배는요?”

“난 대충 찍고 나왔지, 하하…”



흘깃-강백호와 여전히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태섭을 눈 끝으로 확인한 태웅이 통통-드리블을 해본다.



“연습, 하고 있었어요?”

“아니, 태섭이…3점슛 봐 달라 해서 좀 어울려줬지…”



티셔츠로 땀을 훑으며, 제게 다가오는 대만에게 공을 건넸다. 그러자, 오른쪽 옆구리에 공을 끼우더니 “애들 다 오기전에 한판 할까?”라 제안해오는 대만이다. 좋아요, 란 말 대신 태웅의 시선이 대만의 왼쪽 다리에 가 닿았다.



“근육, 괜찮아요?”

“어? 어~어제 하루 쉬었잖아~멀쩡하지~”

“다행이네….그럼, 태섭 선배한테 심판 봐 달라 하죠”



어쭈? 심판까지? 각 잡고 하게?란 대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태웅이 오른쪽 팔을 왼손에 걸어 스트레칭을 했다. “태섭아! 너, 심판 좀 봐라~우리 원온원 내기!”라며 목소리를 높여 태섭을 부르는 대만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태웅이 발목을 돌렸다. 내기요?! 오, 진짜?!, 신이 나서 달려오는 태섭에게…눈 똑바로 뜨고 잘 봐! 알았지? 이건, 내 자존심이 걸린 내기야~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대만과…알겠다며 꿍얼대는 태섭. 슛 연습을 하려고 폼을 잡다가 ‘내기’란 말에 자석처럼 끌려온 강백호까지…꽤나 시끄러운 조합인데…이젠 싫지 않았다. 기지개를 쭉 켜며 대만의 등 뒤로 다가간 태웅이 큰 손으로 선배의 어깨를 붙들었다.



“….?”

“…..?”

“….?”



동그랗게 눈을 뜨고 절 돌아보는 3명의 시선을 무시하며, 태웅이 대만의 머리끝에 묻은 먼지를 떼어준다. “먼지…”란 말에, 아, 어…하하, 어설픈 웃음을 짓는 대만과 “서태웅 이놈! 어디 하늘 같은 선배님 머리카락을 막 만지냐?!”라며 괜히 시비를 거는 강백호를 지나쳐 태웅이 자세를 잡고 3점슛 라인 안쪽에 섰다.



“선배부터 하시죠”

“….어, 그러지, 뭐…”

“진 사람이…”

“….”

“한달 동안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태웅의 제안에 대만이 꼴까닥-마른침을 삼켰다. “오~서태웅, 진짜 천재 아냐? 완전 재밌겠는데? 난 찬성~”이라며 호루라기를 챙기는 태섭에게 “왜 니가 찬성하냐?! 내기 당사자인 난 가만히 있는데, 어!?”라며 목소리를 높이면서 대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애들 앞에서어~’

‘….뭐요?’



제 앞에 서 입술만 달싹이며, ‘티 내지 마, 바보야! 그런 말 여기서 하지 말라고~’괜히 혼자 찔려서 열을 내는 대만의 모습이 귀여웠다. 신경, 엄청 쓰는구나…싶어서 꼭 내기에서 이겨서 한달내내 대놓고 신경 쓰게 만들겠단 다짐을 하며, 태웅이 허리를 숙였다.



“시작, 하시죠”

“각오해라, 너어~정말 안 봐줘…”

“맘대로 하세요…”



삐익-태섭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퉁퉁퉁-울리는 드리블 소리. 하나 둘, 시험이 끝난 학생들이 열린 체육관 문 사이로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꺄아악-서태웅 선수~”

“서태웅 선수, 파이팅!”



언제 몰려든 건지, 태웅의 팬들의 목소리가 체육관 안에 울리자 대만의 미간에 주름이 패였다. 꽤나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만 뒤쪽을 흘깃거리는 대만의 표정을 살피며 태웅이 몸을 틀어 그의 경로를 막았다. 그렇게 또 평범한…농구부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엔 키스로!

농놀중/탱댐/19금/내가 읽고 싶은 거 쓰기*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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