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세문대(배세진×박문대)

- 글 분야에 참여해주신 아서님의 작품입니다!



작은 새싹

Written by 아서




반짝이는 빛에 이끌리듯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버리는 너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는 질투가 밀려왔다.

나에게만 그렇게 환하게 웃어줬으면 좋겠다. 나의 눈길만 잔뜩 끌었으면 좋겠다.

문대의 움직임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나를 다시 현실 세상으로 끌어올려 준 것은 같은 반 친구였다.


“세진아, 배세진 우리 다음 수업 이동이야.”

“아. 응 그렇네.”

“뭘 그렇게 멍하게 바라봐?”

“아무것도”


아무래도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문대에게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대가 서 있던 곳으로 다시 한번 눈길이 갔지만 그사이 교실로 들어간 건지 문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련 없이 교실을 나왔다. 나에게 이동수업이라고 알려준 친구도 버려둔 채 말이다.

수업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수업 시간이 이렇게 지루하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느리고 지루하기만 했다.

빨리 이 수업이 끝나기를 바랐다. 이 수업이 끝나면 이제 하교 시간이니까 지금까지 묵혀뒀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으니까

이 답답한 마음을 편안하게 말하고 싶었다.




“세진아, 집에 안 가?”

“조금 있다 가려고.”

“그래? 그럼 잘 가.”


온종일 뜨거운 열기를 내뱉는 밖과 이곳은 마치 분리된 공간이라도 되는 듯이 시끌시끌하던 교실이 그림자에 먹히듯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분명 끝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대가 오질 않았다. 분명 또 다른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느라 늦는 걸 거라는 생각을 하니 교실의 분위기처럼 기분도 한없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째깍째깍하는 시계 소리만이 온 교실을 집어삼키고 있을 때 드르륵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문대였다.

문대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문대를 바라보면 화가 다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걸 선택했다.

터벅터벅 조용한 공간을 울리는 새로운 소리에 문대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형?”


나를 부르는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을 때는 무심코 고개를 돌릴뻔했다.


“음…. 세진 선배.”

“왜 선배야!!!”


결국 선배라는 소리에 지고 말았다. 단둘이 있을 때는 선배라고 불리면 어쩐지 문대가 거리를 두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껏 치켜세운 눈으로 문대를 바라보았고 비로소 문대의 표정이 보였다.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잠시 고민하다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마 다들 문대가 저 표정을 짓고 있으면 티벳문대라고 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나한테는 자주 보여주곤 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잘 웃어주는데 나랑 같이 있으면 항상 저 표정이 디폴트 값이었다. 그것이 오늘따라 더 질투 났다.


“나한테만 그 표정이야!!! 애들이랑 있을 때는 잘 웃어주잖아!!”

“오늘 체육 시간에도 애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웃어줬잖아!”


햇빛 아래 서 있는 문대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래서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문대에게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끌렸었다.

문대는 잠시 상황을 돌아보는 듯이 지금 상황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지금 질투하고 있는 거예요?”


정곡이었다. 아픈 곳을 문대는 역시나 바로 파악하고 찔러왔다.


“뭐! 내가 질투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너랑 사귀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지만 이정도 목소리도 문대는 분명 다 들었을 것이다.

여전히 표정은 아까랑 똑같았지만, 분위기는 조금 더 따뜻하게 물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죠. 제가 형이랑 사귀고 있죠.”

“거봐!”

“그러면 말이 길어질 거 같은데 형도 사람들한테 웃어주잖아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 안 웃어주려면 형도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 그렇지.”

“할 수 있겠어요?”

“.... 할 수 있어.”

“으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문대가 자신을 바라보자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문대만을 가만히 바라보니 문대가 천천히 걸어서 창가로 다가갔다. 조심해서 창틀에 기대앉은 후 가만히 운동장을 응시하기까지 나는 문대의 움직임을 천천히 두 눈으로 따라갈 뿐이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붉은 빛 아래 서 있는 문대는 평소보다 더 눈길을 끌었다.

창밖을 조금 바라보던 문대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형 오늘도 여기서 저 봤잖아요. 그렇죠?”

“응.”

“저도 오늘 형 봤어요. 그리고 웃었는데 몰랐나 보네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웃어주었던 것도 지금 아름다운 노을에 둘러싸여 웃어주고 있는 것도 모든 것이 나를 향한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갑게 가라앉은 것만 같았던 교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심술부리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져버렸다. 심술부리고 싶었던 마음 대신 새로운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가득 차다 못해 나를 터트리면서까지도 흘러내릴 것만 같은 그런 마음 말이다.


“문대야.”


문대의 이름을 부르고도 조금은 망설였다.

아마 지금 자신의 얼굴이 저 노을보다 붉게 물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문대야 좋아해.”


그래도 조심조심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내뱉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말이다.


“네, 형 저도요.”


붉은 노을에 묻혀있던 작은 사랑의 씨앗이 오늘도 아무 문제 없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났다.




“문대야 너 세진 선배랑 친해?”


체육 수업이 끝난 뒤 햇빛을 피해 천천히 걸어가던 중 친구의 물음에 그 친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니 전부터 너 주변에 있으면 세진 선배가 여길 빤히 쳐다보시잖아. 지금도 말이야.”


너무 빤히 바라봐서 멀리 있어도 느껴진다는 말을 하면서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조잘조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4층에 위치해 있는 교실에서 자신을 바로 찾고 바라본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문대는 친구가 이야기하기 전부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문대야 오늘 같이 놀러 갈래?”

“미안 오늘 일정이 있어서.”


오늘 분명 형이 동아리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은 오랜만에 느긋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창문 밖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서 수업이 끝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수업이 끝났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교실을 나서려는 순간 담임선생님한테 붙잡혔다. 예정에도 없었던 상담이 시작된 것이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시간이 흘렀다. 분명 교실에 도착하면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조금 속도를 내서 복도를 가로지르며 3학년 교실로 갔다. 역시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는지 몹시 심기가 불편하다는 기운을 팍팍 내뿜고 있었다.


“형.”


돌아보지 않는다.


“형?”


다시 한번 불러보았다. 그래도 돌아보지 않는다.


“음…. 세진 선배.”


비로소 고개가 휙 돌아왔다. 한껏 째려본다고 나를 저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늦게 와서 짜증이 난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뭔지를 알아야 이야기를 해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분명 자기가 뭐라 안 해도 다 이야기를 할 테니까 빨리 말하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남에게 웃어주는 게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이걸 질투라고 하는 거겠지.

질투라니 자신의 선배이자 연인이 너무나도 귀엽게 보였다.

오늘 체육 시간에 웃어준 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조금 더 놀려볼까 하다 더 있다가는 더 난리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줬다.

다행히 마음이 풀렸는지 표정도 한결 풀어졌다. 형이 늘 나를 바라보는 장소는 같아 찾기 쉬웠지만, 형은 매번 다른 장소에 있는 나를 바로 찾고 했다.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이제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의 눈길을 끌어낸다. 그가 지나가면 눈길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향하고 있다.

머리는 따라가지 않지만, 몸이 이미 그를 인식하고 따라가고 있었다.

작은 사랑을 속삭이며 노을보다 더 붉게 물들이는 연인의 얼굴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오늘도 푸릇푸릇한 새싹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피어났다.



2021. 02. 시작한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합작 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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